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05화 (105/306)

105화. 군량 없이 행군할 수 있는 부대

한수가 일만에 달하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무위로 철군하고 난 뒤, 서평성에는 마초의 2천 군사들이 입성했다.

2천 군사들로 1만의 대군을 물러나게 했으니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 소식은 나는 듯 서량 전역에 퍼졌다.

그때까지 마초를 의심하던 천수 호족들의 생각도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불과 2천으로 한수의 1만 군사를 무위까지 내쫓았다. 마초가 중원에서 이각, 곽사를 상대로 쌓은 명성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

‘마초가 이 정도라면 장제와 한수가 연합해도 당해내기 어려운 게 아닌가? 다음에는 장제, 한수 연합군과 싸우게 될 텐데, 그 싸움에서도 마초가 이긴다면…….’

‘서량 전역이 마가군에 충성을 맹세하게 될 것이다.’

각지의 수많은 호족들이 난립하던 서량이 마가군의 깃발 아래 통일될 날이 머지않아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서평성에 입성한 마초는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군량이 그래도 모자라다고?”

마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법정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관중도독부에서 추가 보급이 왔지만, 여전히 넉넉지 않습니다. 인근의 곡식 창고들은 한수와 성공영이 철군하는 길에 불태워서 현지 조달도 어렵습니다.”

한수는 마가군이 현지 보급을 하지 못하도록 식량을 다 불태우는 청야전술을 펼치고 있었다. 농사짓는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겠지만 또한 싸움이 벌어지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관중이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법정은 그런 나관중을 흘긋 돌아보았다.

‘비서랑 나관중. 본래 복파장군의 가노였다가 면천된 자라고 했던가. 그런 것치고는 화초처럼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군. 참으로 알 수 없는 자다.’

한쪽에서 말을 듣고 있던 이감이 입을 열었다. 그가 이끄는 시랑군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서량 전역으로 퍼져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서량 일대에서 아군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흉흉한 소문?”

마초가 반문하자 이감이 대답했다.

“아군을 사칭해서 약탈을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서평과 농서 일대에서 마을을 약탈하고 밭에 소금을 뿌린다고 합니다. 마가군의 복색을 하고 마가군의 군기를 올리고, 심지어 마가군 장수들의 이름을 사칭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뭐야? 그게 무슨 소린가?”

마초의 언성이 높아졌다.

마가군은 약탈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불과 2천 병력만으로 무모해 보이는 원정을 벌인 것도 보급 받을 수 있는 군량이 그것밖에 없어서다.

“원정을 나갈 수 있는 마가군은 전부 내가 데리고 있는데 대체 누가 약탈을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밭에 소금을 뿌리는 건 무슨 짐승 같은 짓거리야? 그러면 몇 년은 농사를 못 지을 것 아닌가?”

“저도 혹시나 싶어서 아군의 행적을 면밀하게 조사했지만, 아군 휘하의 부대 중 서평과 농서 방면을 약탈했던 부대는 없었습니다. 이는 필시 적들의 계략입니다.”

이감이 말하자 법정이 말을 받았다.

“우리에게 오명을 씌우기 위해서겠지요. 우리가 약탈을 금하는 것은 민심을 얻어서 서량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계획을 흐트러뜨리려는 게 적들의 목적일 것입니다.”

마초는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약해 빠진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보겠다고 온갖 추잡한 짓을 하는군. 빌어먹을 한수 같으니. 이번에 잡으면 아예 손목을 잘라서 빼도 박도 못하고 은퇴하게 만들어 주마.”

그렇게 한참 한수의 욕을 내뱉는 마초에게 법정이 말했다.

“복파장군. 이는 아마 한문약이 아니라 다른 이의 꾀일 것입니다.”

“그래? 효직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한문약은 서량에 독립된 나라를 세우려는 자입니다. 비록 아군에 적대하고는 있으나, 그런 신념을 가진 자가 이런 짓까지 벌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서평과 농서는 원래부터 한문약의 세력이 강하던 고을들이기도 합니다.”

마초는 가만히 법정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 생각도 그러하네. 한 숙부는 이런 짓까지 벌일 위인은 아니지. 단 영걸을 자처하던 자가 이런 일을 방관할 만큼 사람이 못 쓰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아예 확실히 끝장을 낼 걸세.”

법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나관중이 끼어들었다.

“주공, 그러면 이런 일을 벌인 건 누구라고 보시는 겁니까?”

“이런 모략은 서량 군벌들의 방식이 아니다. 아마 중앙 정치를 아는 모사가 붙어 있을 것이다.”

십상시와 동탁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낙양의 조정에서는 이런 방식의 모략이 횡행했다.

지금 서량에서 중앙 정치를 경험해 본 모사는 두 명.

“한 명은 아군의 순유 별가. 그리고 또 한 명은…….”

“이유. 장제의 책사로 있는 그 자가 꾸민 일일 것입니다.”

법정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마초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탁과 붙어먹은 썩어빠진 선비. 그자가 틀림없다. 효직, 이유가 이런 일을 왜 꾸민지도 짐작하겠는가?”

“그야 뻔한 일이지요. 복파장군을 격동시켜서 무위까지 단숨에 쳐들어오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유는 무위에서 함정을 파 놓고 복파장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서평성을 떨어뜨렸으니 전과는 충분하다. 마초가 여기서 싸움을 멈추고 장안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강하게 도발한 것이라는 게 법정의 추측이었다.

마초 또한 법정의 말에 동의했다.

“효직의 말이 실로 옳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하, 그야.”

마초는 두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가야지. 한수와 장제를 짓밟고 이유의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동탁군 잔당들이 서량에서 이따위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만들겠다.”

천하에서 손꼽힐 만큼 난폭하고 잔혹한 자. 약육강식의 서량을 힘으로 제패하고 열 배의 세력을 가진 중원의 주인에게 도전한 자.

마초는 오랜만에 지난 생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법정은 그런 마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자신이 택한 주인이 패기를 내비치는 모습이 썩 만족스러운 듯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관중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는 마초와 법정을 보자 문득 몸서리를 쳤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역사에 기록된 주공은 원래 난폭하고 잔인한 인물이었지. 그리고… 법 군사도.’

그런 나관중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초와 법정은 작전의 논의에 한창이었다.

“무위로 진격하려면 장안에서 데려와야 할 인물이 한 명 있지.”

“이미 장안에 사람을 보내 뒀습니다. 수일 내에 아군 진영에 도착할 것입니다.”

“좋아. 또 하나의 문제는 군량인데.”

무위까지 가서 전투를 벌이고 귀환하려면 한 달 치 이상의 군량이 필요하다.

문제는 지금 보급받은 군량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한수가 철군하며 청야전술을 펼쳤고, 이유의 계략에 의해 곳곳에서 약탈이 자행되었으니 군량을 살 수도 없었다.

“효직은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원군을 모으시지요. 밀과 보리가 없어도 행군할 수 있는 군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법정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듣고 있던 마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생각이 내 생각과 꼭 같다. 좋아, 내일 당장 시작하지.”

군량이 없어도 행군할 수 있는 군사들을 모은다.

마초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량에는 그게 가능한 군사들이 곳곳에 있었다.

* * *

서평에서 며칠간 서쪽으로 말을 달리면 적석산(積石山)이 나온다. 황하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서량과 티베트를 나누는 경계선에 위치한 거대한 산이다.

이 적석산에는 소수민족인 저족(氐族)의 부족이 여럿 모여서 살고 있었다. 양을 키우는 목축민이라는 점에서는 강족과 비슷하나 강족과는 달리 정착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본래 익주와 관중의 경계선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으나 한나라가 강성해지며 점점 변방으로 쫓겨나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정착민이다 보니 유목민인 강족이나 선비족만큼 싸움을 잘하지는 못하지. 하지만 제법 국가의 틀을 갖추고 있어서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던 적이 있지.”

적석산에 도착한 마초는 나관중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주공께서 지난 생에서 조조와 싸우실 때 저족의 힘을 빌렸던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족이… 유목민이 아니었군요?”

나관중은 신기한 듯 저족 부락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가 살던 원나라 때에는 이미 저족은 중국이나 티베트에 동화되어 대부분 사라진 후였다.

“그래. 하지만 이때쯤부터 저족 대족장 양구가 능력을 발휘하지. 한인들의 기술을 받아들여 농업을 발전시키고, 유목 부족들과 적극적인 교역을 통해 말과 활을 얻어서 저족 기병대를 만들었지. 그렇게 만든 기병대를 호위로 붙여 서량 전체를 상대로 교역을 하더군.”

그러다 보니 저족의 세력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된다. 나관중은 역사서에 저족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는 게 바로 이때쯤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초와 나관중은 지금 그 저족 대족장 양구의 아들 천만을 만나고 있었다.

“양구 대족장의 장자 천만입니다. 한족 이름으로는 양복(楊僕)이라고 합니다.”

“복파장군 마초요.”

천만은 단정한 용모에 마초와 비슷한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이었다. 마초는 짧게 소개를 마친 후 천만을 보며 말했다.

“지난 생에서 만났을 때는 머리가 다 벗겨져 있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꽤 준수했었군.”

“예?”

“아무것도 아니오. 그보다 우리의 제안에 대해 대족장과는 이야기해 보셨소?”

천만은 마초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대족장께서 기병 5백을 내어 복파장군을 돕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오호.”

마초는 씩 웃었다.

‘천만은 젊은 시절부터 저족의 군무를 전담했다고 했었지. 사실상 천만이 직접 결정하고 양구 대족장은 승인만 했을 것이다.’

군량이 없어도 행군할 수 있는 군대.

그것은 바로 이민족의 기병대였다. 이들은 치중 수레가 없어도 말린 양고기를 씹으며 몇 달간 버틸 수 있다. 마초는 그것을 위해 저족을 비롯한 이민족 부락들을 돌며 이민족들을 마가군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저족의 젊은 지도자, 천만은 침착한 태도로 마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농서 강족과 남흉노가 복파장군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 들었습니다.”

“그러하오. 남흉노의 어부라 선우는 이미 조정에 입조하였소. 선우의 아들 표가 1천 군사를 이끌고 합류할 것이오. 농서 강족은 예전부터 관중도독부와 교류가 있었던 터라 이야기가 수월했소. 마침 장제군의 약탈로 피해를 좀 입은 모양이더군. 농서 강족의 족장이 직접 1천 군사를 이끌고 합류할 것이오.”

원래 마초가 끌고 온 2천에 저족, 강족, 흉노의 군사 2천 5백이 더해졌다. 모두 치중대 없이 행군이 가능한 군사들이다.

그러나 천만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남흉노와 농서 강족은 각각 1천씩을 냈다… 복파장군, 우리는 기병을 1천이나 낼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저족은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신흥 세력이다. 아직 그 정도의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천만은 참전한 병사 수가 적으니 나중의 논공행상에서도 후 순위로 밀릴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천만 두령은 걱정할 필요 없소. 내 청을 한 가지 들어 준다면 남흉노, 농서 강족과 동일한 병력을 내어 참전한 것으로 대우해 드릴 것이오.”

“감사한 말씀입니다. 그 청이 무엇입니까?”

천만이 묻자 마초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을 좀 빌립시다. 삼백 마리 정도.”

마초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천만과 나관중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말보다 훨씬 키가 큰 짐승이 서 있었다. 최근 저족 부락에서 교역을 위해 적극적으로 숫자를 늘리고 있는 가축이었다.

“으음… 낙타를 말입니까?”

“그렇소. 낙타는 말보다 세 배나 되는 짐을 나를 수 있다지?”

“그렇긴 합니다만, 낙타를 가지고 전쟁을 하시렵니까?”

마초가 지난 생에서 조조와 싸울 때는 낙타를 쓰지 않았다. 낙타는 관중 지방과는 풍토가 맞지 않았고, 굳이 낙타까지 운용할 만큼 보급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곧 장제, 한수와의 결전이 벌어질 무위군은 중국 대륙보다 중앙아시아에 더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서는 군용 낙타가 활약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저 녀석들이 이번 싸움에 큰 공을 세울 것이오.”

단언하는 마초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낙타들은 그런 마초의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그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풀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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