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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08화 (108/306)

108화. 무위 전투 (2)

두 사람의 병기가 곧 부딪치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서황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장료라면 고순과 함께 여포의 양팔이라 알려진 자. 그자가 왜 여기에?’

고순과는 한 번 겨뤘던 적이 있다. 그때는 끝내 승패를 가르지 못했다.

이 청년이 정말로 장료라면 고순에게 뒤지지 않는 무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장료는 어느새 서황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흡!”

서황은 대부로 사선을 그리며 비스듬하게 올려 베었다. 계산대로라면 이 일격은 장료의 왼쪽 옆구리에 깊숙한 검상을 남길 것이다.

“으흠.”

그러나 장료는 너무나도 쉽게 서황의 일격을 피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예상하는 것처럼 서황의 대부가 출발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였다. 서황의 일격은 장료가 살짝 몸을 틀어서 생긴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장료의 옆구리, 즉 서황이 노렸던 지점에서 정확히 한 치 떨어진 허공이었다.

부우웅!

공격은 너무나도 작은 차이로 너무나도 크게 빗나갔다. 허공에 도끼질을 하는 꼴이 되자 서황의 몸통은 곧 허점을 드러낸 채 장료에게 노출되었다. 장료는 씩 웃으며 장검을 휘리릭 돌렸다.

“자는 문원.”

묻지도 않은 자까지 말하면서 장료는 검을 내리쳤다. 장검이 허공에 그린 선을 따라 핏줄기가 튀었다.

“자, 장군!”

“서황 장군!”

싸움을 지켜보던 군사들이 비명처럼 서황을 불렀다.

서황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팔다리를 길게 베였지만 다행히 뼈와 힘줄은 상하지 않았다. 서황은 다시 대부를 굳게 잡고 장료를 겨눴다.

장료는 장검을 어깨에 메고 신기하다는 듯 그런 서황을 바라봤다. 장료의 검은 분명히 생긴 것은 양날검이었지만 마치 도(刀)처럼 검신의 한쪽에는 날이 없어서 어깨에 걸칠 수 있었다.

“틀림없이 벴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대단한걸. 그 짧은 순간에 치명상을 피하다니.”

“…진짜 장료가 맞는 모양이군. 재작년에 여포와 싸울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이런 곳에 숨어 있었나?”

“그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장료는 싱글거리며 웃는 표정 그대로 서황에게 달려 들어왔다. 서황은 대부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그런 장료를 맞이했다.

서황의 대부가 큰 호를 그리며 장료를 덮쳤다. 사람을 두 쪽으로 가르겠다는 듯 강맹한 공격이었다.

부우웅!

그러나 이번에도 서황의 대부는 허공을 갈랐다. 장료는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서황의 공격이 닿지 않는 딱 한 치 밖에서 멈춘 뒤, 대부가 눈앞으로 지나가자 장검을 휘둘렀다.

퍼억!

쇠가 나무를 자르는 소리가 울렸다.

서황의 손에는 대부의 자루만이 남아 있었다. 장료의 칼에 잘린 대부의 날 부분은 허공을 날아 땅에 떨어졌다.

장료는 허리를 숙여 반으로 잘린 대부를 집어 들고 먼지를 털어냈다.

“도끼날 한번 무지막지하게 크군. 이걸 가져가면 꽤 좋은 선전이 되겠는걸.”

지켜보던 서황의 부하들이 다급히 다가와서 서황에게 극을 던졌다. 서황은 극을 잡은 뒤 주변을 둘러봤다. 장제군의 병사들이 슬금슬금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

자신이 끌고 온 병사들은 불과 삼십 기. 퇴각하는 총대장 장제를 잡기 위한 특공부대다.

대부가 부러진 채 이대로 퇴각하면 임무 실패가 된다. 그러나 시간을 더 지체하면 임무에 실패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서황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물러가야겠군.”

“잘 생각했네. 이 도끼날은 내가 가져갈 테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장료는 실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활짝 웃었다. 능글맞기보다는 순수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 * *

전투는 금철기의 활약에 힘입어 마가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적의 총대장 장제를 잡기 직전 나타난 장료가 서황의 대부를 꺾어 버리면서 장제군도 어느 정도 체면치레를 했다.

장제군은 무위성의 문을 단단히 잠그고 서황의 잘린 대부를 성벽에 높직하게 걸었다.

그리고 마가군의 군막.

“적진에 장료가 있다고요?”

서황의 말을 들은 나관중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렇소. 따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검술의 달인이었소. 누구라도 1대 1로는 그자를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오.”

장료는 본래 병주자사 정원 휘하의 군관이었다. 병주자사부의 상장이었던 여포가 정원을 배신하며 동탁 휘하의 병주 파벌에 속했고, 여포가 동탁까지 배신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여포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 마가군과의 미오성 전투를 앞두고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참이었다.

지금은 장료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 전이다. 그러나 마가군의 무장들은 장료의 무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여포군과 싸우기 위해 전력을 분석했었기 때문이다.

“장료도 운이 좋은 녀석이군. 길게 싸웠으면 서공명 자네에게 죽었을 텐데. 그렇지 않나?”

방덕이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러나 서황은 고개를 젓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는 절정고수일세. 동귀어진은 가능했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겠네.”

“장료가 그 정도인가?”

장료가 서황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이라는 말을 듣자 방덕의 얼굴에 장난기가 사라지고 호승심이 떠올랐다.

마초는 수하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조조군의 상장들과는 지난 생에 겨뤄 봤다. 서황, 장합, 하후연, 조인… 유일하게 겨뤄 보지 못한 게 장료다.’

조조 수하의 수많은 맹장들 중에서도 조인과 함께 필두로 꼽히는 게 장료다. 틀림없이 만만치 않은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마침 잘 됐군.”

지난 2년간 틈만 나면 수련에 몰두해 왔다. 장료 정도면 그 수련의 성과를 시험하기 딱 좋은 상대일 것이다.

“전장에서 장료를 마주치면 무리해서 상대하지 말고 전군에 알려라. 내가 직접 그자와 상대할 것이다.”

마초는 그렇게 선언했다.

논의 주제는 앞으로의 전략에 관한 것으로 넘어갔다. 장제가 무위성 안에서 그저 버티고 있으니 전원 기병으로 이루어진 마가군은 공성을 할 방법이 막막했다. 약탈이나 학살을 통해 도발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상대는 마가군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군량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자칫하면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고 퇴각하게 될 상황이었다.

“장제는 그저 거친 무부일 뿐, 이는 장제가 아니라 모사 이유의 술책일 것이다. 일이 어렵게 됐군. 효직, 방법이 있겠나?”

마초는 법정을 보며 물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법정이 마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은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유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봤습니다.”

“흠, 이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가?”

“이유는 이번 싸움을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한수를 탈출시키고, 남흉노의 호주천을 포섭하고, 가짜 마가군을 만들어 우리를 도발해서 이곳까지 끌어들였지요. 그리고 이제 우리가 군량 부족으로 퇴각하게 되면 이유와 장제의 명성이 서량을 진동시킬 겁니다. 천하에 이름난 복파장군을 패퇴시켰으니까요.”

“동감하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끝일까요?”

“그게 무슨 소린가?”

“이제 관중도독부의 세력은 장제군의 몇 배에 달합니다. 올해 원정이 실패하면 내년, 내년이 실패하면 내후년에 계속 출병할 만한 병력과 물자가 있습니다. 아군이 계속 물량을 쏟아부으면 장제군이 견딜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 마초가 물러나면 다음번 원정에서는 대군을 이끌고 올 것이다. 그때는 이유도 당해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제가 이유라면 지금 승부를 걸 것입니다. 성을 굳게 지키며 싸움을 피한 것은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한 계책일 뿐, 아군이 퇴각하기 시작하면 이유는 이번 싸움에서 결정적인 이득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결정적인 이득이라.”

“그는 복파장군의 목을 노리고 있을 겁니다.”

법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장들의 시선이 법정에게 집중되었다 이내 마초를 향했다. 마초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군이 군량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하면, 그 뒤를 들이칠 것이라 보는 건가?”

“퇴각하는 적의 후미를 습격해 이득을 보는 것은 병법의 기본이지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유는 복파장군 하나만을 노리고 습격할 것입니다.”

마초가 회귀한 후 3년. 마가군은 기근을 극복하고, 이각과 곽사를 제압하며 놀라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왔다.

이는 마초의 군재 덕분이었으니, 만약 마초가 죽는다면 마가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때까지 묵묵히 듣고 있던 마초가 입을 열었다.

“효직의 말이 옳다. 적이 마가군을 꺾는 방법은 오직 내 목을 취하는 것. 그러니 적은 필시 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복파장군, 그러시면…….”

“퇴각을 준비하라. 적들이 원하는 게 내 목이라면.”

거기까지 말한 마초는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내가 최후미에서 적들을 맞이할 것이다.”

* * *

무위성.

장제는 자신의 치소에서 이유, 한수, 성공영을 비롯한 장수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장수 국연이 들어와서 소식을 전했다.

“마초가 후퇴합니다.”

“드, 드디어… 이 선생, 우리가 이겼소!”

마가군의 퇴각 소식을 들은 장제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이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장 장군, 제 말을 잊으셨습니까?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으음…….”

시무룩해진 장제를 보며 한수가 껄껄 웃었다.

“그러나 이 선생이 그린 그림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 또한 맞지 않소? 이 선생은 장 장군을 너무 타박하지 마시오.”

마초가 이민족들을 끌어모아 만든 4천 5백 기병은 무위성의 성벽 앞에서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때 무위성의 3만 대군이 일시에 덮치면 난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고의 무사들을 배치해서 그 난전의 틈에 마초를 참살하는 것, 그것이 이유가 그린 그림이었다.

한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맹기 조카가 여러 번 싸움에서 공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겠지. 이 선생이 이번 싸움에 대비하여 서량 최고의 무사들을 전부 모았지 않소?”

“진서장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계획의 핵심으로 호주천 두령과 장 대인을 모셨으나 마초에게 두 사람의 존재가 노출되어 버렸습니다. 필시 대비가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끝까지 신중했다. 반면 마초와 직접 검을 겨뤄 본 한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떠올라 있었다.

“이 선생이 데려온 두 분도 뛰어난 무사지만, 내 휘하의 두 사람도 그에 못지않소이다. 범 같은 장수 넷이 협공을 가하면 마초라 한들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오.”

한수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봤다.

둘 중의 한 명은 성공영. 천수에 방덕이 있다면 서평에는 성공영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서량의 명궁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중간 키에 떡 벌어진 체격을 한 무장이었다. 서량에서 가장 빠른 찌르기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창술의 달인이었다.

“어르신들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염행이 마초의 목을 취할 것입니다.”

염행은 두 손을 모아 한수와 장제, 이유에게 군례를 올렸다. 염행이 웃자 얼굴에 길게 난 칼자국이 일그러지며 기묘한 모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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