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서량제일 (1)
두두두두.
절영의 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달려가는 마초에게 먼저 뛰어든 것은 호주천이었다.
“선우의 자리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네놈이!”
호주천은 흉노 말로 내뱉으며 만도를 치켜들었다. 마초는 흉노 말을 몰랐지만 호주천의 태도를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초는 왼쪽에서 다가오는 호주천을 슬쩍 보고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서 접근하고 있는 염행이 보였다.
“어디를 보느냐!”
호주천이 외쳤다. 이번에는 유창한 한어였다. 호주천은 마초를 향해 달려 들어오며 한껏 치켜든 만도를 내리쳤다.
부웅!
그러나 호주천의 만도는 허공을 갈랐다. 마초는 호주천 쪽으로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절영을 몰아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동하며 공격을 피했다.
“크윽!”
체중을 한껏 실은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호주천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마초는 여전히 오른쪽의 염행에게 시선을 둔 채 창대 끝으로 호주천의 가슴께를 찔렀다. 별로 힘이 들어가 보이지 않는, 툭 갖다 대는듯한 일격이었다.
펑!
그러나 창대의 끝에 닿은 호주천의 가슴에서 폭발하듯 큰 소리가 터졌다. 마지막 순간 창대를 가속하고 몸의 경력을 잔뜩 실어 일격을 가한 것이다. 창대에 맞은 호주천은 그대로 튕기듯 뒤로 밀려났다.
우당탕!
호주천이 허공에 붕 떴다가 땅바닥을 구르게 됐을 때, 오른쪽에서 기회를 보던 염행이 육박해 들어왔다. 마초가 창의 사정거리에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순간, 염행의 온몸이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창을 쭉 뻗었다. 서량에서 가장 빠르다는 찌르기였다.
퍽!
창이 마초의 목 언저리로 날아들고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보…복파장군!”
“주공!”
마초의 뒤를 따르던 십여 기 중의 몇몇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만큼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창날은 마초의 몸에 닿지 않았다. 마초는 마치 염행의 공격을 예상한 듯 몸을 가볍게 틀어 목으로 날아오는 창을 피했다. 그리고 금마삭의 창대로 염행의 창대를 밀어내고 있었다.
“호주천보다 네가 조금 낫군. 내 목을 한 번 노려보거라.”
마초는 씩 웃으며 금마삭을 통해 청경을 시전했다. 맞닿은 창대를 통해 두 사람의 힘이 치열하게 부딪혔다.
그러나 마초의 청경은 40년의 수련을 통해 완성한 무공이다. 결국 염행의 창대가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우직.
마초가 금마삭으로 내리누르자 염행의 창대 끝이 부러져 나갔다. 그런데 창대의 잘린 단면이 날카로운 것을 보자 염행의 눈이 다시 한번 빛났다.
“마초, 결정적인 실수를 했구나!”
염행은 지체 없이 잘린 창의 단면으로 마초의 목을 다시 찔러 갔다.
퍽!
“커, 컥…….”
그러나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가 일었을 때,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염행이었다. 마초는 염행이 내지르는 창대를 피하며 왼손으로 장도를 뽑아 염행의 어깨에 박아 넣었다. 마초는 어깨에서 튄 피로 선혈이 낭자한 염행을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줄 알았나? 염행.”
염행, 한수군 최고의 무사. 서량에서 가장 빠른 찌르기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사나이.
원래의 역사에서 젊은 마초의 목에 치명상을 입힌 일로 역사서에 이름이 전해지는 무장이다.
그러나 마초는 지난 생의 경험으로 염행의 얼굴과 수법을 알고 있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마초를 찌른 자’로 나름 굵직하게 이름이 남았을 염행은 마초에게 손도 대 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그런데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군?”
“흥.”
염행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마초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염행의 등 뒤에서 바람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쌔애애앵.
염행은 칼에 찔린 어깨에서 피가 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번개같이 몸을 틀었다. 방금 전까지 염행이 몸으로 가리고 있던 공간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찰나의 순간, 마초는 몸을 피하는 대신 엷은 웃음을 지었다.
퍼억!
“아니!”
“저, 저런…….”
싸움을 지켜보는 병사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감탄이 터졌다. 마초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낸 것이다.
우드득.
마초가 오른손에 힘을 주자 화살이 두 조각으로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마초는 멀리서 자신에게 화살을 날린 상대를 보며 양팔을 들어 보였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 다 비슷하단 말이야. 그렇지 않나, 성공영?”
마초에게 화살을 날린 성공영은 단정한 이목구비를 찌푸릴 뿐 말이 없었다. 마초는 왼손에 금마삭을, 오른손에 장도를 들고 성공영을 향해 절영을 몰았다. 당황한 염행이 뒤에서 마초를 붙잡으려 했다.
“마초, 어디를 가느냐! 네 상대는…….”
퍽!
마초는 말없이 금마삭을 뒤로 휘둘러 염행의 머리를 후려쳤다. 염행의 투구가 하늘로 날았다. 창대에 머리를 맞은 염행은 코와 입에서 피를 쏟으며 낙마했다.
쌔애애액.
성공영이 다시 한 발을 쏴붙였다. 이번 화살은 마초가 휘두른 5척 장도에 걸려서 허공에서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성공영의 활 솜씨는 서량에서 신궁 방덕 외에는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눈앞의 마초는 그런 성공영의 화살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했다. 호주천과 염행은 몇 합을 겨뤄 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성공영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그렇다면 이 방법뿐인가.”
성공영은 달려오는 마초를 향해 말을 달렸다.
창검을 든 상대가 달려오면 활을 든 상대는 자신의 거리에서 싸우기 위해 후퇴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마초는 각궁으로 쏜 화살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절정고수다.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성공영의 선택은 마초가 피하지 못할 거리에서 단 한 발로 승부를 내는 것이었다.
“기백이 있군.”
마주 달려오는 성공영을 보며 마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맞서 싸우고 있는 몸이지만 마초는 이 사내가 썩 마음에 들었다.
다가오던 성공영이 살짝 옆으로 돌았다. 화살을 맞추기 쉽도록 옆으로 돌려는 것이었다. 인간은 전면이나 측면이나 피격 면적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말은 다르다.
‘절영을 노리는군. 그렇다면 내가 먼저 공격해 주마.’
흠잡을 데 없는 전술이었다. 성공영은 그만큼 침착하고 대담했다.
마초는 5척 장도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장도로 왼쪽 겨드랑이에 끼운 금마삭을 내리쳤다.
퍽!
금마삭이 두 조각으로 잘렸다. 마초는 잘린 금마삭의 창날 부분을 들고 오른손으로 바꿔 잡았다. 성공영이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그러나 화살을 쏘는 것보다는 창을 던지는 게 조금 더 빨랐다.
부웅!
마초가 던진 창이 날았다. 목표는 활을 쏘려는 성공영의 몸통이었다. 성공영이 급히 몸을 틀었다. 마초가 던진 창이 긴 상처를 남기고 핏방울이 흩날렸지만,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성공영이 다시 자세를 회복하고 활을 들었을 때, 절영은 놀라운 속도로 눈앞까지 육박해 있었다. 다가온 마초가 5척 장도를 들어 대각선으로 내리쳤다.
퍼억!
성공영의 활이 두 조각이 났다. 활줄이 끊어지며 성공영의 얼굴을 스치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성공영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만도를 뽑아 들었다.
“으아아압!”
그때 괴성이 울렸다. 어느새 말에 다시 올라탄 호주천이 달려와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호주천은 마초가 성공영과의 싸움에 전념하는 사이 뛰어들어 만도로 마초를 찍으려 했다. 두 사람이 뽑아 든 두 자루의 만도가 마초를 노렸다.
마초는 어느새 부러진 금마삭 자루를 버리고 왼손을 등 뒤로 돌리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천자의 보검이 손에 잡히자 지체 없이 뽑아 크게 휘둘렀다.
쉬이익!
성공영이나 호주천보다 마초의 손이 더 빨랐다. 마초가 뽑아 든 천자의 보검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공간을 갈랐다. 한 번 출수하는 길에 있던 두 자루의 만도, 호주천의 갑옷과 허리, 성공영의 말머리가 차례로 잘려 나갔다.
“크아아악!”
우당탕!
허리를 깊게 베인 호주천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번 낙마하고, 말머리가 잘린 성공영도 그대로 말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호주천은 치명상, 염행도 중상을 입었다. 성공영도 말에 깔리며 왼팔이 부러져서 더 이상 싸우기 어렵게 되었다.
다닥.
마초는 절영을 몰아 크게 한 번 돌며 속도를 줄였다. 사자 투구가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우와아아!”
마가군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반면 싸움을 지켜보던 장제군과 한수군의 병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염행과 호주천, 게다가 성공영 장군까지 포함된 저 포진으로 질 수가 있는가!”
“허허허.”
수레 위에서 지켜보던 이유도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옆을 돌아보니 말에 타고 있는 장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유는 장제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장군. 마초의 무용이 어떻습니까?”
“…여포라고 해도 이렇게 싸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소. 어쩌면 마초가 천하제일일지도 모르겠군.”
“허허, 그 정도입니까.”
이중 삼중으로 짜 놓은 책략을 통해 마초를 이곳까지 끌어들였고, 소부대만을 이끌고 3만 대군 사이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여기서 미리 준비한 서량 최고의 무장들을 동원해서 마초만 잡으면 마가군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마초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터무니없는 무용으로 상황을 뒤엎고 있었다. 이유는 장제를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여포와 같은 수준이라.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이 선생, 우리의 명운이 여기까지인지도 모르겠소.”
“장 장군. 아직 낙담하기는 이릅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힘들게 장 대인을 모셔오지 않았습니까.”
장료.
동탁군의 무명 군관에 지나지 않던 사내다. 그러나 여포를 제외하면 1대 1의 대결에서는 동탁군 최고의 검객이었다.
성공영, 염행, 호주천을 제압한 마초는 그대로 장제군의 본영을 향해 달렸다.
“죽고 싶지 않은 자는 비켜라!”
굳이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장제군 병사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길을 내줬다. 마초가 보여 준 무위 때문에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져 있는 것이다.
본영에 거의 다가갔을 무렵, 결연한 표정의 장제군 기병 십여 기가 마초를 둘러쌌다. 장제와 이유를 바로 옆에서 지키는 정예병들인 모양이었다.
“헛되이 목숨을 버릴 셈이냐?”
십여 기는 대꾸도 없이 마초를 둘러싸고 각자의 병장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예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니 그 기세가 자못 강맹했지만, 마초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의 창검을 상대했다.
‘이 정도로는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그런데 그사이에 섞여 있는 어느 한 무사가 장검을 발출한 순간, 마초의 눈빛이 변했다.
휘잉!
무사가 휘두르는 장검은 다른 병사들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웠다. 마초는 몸을 크게 젖혀 피한 뒤 5척 장도를 뽑아 들고 상대를 노려봤다.
“네가 장료인가?”
“오, 이거 내가 꽤 유명해졌는걸.”
장료는 실눈을 하고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마초도 씩 웃었다.
“만나고 싶었다.”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는 장료를 충의지사, 지용겸비의 명장, 그리고 근엄한 인물로 그린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에 기록된 장료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주인을 여러 번 바꾼 그를 충의지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지용겸비의 명장이나 근엄한 인물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무모한 단독 작전으로 조조에게 타박을 듣거나, 동료 장수들과 감정싸움을 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반면 일신의 무예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연의에서 묘사된 것 이상이다. 동시대에 장료만큼 무력에 대해 많은 찬사를 받은 인물은 관우, 장비, 여포 정도다.
“어디 한 번 그 솜씨를 보여 봐라.”
두두두.
마초는 절영을 몰아 장료 쪽을 향했다. 오른손에 든 5척 장도가 날카롭게 빛났다.
동시에 장료도 한쪽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드러냈다.
부웅!
마초의 장도가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마초의 당황한 목소리도 함께 울렸다.
“아니?”
장료는 마초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미리 몸을 틀었다. 마초의 공격은 방금 전까지 장료가 있던 자리를 정확히 지났다. 크게 헛손질을 한 마초가 휘청거리는 동안, 장료는 자신의 장검을 대각선 아래에서 위로 크게 올려 벴다.
깡!
쇠와 쇠가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초의 사자 투구가 허공으로 날았다. 마초가 머리를 숙이는 게 조금만 늦었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였다.
강렬한 일합을 나눈 두 사람이 다시 떨어졌다. 마초는 장도의 끝으로 떨어진 투구를 들어 올려 왼손에 들고 장료를 향해 물었다.
“서황이 말하기를 그대의 안력(眼力)이 범상치 않다고 하더군.”
“운 좋게 남들보다 좋은 눈을 타고나서 말이야.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뻔히 다 보인다고.”
장료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가히 신안(神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대단한 재능이다. 그러나 장료가 가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 안력이 아니어도 선봉장을 할 수 있을 만큼 검술의 기본이 잘돼 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저렇게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심력도 대단한 놈이군.’
턱.
마초는 장도를 집어넣고 대신 의천검을 꺼내 오른손에 들었다. 왼손에는 여전히 벗겨진 사자 투구를 든 채였다.
“알았다. 나도 전력을 다해 주마.”
절영을 탄 마초가 그대로 장료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