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03화 (103/306)

103화. 금철기 (1)

다음날.

날이 밝자 마가군 진지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밤새 군막을 걷고 철수한 것이다.

“으음… 어찌 된 영문인가? 설마 이대로 물러난 건 아니겠지?”

“제가 가서 정찰해 보겠습니다.”

한수의 부장 장횡이 호기롭게 나섰다. 한수는 성공영 쪽을 바라봤다.

성공영은 잠시 수염을 쓸며 생각하다 장횡에게 답변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겠지요. 장횡 장군, 적의 위치를 확인하되 섣불리 교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초는 지모를 쓸 줄 아는 자이니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의 본대를 발견하면 그들보다 더 빠르게 퇴각할 수 있도록 가벼운 무장의 기병대만 데리고 갈 것입니다.”

장횡은 경기병 2천으로 정찰대를 편성했다. 혹시 적의 복병이 있더라도 바로 퇴각할 수 있는 가벼운 무장의 기병들뿐이었다.

‘게다가 병력의 수도 적의 총병력과 맞먹는 2천에 달하니, 마초로서도 섣불리 덤비기 어려운 숫자다.’

장횡은 그렇게 나름대로 대비를 해 놓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불과 20리 남짓 전진했을 때 한 무리의 기병대를 마주치게 되었다.

“저놈들은… 강족인가? 그런데 불과 100기밖에 되지 않잖아?”

그러고 보니 강족 아단부의 기병대가 마초의 정찰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족 기병들은 마초의 눈과 귀가 되어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런데 숫자가 100기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자 장횡은 슬그머니 딴생각이 들었다.

“저놈들을 잡으면 마초의 본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군. 저놈들을 잡아라! 두세 놈을 생포하면 충분하다!”

장횡이 공격의 영을 내리자 한수군 기병 2천들이 강족 기병대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강족 기병대의 선두에 서 있던 월길은 장횡이 전진해 오는 걸 보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에헤, 걸려들었군.”

월길이 이끄는 강족 기병대 몇몇이 장횡군에게 화살을 쏴붙였다.

통상적인 유효 사거리 밖이었지만 한인 병사들보다 활을 잘 쏘는 강족들이다. 몇 대의 화살이 장횡군에 도달했다.

“개의치 말고 전진하라! 분명히 낙오하는 놈이 있을 테니 포로로 잡아라!”

몸이 달아오른 장횡이 부대를 전진시켰다. 월길은 그런 장횡군과 잠시 어울리다 이내 말머리를 돌려 일제히 후퇴하도록 했다.

“어디 따라와 보라고.”

강족 기병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기수들이었다. 작달막한 말을 타고 장횡군을 피해 도망치면서 좀처럼 낙마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리를 추격하자 강족 기병들은 바위산의 틈새에 있는 작은 계곡으로 들어섰다. 마치 계곡 속에 복병이라도 둔 듯한 기동이었다.

그러나 장횡은 코웃음을 치며 지체 없이 월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갔다.

“멍청한 놈이군. 이 계곡은 복병을 둘 만한 지형이 못 된다. 이곳은 내 근거지이니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는데 나를 속이려 하다니.”

계곡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부채꼴 모양이었다. 계곡의 끝에 복병이 있다 한들 일렬로 설 수 있는 병사 수가 이백 명에 불과하다.

반면 장횡이 이끄는 군사들은 무려 이천에 달하니, 월길을 구원해 줄 복병 몇백이 계곡 안에 있다 한들 순식간에 장횡군에 포위될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장횡의 예상대로 복병이 등장했다.

부우우우우—

큰 산양의 뿔로 만든 피리의 낮고 거친 소리가 황량한 계곡에 울렸다. 소리의 파장이 다 사그라지기 전, 계곡의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기병대가 나타났다. 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화려한 무장을 갖춘 기병대였다.

장횡은 기병대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무장 한번 요란하군. 그런데 숫자가… 오백 정도밖에 안 되겠는걸?”

원래는 포로만 몇 명 잡을 계획이었지만 이천 군사의 앞에 나타난 오백 기의 복병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됐으니 계획을 바꾼다. 저놈들을 격멸할 것이다.”

장횡은 오늘 큰 공을 세우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정렬해 있는 5백 기의 기병대 사이로 부산하게 장수들이 오갔다. 마초도 직접 대열 사이를 오가며 일일이 물었다.

“다들 무장을 점검하라. 이상 없느냐?”

“예, 예.”

“좋다.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예, 예, 예.”

총대장이 사소한 것까지 챙기면서 물어보고 있었지만 5백 기의 기병들은 건성건성 대답했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 전투를 하지 않을 때는 한껏 풀어져 있는 것이 금철기의 특징이었다.

나관중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마초가 부대를 점검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 기병대가 탄생하는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내가 알고 있는 원나라의 마구와 갑옷을 재현해서 적용한 기병대. 지난 2년간 주공은 이 기병대를 육성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새로운 안장과 등자를 개발하고, 갑주와 창을 만들고, 최정예 기병들을 뽑아서 새로운 마구에 맞게 훈련시켰다.

편성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에 숫자는 5백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5백 기병대에는 대규모 전투의 전황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언젠가는 이 부대를 1만까지 늘리겠다. 그때는 온 천하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마초는 이 기병대를 놓고 그렇게 호언장담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량은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기병이 나는 곳이다. 그곳의 정예들을 모아서 나관중이 가진 미래의 지식으로 만든 장비들로 무장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병을 조련하는 마초의 능력이었다.

정사 <삼국지>에 구체적인 전술이 기록된 기병대장은 딱 두 명. 유주의 공손찬과 서량의 마초다. 공손찬은 궁기병을 잘 운영해서, 양쪽으로 대열을 펼친 후 화살을 퍼붓는 일종의 십자포화 전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계교 전투에서 국의가 이끄는 원소군 궁병대에 고전하는 등 어느 정도의 한계를 보인 사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마초의 특기는 돌격기병의 운용이다. ‘관서의 병사들은 긴 창을 잘 쓴다’는 사실이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천하를 거의 손에 넣은 조조조차, 온갖 불리한 여건 속에서 싸웠던 주공에게 궁지에 몰려서 스스로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그런 주공이 30년간의 전장 경험 끝에 얻은 깨달음을 집대성해서 키워낸 정예 기병대가 드디어 첫 전투를 치르는구나.’

“소주공, 준비가 끝났습니다.”

방덕이 다가와서 말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장난기 한 점 없이 진지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병대의 앞으로 나섰다. 태평하던 기병대의 분위기는 점검이 끝나자 사뭇 달라져 있었다.

“좋다. 금철기(錦鐵騎)!”

“예!”

마초가 2년간 육성해 온 최정예 기병대, 금철기는 천둥이 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태평하던 시간은 끝났다. 앞으로 한 시진 동안은 가장 강인한 전사가 되어야 할 시간인 것이다.

금철기의 생김새는 제각각이었다. 한인이 가장 많기는 했지만 코가 높은 자, 수염이 많은 자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강족이든, 선비족이든 가리지 않고 말을 잘 타고 용감한 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장만은 완전히 통일되어 있었다. 쇠사슬을 짜서 만든 쇄자갑과 빛나는 엄심갑으로 몸을 가리고, 그 위에 똑같은 비단 전포를 두르고 있었다. 안장은 14세기의 양식으로 등받이가 있는 고정식이었고, 이 시대의 것보다 훨씬 진보한 단단한 등자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나관중의 기억을 토대로 재현한 14세기 양식의 돌격기병을 마초의 방식대로 현지화한 무장이었다.

마초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장횡이 이끄는 군대가 서서히 다가왔다.

“삭(朔)을 들어라!”

“예!”

마초의 호령에 따라 금철기가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삭(朔)이라 불리는 기병창이었다. 금철기의 삭에는 끈이 달려있어서 왼쪽 어깨에 끈을 메어 몸에 고정시킨 후, 오른손으로 잡고 돌격하는 방식이었다. 마초는 이 금철기의 제식 무기에 금마삭(錦馬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횡군은 어느새 약 1리(400M)까지 다가왔다. 돌격 거리였다.

마초는 자신의 금마삭을 들어 허공에 크게 휘둘렀다.

“돌격!”

호령과 함께 금철기가 일제히 금마삭을 들자 수백 개의 긴 창이 장횡군을 겨누었다.

두두두두.

5백 금철기가 일제히 등자에서 발을 들어 말의 배를 차자 수백 개의 말발굽이 땅을 박찼다. 철로 만든 갑옷이 쩔그렁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비단 전포가 휘날리는 모습이 장횡군 병사들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비단과 철로 된 기병대가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숫자의 차이. 그럼에도 기병대의 위용은 대단했다. 장횡군의 병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서량의 강병답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수행했다. 기병들이 뒤로 빠지고 육중한 방패와 장창을 든 보병들이 앞으로 나와서 금철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금철기는 섣불리 달리지 않았다. 상대와의 거리가 30장까지 좁혀졌을 때, 그제서야 금철기의 1열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비색 전포를 휘날리며 사자 투구를 쓴 마초가 있었다.

“간다!”

장횡군의 1열의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금철기의 돌격을 맞이했다.

콰직!

마초의 것을 시작으로 200개의 금마삭이 일제히 적군의 몸에 꽂혔다. 빗나간 삭은 거의 없었다.

1장이 넘는 거대한 금마삭 앞에 장창병은 무용지물이었다. 보병들이 든 장창은 기병의 몸에 닿지 못했다. 기병들의 삭은 보병의 몸을 꿰뚫었고, 어떤 삭은 제2열의 보병의 몸까지 꿰뚫었으며, 또 어떤 삭은 제3열의 보병의 몸까지 꿰뚫었다.

견고하던 장횡군의 대열은 순식간에 거대한 금이 갔다.

“삭을 놓아라!”

마초는 평상시처럼 적진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그 자리에서 호령했다. 마초의 명령이 떨어지자 금철기 1열은 일제히 금마삭을 놓고 칼을 뽑아 들었다. 절반 정도의 금마삭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칼을 든 금철기 1열은 근처의 적을 베어 넘기며 양옆으로 갈라져 나갔다. 금철기 1열이 처음 돌격했던 자리가 비었다.

그 자리로 금철기 2열이 돌격했다. 선봉에는 짧은 턱수염의 청년 장수, 방덕이 서 있었다.

콰직!

이미 무너진 장횡군에 또 한 번 금마삭이 작렬했다. 단단하던 장횡군의 대열은 파도가 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철기 2열도 자신들의 마삭을 미련 없이 버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금철기 2열도 1열과 같이 장횡군을 베어 넘기며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기병대를 보내서 저놈들을 잡아라!”

장횡은 핏발이 선 눈으로 외쳤다. 고작 수백 기의 기병대라고 무시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크다. 이런 식으로 사기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힐 수 있다. 장횡의 오랜 전장 경험이 그런 일만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기병 대 기병으로 맞불을 놓아 상대의 돌격을 저지할 참이었다.

금철기 2열은 빠른 속도로 중앙을 비웠다. 그 공간으로 장횡군 기병대가 짓쳐 들어왔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동시에 돌격을 시작한 금철기 3열이었다. 선봉에는 대부를 든 장수, 서황이 서 있었다.

“뚫어라!”

“우와아아!”

서황의 외침 소리와 함께 금철기 3열이 장제군 기병대에 충돌했다.

우드드득!

금철기의 몸에 어깨끈으로 단단히 고정된 금마삭은 말이 달려오는 힘을 실어 그대로 장횡군 기병들을 꿰뚫었다. 보통의 기병이라면 말에서 떨어질 만큼 강력한 반동이 덮쳤지만, 금철기는 저마다 등자에, 등받이에 몸을 고정한 채 돌격의 반동을 이겨냈다.

“으아악!”

“크악!”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강력한 기병 돌격 앞에 사람과 말이 한꺼번에 마삭에 꿰뚫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장횡의 기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동안, 마초가 이끄는 금철기 1열은 본진으로 돌아와서 다시 금마삭을 보급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돌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후퇴가 없다. 이대로 돌파한다!”

마초는 소리 높여 외쳤다. 마초의 마음을 짐작한 절영이 힘차게 땅을 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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