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14화 (114/306)

114화. 뜻밖의 부고

마초가 서량을 평정하고 먼 서쪽 무위군까지 세력권에 넣는 데까지는 불과 석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철 갑옷과 비단 전포를 두른 기병대를 휘몰아 장제군을 격멸한 마초에 대한 소문은 날개가 달린 듯 퍼져나갔다. 본래 강한 자를 숭상하는 서량 사람들이다. 원래부터 높았던 마초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제 마초가 관서(關西 함곡관의 서쪽 지역, 관중과 서량을 말함) 최고의 영웅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원정의 결과 마가군은 관중도독부의 기존 영역이었던 천수, 안정, 농서, 북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는 것은 물론, 서평, 금성, 무도, 무위의 서량 4개 군까지 수중에 넣었다. 이렇게 얻은 서량의 8군에 관중의 4군 장안, 부풍, 풍익, 홍농을 합치면 총 12군의 세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마가군 기병대 이천, 흉노와 강족, 저족 이천오백, 도합 사천오백 군사로 이루었다.”

서량, 천수군 기성.

석 달 전, 마초는 이곳에 서량 호족들을 모아 놓고 마가군의 삼천 군사만으로 서량 정벌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곳에 호족들을 불러 모아 서량 정벌의 성공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알겠는가? 누가 서량의 주인인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소인들은 복파장군께서 이렇게 늠름하게 개선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사옵니다!”

“복파장군 천세! 천세! 천천세!”

“관중도독 만세! 만세! 만만세!”

힘에 민감한 자들은 힘의 우열이 확실해지면 그만큼 재빠르게 움직인다. 기성에 모인 호족들 중에는 아직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있는 반면, 벌써부터 갖은 아부를 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초는 피식 웃으며 좌중을 돌아봤다.

“쥐새끼 같은 장제와 이유는 한 번 싸움으로 흩어 버릴 수 있었소. 그러나 서량에서 명성이 높은 한수, 성공영과 싸울 때는 고생을 좀 했지? 그대들은 왜 그런지 아시겠소?”

“그것은…….”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들과 내통했기 때문이오. 성공영과 내통해서 한 숙부가 탈출하도록 도왔던 자들이 있었기에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 죽었소.”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초는 자리에 모인 서량 호족들을 한 명씩 쏘아보았다. 성공영과 내통했다는 혐의가 진한 자들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마초를 차마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켕기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마초는 장막 밖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라.”

잠시 후.

장막을 걷고 행령군 이감이 나타났다. 손에 큼지막한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쟁반의 위에는 사람의 머리 둘이 얹혀 있었다.

“히…히익!”

“아니, 조청룡 장군! 그리고 강서 선생?”

쟁반 위에 얹힌 머리의 주인은 서량 호족 조청룡과 강서였다. 호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당황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통의 혐의가 진한 자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거나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마초는 쟁반 위의 머리를 흘긋 보고 말했다.

“조청룡과 강서는 내통의 증좌가 확실하여 군령에 의해 참수하였소. 여러분들 중에도 이 두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한 이들이 있을 것으로 아오. 이번에는 이 두 사람을 끝으로 더 이상 죄를 캐지 않겠소.”

휴우욱.

여기저기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을 토해 놓는 자들이었다. 마초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단.”

슈우우웁.

다시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마초는 그렇게 숨쉬기 힘든 분위기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제 발 저린 호족들이 숨이 막혀 얼굴이 노래질 정도가 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멸문시켜 달라는 뜻으로 이해하겠소. 아시겠소이까?”

“예, 복파장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기저기서 우렁찬 대답 소리가 나왔다. 마초는 충성을 맹세하는 서량 호족들을 보며 입꼬리를 한껏 올려 악당 웃음을 지었다.

‘좋아. 이 정도 눌러 놓았으면 십 년은 잠잠하겠지.’

호족과 군벌의 관계는 미묘하다. 겉으로는 호족들이 군벌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군신 관계보다 계약 관계에 더 가깝다. 무력 집단도 우월한 군사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호족들에게 선택을 받아 대군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원정으로 서량에서 마가군보다 더 좋은 계약을 제시할 수 있는 세력이 없어졌다.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보복도 충분히 보여 두었다. 당분간 마가군은 후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 * *

마초는 장안이 가까워져 오자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성에 입성하면 관중도독 마등부터 저잣거리의 어린아이들까지 전부 자신의 위업을 찬양할 것이다. 온통 금빛으로 물든 들판이 마치 마초의 개선을 환영하는 휘장 같았다.

“관중, 저 밀밭들을 좀 보라고. 올해는 딱 봐도 풍작이구만.”

“정말 그렇군요. 주공께서는 끝내 이 땅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내가 해낸 게 아니라 우리가 해낸 거지. 으핫하하하!”

마초는 나관중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장안에 입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장안성이 지척에 닿도록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나관중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 이상하네요. 지금쯤 순 별가나 황보 복야가 마중을 나올 때가 됐는데…….”

“가을걷이 준비 때문에 다들 바쁜가 보지. 일단 들어가서 아버님께 인사부터 올리자고.”

마초는 위풍당당하게 관중도독부로 개선했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관원들은 다들 정신없이 헐레벌떡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초와 마주쳐도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관중도독의 치소에 도착한 마초였지만 관중도독 마등은 나와 보지도 않았다. 그저 황보력을 보내 말을 전해 올 뿐이었다.

“먼저 식사를 하라고요?”

“그렇습니다, 복파장군. 연회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원정에서 돌아오신 분들끼리 먼저 연회를 하고 계시면 관중도독과 백관들은 중간에 들어오신다고 합니다. 결과가 대승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 일단 회포부터 푸시랍니다.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저를 대신 보내셨습니다.”

“아니, 복야 대인.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길래 원정에서 돌아온 장수들과 인사하는 것도 미루신답니까?”

황보력은 마초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요즘 관중도독부는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기근이 끝났기 때문이지요. 지난 봄에 보리가 걷히면서 양식을 얻었으니, 그동안 미뤄 둔 재건 사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땅을 버리고 떠났던 유랑민들이 속속 돌아와서 호적과 경지를 다시 정리하는 것만도 엄청나게 큰일입니다. 그뿐입니까? 관중의 현령 중에 자신의 임지에서 보를 새로 쌓지 않는 자가 없고, 기근 동안 말라서 틀어져 버린 위수의 물길을 되돌리는 공사도 한창이지요. 이제 가을걷이한 곡식들을 저장하려면 창고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기근 동안은 저장할 곡식이 없어서 창고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관원들이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입니까? 아까 마주친 관원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아주 뛰어다니더군요.”

“관중도독부에 남은 관원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입니다. 현장에 나가서 직접 못질을 하며 창고를 짓고 있는 관원들도 많습니다. 창고를 다 못 지은 채로 가을걷이가 시작되었으니 무조건 속도를 내서 맞춰야 하는데, 백성들에게 역을 부과하려고 해도 가을걷이철에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관중도독께서도 처리해야 될 현안이 너무 많아서 식사도 미루고 정무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황보력의 말을 듣자 마초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관들은 기근이 들어 있는 동안보다 기근이 끝나고 재건이 시작된 지금이 훨씬 바쁠 것이다.

마초는 원정에서 돌아온 일행과 함께 연회 자리로 이동했다. 관중도독부의 문관들을 대표해서 황보력 단 한 명이 나왔을 뿐, 그 외에는 전부 원정에서 돌아온 마초 일행만이 참여하는 조촐한 연회였다. 문관이지만 마초의 최측근으로 관중도독부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나관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안타깝군요. 문관들도 이런 날은 좀 쉬면 좋을 것을.”

“문관의 싸움은 이제부터니까.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일행은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연회를 시작했다. 나관중이 개발한 소주가 몇 순배 돌고 다들 술이 얼큰하게 취해 갔다.

그런데 법정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초는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효직, 자네는 무슨 걱정이 있는가? 이번 싸움의 최고 공로자인데 조금 더 즐기지 않고.”

“복파장군, 문관의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셨지요?”

“그랬지.”

“그렇다면 관중도독께서 곧 거기장군부의 장수들 중 문관으로 쓸 수 있는 이들을 차출해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봄이 올 때까지는 출진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제일 먼저 차출해 갈 사람은…….”

“아마도 제가 될 것입니다.”

법정은 쓸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법정이 학문이 깊고 일 처리가 빈틈없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관이 그렇게 부족하다면 당장 며칠 안에 법정을 끌고 가서 관중도독부의 행정 업무에 투입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예상은 적중했다. 마초에게 문관 부족을 이유로 법정을 비롯한 거기장군부의 무관 몇몇이 관중도독부로 소속이 이동했음을 알리는 서신이 왔다.

법정이 가는 건 이미 각오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등이 문관으로 차출한 명단에는 법정 말고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다.

마초는 그의 이름을 보자 참지 못하고 그 길로 관중도독부로 달려갔다.

“아버지, 아니 도독,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뭘 그리 놀라고 그러냐? 지금 문관이 부족해서 문관들이 다 죽어 나가게 생겼다. 글 잘하는 친구들은 전부 다 행정 업무에 투입해야 할 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서황을 차출해 가시면 어찌합니까? 겨울 동안 연병을 해야 병사들이 정예가 되는데, 서황이 없으면 연병을 누가 하라고요?”

“네가 하면 되지 않느냐?”

“예?”

마등은 마초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연병은 네가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황보숭 장군의 병법서를 얻어서 연병도 쉬워지지 않았느냐?”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제가 지난 생하고 합산하면 나이가 50에 군 생활이 30년이 넘는데… 연병을…….”

“어허, 장수 된 자로서 연병을 하지 못하겠다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뭣하면 네가 직접 문관 일을 해도 된다. 너는 양진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오래 익혔지 않느냐? 사실 어지간한 종사들보다 글을 더 잘할 것이다.”

“그건 오해십니다. 제가 글을 안다고 어찌 문관들보다 잘 알겠습니까?.”

“자랑이다. 군관 봉록에 비싼 학비 내 가며 공부를 시켜 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스승님 딸하고 정분이나 났다는 거지?”

“…….”

“아니면 이번에 새로 얻은 대진국 출신 석공에게 시키든가. 대진국 군사들이 용맹하게 잘 싸운다지?”

“대진국과 우리의 군제가 완전히 다른데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갈서가 군관이었던 건 10년 전 일이고, 지금은 그저 석공일 뿐입니다.”

마초는 문관으로 차출된 서황을 돌려받기 위해 계속 탄원했으나 마등은 요지부동이었다. 갖은 궤변과 노련한 태도로 마초의 요구를 피해 갔다. 결국 마초도 포기하고 거기장군부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에이, 이제부터 내가 직접 연병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이 나이에! 복파장군씩이나 돼서!”

나관중은 화가 나 있는 마초의 눈치를 살피고, 방덕은 구석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마초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감이 들어왔다.

“주공,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서황이 문관이 됐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그보다는 더 중요한 일입니다.”

“으흠, 그래?”

계속 투덜거리던 마초는 이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말해 보게.”

“익주 방면을 염탐하는 병사들이 전해 온 소식입니다. 유 익주가 별세했습니다.”

마초의 눈이 커졌다. 나관중과 방덕도 마찬가지였다.

“익주목 유언이 죽었다고? 그 양반이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주 강건하다고 하지 않았나? 틈만 나면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긴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구해 준 둘째 아들 유탄 공자와 사냥을 자주 나간다고 했지요. 그런데 얼마 전 말에서 떨어진 후, 정양하는 동안 병에 걸렸나 봅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별세했다고 합니다.”

“으음… 언제 일이라던가?”

“아직 이십 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익주 밖에서 이 소식을 아는 건 우리뿐이겠군.”

“그렇습니다. 허도까지 소식이 전해지려면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겁니다.”

익주목 유언은 마가군의 동맹 세력이다. 일찍이 이각을 칠 때부터 동맹을 맺었다. 맹획과 남만 부대가 바로 유언이 보낸 원군이다. 기근을 나기 위한 양식도 익주에서 삼십만 석이나 꾸어 온 바 있다.

“그리고 유 익주의 세 아들을 전부 우리가 구해냈지. 그러니 우린 익주의 은인이기도 하다.”

유언의 장남 유범은 천자를 모시는 조정의 관리였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마등과 연계해서 이각을 제거하려다 음모가 탄로 나서 죽음을 맞았지만, 이번에는 마초의 활약으로 목숨을 부지한 것은 물론 천자를 호종한 공신이 되어 여전히 허도에 있었다. 둘째 유탄은 품행이 방정치 못한 망나니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각에 의해 미오성에 유폐된 것을 마가군이 구해내서 익주로 돌려보냈다.

지난 생에서 유언은 두 아들이 죽음을 맞자 울화병을 앓다가 이내 자신도 죽고 말았다. 이번에는 유범과 유탄이 생존했으니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불과 2년을 더 살고 죽음을 맞았으니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하늘에 달린 것이라 하겠다.

마초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자 입을 뗐다.

“이감. 그대는 이 사실을 속히 관중도독께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나는 이제부터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예? 먼 길을 왜 떠나십니까?”

나관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마초는 그런 그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익주목 유언은 거물이고, 우리와는 동맹 세력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이 별세했다. 우리도 최고의 예를 갖춰서 조문 사절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는 건… 주공께서 직접 조문을 가시려고요?”

“그래, 나보다 적합한 사람이 어디 있어? 수장의 아들이고, 공식적인 후계자고, 그리고 유범 중랑장이나 유탄 공자와도 안면이 있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모로 보나 마가군을 대표해서 유언의 빈소에 조문하는 인물은 마초가 가장 적합했다.

나관중이 이감을 보며 물었다.

“이감 장군, 후계자에 대한 정보는 나온 게 없습니까?”

“후계자가 누구인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유탄 공자가 맡을지, 아니면 장남 유범 중랑장이 맡을지… 아마 유범 중랑장이 상을 치르기 위해 익주로 와 봐야 결정이 되겠지요. 지위나 평판으로 보면 유범 중랑장이 맡는 게 맞는데, 유탄 공자가 돌아가신 유 익주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내부에 제법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없었기 때문에 심약한 넷째 아들 유장이 유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나관중은 한숨을 쉬었다.

“익주 내부도 사정이 복잡하겠군요. 우리는 섣불리 끼어들지 말고 잘 관망해야겠습니다… 주공?”

남들이 조문 얘기를 하는 동안 마초는 뭘 생각하는지 눈빛이 점점 빛나고 있었다. 나관중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있지. 잘하면 살길이 생기겠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마초는 나관중을 향해 형형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관중. 삼국지 촉서는 거의 외우고 있다고 했지?”

“아… 거의 외우는 건 위서와 오서고, 촉서는 완전히 달달 외운다고 보시면 됩니다.”

“좋아. 이번에 그 지식을 활용해야겠다.”

“무슨 말씀… 아!”

나관중도 이내 마초의 뜻을 깨달았다.

“문관이 없어서 서황까지 문관으로 돌리는 판국이니, 이번 기회에 익주의 문관들을 싹 쓸어 와야겠어. 유 사군을 돕던 녀석들 중 다수는 지금쯤 어린 소년이나 젊은 청년일 테지. 그놈들을 다 잡아 와서 관중도독부에서 일을 시켜야겠다. 그리고 나는 서황을 되찾는 거지.”

“…문관 사냥이군요.”

“그리고 문관을 사냥하는 김에 내가 필요한 인재들도 데려와야겠어. 싸움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들.”

“그렇군요. 누구인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익주에는 평소 마초가 데려오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사람이 세 명 있었다.

한 명은 철을 진흙처럼 주무르는 솜씨를 가진 대장장이.

한 명은 문무를 겸비한 호방한 성품의 군사.

“그리고, 지금쯤 비단 돛 달고 수적질이나 하고 있을 녀석. 잡아 와서 선봉장으로 써야겠다.”

마초는 한껏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초에게 오랜만에 나타난 악당 표정을 보고 나관중도 오랜만에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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