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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104화 (104/306)

104화. 금철기 (2)

퍽!

이미 세 차례의 돌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장횡군의 진영에 다시 돌아온 금철기 1열이 부딪혔다.

비단과 철로 된 기병대는 그대로 장횡의 진영을 찢고 뒤로 돌파해 나갔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금마삭을 버린 후, 칼을 뽑아 들고 장횡군을 베어나갔다.

장횡이 이끄는 2천 군사들의 대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방덕의 2열과 서황의 3열도 어느새 칼을 빼 들고 육박해 들어왔다. 패주하는 장횡군을 상대로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빌어먹을, 마초… 마초!”

장횡은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또한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자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5백 기가 셋으로 나뉘어 차례대로 돌격했을 뿐이다.

그런데 서량병 2천이 그 돌격에 손도 쓰지 못하고 와해된 것이다.

‘동 상국의 부대도, 여포의 부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기병대를 육성했다는 말인가?’

패색이 짙어지자 장횡은 이를 갈며 앞을 쳐다봤다. 사자 투구를 쓴 마초가 앞장서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경솔했다. 설마 마초가 이 정도의 기병대를 준비해 뒀을 줄이야.”

싸워서 이기거나, 져서 죽거나. 둘 중의 하나다.

장횡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창을 비껴 잡고 정면에서 다가오는 금철기를 마주 바라봤다. 선두에 선 마초의 비색 전포 자락이 흩날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장횡은 눈앞의 마초를 바라보며 외쳤다.

“네 이놈, 마초! 오늘 나와 100합을 겨루자!”

“오, 장횡인가. 그건 싫은걸.”

마초는 장횡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장횡은 지난 생에서 마초 자신을 맹주로 추대했던 서량 10군의 일원이었다. 군재는 그저 평범한 수준인데 공훈을 지나치게 탐내는 성격이었다. 마초와 인간적으로 잘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심성이 아주 나쁜 녀석은 아니지. 나중에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살려 둘까.’

마초는 그렇게 생각하며 장횡을 바라봤다. 장횡은 창을 비껴 잡고 비장한 눈으로 마초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좋아. 간다, 장횡.”

마초는 절영을 몰아 그대로 달려 나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장횡의 비장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 죽어라!”

장횡은 기합과 함께 창을 내질렀다. 말이 돌진하는 속도를 잘 살린 나름대로 준수한 일격이었다.

턱.

그러나 장횡이 내지른 창은 너무나도 쉽게 막혔다. 마초가 왼손으로 장횡의 창대를 낚아챈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경악한 장횡의 탄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초는 오른손을 들어 창대로 장횡의 말을 후려쳤다.

퍼억!

이히힝!

창대에 맞은 말은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온몸을 뒤틀었다. 장횡은 날뛰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낙마해서 땅바닥을 굴렀다.

“크윽……!”

장횡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마초가 이미 육박해 들어와 있었다.

“핫!”

마초는 말 위에서 팔을 뻗어 장횡의 목을 감았다. 마초보다 체격이 큰 장횡은 기를 쓰며 팔을 풀어내려 했지만, 목을 감아쥔 마초의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초가 처음 회귀했을 때는 20세였다. 체력과 민첩성은 놀라운 수준이었지만 힘과 체격은 그에 따르지 못했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가 완전히 다른 나이다. 23세가 된 지금은 완력까지 전성기에 근접해 있었다.

“으으윽…….”

마초가 팔의 위치를 슬쩍 올렸다. 장횡의 목을 지나는 경동맥을 조이자 장횡의 버둥거림이 더 거세졌다.

절영의 잔등 위에서 잠시 저항하던 장횡은 이내 축 늘어졌다. 혈관이 막혀 실신한 것이다.

장횡이 실신한 것을 확인하자 마초는 군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장횡을 붙잡았다!”

“마초 장군이 장횡을 잡았다! 모두 항복하라!”

신호를 받은 금철기의 군사들이 저마다 외치기 시작했다.

이미 기울어진 싸움이다. 장횡군의 병사들은 저마다 고개를 떨구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패잔병들은 방덕과 서황이 돌아다니며 제압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시작된 전투는 반 시진을 넘기기도 전에 승부가 났다. 마가군의 대승이었다.

* * *

서평성.

한수와 성공영은 방금 달려온 전령에게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장횡의 선봉대 2천이 전멸했다고?”

“그렇습니다, 진서장군! 장횡 장군은 마초와의 투장에서 패해 낙마, 선봉대 2천은 적의 돌격에 죽거나 다친 자가 절반이 넘고 살아남은 자들은 전원 투항했습니다!”

“으음… 마초의 총 병력이 2천 정도일 것이다. 설마 적의 총공격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면 마초의 용맹 때문에 크게 패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군을 공격한 적병은 불과 5백입니다!”

전령이 전하는 소식은 놀라웠다.

장횡을 들이친 마초의 군사 수는 불과 5백. 그러나 그 5백 기병대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네 배나 되는 적을 돌격 한 번으로 흩어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갑옷과 마구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전원이 중갑과 비단 전포를 두르고 있어서 화살을 맞아도 낙마하지 않고 돌진해 옵니다. 한인뿐만 아니라 강족과 선비족으로 보이는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말을 잘 타고 용감하기만 하면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고 병사로 삼은 것 같았다.

한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으음, 금철기(錦鐵騎)라…….”

마초는 상산 전투의 선봉장이자 근황부도독으로 이각군과의 회전에서 승리한 주역이다. 이제 전 중국에 마초의 군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군재로 뭔가 기발한 생각을 한 것 같군요. 아마 여포의 함진영 같은 정예부대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수는 당황했지만 성공영은 아직 침착했다.

‘비단과 철갑, 긴 마삭, 발전된 마구, 그리고 뛰어난 기수들과 최고의 지휘관이라.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여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군.’

관중에 대기근이 닥친 지난 2년간 마초는 대군을 이끌 수 없었다. 군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과 이삼천의 기병만을 이끌고 관중 각지의 백파적들을 쉬지 않고 토벌해 왔다. 병사의 수는 항상 모자랐지만, 마초가 패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고전했다는 얘기가 들려온 적도 없었다.

‘병사 수가 모자란 상황을 역이용해서 소수 정예부대를 단련시켰나. 듣던 것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녀석이군.’

그러나 성공영은 겉으로 긴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하 장수의 침착한 모습을 보자 한수도 평정심을 회복하고 물었다.

“마초가 일신의 용맹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군사를 부리는 게 제법이구나. 영, 어찌하면 좋겠느냐? 이대로 전군을 휘몰아 마초를 들이치면 되겠느냐?”

마초군의 총 병력은 2천. 한수에게는 아직 1만을 헤아리는 병력이 남아 있으니 전력 차는 다섯 배에 가깝다.

그러나 성공영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합니다.”

“어째서냐?”

“이제까지는 적의 전력이 확실치 않았으나 오늘의 전투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마초의 군사가 비록 적으나 전원 기병이며, 마초 본인은 물론 방덕과 서황 같은 맹장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네 배, 다섯 배의 전력 차이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끄응…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이냐?”

“방법은 있습니다. 다만.”

성공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길 수 있다’ 정도로 승부를 걸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만 합니다.”

사실 한수와 성공영이 턱없이 불리한 싸움이다.

관중도독부는 군량 사정만 개선되면 5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년 이후에 마등이 물량전을 걸어오면 한수군은 버티기 어렵다. 지금은 마초가 2천 기만을 이끌고 출진했기에 해볼 만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니 이번 싸움에서는 완승을 거둬야만 한다.’

그렇게 마등에게 먼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 그다음에 마등과 강화를 하고, 마등이 중원 방면으로 확장하는 동안 후방을 안정시켜 주는 대신 서량의 자치를 보장받는 게 한수와 성공영의 생각이었다.

한수가 다시 물었다.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서평성을 버리고 군사를 물리십시오.”

“으음, 그 말은…….”

“그렇습니다. 무위로 가서 평양후와 합류하는 겁니다.”

평양후 장제.

마가군에게 패한 후, 고향인 무위로 쫓겨 올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해서 서북방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위의 밭을 엄청나게 늘리고 소출을 두 배로 늘리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어느덧 2만 군사를 거느리는 강력한 군벌로 재기해 있었다.

“장제라. 결국 장제와 합류해야만 하는가.”

“평양후의 군사와 우리의 군사를 합치면 3만에 달합니다. 이 정도의 전력 차이라면 확실한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으음… 좋다. 네가 무위의 이 선생과 연통을 하고 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주공을 구출할 수 있게 정보를 빼내 준 것도 이 선생이었습니다.”

이유.

인망 있는 학자에서 조정의 중신으로, 그리고 동탁의 책사로 여러 번 모습을 바꿔 가며 난세를 살아 온 문사다. 항상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 뒤에 섬뜩한 속내를 숨기고 있는 자였다.

한수는 이유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 물었다.

“좋다. 우리가 장제군과 합류해서 3만의 군세를 구성하면 설마 마초에게 지지는 않겠지. 그런데 열 배가 넘는 전력 차이가 나 버리면 마초가 과연 무위까지 싸우러 달려오겠느냐?”

무위까지는 천 리가 넘는 길이다. 한수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마초라도 열 배가 넘는 적과 싸우러 천 리 길을 달려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공영의 생각은 달랐다.

“마초는 올 겁니다.”

“어째서냐?”

“이 선생이 펼치고 있는 책략이 있습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마초는 무위까지 달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영은 이유의 계략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한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독한 작자로군. 그래, 알았다.”

“주공, 그러시면…….”

“행장을 꾸려라. 오늘 밤 서평성을 버리고 무위로 이동한다.”

한수는 시원스럽게 결단을 내렸다. 성공영은 군례를 올려 화답했다.

‘금철기라는 부대가 대체 어떤 모양새인지 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지. 며칠 후로 미뤄야겠군.’

마초와의 결전은 천리 밖 무위에서 벌어질 것이다.

한수는 마초에게 설욕할 생각을 하며 드러나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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