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77화 (77/306)

77화. 아우를 잃은 형, 형을 잃은 아우

마초는 유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불가합니다.”

“어째서인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정에 입조하면 신은 죽습니다.”

마초는 찬찬히 유협의 표정을 관찰했다. 소년 천자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에 이런 수를 쓰다니. 걸물이구나.’

천자 유협은 마가군을 끌어들여서 다른 군벌들을 견제할 생각일 것이다.

마초가 거절하자 유협이 다시 물었다.

“조정에 입조하는 게 어째서 죽는 길인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말해 보라.”

“첫째, 마가군이 서량 군벌이기 때문입니다. 동탁과 이각에 이어 연달아 세 번째로 서량 군벌에게 정권을 맡기시겠습니까.”

“으음…….”

“서량 군벌이 정권을 잡고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서량 군벌을 어떤 선비가 따르겠습니까? 신과 신의 아비뿐만이 아닙니다. 폐하의 권위도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유협은 잠시 침묵한 후 다시 물었다.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폐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협은 귀를 의심했다.

“마초, 그게 무슨 소린가? 그대는 지금 천자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송구하오나 폐하. 사실이 그렇습니다.”

마초의 표정은 담담했다. 황당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유협 대신 마초가 다시 말했다.

“신의 목적은 난세를 끝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배의 세력을 가진 이각에게 싸움을 걸었고, 목숨을 걸고 곽사를 참했습니다. 신은 난세를 끝낼 것입니다. 신에게는 그럴 만한 힘과 의지가 있습니다.”

“그래, 짐도 똑똑히 보았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보여 주십시오. 보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치란(治亂)에 뜻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하…….”

유협은 당황스러웠다.

원래는 마등과 마초를 끌어들여 천자의 친위 세력으로 삼고, 마등이 전횡을 저지른다면 중원의 조조를 끌어들여 견제할 생각이었다.

어느 지방 군벌이라도 조정에 입조해서 천자의 친위 세력이 되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마초는 천자의 친위 세력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것을 보고 휘하에 들지 말지 정하겠다? 그것이 역신(逆臣)과 무엇이 다른가?”

“다릅니다. 조정은 이각의 목을 베고 황폐해진 관중을 재건할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가군은 있습니다. 조정이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는 일을 마가군이 대신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암군이라 할지라도 치란은 해야 하기에 섣불리 입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니 역신이라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이것은 영웅의 길입니다.”

유협은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세 번째 이유도 있는가?”

“셋째는 중원의 군벌 때문입니다.”

“중원의 군벌이라면…….”

중원은 넓은 의미로 쓰면 장강 이북의 한나라 영토를, 좁은 의미로 쓰면 황하 이남에서 회수 이북에 이르는 땅을 말한다.

이 시기의 군벌 중 좁은 의미의 중원에서 가장 강력한 군벌은 조조였다.

“연주목 조조입니다. 그는 야심이 크고 지략이 뛰어난 자이니 틀림없이 폐하를 옹립하려 들 것입니다. 규모도 크지 않은 마가군이 폐하를 옹립한다면, 그는 마가군과 전면전을 치러서 자신이 협천자를 하려고 들 것입니다.”

“하면, 조조와는 싸우지 않겠다는 것인가?”

천자 앞에서 피식 웃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그러나 마초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마초에게 조조와 싸울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인가.’

천하에 마초 자신만큼 조조와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초는 유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조조가 치란에 방해가 된다면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한다(挾天子以令諸侯).

조조가 취했던 기본 전략이다. 마가군이 개입해서 이 전략이 흐트러진다면 조조는 전면전을 벌여서라도 천자를 빼앗으려 들 것이다.

‘이각과 곽사는 세력이 아무리 강성해도 가후의 꾀를 빌려서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조는 지략이 뛰어난 자다.’

마초는 마가군의 운명을 놓고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관중 지방이 폐허가 되어 가는 상태에서 그런 조조와 전면전을 각오하고 일을 벌이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조와 싸우기라도 한다면 관중은 더욱 폐허가 되겠지. 게다가 조조가 여포에게 연주를 빼앗기지도 않았을 테니 그의 세력은 원래의 역사보다 더 강성할 것이다.’

그러니 관중이 재건될 때까지 조조와의 싸움은 피할 작정이었다.

마초의 답변을 들은 유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충신인가, 역적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 유협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마초, 그대의 말이 온당하다.”

“망극하옵니다.”

“확실히 그대가 말한 대로군. 그대는 충신도, 역적도 아니다.”

마초는 유협을 마주 보고 대답했다.

“신은 서량에서 자랐습니다. 서량은 한 조정이 포기한 땅입니다. 나라의 다스림이 미치지 못해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잡아먹는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서량에서 힘 있는 자가 역적이 되지 않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 시대에 서량 출신이면서 한실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자는 몹시 드물었다. 동탁, 이각, 곽사, 가후가 서량 출신이다.

“그러나 또한 신은 패역한 무리들과 다릅니다. 조정이 무너져야 한다고 불만을 토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조정이 무너진다면 온 천하가 서량처럼 될 것입니다. 신은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어째서일까. 마초를 바라보는 유협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어려운 형편에 굴복해서 이각의 무리들처럼 되지 않겠습니다. 서량 군벌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살 것입니다. 죽은 아우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초는 마휴를 떠올렸다.

아우는 재능이 없었지만 그것을 원망한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노력을 쌓아 올렸다. 당할 수 없는 적을 맞이했을 때, 적의 얼굴에 깊숙한 상흔을 남기면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무예와 병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이 자신이 아니라 아우였다면 어땠을까.

힘들게 영웅이 되겠다고 결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영웅에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마휴였다.

주르륵.

마초의 말을 듣던 천자 유협의 눈에서 문득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폐하……?”

“아하하, 이런.”

유협은 민망한 듯 헛웃음을 보였다. 영락없는 그 나이 또래 소년의 모습이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나. 마초,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짐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협은 가만히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5년 전, 그가 아홉 살일 때의 일이었다.

* * *

후한 중평 6년(189년), 낙양 인근 북망산.

“네놈들이 감히 천자를 겁박할 셈이냐!”

늦은 밤이었다. 열여섯 소년 천자의 외치는 소리가 산속을 울렸다. 소년 천자의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아 카랑카랑했다.

“호호호호, 꼴에 황제라고 제법 기세가 있네? 대형, 어찌할까요?”

이각은 소년 천자의 외침을 듣자 깔깔거리고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뚜벅. 뚜벅.

이각의 뒤에서 대형이라고 불린 육중한 체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몸이 어찌나 무거운지 한 발을 딛을 때마다 땅이 울리는 듯했다.

“네 이놈, 어서 천자 앞에 부복하고… 컥!”

“유변.”

거한은 한 손으로 소년 천자의 멱살을 잡고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자의 이름을 불렀다. 불경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세상이 네 것 같은가?”

“큭, 네, 네놈…….”

소년 천자, 유변은 숨이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멱살을 잡혀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의 시야에 자신을 올려다보는 거한의 얼굴이 들어왔다. 남들 앞에서는 항상 푸근한 미소를 짓고 다닌 듯, 웃는 상으로 얼굴이 변한 장년의 사내였다. 그러나 보는 눈이 없는 지금은 그의 눈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자라고 떠받들어 주니 네가 진짜로 하늘의 아들인 줄 알고 있는 것이냐?”

“천하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나 알고 그렇게 지껄이는 것이냐?”

“너의 혈통과 나의 힘, 무엇이 더 강한 것 같으냐? 허울뿐인 천자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냐? 이 나라의 천자가 마흔 살이 넘도록 살았던 게 벌써 100년 전이다. 아직도 네 처지를 모르겠느냐?”

거한은 유변의 멱살을 쥔 채로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냈다. 천자 유변은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신체적 위협보다 거한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한참 그렇게 저주의 말을 퍼붓던 거한은 이내 유변을 내려놓았다. 유변은 땅에 주저앉아서 컥컥거리며 숨을 골랐다.

“이제 알아들었겠지? 앞으로는 누가 강한지 생각하고 행동해라.”

“오냐, 동탁. 네놈이 이렇게 패역한 짓을 하고 제명에 죽을 수 있는지 짐이 똑똑히 지켜보마.”

유변이 기가 꺾이지 않자 동탁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필 귀찮은 놈이 걸렸군. 그래, 나도 이렇게 위험한 짓을 벌이고 있으니 곧 죽을지도 모르지. 허나 너보다는 오래 살 테니 걱정하지 마라.”

동탁의 눈에는 한쪽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소년이 들어왔다. 천자의 동생, 이제 아홉 살 먹은 유협이었다.

“저 꼬마가 진류왕(陳留王, 유협의 황자 시절 작위)인가?”

“호호호. 맞아요, 대형. 올해 아홉 살이라고 하더군요.”

이각이 교태스러운 몸짓으로 동탁의 옆에서 맴돌며 대답했다. 동탁은 진류왕 유협의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으흑!”

아홉 살의 유협은 동탁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동탁은 유협의 턱을 두 손가락으로 쥐었다. 유협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제후왕의 예복 아래로 오줌 줄기가 흘러나와 동탁의 발에 닿았다.

동탁은 유협이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천자의 자리에는 이놈이 훨씬 더 어울리는군.”

그때였다.

동탁의 옆구리에 뭔가가 닿았다.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 하는 거냐, 유변?”

소년 천자 유변은 검을 뽑아서 동탁의 옆구리에 대고 있었다.

“내 아우에게서 더러운 손을 치워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죽는다고? 이봐, 유변.”

동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동탁이다. 네가 칼로 죽일 수 있는 인간이 아니야. 장난치지 마라.”

“장난 같으냐?”

유변의 목소리는 나이보다 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카랑카랑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선을 넘나들며 살다 보면 칼을 든 사람이 둘 중의 하나로 보인다. 찌를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다. 동탁은 유변의 눈을 보며 그는 어느 쪽인지 생각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동탁은 유협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훗, 천자의 보검이 어지간히 잘 드나 보군. 그런 자신감이 있는 걸 보니.”

동탁은 그대로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그런 그에게 이각이 달려와 아양을 떨었다.

“호호호호, 대형! 저 꼬맹이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무래도 천자의 자리에는 작은놈을 앉히는 게 낫겠다.”

“그럼 당금 천자는요?”

“적당히 때를 봐서 처리해야겠다. 기록에는 사람됨이 모자란 놈이라고 남겨 놓고.”

동탁과 이각의 말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천자 유변은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무는 그에게 진류왕 유협이 달려와 안겼다.

“형님! 으흑흑흑…….”

“하하, 이제 끝났다 협아. 걱정하지 마라.”

유변은 그렇게 어린 아우를 다독거렸다.

그때였다.

“쿨럭!”

유변이 별안간 기침을 시작했다.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내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으앙, 형님!”

유변은 비명을 지르는 유협을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별일 아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래도 피가…….”

“협아.”

유변은 아우의 두 어깨를 움켜잡았다.

“네가 비록 어리지만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짐은, 이 형은 병으로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곧 천자가 된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싫어요, 형님! 죽지 말아요!”

유협은 소리를 빽 지르며 유변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서럽게 울었다. 유변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런 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 노릇을 못 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협아, 명심하거라. 너에게 주어진 것은 폐제가 되거나, 암군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유변은 유협을 꼭 끌어안았다. 아홉 살의 어린 유협은 형이 쓰는 단어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형이 하는 말들은 음절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머리에 새겨졌다.

“어려운 형편에 굴복하지 마라. 황자에게 주어진 운명이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라. 폐제도, 암군도 되지 말고… 천자가 되어라. 이 형의 부탁이다.”

그날의 유협은 그저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다.

* * *

“폐하?”

유협은 마초의 물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잠시 옛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유협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초를 응시했다.

진정으로 천자의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죽은 형, 유변이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나이는 스물하나.

‘이 마초라는 자도 스물하나라고 했던가.’

유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초, 그대의 뜻대로 하라. 어려운 형편에 굴복하지 말고,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살아라. 짐은 그대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겠다.”

형과는 생김새부터 전혀 다르다. 그러나 유협은 이 마초라는 청년에게서 계속 죽은 형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단, 짐 또한 어려운 형편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정과 황실은 이제 힘이 없다. 짐은 폐제가 되거나 암군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짐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마초와 유협의 눈이 마주쳤다.

“짐은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천자로 살 것이다. 그러니 그대도 약조하라. 짐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폐하.”

마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협에게 네 번 절을 올렸다.

“반드시 성군이 되실 것입니다. 뜻하신 대로 하소서. 신은 반드시 영웅이 되어, 천자의 단 아래에서 폐하를 다시 뵙겠나이다.”

적인가, 아군인가?

그것은 아직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계산보다 서로를 보며 드는 복잡한 감정이 앞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형을 잃은 아우와 아우를 잃은 형은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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