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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88화 (88/306)

88화. 마등 대 이각 (2)

“마수성이, 오냐오냐 했더니 이제 이 대형을 발 아래로 보네? 산 채로 잡아서 어쩌겠다고?”

이각은 빽 소리를 지르며 장검을 들어 출수했다.

쾅!

두 사람의 칼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드득!

마등은 그대로 칼날을 바싹 붙이며 몸으로 이각을 밀어붙였다. 칼날끼리 긁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체격의 우세를 활용한다.’

반면 이각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칼자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손목 힘을 한 번 쓰자 이각이 쥔 장검이 핑그르 돌면서 마등의 장도를 튕겨냈다.

챙!

이각은 괴력만 가진 게 아니라 검술의 달인이기도 했다. 땅 위에서의 공방은 말 위에서와 양상이 달랐다. 순식간에 마등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쌓였다.

“잘난 척하지 마라, 마수성. 감히 나를 산 채로 잡겠다고? 그게 너에게 가능할 것 같으냐?”

퍽!

이각이 장검을 두 손으로 잡고 내려쳤다. 마등은 장도를 눕혀서 겨우 그 공격을 받아냈다.

끼긱.

마등의 장도는 이각의 장검에 눌려 마등의 어깨를 짓눌렀다. 장도의 칼등이 마등의 어깨를 곧 파고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불쌍한 마수성. 기껏 나와 칼을 맞댈 수 있게 됐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이각은 마등의 코앞에서 히죽 웃었다. 진한 화장을 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역시 무예로는 안 되나.’

서량 최강이라는 건 허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등은 당황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안 되면, 비열하게 이기는 방법도 있지.”

척.

마등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오른손을 뻗어 이각의 멱살을 잡았다. 이각의 움직임은 봉쇄됐지만 마등의 어깨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무슨 헛짓거리를…….”

이각이 그렇게 내뱉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화살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쇄애애액!

“제기랄!”

이각은 화살이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알자 몸을 빼내려 했으나 마등의 오른손이 자신을 놓아 주지 않았다.

퍽!

뒤에서 날아온 화살은 이각의 허벅지에 꽂혔다. 다리에 화살을 맞은 이각이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마등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른손으로 잡은 멱살을 끌어당겼다.

퍽!

박치기였다. 투구를 쓴 머리가 이각의 맨 얼굴을 가격하자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각은 멱살을 잡혀서 공간이 없는 와중에도 긴 칼을 부려서 마등의 몸통을 노렸다. 마등은 몸통을 노린 찌르기를 그대로 왼손의 장도로 쳐내며 개의치 않고 계속 박치기를 했다.

퍽! 퍽!

투구 쓴 머리가 이각의 안면을 가격하는 소리, 이각의 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날아온 화살이 이각의 반대쪽 다리에 꽂히는 소리가 울렸다.

‘몸의 힘은 다리에서 나온다. 두 다리에 화살을 맞았으니 이각도 괴력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마등의 계산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각은 피 섞인 침을 퉤 뱉어내며 말했다.

“마수성, 너는 정말 아주…….”

“아주 뭐냐?”

“훌륭하구나.”

이각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리고 장검을 역수로 쥐고 칼자루로 마등의 턱을 올려쳤다.

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등이 뒤로 쓰러졌다. 마등은 땅을 한 바퀴 구르고 인상을 잔뜩 쓰며 일어났다. 다행히 턱은 부서지지 않았다. 충돌 직전 턱을 뒤로 빼서 힘을 죽였기 때문이다.

멀리서 활로 마등을 엄호하던 방덕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각이 생각보다 더 강하군. 아무래도 이 싸움은 내가…….’

그때, 이각의 등 뒤에서 폭음이 울렸다.

쾅!

풍익의 성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뒤이어 한 무리의 군사들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백부님!”

“백부님! 저희가 왔습니다!”

이각의 조카, 이리와 이섬이 이끄는 군사들이 이각을 구원하기 위해 성안으로 돌입한 것이다.

이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리와 이섬을 바라본 후 하늘이 떠나가라 웃었다.

“호호호호호!”

이각이 앙천대소하는 사이, 이리와 이섬이 이끌고 온 군사들은 순식간에 이각의 앞에 두터운 방패의 벽을 쌓았다. 날아드는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소교 몇몇이 다리를 다친 이각을 부축해서 말 위에 올렸다.

이각은 말 위에 올라 뒤를 돌아봤다. 성문을 돌파한 군사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거느린 서량의 강병들이었다.

“마수성, 너도 서량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었지. 성으로 끌어들여서 기습을 하고, 투장을 하는 척하며 몰래 활로 뒤통수를 노리고…그래, 이런 게 바로 서량의 싸움이지.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이각은 깔깔대며 웃었다.

성문이 열렸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군사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제 시간은 이각의 편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를 어째? 중영(동탁의 자) 대형이 남기고 간 유산이 워낙 두둑해야 말이지. 아무리 방비가 허술할 때를 노려 봤자, 내 곁에는 아직도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있단다.”

두두두두.

이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등은 말을 몰아 다시 이각에게 돌진했다. 정은과 성의를 비롯한 한 무리의 기병들이 뒤를 따랐다.

“이각.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그렇게 떠들고 있을 여유가 있더냐.”

마등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푸른 눈동자는 동공이 잔뜩 수축되어 여전히 짐승의 그것처럼 보였다.

척. 척. 척.

이섬과 이리의 수신호를 받은 이각군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앞으로 나왔다. 수십 번의 실전에서 살아남아 온 정예병들이었다. 1열은 몸을 웅크린 채 큰 방패를 들고, 2열은 긴 창을 세워 기병의 돌진에 대비했다.

선두에 선 마등이 보병대에 충돌하기 직전, 정은과 성의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2장에 달하는 긴 창을 뻗어 마등의 앞을 가로막은 병사를 쓰러뜨렸다.

퍽! 퍽!

두 번의 파열음이 울리고 두 명의 병사가 쓰러지자 마등의 앞에 아주 작은 길이 열렸다. 마등은 주저하지 않고 그 길로 뛰어들었다.

콰직!

서역의 명마는 마등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그대로 짓밟고 달렸다. 이각까지의 거리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대사마를 지켜라!”

다급하게 외치며 마등과 이각의 사이에 끼어든 이리는 마등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야, 야차…….’

피를 뒤집어쓴 마등은 서량의 야차라고 불리던 그 시절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퍼억!

마등이 뿜어내는 귀기에 눌린 것일까. 이리는 한 합도 부딪혀 보지 못했다. 마등의 장도가 번뜩이자 파육음과 함께 이리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 하늘을 날았다.

“제기랄, 형님!”

이리의 목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바닥에 떨어지자 아우 이섬이 비명을 지르며 마등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섬 또한 마등에게 닿지 못했다.

퍽!

“커억…!”

한참 뒤에서 날아온 화살 한 대가 정확히 이섬의 목을 꿰뚫었다. 방덕이 활을 쏜 것이다. 이섬은 목이 옆으로 꺾인 채 말 위에서 절명했다.

어느새 마등이 코 앞까지 다가오자 이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장검을 든 오른손을 왼쪽 어깨로 치켜 올렸다. 그리고 마등이 든 5척 장도를 겨눠서 있는 힘껏 뿌렸다.

쩡!

이각의 장검이 마등의 장도를 내리눌렀다. 두 손으로 칼을 쥐었던 마등은 오른손을 놓친 채 왼손만으로 간신히 칼자루 끝을 잡고 있었다.

‘제압했다.’

마등의 칼을 칼로 누른 이각은 비어 있는 왼손으로 마등의 옷깃을 잡았다. 괴력으로 마등의 중심을 흐트러뜨려서 낙마시킬 작정이었다.

휘청.

그러나 오히려 이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마등의 장도를 누르고 있던 장검이 갑자기 바깥쪽으로 뽑히듯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마등이 청경(聽勁)의 수법으로 이각의 힘을 흘린 것이다.

“제기랄, 이런 건 또 언제 수련했지?”

사실 청경과 화경은 마가도법의 정수이니 매일 수련한 것이다. 마초 정도의 무재가 없으면 실전에서 쓰기 어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마수성이가 칼을 휘두를 만한 길이 마땅치 않아.’

이각은 그렇게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서 다시 간격을 벌리려 했다. 마등의 말과 자신의 말이 목을 얽고 힘싸움을 하고 있으니 칼을 휘두를 공간이 마땅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마등은 왼손에 든 장도를 그대로 올려쳤다. 장도의 칼날이 이각을 향해 최단 거리로 날았다.

콰드드득!

뼈가 잘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마등이 한 손으로 휘두른 칼은 마등의 말 목을 자르고, 뒤이어 이각의 말 목을 자른 뒤 이각의 배에 깊숙한 검상을 남겼다.

쿠당탕!

순식간에 시체가 된 두 마리 말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이각과 마등도 동시에 낙마해서 바닥을 굴렀다.

“이런 미친놈…….”

이각은 욕설을 내뱉으며 장검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마등이 먼저 일어나서 이각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깡!

마등은 이각의 목이 아닌 손목을 노렸다. 칼등에 맞은 오른 손목이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장검이 땅에 떨어졌다. 이각이 부러진 손목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장도의 칼등이 이각의 어깨에 떨어졌다.

퍽!

이각은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마등이 이각을 제압하는 걸 보자 정은과 성의가 큰 소리로 마가군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각이 쓰러졌다!”

“정서장군을 따르라!”

“우와아아!”

성안으로 돌입한 이각군은 정예병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이리와 이섬이 죽고, 이각이 쓰러지자 지휘 체계를 상실한 정예병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칼을 거뒀다. 근처의 마가군 병사들이 달려들어 이각을 바닥에 눕히고 포박하기 시작했다.

“정서장군,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영명, 그대의 화살이 아니었으면 낭패를 볼 뻔했군.”

멀리서 달려온 방덕이 군례를 올렸다. 마등은 방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하게 무모한 작전이었다. 신궁의 경지에 이른 방덕의 활 솜씨가 아니었으면 이각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훗… 오호호호호!”

밧줄에 묶이면서 이각은 광소를 터뜨렸다. 싸움에 졌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은 관철하겠다는 듯, 무녀들의 방식으로 꾸며낸 목소리 그대로였다.

“승리를 축하해, 마수성. 나는 결국 져 버렸군. 어쩔 수 없지, 칼 밥을 먹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으니까.”

“너는 편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동탁과 함께 저질러 온 악행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해라.”

“악행?”

이각은 악행이라는 말을 듣자 피식 웃었다.

“이봐, 위선자 마수성. 나를 이렇게 살게 만든 건 빌어먹을 서량이야. 내가 열세 살 때 처음 사람을 죽였지. 이유는 내일 먹을 끼니가 없어서였어.”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자라나는 놈이 있을 것 같니? 그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족을, 재산을, 정조를 빼앗았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그저 살기 위해 싸웠을 뿐이야. 그리고 승리했을 뿐이야. 내가 승리한 게 잘못인가? 그저 승리해 온 자가 악인이 되는 거라면 그건 세상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 안 들어?”

“아아, 그래.”

마등은 그렇게 대답하고 이각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묶여 있는 이각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맞췄다.

“네 말이 맞다, 이각. 이 빌어먹을 서량 땅은 그런 곳이지. 지면 죽고, 이기면 죄인이 되는. 나라에서 버린 이 땅에는 결국 패배자나, 죄인이나, 둘 중의 하나만 남게 되는 것이다.”

“호호호, 매일 가짜 웃음이나 짓고 도덕군자 흉내나 내는 줄 알았더니 제법 똑똑하네?”

“그런데 말이야.”

마등은 두 손가락으로 이각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런 환경에 태어나서 넌 뭘 했지?”

“뭐…뭐라고?”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숱하게 봐 왔다.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해서 위로 올라가지. 젊은 시절에는 썩은 세상에 대해 제법 의분을 토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의분은 사라지고 독선과 아집만이 남는다. 나는 이렇게 강하다. 그러니 나보다 약한 자를 짓밟는 건 당연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다. 너 같은 놈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강하게 태어난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세상만 원망하지.”

“그래서, 나보고 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라도 하라는 거니? 나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위선자 주제에?”

“그래, 내가 걸어온 길도 마냥 깨끗하지는 않다. 시세가 부득이해 동탁에게 붙을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적어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콱.

마등이 이각의 멱살을 잡았다.

“나보고 위선자라고 했느냐? 나는 선을 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행해 보려고 노력했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니 일관성이 없어 보이고, 위선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네놈처럼 일관성 있게 악행을 저지르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 실패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앞으로도 위선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겠지. 기쁘게 받아들이마.”

이각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하… 혓바닥 놀리는 걸 보니 우리 마수성이도 이제 거물이 될 때가 됐구나. 하지만 명심하렴. 이 시대에는 거물을 다른 이름으로 역적이라고 부른단다.”

마등은 코웃음을 쳤다.

“이각, 완력만 가진 하찮은 자야. 서량의 힘 있는 자가 전부 너처럼 되지는 않는다. 내가 보여주마. 아니, 네놈은 곧 죽을 테니 보지 못하겠지만.”

마등은 그렇게 말하고 병사들을 불러 의원을 데려오게 했다.

아직 이각과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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