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13화 (113/306)

113화. 서역의 석공

마초 앞에 끌려온 이유는 침착했다.

동탁의 편에 섰을 때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다. 천자였다 퇴위당한 홍농왕 유변, 즉 당금 천자 유협의 형을 자기 손으로 독살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승리를 축하합니다, 복파장군.”

이유는 초연한 태도로 인사말을 건넸다. 마초는 이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유. 그대는 삶을 구하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물어보고 싶은 것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이제 우리까지 제압했으니 서량은 복파장군과 관중도독의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통치자가 될 셈입니까?”

“그게 궁금한가.”

마초는 피식 웃었다.

“이유, 네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것은 사대부가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사대부처럼 행세할 셈이냐? 혹시 스스로를 불운한 난세의 선비쯤으로 여기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네놈은 뼛속까지 썩어버린 역적일 뿐이다.”

마초의 독설을 들은 이유는 그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과연 젊은이다운 패기로군요. 살 만큼 살았으니 패기 있는 젊은이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다만 복파장군이 어떤 통치를 할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가는 건 아쉽군요.”

“계속 시끄럽게 구니 가르쳐 주지.”

마초는 이유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어떤 통치자가 될 것인지 물었느냐? 간단하다. 한인은 농사지을 수 있게 하고, 강족과 선비족들은 가축을 기를 수 있게 할 것이다. 가난한 자는 흉년에 굶지 않게 하고, 부유한 자는 서역과의 교역으로 더 많은 재물을 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농사지을 밭에 소금을 뿌리는 너 같은 모리배 놈들은, 딱 그 수준에 맞춰서 대할 것이다.”

마초는 타는 듯한 눈으로 이유를 쏘아보았다. 옆에 있던 법정이 대신 나서서 말했다.

“대역죄인 이유는 들어라. 너는 선대부터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몸으로서…….”

거기서부터 십여 가지가 넘는 이유의 죄상이 열거되었다. 홍농왕 시해를 비롯해 동탁군 시절의 자잘한 죄상들이 하염없이 열거되었다. 듣는 이유가 감탄할 정도였다.

“자세히도 조사하셨군요.”

그리고 법정은 마지막 죄상을 낭독했다.

“마가군을 사칭해 관중도독부의 영역을 약탈하고 밭에 소금을 뿌린 죄. 이상의 죄를 물어 거열형(車裂刑)에 처한다.”

대역죄인을 다스릴 때 사지를 네 마리 말에 묶어서 각기 다른 곳으로 달리게 한다. 전근대 사회의 처형 방법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산 채로 다섯 조각으로 찢어 죽이는 형벌이었다.

이유는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씩 웃었다.

“민심이나 신경 쓰는 얼간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이제 보니 여포와 꼭 닮아있지 않은가?”

“끌고 나가서 조리돌림한 후, 사지를 찢어라. 오체분시해서 서량 모든 고을에 돌릴 것이다.”

마초는 더 이상 이유를 상대하지 않고 일어났다.

곧이어 이유가 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형장에는 이유의 사지가 찢어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있었다.

* * *

무위군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건안 연간으로부터 300년 전, 한 무제 때 건설된 도시이다.

무제는 서북방의 영토를 새로 개척하며 무위, 장액, 주천, 돈황의 하서 4군을 설치했다. 그전까지는 농사짓는 한인들보다 유목민들이 더 많이 살고 있었다. 일대에 큰 물줄기가 없어서 농사를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위는 5호 16국 시대 양나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리게 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뒤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무위군에서 갑자기 작년부터 소출이 두 배가 넘게 늘었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외롭게 쫓겨 온 장제가 다시 일만이나 되는 군사를 모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요?”

무위에 입성한 마초와 나관중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무위의 농업 생산량이 갑자기 늘어난 배경이었다. 무위군의 관원들을 수소문해보니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하 수로를 파서 물을 댔다고?”

“그렇습니다. 몇 년 전에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서역인들 한 무리가 있는데 돌 건축에 능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고향에서 하던 대로 지하 수로를 만들어 근처 산의 눈 녹은 물을 대서 농경지를 늘렸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갑자기 도시가 커진 거였군.”

건조 지역에서는 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하에 돌로 된 수로를 파서 농업용수를 댄다. 고대로부터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지는 기술이었다. 풍토가 다른 중국에서는 이런 기술 대신 강의 물길을 돌리고 유량을 관리하는 치수 기술이 발전했다.

“예전에 서역을 왕래하는 상인들에게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지. 먼 서역 땅에 큰 나라가 있는데 돌을 써서 집과 길과 수로를 잘 만드는 사람들이 산다고.”

“아, 그건 아마 대진국(大秦國)의 이야기일 겁니다.”

“으흠. 감영이 닿지 못했던 그 대진국 말인가.”

대진국, 즉 로마 제국의 존재는 이때 중국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훗날 오나라의 황제가 되는 손권이 로마 상인들을 접견한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마초가 대진국의 대략적인 존재를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관중은 더욱 그러했다. 그가 살던 원나라 때에는 몽골인들에 의한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원나라 북부의 대도시에서는 중동, 중앙아시아계 관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주공, 그런데 대진국은 여기서 수만 리나 떨어진 곳입니다. 그냥 서역의 작은 나라 사람들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누구인지 만나 보자고.”

마초는 수하들을 시켜 수로를 건설한 서역인들을 불러오게 했다.

서역인은 전부 열여섯 명이었다. 전부 한인의 복식을 하고 있었지만, 그 외모는 한인들과 사뭇 달랐다. 하나같이 눈두덩이 깊고 코가 컸다. 머리가 누런 자와 눈이 푸른 자도 많았다. 선비족과도 다르고, 강족과도 다른 그들의 외모는 아주 먼 서쪽에 산다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서역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얼핏 보면 여윈 얼굴과 깊은 주름 때문에 마치 노인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체격이 탄탄하여 아직 중년의 나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로 무위의 지배자가 되신 마초 장군께 인사드립니다. 소인은 갈서입니다.”

갈서라는 사내는 약간 어색하지만 뜻을 통하는 데 문제없는 한어로 말했다. 고개를 숙여 읍을 하는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은 걸 보니 이곳에 온 지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고, 그저 이 사내가 말을 빨리 배운 듯했다. 마초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서역인의 우두머리 갈서에게 물었다.

“갈서, 그대가 지하 수로를 지었는가?”

“그렇습니다.”

“돌을 다루는 솜씨가 대단한가 보군. 그대들은 고향에서 석공이었는가?”

“석공은 아닙니다. 소인은 군인이었습니다. 이곳 말로 교위 정도의 군관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있는 이들은 전부 군관 시절의 부하들입니다.”

“그래? 군관 출신이 어찌하여 돌 건축에 이리 능한가? 지하 수로를 만들 정도면 보통 재주가 아닐 것인데.”

“소인이 살던 나라에서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돌로 길을 닦고 성을 쌓습니다. 소인은 사막의 작은 마을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지하 수로를 보고 자랐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에 군대에서 배운 방법을 응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사막 출신이라… 그렇다면 그대는 안식국(파르티아) 출신인가?”

“아닙니다. 소인의 고향은 로마 제국, 이곳에서 대진국이라고 부르는 그곳입니다.”

마초는 눈을 빛내며 갈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흥미롭군. 소상히 얘기해 보게. 그대들은 어쩌다가 수만 리 떨어진 이 타향까지 오게 됐는지.”

“저희들은…….”

갈서는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갈서가 고향을 떠난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 *

184년.

이 해를 흔히 삼국지가 시작된 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며 한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크라수스는 시리아 속주에서 나고 자랐다. 유목민의 약탈, 유대인의 반란, 동방의 제국 파르티아와의 분쟁 등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빈번한 곳이었다.

철이 들 무렵 로마군에 입대했다. 로마군의 보조병으로 ‘살아서’ 25년을 복무하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병사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축성과 건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군단장은 가도와 요새를 쌓는 그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그가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추천했다.

크라수스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보조병 생활을 청산하고 정규군 병사가 되었고, 다시 몇 년 지나지 않아 백인대장의 자리에 올랐다. 당초 목표로 했던 25년 복무 기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으니 그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진 듯 보였다.

“문제는 그때 일어났지요.”

184년의 일이었다.

크라수스의 백인대를 이끄는 대대장은 군단장의 사위였다. 파르티아 군과의 전투가 일어났을 때, 그는 겁에 질려서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두 개의 백인대가 전멸하는 것을 보고 크라수스는 선택해야 했다. 싸우다 죽을 것인가, 도망쳐서 살 것인가?

그는 도망쳐서 사는 길을 택했다. 적절한 판단으로 크라수스의 백인대는 전원이 생존했다.

그러나 이것이 군단장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다. 다른 두 개의 백인대가 전멸한 것이 사위의 탓이어서는 안 됐다. 그것은 오로지 멋대로 적의 앞에서 도주한 크라수스의 백인대 탓이어야 했다.

대대장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크라수스의 백인대에 10분의 1형이 선고되었다. 제정 로마에서는 보기 힘든 고대의 형벌이었다.

“부대 전체가 큰 죄를 저지른 경우,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의 병사를 희생양으로 선정하고 다른 부대원들이 직접 전우를 때려죽이게 합니다.”

전쟁터에서 먼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인간적인 군율이었다. 크라수스와 병사들은 자신의 손으로 전우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도주였다. 크라수스의 백인대에서 10분의 1형을 거부한 병사들 서른 명이 크라수스를 따라 파르티아로 귀순했다. 그들은 로마의 속주와 멀리 떨어진 동방에 배속되어 요새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거기까지 듣던 마초가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10분의 1의 아군을 직접 죽이게 한다니. 누가 생각했는지 참으로 악독한 생각을 했군. 이곳에도 숱한 혹형이 있지만, 그쪽도 마찬가지인걸.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보군.”

“그런가 봅니다.”

갈서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파르티아의 정치 사정도 혼란스러웠다. 크라수스 일행의 귀순을 받아들였던 정치가가 실각하자 동방의 영주는 그들을 곧 실크로드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투르판의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겼다.

백인대장 크라수스, 지금은 무위의 석공 갈서의 말을 듣던 마초가 다시 끼어들었다.

“투르판이라면 우리가 차사국이라고 부르는 곳이로군. 거기서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를 사 간 투르판 귀족이 남색을 즐기더군요. 우리들 중 무예가 뛰어난 자가 있어서 그자의 도움을 받아 귀족을 때려죽이고 탈출했습니다. 그 귀족이 계속 추격대를 보내길래 그들을 피해 계속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차사국에서 이곳 무위까지도 삼천 리 길이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가?”

“우리가 가장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이 어디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숨어 살려니 오아시스의 작은 도시들보다는 한의 영토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낫겠더군요. 그래서 한의 서쪽 끝 돈황까지 가서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길을 닦는 일을 하다 보니 솜씨가 알려졌는데, 무위의 이유가 우리의 재주를 사겠다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거로군. 서른 명이 고향을 떠났지만, 그런 고생을 하는 와중에 열여섯 명만 남게 된 것인가.”

“사실은 열일곱 명입니다.”

갈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명이 더 있습니다. 무예가 뛰어난 자라고 말씀드렸던 바로 그자입니다.”

“그래? 그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무위에 도착한 후, 우리와 헤어져 중원으로 떠났습니다. 한나라도 전란이 끊이지 않으니 아예 자기 솜씨를 살려서 돈을 받고 일하는 살수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마초는 살수라는 말에 장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어지간한 솜씨로는 여기서 살수로 살기 쉽지 않을 텐데. 실력이 어느 정도기에?”

“그자는 검투사였습니다. 100승을 해서 자유민이 된 후 군에 입대했지요. 그러니 일신의 무예는 여느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갈서는 검투사가 뭔지 모르는 마초를 위해 간략하게 로마의 사회상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대진국에서는 두 사람이 칼로 싸우는 모습을 수만 명이 지켜보면서 즐긴다는 건가?”

“꼭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아닙니다. 여러 명이 집단으로 싸우기도 하고, 사람과 짐승이 싸우기도 하지요.”

“신기하구만. 그보다 그런 곳에서 100번 연속으로 이겼다면 엄청난 고수일 텐데…….”

그 정도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무예 실력을 가졌을 것이다. 갈서 일행이 한으로 온 건 마초의 역사 개입과 상관없는 일이니 아마 지난 생에서도 그들은 한으로 왔을 것이고, 갈서의 검투사 출신 부하도 그만한 솜씨라면 분명히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마초는 로마 검투사 출신의 인물이 누구일지 생각했지만 마땅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예가 뛰어나고, 이국적인 용모를 한 사람… 누굴까?’

감녕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서역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학소나 여몽이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맞지 않았다. 안량과 문추는 지난번 상산 전투 때 누구인지 확인했다. 장합은 마초가 지난 생에서 여러 번 맞붙은 사이인데 아니다. 당연히 촉한의 인물들도 아니다.

‘혹시 고람인가? 아니면 장패?’

마초는 검투사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다 다시 갈서에게 물었다.

“그 검투사의 본래 이름은 무엇이고, 외모는 어떤 특징이 있나?”

“막센티우스(Maxentius)입니다. 머리는 밝은 황색이고 양쪽 눈의 색이 다릅니다.”

“아니 외모가 그 정도로 특이했으면 반드시 기록이 남았을 텐데… 뭔가 이상하군.”

마초는 잠시 검투사 막센티우스가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그런 특이한 외모가 기록에 남지 않았다는 걸로 봐서 큰 이름은 얻지 못한 것 같았다.

‘무명의 솜씨 좋은 무사로 살다가 죽었나 보군. 그보다 눈앞의 이 사내에게 집중하자.’

마초는 갈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갈서, 관중도독부에 대해 아는가?”

“그렇습니다. 동방에서… 아니, ‘천하’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장안을 다스리는 기관이지요. 관중도독 마등 장군과 그 아드님이신 마초 장군께서 관중도독부를 이끌며 장안 일대를 재건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와 같이 관중도독부에서 일하세. 대우는 이제까지의 그 누구보다도 후하게 할 테니 그대의 돌 다루는 솜씨로 나를 도와주게.”

“제가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서량의 주요 도시에 전부 지하수로를 놓는 것. 그대의 기술이면 다른 도시들도 소출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을 걸세.”

서량의 도시들은 마냥 척박해 보이지만 저마다 큰 강을 끼고 있다. 도수를 낀 농서, 위수를 낀 천수, 황하를 낀 금성 같은 도시들은 제대로 관개가 되면 농업 생산량이 확 늘어날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는 서량 전체의 통일된 지배자가 없었다. 그러니 갈서는 아마도 돈황이나 무위 같은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죽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마초의 활약으로 인해 관중도독 마등이 서북 3군을 제외한 서량의 대부분을 점유했다. 마초는 새로 얻은 후방 도시들의 치수 작업을 갈서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갈서 또한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마초가 후한 대우를 약속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읍을 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열여섯 부하들을 대표해 소인이 감사드립니다. 복파장군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성심껏 일하겠습니다.”

마초도 일어나서 갈서에게 답례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그대의 손으로 서량의 땅을 옥토로 만들어 주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