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86화 (86/306)

86화. 마초 대 장수

마초는 장수의 말을 듣자 기가 막혔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수모를 다 당하는군. 장수 주제에 나에게 창술을 가르치겠다니.”

장수는 그런 마초를 보며 생각했다.

‘장안에서 곽사에게 듣기로 마초는 실로 용감한 자지만 경험이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주제넘게 여포에게 덤비다 패했겠지. 마초를 격동시켜서 먼저 달려들게 한 후 제압해야겠다.’

두 사람은 똑같이 서로를 격동시켜서 먼저 달려들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둘 다 쉽사리 선공을 취하지 않았다.

잠시 장수를 노려보던 마초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설마 이놈도 나를 격동시켜서 달려들게 할 셈인가? ’

자신을 향해 창을 겨눈 장수의 자세가 제법 빈틈이 없었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자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그렇단 말이지. 저놈의 생각이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해야겠군.’

마초는 그대로 장수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조황비전으로 가속하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지만, 일부러 속도를 최대한 억제해서 평범한 준마 정도의 속도로 달려 들어갔다. 마초는 장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대로 창을 크게 휘둘렀다.

“이야압!”

챙!

“흐아압!”

챙!

마초는 있는 대로 우렁찬 기합 소리를 지르며 장수에게 큰 공격을 퍼부었다. 장수는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마초의 창을 막아냈다.

십여 합을 주고받은 뒤, 마초가 잠시 창을 멈추자 장수는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강맹하구나. 그러나 싸움은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지니.”

“닥쳐라! 내 이십 합 안에 네놈을 이 창으로 꿰어 주겠다!”

마초는 그렇게 외치고 다시 한번 큰 동작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싸움이 시작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장수의 방어는 굳건했다. 마초가 휘두르는 큰 공격을 잘 막아내자 이내 마초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창끝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핫!”

빈틈을 본 장수가 창을 내질러 반격했다. 마초는 몸을 크게 틀어 장수의 창을 피한 뒤 말을 몰아 멀찌감치 멀어졌다.

“벌써 체력이 빠진 거냐? 이제 약속한 이십 합이 다 되어간다. 힘을 내 봐라, 마초.”

“아아, 그래.”

마초는 푸른 눈을 반짝 빛내며 한껏 웃음을 지었다.

“이제 준비가 됐으니 약속을 지키마.”

“준비?”

장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마초와 공격을 주고받은 게 어언 삼십 합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양측 병사들이 마초와 장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두 지휘관이 벌이는 투장으로 몰려 있었다.

“이제 사람이 모일 만큼 모였군.”

마초는 장수에게서 멀리 떨어져 조황비전을 타고 병사들이 만든 원형의 공터를 빙 돌았다. 모두의 시선이 마초에게 집중되었다. 반짝이는 사자 모양의 투구, 휘날리는 품 넓은 전포 자락, 백금색의 명마와 그 말을 모는 미청년의 모습이 양쪽 병사들의 눈에 깊게 새겨졌다.

“다들 똑똑히 봐라! 내가 바로 천자를 모시는 근황부도독, 서량의 마초다!”

마초는 양쪽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에게 실력만큼 중요한 게 명성이다. 마초의 목적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전투에서 화려하게 장수를 쓰러뜨려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것이었다.

차림새부터 한껏 멋을 부린 마초가 조황비전을 몰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장수는 그제야 마초의 의도를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일부러 병사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린 것인가… 이런 건방진 놈!”

장수 또한 싸움이라면 이력이 나 있는 몸이다. 핏발이 선 눈으로 마초를 노려보며 달려 들어가면서도 머릿속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저놈은 지금 한껏 고양돼 있는 상태다. 반드시 허점을 보일 것이다.’

그때, 마초가 탄 말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냐!”

팟.

시야에서 사라진 마초가 장수의 코앞에 다시 나타났다.

실제로 말이 사라졌다가 나타났을 리 없겠지만 마초를 태운 조황비전의 비현실적인 속도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다. 서량에서 숱한 명마를 봐 왔지만 저렇게 빠른 말은 없었다.

마초는 달려오는 속도를 살려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노리는 것은 장수가 아니라 장수의 말이었다. 말을 한 창으로 꿰뚫으면 말 위에 탄 장수는 크게 튕겨 나가서 땅바닥을 구를 것이다. 장수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으면서도 자신의 명성을 높일 만한 좋은 구경거리를 만들기 위해 마초가 택한 수였다.

“어림없다!”

장수는 마초가 내지른 창끝을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바라보며 쳐냈다. 상대의 창이 비록 빨랐지만 온몸의 힘을 하나로 모아 창의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쩡!

마초와 장수의 창이 얽히며 허공을 갈랐다. 마초는 그 짧은 순간 혀를 차며 허리에 맨 보검에 손을 가져갔다. 천자 유협이 하사한 보검이었다.

“무예 실력은 만만치 않은 놈이군. 할 수 없지.”

장수의 무예가 마초의 생각보다 뛰어났다. 조황비전의 속도를 살린 찌르기가 막힌 이상, 무리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보다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확실하게 제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르릉—

이름 없는 천자의 보검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칼집에서 뽑혀 나왔다.

칼날은 검었다. 순수한 철이 아니라 불순물이 섞여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물결 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신독(인도)에서 들여온 강철로 만든, 후세에 다마스커스 검이라고 불리는 검은 쇠로 만든 장검이었다.

마초는 천자의 보검을 가로로 뉘었다. 말이 달려가는 속도가 있으니 굳이 강하게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마초는 그대로 보검을 눕혀서 든 채 지나갔다. 보검이 가는 길에 있는 말의 목은 너무도 쉽게 잘렸다.

“크아아아악!”

두 사람이 교차한 후, 장수의 째지는 비명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마초가 뉘어 든 보검은 그대로 말의 목을 베고, 말의 등 윗부분을 발라내듯이 잘랐다. 보검이 가는 길 위에 있는 말의 잔등 부분, 가죽과 근육과 안장까지 그대로 잘려서 땅에 떨어졌다.

안장에 얹혀 있던 장수의 한쪽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왼 다리를 잃고 땅바닥을 구르게 된 장수는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며 고통에 차서 몸부림쳤다.

“아니, 뭐 이런 칼이 다 있어?”

마초는 그저 황당했다. 천자가 준 이름 없는 보검은 한두 번 휘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명품이었다. 가볍고, 튼튼하고, 면도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마초가 주로 쓰는 장도와는 길이와 무게중심이 달라서 난전에 쓰기는 불편하지만, 워낙 칼이 좋으니 한두 초식은 날카롭게 출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 사용해 보니 기대 이상이로군. 말과 사람을 일격에, 종베기도 아니고 횡베기로 잘라 버릴 줄이야.’

주변을 둘러보니 병사들도 다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근황병이든, 장수군이든 이 자리에 있는 병사들은 돌아가서 마초의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사자 투구에 비색 전포를 입고 말과 사람을 한 칼에 베는 미장부라, 썩 괜찮군.”

잠시 스스로에게 취해 있던 마초는 문득 다리를 잃고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장수에게 생각이 미쳤다. 마초는 근처에 보이는 근황병 병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어서 달려와서 장수의 상처를 치료해라! 빨리 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이대로 죽는다!”

근황병 병사들 몇몇이 달려와서 장수의 상처 부위를 높여서 출혈이 덜 일어나게 하고 상처를 싸매기 시작했다. 지켜보니 워낙 강골이라 그런지 간신히 목숨은 건질 모양이었다.

“자칫하다 이놈도 죽여 버릴 뻔했군.”

마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여기서 장수가 죽어버리면 숙부 장제는 눈이 뒤집혀서 날뛸 것이다. 당장은 살려둬야 한다.’

장수가 살아 있어야 장제가 우물쭈물할 것이고, 이각은 조카를 인질로 잡힌 장제를 믿지 못할 것이다.

총대장을 잃은 장수군 병사들은 항복하거나, 뿔뿔이 흩어져서 퇴각하거나, 조운이 이끄는 의종 기병대에게 뒤를 찔리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상황이 그쯤 되자 장수군 서량기병들이 장양, 단외의 군사들을 밀어붙이고 있던 우세하던 좌익 쪽의 상황도 변하기 시작했다. 총대장을 잃은 서량기병들은 결국 등을 내주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내 전투는 근황병의 승리로 돌아갔다. 최고의 수훈을 세운 것은 적장 한섬을 죽이고, 적 총대장 장수에게 치명상을 입힌 후 사로잡은 근황부도독 마초였다.

* * *

소년 천자 유협이 양식을 구한다는 핑계로 장제의 근거지 홍농으로 떠난 후, 장안성에 있는 대사마의 치소에는 연일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사마에게 반기를 들고 도망친 표기장군(곽사)이 풍익에서 천자를 습격했으나 시위들에게 격살당했다고 합니다!”

“대사마, 홍농의 천자가 양식을 구한다고 하동으로 갔다고 합니다.”

“대사마, 천자가 하동으로 가던 길에서 대사마와 평양후(장제)를 역적으로 선포하고 근황병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대사마, 하동에서 평양후 휘하의 선비족들이 천자를 잡으러 갔으나 신원 미상의 장수에게 격퇴당했습니다.”

“대사마, 천자가 하내에서 근황병을 모았습니다. 평양후의 조카 장수 장군이 근황병과 싸움을 벌인다고 합니다.”

“대사마, 장수 장군이 크게 다친 채 사로잡히고 부대는 궤멸했습니다! 장수 장군을 사로잡은 건…….”

쾅!

대사마 이각은 그쯤 되자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 주먹을 뻗어 치소 안의 나무 기둥을 후려쳤다. 남방의 육중한 나무로 만든 기둥은 이각의 주먹에 맞자 수숫대처럼 힘없이 부러져 나갔다.

“마등의 아들 마초가 천자와 같이 싸우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각은 뭔가에 홀린 듯 지나간 지난 수개월을 돌아보았다.

미오성 전투에서는 어이없는 내분이 일어났다. 자신의 의심으로 인해 번조를 죽이고, 곽사와 싸우게 되었다.

그래서 장제를 끌어들였는데 장제 또한 조카 장수가 사로잡히고 홍농에 남겨 둔 군사들을 많이 잃었다.

이몽, 왕방, 송과 등 그동안 죽어 나간 자신의 측근들도 만만치 않다.

주력 부대였던 강족과 선비족들은 어느 틈에 흩어져 버렸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홀렸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에 홀렸는지는 분명했다.

“가후… 그리고 마초. 너희들이 나를 능멸해!”

극심한 분노로 인해 이각의 본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진한 화장을 하고 평소 말투부터 무녀들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원래 목소리는 탁하고 걸걸한, 듣는 이의 귀청을 찢을 듯한 성량의 저음이었다.

지금 대사마의 치소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음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각의 조카 이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부님, 이제 직접 나서시는 거지요? 출진을 준비하겠습니다.”

“내일 바로 출진한다. 군사들을 불러 모아라.”

시간이 빠듯하지만 토를 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리는 침을 꼴깍 삼키고 이각에게 예를 갖췄다. 대사마를 대하는 읍이 아니라 군례였다.

“존명!”

이각은 결심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장안 수비는 장제에게 맡기고 자신이 직접 출진해서 하내의 근황병들을 쓸어버릴 참이었다.

비록 정치적 안목은 전혀 없지만, 칼을 들고 군을 이끌 때는 서량 최강이라고 불리던 무장이다. 이리는 백부 이각의 분노를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리는 생각했다. 지금 이각보다 더 분노해 있는 자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 * *

“이각이 몹시 분노하면서 출진했다고 합니다. 이각군 병사들 사이에는 그 정도로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소문이 떠도나 봅니다.”

마가군의 둔영.

연병을 지켜보는 마등에게 종사 부간이 말했다. 마등의 양옆에는 방덕과 서황이 시립해 있었다.

“분노라.”

마등은 언제나처럼 태연했다.

“팔자가 늘어졌구나. 분노하고 싶을 때 마음껏 분노할 수도 있고.”

“정서장군…….”

“때가 왔다. 우리도 출진한다.”

마등이 말하자 방덕, 서황, 부간이 일제히 군례를 올려 화답했다.

마초가 일러주고 간 전략에 따라, 그들 또한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이각이 장안성을 나오면 요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온 마가군이다.

“존명!”

세 사람은 마등을 둘러싸고 군례를 올렸다.

방덕은 마등의 얼굴을 바라봤다. 소년 시절부터 모신 주군의 얼굴은 여전히 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방덕은 생각했다. 마등보다 더 분노를 잘 감추는 자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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