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07화 (107/306)

107화. 무위 전투 (1)

마초가 이끄는 4500 기병이 무위성에 도달했다.

무위의 장제가 이끄는 병력은 3만이 넘었다. 원래부터 장제를 따르던 무리 1만, 장제가 무위에 자리 잡은 후 갑자기 늘어난 곡물 생산을 기반으로 새롭게 모병한 1만, 그리고 한수와 성공영을 따라 무위에 합류한 병사가 8천에 호주천이 이끄는 흉노 기병들이 3천을 헤아렸다.

방어측의 병력이 공격측보다 7배나 더 많다. 보통이라면 전혀 싸움이 되지 않는 병력 차였다.

“이 선생, 그런데도 무위성에 틀어박혀서 농성을 해야겠소?”

장제는 무위성의 성벽 위에서 이유를 보며 투덜거렸다.

성벽 아래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이런 지형이라면 복병이나 화공도 쓰지 못한다. 7배의 병력차를 극복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유는 잔잔하게 웃으며 그런 장제를 달랬다.

“장군께서는 조금만 참으십시오. 나가 싸우면 우리가 이기더라도 손해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굳게 지키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으음…….”

“저들은 전원 기병입니다. 말을 타고 성벽을 넘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군량 사정도 여의치 않을 테니 우리가 농성하고 있으면 저들은 곧 군사를 물릴 것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장제를 달랜 후 성벽 아래에 집결한 마가군을 내려다봤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들이 철군을 시작할 때, 뒤를 들이치면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각과 곽사를 베고 천하의 한 축으로 떠오른 마가군을 장제가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 위해 치밀한 계략을 전개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계략은 이제 성공까지 마지막 한 수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마가군의 세력이 이렇게 커진 것은 결국 마초의 군재 때문이다. 그는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무장이지만 지나치게 젊다. 자신감이 넘쳐서 항상 선봉에 서고, 전장에서는 가장 위험한 전선을 찾아다니지.’

그 자신감을 역이용해서 마초를 잡는 것. 그것이 이유가 그린 그림이었다.

‘마초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소부대끼리의 접전 상황이 온다. 그 자신이 서량 최고의 무사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량 전역을 돌아다니며 뛰어난 무사들을 모았다. 그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아무리 마초가 있더라도 소부대끼리의 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만약 마가군이 퇴각할 때 마초가 후미를 맡는다면, 마초를 베고 서량의 정세를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마초가 없는 마가군이라면 능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그 마초는 불과 5백 기만을 이끌고 성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같이 육중한 갑옷에 비단 전포를 두른 화려한 무장의 기병대였다.

“저들이 금철기인가.”

장제는 금철기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사자 투구에 비색 전포를 두른 화려한 차림새의 마초가 대열의 앞으로 나왔다. 옆에는 군사들이 작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 멀어서 얼굴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유는 왠지 마초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초가 끌고 온 수레를 쳐다보던 장제의 눈에서 별안간 불꽃이 튀었다.

“크아아악!”

장제는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다가갔다. 몸이 앞으로 쏠려 성벽 아래로 떨어질 듯했다.

“마초, 이 천하의 패륜아 놈!”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장제의 욕설이 울려 퍼졌다.

이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제의 옆으로 다가가 마초가 끌고 온 작은 수레를 응시했다. 수레 위에 사람을 앉혀 놓은 듯했다.

“허허…….”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수레 위에는 팔다리가 잘린 사람이 앉아 있었다. 2년 전의 하내 전투에서 마초에게 패했던 장제의 조카, 장수였다.

“내 창을 가져오너라!”

장제는 더 이상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그 또한 창 한 자루로 제후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인물이다. 이유는 이제 출진하는 장제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심복 국연을 불렀다.

“할 수 없군. 장 장군께서 출진하시니 호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게. 행여 마초나 그 휘하의 장수들에게 해를 당하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호위 무장은…….”

“장 대인을 붙이도록 하게.”

“존명!”

국연이 군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이유는 성벽 아래의 마가군 기병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 *

“이놈, 패륜아 마초야! 네놈이 숙부님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마가군 진영에서는 장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초와의 투장에 패해 팔다리가 잘리고 허도에 유폐됐었던 장수는 올해 바깥바람을 쐬게 되었다. 마가군의 책사 법정이 장수의 신병을 인도받아 장안으로 이감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며칠 전, 법정은 사람을 보내 장안에 있던 장수를 이 먼 무위까지 끌고 왔다. 의도는 분명했다. 장제가 싸움을 피할 경우, 그를 격동시켜서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마초는 장수가 뭐라고 떠들거나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무위성의 성문만을 응시했다.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긴 창을 꼬나 쥔 장제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오자 씩 웃으며 법정 쪽을 돌아봤다.

“성공이군. 역시 효직 자네는 나와 통하는 게 많아.”

“저야말로 복파장군께서 제 뜻을 헤아려 주시니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초와 법정은 서로 어딘가 모르게 잘 통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주 보고 웃었다. 둘 다 눈은 웃지 않는 채 입꼬리만 올리는 악당 웃음을 지은 채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관중은 두 사람이 왜 잘 통하는지 알 것 같았다.

‘둘 다 인성이…….’

싸움에 능하지 않고 농성하던 장제는 조카 장수를 보자 참지 못하고 달려 나왔다. 어림잡아 3천은 넘을 것 같은 대부대였다.

“네 이놈, 마초! 이 찢어 죽일 놈!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죽여서 내 조카의 원수를 갚으리라!”

장제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마초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마초는 그저 빙글빙글 웃으며 그런 장제를 바라보다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아직 죽지도 않은 조카는 왜 마음대로 죽은 사람 취급을 하고 그러나?”

“닥쳐라! 내가 네놈을 똑같이 만들어서 이 원수를 갚아 주리라!”

“제 조카 소중한 줄은 알면서 남의 조카들은 그렇게 죽이고 다녔냐? 숙질간의 정이 아주 눈물 나는군. 우리 호주천이도 이런 정을 좀 배워야 할 텐데.”

마초는 그렇게 비웃으며 손을 들었다.

“금철기.”

마초의 수신호를 본 5백 금철기가 일제히 열을 맞추고 돌격을 준비했다. 150명으로 이루어진 1열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돌격하라.”

“우와아아아!”

금철기의 함성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다들 준마에 철갑을 두르고 있으니 보통의 기병들보다 훨씬 무거웠다. 달려 나간 금철기 1열은 장제가 끌고 나온 기병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지직!

“으아악!”

장제의 부대는 창기병이었다. 역시 중장갑을 두르고, 서량 군벌인 장제가 직접 육성한 부대였으니 천하에서 짝을 찾기 힘든 최정예였다.

그러나 2세기 최고를 다툴 만한 장제의 기병대는 14세기의 기술로 무장한 금철기의 돌격 앞에 너무나도 무력했다.

“아니, 이게 무슨…….”

분을 이기지 못해 뛰어나온 장제다. 그러나 금철기의 첫 돌격을 당하자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갑주, 창, 등자 모두 일반적인 기병들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다. 무엇보다 등받이가 달린 고정식 안장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주었다. 말과 사람의 체중을 그대로 창끝에 싣게 되었으니 금철기의 병사들은 하나하나가 창술의 달인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민할 시간도 길지 않았다. 바로 2열이 돌격을 시작한 것이다.

콰직!

“으아아악!”

이미 첫 맞대결에서 기세가 꺾인 장제군은 두 번째 창이 박히자 피해가 더욱 커졌다. 2열의 돌격을 지휘한 방덕은 대열로 돌아가는 대신 그대로 편곤을 들고 장제군 진영을 휘젓기 시작했다. 편곤이 가는 곳마다 장제군의 병사와 장수들이 머리에서 피를 뿜었다.

“제기랄… 제기랄!”

고민할 시간이 길지 않았다. 5백 금철기를 상대하다 3천 기병들을 전부 잃을 수는 없었다.

장제는 이를 악물고 퇴각의 기를 올렸다.

“내 실수다. 분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했구나!”

장제는 일부러 장수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조카를 구출하는 것은 깨끗하게 단념했다.

‘일단 나만 살아남는다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 아직 무위성에는 양식이 많다. 돌아가서 버틴다면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마초가 퇴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

“그대가 장제인가.”

금철기 사이에 섞여 있던 경기병 삼십여 기가 우회해서 장제의 뒤를 노렸다. 선두에 선 장수는 팔척장신에 육중한 체구를 가진 장한이었다.

장수는 손에 자루가 긴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제 서량 전역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용장의 무기, 대부(大斧)였다.

“서, 서황…….”

한나라가 건국된 이래 최초로 장안성을 함락시킨 장수.

서황이 나타나자 장제의 곁에 있는 병사들이 파리하게 질렸다.

“동탁의 편에 서서 천하를 도탄에 빠뜨린 책임을 묻겠다.”

서황은 대부를 들고 말을 몰아 천천히 다가왔다. 장제는 분노로 몸을 떨며 창을 들어 서황을 겨눴다.

“건방진 젊은 놈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나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서량에서 그저 살아남았을 뿐. 감히 중원 출신 애송이가 내 목을 탐하느냐!”

서황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대부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장제를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선수는 장제가 취했다. 장제는 서황의 20보 앞에서 급히 가속하며 창을 들어 서황을 찔러 갔다.

깡!

서황은 대부를 들어 장제의 선공을 막았다. 곧이어 말을 탄 두 장수가 어울려 싸우기 시작했다.

깡! 깡! 깡!

철로 된 도끼날과 창날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병사들은 서황과 장제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병사들이 끼어들기에는 두 사람의 무예가 너무나도 고강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도 이내 우열이 가려졌다. 20여 합을 나누자 장제의 손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힘이 실린 서황의 공격을 받아내며 몸에 충격이 쌓인 것이다.

“크윽…….”

장제는 창을 크게 휘둘러 서황을 떨쳐내려 했다.

턱!

그러나 서황은 장제의 수를 예상하고 있었다. 서황의 대부와 장제의 창이 허공에서 자루끼리 부딪혔다. 장제가 창을 휘두르는 걸 막아낸 서황은 그대로 창대를 따라 대부를 미끄러뜨리며 장제의 몸을 향해 대부를 내리쳤다.

퍼억!

장제는 창을 내던지고 몸을 틀어 간신히 서황의 일격을 피했다. 대신 장제가 탄 말의 목이 잘려 바닥에 뒹굴었다.

우당탕!

말의 목이 잘렸으니 장제도 말 위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낙마해서 바닥을 구르는 장제의 머릿속에 지난 50 평생 겪은 일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낙마해서 바닥을 구르는 게 얼마 만인가.’

파란만장한 50년이었다.

장제는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나서 창을 앞으로 세웠다. 말에서 내린 서황이 대부를 쥐고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었다.

“하동 출신이라 했나. 중원에도 쓸 만한 놈이 있었군.”

장제는 다가오는 서황을 보며 씩 웃어버렸다. 기껏 서른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저 젊은이는 2년 전 자신이 지키던 장안성을 떨어뜨리며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오늘 자신의 목까지 취한다면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때였다.

“어이, 어이. 잠깐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 주겠나? 장제 장군이 죽어버리면 봉록을 줄 사람이 없어져서 곤란하거든.”

장제의 등 뒤에서 실눈을 한 청년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유가 장제를 호위하러 보낸 무장, 흔히 장 대인이라 불리는 청년이었다.

서황은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봤다.

‘어딜 봐도 대단한 무장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체격도 외모도 태도도 모두 전혀 무게감이 없었다. 등에 멘 장검은 꽤 좋은 물건 같았지만, 그저 보통의 검보다 더 좋은 정도일 뿐, 대단한 신병(神兵) 같지는 않았다.

청년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도끼를 보니 알겠군. 댁이 바로 서량의 방덕이구만?”

“…하동의 서황이다.”

“아, 그래? 서황이 활잡이고 방덕이 도끼 아니었나? 뭐 아무려면 어때.”

청년은 뻔뻔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서황을 향해 말했다.

“그대가 이끌고 온 부대는 불과 삼십 기. 여기서 속전속결로 장제 장군의 목을 취하지 못하면 상황이 불리해질 테니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거절한다.”

“그거 아쉽군.”

청년은 정말로 아쉽다는 듯 한숨을 폭 쉬고 등에 멘 장검을 뽑았다.

스르릉.

아무 군더더기도 없는 동작이었다. 청년이 발검하는 모습을 보자 서황의 눈썹이 꿈틀했다.

‘고수다.’

서황은 대부를 단단히 고쳐 잡고 한 발짝 내디디며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나는…….”

청년은 여전히 싱글거리는 낯으로 검을 겨누고 대답했다.

“…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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