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01화 (101/306)

101화. 원수를 대하는 자세 (2)

“결국 성공영과 내통한 게 누군지는 찾아내지 못했군.”

마가군의 군막.

막사의 한쪽에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기대 있는 방덕이 말했다. 서황이 말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 상황을 보니 누가 내통했는지 찾을 필요도 없겠소. 서량 호족들의 여론이 이렇게까지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 그들 중 누가 내통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오.”

“어쩌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겠지. 허나 내통한 게 누구든 상관없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쪽에 붙는 게 호족들의 생리니까. 우리에게 붙는 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전부 우리 편에 설 것이다.”

서황의 말에 대답한 것은 마초였다. 서황은 그런 마초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소주공, 호족들의 이권을 더 늘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꼭 이권을 늘려 줘야 하는 건 아니지. 우리에게 붙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보여주면 되는 일이야.”

자신만만한 마초를 보고 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한수와 장제를 쳐서 그것을 보여주실 생각이군요.”

“그렇다네. 먼저 가까이 있는 한수를 정리해야겠지.”

마초는 그대로 서평의 한수를 향해 출진을 결의했다.

성공영이 재건한 한수군의 병력은 대략 일만을 헤아린다. 반면 마초가 끌고 온 마가군 정병은 이천에 불과하다.

다섯 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누구의 얼굴에도 두려움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비서랑(나관중)이 만들어 낸 마구를 가지고 2년간 육성한 기병대다. 관중의 백파적을 토벌하며 풍부한 실전 경험도 쌓았다.’

‘이 기병대가 실전에 투입되면 서량의 모두가 복파장군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끌고 온 2천 정병은 그냥 군사들이 아니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막강한 기병대였다.

방덕, 서황, 법정, 그리고 마가군의 다른 장수들 모두가 곧 닥칠 싸움을 기대하며 눈을 빛냈다.

* * *

천수군 기성에서 한수의 본거지가 있는 서평까지는 천 리에 달하는 길이다.

그러나 마초가 불과 이천 기병만을 이끌고 서평을 향해 진군한다는 사실은 곧 한수의 귀에 들어갈 터. 절반쯤 가다 보면 군을 끌고 나온 한수와 회전이 벌어질 것이다.

행군하는 마가군의 병력은 이천 기병대와 일천 치중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군사들이 한수의 세력권에 속하는 유중현에 이르렀을 때, 치중대를 이끄는 치중종사 양관과 조앙은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군량의 배급을 줄이니 군사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오늘도 백부장 하나가 내 멱살을 잡고 갖은 수모를 다 줬단 말이오. 양 종사, 뭔가 방법이 없겠소?”

“글쎄요. 군량을 풀자면 더 풀 수 있겠지만… 법정 군사가 한사코 풀지 못하게 하니 어쩌겠습니까.”

양관과 조앙은 서로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량 호족들 중에서 이번 원정에 참여할 인물로 마초에게 지명된 두 사람은 치중대를 이끌고 군량의 보급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량의 보급이 쉽지 않았다.

“군량은 분명 한 달 치가 있소. 그런데 이 군량을 50일에 나눠 쓰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서량에서 징발하든지, 아니면 한수에게 빼앗든지 하면서 행군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복파장군이 민가를 약탈하는 건 고사하고 비단을 주고 사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으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복파장군의 측근 나관중이라는 자가 와서 군량 배급용 됫박까지 바꾸게 하지 않았소?”

“작은 되로 바꿔서 배급량을 줄인 이후부터 군사들의 불만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니, 군량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군량을 강제로 아껴서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불만을 만들고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양관과 조앙은 서로 마주 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마가군 병사들 중에는 유독 성정이 거친 자들이 많았다. 배급량에 불만을 품고 유력 호족인 자신들의 멱살을 틀어쥐는 자들도 있었으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전령이 들어와서 두 사람에게 말을 전했다.

“복파장군께서 두 분 종사를 찾으십니다.”

“무슨 일이라더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두 분만 오시랍니다.”

마초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말을 듣자 양관과 조앙은 별 의심 없이 마초의 군막으로 찾아갔다.

마초는 혼자 군막 안에 있었다. 즐겨 쓰는 5척 장도를 꺼내 놓고 칼날을 손질하고 있었다.

“복파장군, 치중종사 양관입니다.”

“치중종사 조앙이올시다.”

양관과 조앙이 고하자 마초는 두 사람을 흘긋 보고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게.”

두 사람이 앉은 다음에도 마초는 한참 동안 칼만 손질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세워 몇 번 비춰 보고 나서야 마초가 입을 뗐다.

“최근 군량이 모자라다고 뒷말이 많이 나온다지?”

마초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조앙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비서랑 나관중 선생의 말에 따라 군사들에게 배급하는 됫박을 작은 것으로 바꿨는데, 아무래도 그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복파장군, 작은 되 대신 원래 크기의 되를 써서 배급하는 게 낫겠습니다. 이제 서평도 지척 아닙니까? 차라리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기세를 몰아 단숨에 싸움을 벌이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으흠.”

마초는 여전히 칼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슬슬 초조해질 때쯤, 마초가 입을 열었다.

“양관, 자네는 원래 안정의 양씨세가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전쟁터는 이번이 처음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려서부터 무공을 조금 익혀서 몇 번 싸움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줄 수 있겠나.”

“예, 그야 뭐… 4년 전, 동 상국이 죽고 나서 전호들 몇몇이 반란을 일으켜서 그때 첫 출진을 했습니다. 복파장군 앞에서 자랑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제가 선봉에 나서서 활약을 했지요.”

양관은 마초가 자신의 전장 경험을 떠보려는 줄 알고 첫 출진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안정 양가는 원래 동탁에게 줄을 대고 있었다. 동탁에게 상납금을 바치고, 대신 자신의 영지 안에서 자치권을 보장받는 일종의 거래였다. 그때는 많은 서량 호족들이 그렇게 동탁의 편에 섰다.

그런데 동탁이 여포에게 암살당하고 하루아침에 천하의 주인이 바뀌자, 그동안 핍박받던 소작인들 중 안정 양가에게 반기를 드는 무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자들을 어떻게 했는가?”

“그야 뻔한 것 아닙니까? 첫 출진에서 대승을 거두고, 반란을 일으킨 무리들은 전부 참살했지요.”

소작인들의 반란이 전투라고 부를 만큼 격렬했다면 양가의 수탈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마초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조앙 쪽을 돌아봤다.

“그렇군. 조앙, 자네는?”

“복파장군. 저는 무예에 능하지 못해서, 부끄럽지만 싸움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 내가 알기로는 자네도 예전에 큰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던데?”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저족(氐族) 부락 하나와 문제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더군.”

“아아, 그거 말입니까? 재작년에 상처(喪妻)한 후, 외로워서 저족 계집들 몇몇과 놀았던 적이 있지요. 그때 그 계집들의 일가들이 약간 시끄럽게 굴었지만 잘 해결했습니다. 지금은 새 장가를 들었는데 마누라가 하도 꼬장꼬장해서 엄두도 못 내지요.”

조앙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역시 이감이 가져오는 정보는 정확하군.’

이감을 시켜 뒷조사를 해 보니, 조앙은 상당히 여색을 밝히는 위인이었다.

이민족 여인들 몇몇을 인신매매해 와서 밤 시중을 들게 했는데, 그들 중 유부녀가 있어서 그 남편이 조앙의 저택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다.

“흠, 그런데 잘 해결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 저족 사내놈은 죽이고, 저족 부락에는 돈을 좀 더 쥐여줬지요. 하여튼 오랑캐 놈들이란… 앗차차.”

기세 좋게 떠들던 조앙이 갑자기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마초가 강족 피 4분의 1이 섞인 이민족 혼혈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초는 피식 웃었다.

“내가 남 얘기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네들도 어지간히 험하게 살았군.”

“복파장군.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세상에 남 위에 서는 자 중에 그렇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듣고 있던 양관이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마초는 다시 한 번 씩 웃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일세. 오늘 자네들을 부른 건 부탁이 있어서일세.”

“부탁이라니요?”

“군량 배급이 모자라서 군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문제를…….”

“그래서 부탁할 게 있네. 자네들이 나에게 물건을 하나씩 빌려 줘야겠네.”

“예?”

“어떤 물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양관과 조앙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 마주봤다.

탁.

마초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그 때까지 손질하던 장도를 쥔 채였다. 그리고 양관과 조앙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네들의 머리가 필요하다.”

“예… 예?”

“복파장군, 그게 무슨…….”

퍽!

조앙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마초가 5척 장도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조앙의 목이 허공으로 날았다.

툭. 툭. 데구르르.

마초는 바닥을 구르는 조앙의 머리를 향해 무심하게 말했다.

“자네들의 머리로 성난 병사들의 마음을 달래려 하네. 조앙, 그대는 지난 생에 나를 배신하고 내 아내를 속여서 함정에 빠뜨렸지. 이번 생에는 그런 짓을 저지르기 전이니, 이건 내가 그대에게 희롱당한 저족 여인의 지아비 대신 복수하는 것으로 해 두자고.”

목이 잘려도 뇌에 산소 공급이 끊어지기 전까지 머리는 잠시 동안 생존한다. 조앙은 숨이 끊어지기 전 마초의 말을 들었는지 눈을 꿈벅거렸다.

“이런 제기랄! 우리에게 군량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씌울 셈인가!”

조앙이 죽는 것을 본 양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 들었다. 마초는 태연하게 양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관. 그대는 내 눈앞에서 아내와 두 딸을 참살했지.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나는 단 하루도 그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양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칼을 들고 마초에게 덤볐다. 양관은 왼발로 땅을 힘차게 밀며 머리 위로 치켜든 칼을 내려쳤다. 제법 틀이 잡힌 검격이었다.

탁.

그러나 마초는 무기도 없는 맨손으로 그런 양관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했다. 왼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로 양관이 내려치는 칼날을 잡아 버린 것이다.

“크, 크윽…….”

양관은 칼을 빼려 했으나 마초는 검지와 중지만으로 청경을 써서 양관이 발하는 힘을 흘렸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압도적인 무위였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내가 그대를 죽일 명분이 없더군. 그러니까… 이건 그대가 동탁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 쥐어짠 소작인들의 복수를 대신 하는 걸로 하자고.”

마초는 두 손가락으로 칼날을 틀어쥔 채 양관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죽일 만한 명분을 찾았다는 게 진심으로 기쁜 표정이었다.

푸욱.

“끄으윽…….”

마초의 칼이 양관의 배를 꿰뚫었다. 양관은 신음 소리를 흘리며 땅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조앙보다는 기백이 좀 있는지 그러면서도 마초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으려 했다.

“마초… 이런 비열한 수를… 내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놈을…….”

퍽!

양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마초가 장도를 휘둘러 양관을 참수한 것이다. 양관의 잘린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잠시 두 사람의 잘린 목을 바라보던 마초는 군막 밖에 있는 수하들을 들게 했다.

“치중종사 조앙과 양관은 되를 속여서 군량을 사사로이 착복했기에 참수했다. 이들의 목을 진중에 내걸고 군사들이 확인하게 하라. 이제부터 군량의 배급량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테니 안심하라고 일러라.”

“존명!”

수하의 교위들이 군례를 올리고 양관과 조앙의 시신을 수습해서 나갔다. 이제 저들의 목은 곧 진중에 효수될 것이다.

나관중이 일러준 계책이었다. 두 사람을 원정대에 동행시켜 호족들의 시선을 피하고, 진중에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위장해서 깔끔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걸 복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

마초는 두 사람의 시신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10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원수들을 베는 순간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두 사람은 죄를 짓기 전이니 죄를 물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저들을 베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일단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치란을 이룰 것 아닌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참기 힘든 살의가 밀려왔다. 그것을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은 마초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 은원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적지 않은 원한을 사면서 살아온 자들이다. 마초는 다른 이들의 원한을 대신 갚은 셈 치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업보가 돌아온다면 받아내면 그만이다. 그보다 곧 있을 싸움이 더 큰 문제다.”

한수와의 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마가군 2천 기병대는 닷새 안으로 한수의 근거지 서평에 닿을 것이다.

닷새 후 한수와 싸워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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