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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11화 (111/306)

111화. 서량제일 (2)

타다닥.

달려 들어오는 마초를 보며 장료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장검을 부려서 마초를 찔러 갔다.

끼기긱.

절영이 발을 미끄러뜨리며 제 자리에 멈췄다. 마초는 간발의 차이로 장료의 검을 피한 뒤, 왼손에 든 사자 투구를 장료를 향해 던졌다.

‘잔재주를 부릴 셈인가? 사자 투구로 시야를 가린 뒤 옆에서 벨 생각이겠지.’

장료는 날아드는 사자 투구에는 처음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자 투구 옆으로 날아올 마초의 검격만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초의 수는 장료의 생각과 달랐다. 마초는 의천검을 들어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의천검의 검날에 새겨진 검은 무늬가 허공에 섬뜩한 선을 그었다.

퍽!

마초가 휘두른 의천검의 궤도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두 조각으로 잘렸다. 사자 투구는 공중에서 두 조각으로 잘리고, 뒤이어 장료가 타고 있는 말의 머리도 좌우 두 쪽으로 갈라졌다.

우당탕!

머리를 잃은 말이 쓰러지자 장료도 바닥을 굴렀다. 장료는 옆으로 굴러 낙마의 충격을 줄인 뒤 신형을 수습해 일어났다.

마초가 천자의 보검을 허공에 휘둘러 칼날에 묻은 말의 피를 털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사자 투구가 날아가면서 드러난 길고 풍성한 검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보검의 터무니없는 위력을 본 장료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 칼은 대체 뭐냐? 말 머리를 종이처럼 자르다니, 놀랍구만.”

“언젠가 너 같은 놈과 싸울 줄 알고 미리 준비했지. 천자에게 받은 보물인데, 저 먼 신독(인도)의 강철로 만들었다더군.”

“용케 그런 걸 얻었군. 칼에 이름도 있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장료는 어린아이처럼 칼에 호기심을 보였다. 마초는 그런 장료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마초는 이런 순수한 자들이 싫지 않았다.

“원래 이름이 없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내 부하가 이름을 지어 주더군.”

“그래? 이름이 뭔데?”

“의천검(倚天劍).”

휘이이잉.

서량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어느새 거센 바람이 불었다. 마초와 장료의 머리가 휘날리고 옷이 찢어질 듯 펄럭이기 시작했다.

장료는 바람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낙마했고, 저 마초라는 자는 아직 말에 타고 있다. 게다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신병까지 들고 있으니…이 싸움은 어렵겠군.’

패배하면 아마 죽을 것이다. 장료는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마초를 응시했다.

그런데, 별안간 마초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의천검도 집어넣고 평소 애용하는 5척 장도를 뽑아 든 채였다.

“무슨 짓이냐?”

당황한 장료를 향해 마초가 태연하게 말했다.

“장료. 단기접전에서 여포 말고는 져본 적이 없지?”

“그렇다.”

“잘 됐군.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땅 위에서 명마와 보검 없이 너와 대등한 조건으로 겨뤄 주마. 내가 이기면 내가 묻는 말에 성심껏 대답해라.”

“뭐라고?”

장료는 기가 막혔다.

“목숨이 오가는 싸움 중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불리함을 감수하겠다는 거냐?”

“너에게 그만큼 중요한 걸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초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장료가 반문했다.

“하면, 내가 이기면?”

“살려 주지.”

“그것참…….”

타닥!

말꼬리를 흐리던 장료가 별안간 발로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마초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군!”

쨍!

장료가 선공을 취했다. 흠잡을 데 없이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마초는 장도를 들어 장료의 검을 막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장료는 마초가 검을 막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역동작으로 검을 빼내며 연격을 가했다. 합을 더할 때마다 칼이 점점 빨라졌다.

쨍! 쨍! 쨍! 쨍!

마초와 장료가 눈 깜박할 새 십여 합을 교환했다. 장료가 밀어붙이고, 마초가 막아내는 모양새였다. 주변을 둘러싼 군사들은 두 사람의 칼을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차서 그저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초가 한 번의 기회를 포착했다. 장료의 칼이 조금 느려진 틈을 타 장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깡!

장료의 검이 튕겨 나갔다. 마초는 주저 없이 장도를 들어 내리쳤다.

순간 장료가 눈을 부릅떴다.

부웅!

마초의 장도가 허공을 갈랐다. 수를 미리 읽은 장료는 몸을 반보 옆으로 틀며 마초의 장도를 피하고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마초가 장료의 검을 피하기 위해 크게 몸을 틀었다.

촤악!

사자 투구를 벗으며 드러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한 뼘이나 잘려 나갔다. 간발의 차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마초는 그대로 땅바닥을 구른 뒤 일어나 씩 웃었다.

“내 공격이 다 보이나. 신안(神眼)은 못 당하겠군.”

“대체 나에게 뭐가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까짓 궁금증 때문에 목숨을 걸다니. 이제 좀 후회가 되나?”

“그럴 리가 있나.”

마초는 흩날리는 머리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위로 틀어 올려 다시 묶었다. 그리고 장도를 늘어뜨린 채 장료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내가 이기면 될 일이다.”

까앙!

장료는 검을 들어 마초의 장도를 막았다. 날이 없는 두터운 부분으로 막았으니 마초의 장도 날이 망가졌을 터였다. 장료는 그대로 마초의 칼을 튕겨내고 반격을 하려 했다.

끼기긱.

그런데 여의치 않았다. 마초의 장도는 장료의 장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칼날끼리 긁히는 금속성의 소리가 울릴 뿐이었다.

칼끼리 맞닿은 찰검(擦劍) 상태에서 마초가 청경을 시전한 것이다.

“청경인가. 그렇다면…….”

장료는 체중을 뒤로 싣고 칼을 빼려 했다. 마초가 청경을 쓰는 이상 찰검 상태는 마초의 영역이니 이 영역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휘청.

그러나 마초의 청경은 칼이 맞닿은 상태에서 뒤로 빼는 힘조차 제어할 수 있는 경지에 있었다. 칼을 뒤로 빼는 힘은 장료의 생각과 조금 다른 궤도로 흘렀다. 몸의 중심이 어긋난 장료가 한순간 비틀거렸다.

마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한 발짝 따라 들어가며 몸을 장료의 몸에 바짝 붙였다. 두 사람이 한 손으로 쥔 칼은 맞닿은 채 서로의 몸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순간 마초가 칼을 쥐지 않은 오른손으로 뻗은 장(掌)이 장료의 몸통에 닿았다.

퍼억!

타격음과 함께 장료가 뒤로 쓰러졌다.

한 치 거리에서 온몸을 가속해서 상대를 타격하는 절기 촌경(寸勁). 그러나 청경과는 달리 아직 완성된 형태가 아니었다. 장료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려 충격을 줄였다.

“크윽, 지독한 놈이군!”

장료는 땅바닥을 굴러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한쪽 무릎을 세우고 반쯤 일어났을 때, 시야 가득 칼날이 들어왔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마초의 장도가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댄 장료의 눈앞에서 멈췄다.

털썩.

승부가 났다. 장료는 그대로 칼을 놓고 주저앉았다. 표정에 미련이 없었다.

“져 버렸군.”

“그래, 내가 이겼다.”

“복파장군 마초, 약속대로 그대의 궁금증을 풀어 주지. 내게 묻겠다는 게 뭔가?”

전투의 흥분이 사라지자 장료의 눈은 다시 표정을 알 수 없는 실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초는 그런 장료를 보며 말했다.

“나는 여포와 다시 겨뤄야 한다. 지금의 나와 여포를 비교하면 어떠냐.”

“으하하하! 그걸 물어보려고 굳이 말에서 내려 투장을 벌였나?”

장료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어버렸다.

약속은 약속이다. 장료는 웃음이 그친 후, 잠시 동안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했다.

“땅 위에서라면 온후가 더 강하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10번 싸우면 7,8번 온후가 우세하겠군.”

“말 위에서라면?”

“호각. 승패를 점치기 어렵다.”

“그런가. 짐작했던 대로군.”

마초와도, 여포와도 칼을 맞대 본 인물은 장료뿐이다. 마초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천하제일까지 가려면 조금 남았나. 당분간 서량제일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그래도 이 정도면 천하에서 두 번째로 강한 건 아마 복파장군일 것 같군. 그럼 나는 세 번째인가?”

마초는 대담하게 너스레를 떠는 장료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마초의 뒤를 따르던 군사들이 얼른 다가와 장료에게 오라를 지웠다.

성공영과 호주천, 염행, 그리고 장료.

장제군이 마초를 잡기 위해 준비한 맹장 4명이 마초 한 명에게 전부 쓰러지는 데는 일다경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장료의 패배와 함께 전투의 승패도 기울었다. 마가군의 대승이었다.

* * *

무위성.

무위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마초는 포로에 대한 처결을 시작했다.

“장료를 들게 하라.”

잠시 후, 병사들이 오라에 묶인 장료를 끌고 왔다. 마초는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그런 장료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장료는 예의 그 실눈을 뜨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밧줄이 너무 조이는군.”

“그래.”

“좀 느슨하게 해줄 수 없나?”

“없다.”

“…….”

마초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옆에서 법정이 한마디 거들었다.

“사나운 범을 묶을 때는 단단히 묶지 않을 수 없소이다. 장 장군께서 이해하시오.”

“살수 노릇이나 하는 놈을 왜 장군이라고 불러 주나? 법 군사는 과례를 조심하라.”

마초는 법정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쯤 되자 장료도 살짝 당황한 모양이었다.

“어이, 이봐, 복파장군. 난세인데 사내들끼리 칼을 맞대고 싸울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이제 싸움이 끝났는데 설마 아직도 앙금이 남은 건 아니겠지?”

“그게 장제군의 식객으로 있는 놈이 할 말이냐?”

마초의 태도는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았다. 마초는 턱을 괴고 장료를 내려다보다 불쑥 물었다.

“너는 여포의 부장으로 있었지. 그런데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무슨 사연으로 장제군에 있었던 것이냐?”

“그것이… 말하자면 길다네.”

장료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장료는 본래 병주 땅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조금 읽은 글재주를 가지고 먹고살기 위해 병주자사 정원의 휘하에서 군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검술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검술의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격검 실력을 보여주니 어느새 북방의 이름난 검객이 되었다. 그러던 찰나, 자신을 등용한 병주자사 정원이 부하 장수 여포에게 죽었다. 애초에 충성심으로 시작한 길은 아니었기에 별생각 없이 여포와 함께 동탁을 섬겼다. 그 동탁마저 여포의 손에 죽자 그때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여포를 따랐나?”

“그래. 봉록도 두둑하게 챙겨 줬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온후(여포의 작위)가 대사마 이각과 사이가 틀어져서 하북으로 떠나려 하더군.”

그런데 하북으로 떠나던 여포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다시 이각과 손을 잡기로 했다. 당시 이각의 참모였던 가후가 미오성과 미오성에 유폐된 동백을 미끼로 여포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장료는 그때 몰래 여포군을 떠났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여포가 이각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장료도 여포를 떠나지 않았다. 마초가 개입하면서 역사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장료가 불현듯 여포군을 떠난 이유는 이각에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초는 장료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포군은 왜 떠난 거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런데?”

“너무 심했으니까.”

장료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았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의 휘하에서 도가 지나친 악행을 많이 보다 보니 불만이 쌓였나 보군.’

장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투가 살짝 격해졌다.

“내 휘하의 군리들 중에도 그에게 아내를 뺏긴 자들이 있었지. 그런데 동탁의 손녀인지 뭔지, 또 어떤 계집 때문에 미오성으로 돌아간다니까 열이 받잖아? 생각 같아서는 두들겨 패 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갑자기 사라졌나?”

“그래. 동탁군과 여포군을 거치면서 못 볼 꼴을 하도 많이 봐서 그냥 몇 년 쉬고 싶었지. 그러다 하북으로 가면 비싼 값에 써줄 것 같으니, 한동안 놀다가 원소에게 귀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복파장군 때문에 일이 꼬여버린 거지.”

마초는 대강의 사정이 짐작이 갔다.

여포가 미오성에 주둔한 시간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는다. 여포는 미오성으로 오자마자 마초와 격렬하게 싸웠고, 그 후 마초의 이간계에 걸려 다시 원소에게 떠났다.

“그런데 싸움이 너무 빨리 끝나고, 네가 가려고 했던 하북에 여포가 가 버리게 됐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는 거로군.”

“그래. 그래서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마가군에 들어갈까, 아니면 조조에게나 가 볼까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유 선생이 나에게 접촉하더군. 사람 하나만 베면 촉금 십만 필을 주겠다고. 촉금 십만 필이면 태수 관직보다 낫잖아? 그런데 복파장군이 무예가 이렇게 절륜할 줄은 나도 몰랐던 거지.”

“그런가. 알겠군.”

마초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 또한 장료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 장료는 여포를 따르다 여포 사후에는 조조를 따른다. 그는 조조 휘하에서 손꼽히는 용장이었다. 그러나 주로 중원과 강동 같은 동쪽 전선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서쪽의 마초와는 볼 일이 없었다.

‘나관중이가 하도 등용해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 끌어들여 볼까 했는데 어째 영 믿음이 가지 않는걸. 이래서 장수 한 사람 몫을 하겠나?’

분명히 무예는 절륜하다. 마가군에서 장료를 이길 수 있는 무장은 마초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는 언행이 영 마음에 걸렸다. 마초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구석에서 나관중이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여서 다급하게 말했다.

‘주공, 뭐 하시는 겁니까! 무려 장료라고요!’

‘아니, 근데 영 시원치 않아 보이는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일단 한 번 써 보십시오.’

‘으음…….’

나관중이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호소하자 마초도 결국 마음을 굳혔다. 당초 세웠던 계획대로 하기로 하고 방덕, 서황, 법정에게 눈짓을 보냈다. 법정이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마초에게 되물었다.

“복파장군, 항장 장료의 처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수해.”

“알겠습니다.”

법정은 마초의 말을 받아 크게 호령했다.

“장료를 참수하라!”

“아니, 자, 잠깐!”

묶여 있는 장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복파장군, 장난이 지나치군! 나 같은 뛰어난 검객을 얻었는데 참수하겠다고?”

“아아, 그래. 그런데 우리는 뛰어난 검객 없이 여기까지 왔다.”

“아니 잠깐! 복파장군, 이 료는 실은 용병에도 재주가 있소이다. 내가 기병을 이끌고, 복파장군이 보병을 이끌면 가히 천하를 평안하게 할 만하지 않겠소?”

“넌 바보냐? 내가 왜 보병을 이끌어?”

마초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말했다.

“뭣들 하는가. 장료를 끌고 나가서 참수하지 않고.”

“아니, 이런! 제길!”

장료가 뭐라고 소리치는 와중에 방덕과 서황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먼저 나선 것은 서황이었다.

“소주공, 장료의 목숨을 살려 주시길 청합니다.”

“음? 서공명, 그대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장료가 장제군에 가담하여 악행을 도운 죄가 비록 크나, 소장 또한 무인으로서 그가 가진 재주가 아깝습니다. 전장에서 공을 세워서 죄를 씻게 하심이 어떻습니까?”

“공명. 그의 재주는 나도 아깝네. 그러나 우리는 마가군이다. 의롭지 못한 무리들을 전부 다 받아들이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자 미리 약속한 대로 방덕도 따라나섰다.

“소주공. 대업에는 벽이 없습니다. 앞으로 큰 공업을 쌓으시려면 인물이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렇기는 한데…….”

“그렇지요! 맞습니다! 이 료가 복파장군의 위업에 동참하겠습니다!”

서황과 방덕이 역성을 들어 주자 장료가 방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마초는 그런 장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장료.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옙, 복파장군. 하문하십시오.”

생명의 위험에 처하자 장료의 말투는 몹시 공손해졌다. 마초는 그런 장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포를 벨 수 있겠냐?”

“그야…….”

장료는 마초를 바라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실눈이 커져서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당연히 벨 수 있지요. 봉록을 받으면 말입니다.”

마초는 가만히 장료의 눈동자를 관찰했다. 여포의 무위에 대한 두려움이나 옛 주인에 대한 의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장료의 두 눈에는 그저 받은 만큼 일하겠다는 검객의 의욕만 보였다.

“솔직하군. 알았다.”

마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장 장료는 방덕의 부대에 부곡으로 편성한다. 무예를 증명했으니 봉록은 장수와 같이 한다. 공을 세우면 장수로 삼을 것이다.”

마초는 그렇게 처결을 마치고 군의를 끝냈다.

‘장료. 출신도 그렇고 언행도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무예 하나는 확실하니 여포와 다시 싸울 때 도움이 되겠지.’

마초는 그렇게 장료를 마가군에 남겼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포로들에 대한 처결을 시작했다. 염행, 한수, 성공영, 장제, 그리고 이유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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