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00화 (100/306)

100화. 원수를 대하는 자세 (1)

—패륜아 마초는 들어라!

—너는 네 아비와 아우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조 승상께 대항해 군사를 일으켰다. 너는 네 처와 자식들이 기성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섣불리 기성을 떠나 군사를 움직였다.

—보아라, 여기 네 처와 자식들은 오로지 너 때문에 죽는 것이다!

양관이 마초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것은 지난 생과 이번 생을 합쳐서 13년이 지난 일이다.

그러나 마초는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불을 뿜었다. 팔뚝에는 자신도 모르는 새 핏줄이 솟을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어, 으억…….”

양관은 무공을 지닌 자였다. 그러나 나름대로 자신 있었던 완력은 분노한 마초의 손에 걸리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저 허공에서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아니, 이런…….”

좌중의 서량 호족들과 마가군 막료들이 모두 당황했다. 양관의 발언이 선을 넘은 건 사실이지만, 마초가 농담으로 받아치거나 호통을 치는 대신 갑자기 평정심을 잃고 직접 호족의 목을 조르는 것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복파장군. 고정하십시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법정이 마초의 옆으로 다가와서 말렸다. 마초가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양관의 목을 틀어쥐고 있자 법정은 다시 한번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을 그르칠 셈입니까?”

턱.

그제서야 마초는 손을 놓았다.

“커억! 커어억! 으으…….”

마초의 손에서 풀려난 양관은 땅바닥을 기며 연신 기침을 토했다. 법정은 방덕과 나관중에게 눈짓을 했다.

‘방 장군, 나 선생. 어서 복파장군을.’

눈짓을 받은 방덕과 나관중이 마초의 옆으로 다가와 양관에게서 떼어놓았다. 거리낌 없이 마초의 옷깃을 잡아끌 수 있는 건 그 둘뿐이었다.

마초는 여전히 양관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마초의 돌출행동 때문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법정은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서 마초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가리고 좌중의 서량 호족들을 향해 호령했다.

“모두 들으시오! 여기 계신 마초 장군은 대한(大漢)의 복파장군이자 근황부도독이시오. 조정의 장수로서 공무를 수행하는 데 서량 사람과 관중 사람이 따로 없소이다. 오늘 이후로 장군께 불경한 언사를 하는 자는 군율로 다스릴 것이니 명심하시오.”

법정은 그렇게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마초의 돌출행동을 본 서량 호족들 사이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관의 말이 지나쳤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천하의 이름 높은 복파장군이 더벅머리 선비 하나를 붙잡고 뭐 하는 건가.”

일단 극도로 흥분해 있는 마초를 진정시켜야 했다. 법정은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말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논의를 재개하겠소. 이각(30분) 후, 다시 뵙겠소이다.”

그리고 잠시 후.

휴식 시간 동안 별채로 이동한 마초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여기서 하필 그놈이 나오다니.”

설마 지난 생의 원수를 마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별채에는 나관중만이 마초와 독대하고 있었다. 역사를 아는 나관중은 마초의 반응만 보고도 대강의 사정을 짐작했다.

“주공. 아까 그자의 이름이 양관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내 눈앞에서 아내와 두 딸을 죽인 자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마초는 묵묵부답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자신도 답을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호족 하나를 제거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 없이 호족을 죽인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마초와 마등의 명성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마가군이 관중 재건에만 집중한다고 서량 호족들의 민심이 좋지 않은 시점이다.

“하지만 양관, 저놈만은 살려둘 수 없다. 저놈을 베지 못하면 내가 먼저 병이 나서 죽을 것이다!”

마초는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애꿎은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관중이 물었다.

“주공. 저 양관이라는 자를 살려서 쓸 생각은 없으십니까?”

“내 눈앞에서 아내와 딸들을 해친 자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저놈을 베어 버리면 마가군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되니… 이런 제길!”

“휴우.”

나관중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난세를 끝내려면 주공의 힘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구나.’

뭔가 결심한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뜬 나관중이 말했다.

“정히 그러시다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응? 무슨 방법?”

“마가군의 명성을 다치지 않고 원수를 제거하는 방법 말입니다.”

“그런 방법이 있는가? 어서 말해 보게.”

마초가 반색하며 물었다. 나관중은 진지한 눈으로 마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전에 저와 약속을 해 주십시오.”

“뭘 말인가?”

“피는 최소한으로 봐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지난 생에서 주공을 배신해서 가족들을 죽게 만든 원수가 예닐곱 명이 됩니다. 그들 중 주공이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면서, 또한 힘 있는 호족으로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을 추려 주십시오.”

“으음…….”

마초는 팔짱을 끼고 잠시 동안 생각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윤봉, 강서, 조구 같은 자들은 그저 시류에 휩쓸리는 피라미들일 뿐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양부와 염온은 지난 생에서 나와 원수를 졌지만 나름대로 재주와 기개가 있는 자들이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이고 딱히 묵은 감정이 없으니, 차라리 지난 생의 일을 잊고 같이 큰일을 도모하는 것도 괜찮겠지. 서황이나 장기도 지난 생에는 나의 적수였지 않은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용서할 수 없는 자는…….”

“양관, 그리고 조앙. 이 두 놈만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다.”

마초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마초의 눈앞에서 양하원과 두 딸을 참살한 양관.

마초를 배신하는 계획을 주도한 주모자이자, 자신의 아내를 시켜 양하원을 함정에 빠뜨린 조앙.

“이 두 놈은 도저히 살려둘 수 없다. 마침 둘 다 호족이고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아. 나 말고도 여러 곳에서 원한을 사고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두 사람을…….”

아무리 난세라지만 완전히 모사가 돼 버린 스스로의 모습이 낯선 탓일까? 나관중은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 말했다.

“…티 나지 않게 제거할 계책이 있습니다.”

* * *

이 각의 휴식 시간이 지난 후, 마가군 중신들과 서량 호족들이 다시 천수태수의 치소에 모여 앉았다.

마초는 안정 호족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바라봤다. 양관이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방금 전 봉변을 당한 탓인지 아직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양관, 조금만 기다려라.’

마초는 속으로만 이를 갈고 이번에는 천수 호족들이 앉아 있는 쪽을 꼼꼼히 살폈다.

작정하고 찾으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천수 호족들 사이에 흐릿한 인상의 청년이 하나 있었다. 지난 생에서 마초를 배신했던 원수, 조앙이었다.

‘조앙, 네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마초는 속으로는 양관과 조앙을 잔뜩 벼르면서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여러분의 우려는 잘 알았소. 내가 불민하여 미처 헤아리지 못했으나, 마가군의 현사들이 내게 가르침을 주었소이다.”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좌중의 호족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호족들의 불만이 쌓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식량난을 견디기 위해 금주령을 내린 것도 문제였다. 한나라 때의 가장 중요한 수익사업은 소금, 철, 그리고 술이다. 술을 빚지 못하면서 돈줄이 끊어진 호족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뭄에 강한 수수와 조를 심도록 작물까지 강제했는데, 이 작물들은 수확량이 크지 않으니 전호(佃戶, 소작농)들에게 걷는 세곡도 한참 줄어들었을 터였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마가군에 마음으로 복속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오. 나를 서량 전체의 대표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정도 잘 알겠소.”

“으음…….”

“크흠…….”

마초가 대놓고 얘기하자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마초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뭐라 생각하든 나는 서량 사람이오. 당장 전쟁을 하기 어렵다고 한수와 장제를 내버려 둔다면 계속해서 이 땅에 계속 전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나는 여러분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수와 장제를 토벌하여 서량의 전란을 끝낼 것이오.”

마초가 말하자 좌중에 모인 서량 호족들 사이에 다시 한번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복파장군, 우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삼만이 넘는 적병을 어떻게 토벌하시겠다는 겁니까?”

“내게 마가군의 이천 기병이 있지 않소?”

마초는 웅성거리는 호족들에게 태연하게 대답했다.

3만이라는 것은 최소로 잡은 수치다. 그러니 마초가 이끌고 온 군사들과 실제 한수, 장제의 병력 차이는 15배가 넘는다.

호족들이 당황한 것도 당연하다.

“병력도, 군량도 징발하지 않겠소. 오직 수송용 수레와 치중대만 빌려 쓰겠소. 여러분들은 힘을 모아 수레 삼백 량과 치중대 일천 정도를 편성해 주시오.”

호족들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 마초에게 멱살을 잡혔던 양관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복파장군, 그 정도의 지원만으로 정말 서량을 평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마초는 씩 웃으며 양관을 바라봤다. 입꼬리는 한껏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내가 여러분의 군사와 양식을 쓰지 않고 한수와 장제를 토벌하면 여러분의 생각도 바뀔 것이오. 그다음에도 마가군에 불만이 있거든 기탄없이 말하시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다음에는 불만이 있을 리 없다. 마가군이 서량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호족들은 마가군에 줄을 서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길 것이다.

마초는 옆을 돌아봤다. 나관중이 목을 가다듬고 좌중의 서량 호족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께서 복파장군을 완전히 신뢰하시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서량 호족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도록 이번 원정에 젊은 선비 두 명을 데려가고자 합니다.”

서량 호족 조청룡이 일어나 질문했다.

“두 명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한 명은 천수의 조앙 선생. 또 한 명은 안정의 양관 공자입니다.”

조앙과 양관의 낯빛이 변했다. 왜 갑자기 우리를 지목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관중은 조앙과 양관을 보고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만들어주신 치중대를 마가군의 장수가 이끄는 것보다는 서량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이끄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두 분은 서량에서 명망이 높으니 충분히 이런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량 호족들이 만들어 준 치중대이니 서량 호족의 대표가 이끄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아무래도 원정대에 우리 쪽 사람이 있는 게 낫긴 하지.”

서량 호족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원정에 따라가게 된 조앙과 양관만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마초와 다른 호족들이 전부 찬성하는 안에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했다.

짝.

마초는 손뼉을 마주치며 자신에게 주의를 돌렸다.

“이제 알겠나? 그대들은 치중 수레만 대라. 내가 그대들의 군사를 쓰지 않고 한수와 장제를 짓밟고 오겠다. 앞으로 석 달 후, 누가 서량의 주인인지 여기 모인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마초는 솟구쳐 오르는 복수심을 속으로 갈무리하고 얼굴에 자신감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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