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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75화 (75/306)

75화. 마초 대 곽사 (1)

“뭐라고?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냐? 너는 뭔데 표기장군에게 죽인다 살린다야?”

곽사는 황당해하며 삿갓을 쓴 마초에게 삿대질했다. 마초는 계속 얼굴을 가린 채 장도를 뽑아 들고 곽사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하나씩 가르쳐주마.”

“이 건방진 놈이!”

곽사는 노호성을 지르며 대도를 들어서 마초를 향해 내리쳤다.

스윽.

마초는 옆으로 슬쩍 몸을 틀어 내려치는 대도를 피했다. 그리고 5척 장도를 휘둘러 곽사의 어깨를 대각선으로 베어 갔다.

“큭!”

앵속으로 인해 가속된 곽사의 감각이 마초의 공격을 일찍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곽사는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자 그대로 몸을 크게 눕히며 마초의 일격을 피했다. 8척 5촌의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동작이었다.

팟.

그러나 상처를 입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곽사의 가슴께에 길게 베인 상처가 나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서량 10군의 맹주.”

마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를 입은 곽사는 얼른 뒤로 뛰어서 거리를 넓혔다.

‘자신 있게 나서기에 어느 정도 무예 실력이 있을 줄은 짐작했다. 그러나 직접 칼을 맞대 보니 이놈은… 터무니없는 고수가 아닌가?’

서량 최고의 무장이라는 곽사다. 그러나 눈앞의 청년에게 자칫하면 첫수에 참살당할 뻔했던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곽사는 두 손으로 대도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서량… 무슨 맹주? 잠꼬대를 하는 거냐?”

타닥.

마초는 아무 말 없이 곽사에게 뛰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마초가 선수를 취했다. 양손으로 쥐었던 장도를 왼손 편수로 고쳐 잡고 곽사의 목 아래를 큰 동작으로 찔렀다. 앵속에 취한 곽사는 이번에도 놀라운 순발력으로 아슬아슬하게 칼을 피했다.

팟.

“죽어라!”

곽사는 자세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그렇게 외치며 왼손의 대도를 휘둘러서 마초의 몸통을 쓸어 갔다.

‘어린놈의 무공이 놀랍구나. 하지만 동작이 너무 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잔뜩 흥분했나 보군.’

마초가 왼손으로 찌른 칼끝은 이미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그러니 승리는 노련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곽사가 휘두른 대도가 마초의 몸에 닿았어야 할 무렵, 마초는 오른 손바닥으로 대도의 넓적한 옆면을 내려쳤다.

탁.

쿵!

손바닥으로 탁 치는 일격을 받자 대도가 땅으로 푹 꺼지듯이 떨어졌다. 어찌나 무거운 대도인지 바닥에 처박힐 때도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니 이게 무슨…….”

곽사가 대도를 수평으로 휘두르던 힘은 마초의 일장에 의해 방향이 바뀌어 그 힘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졌다. 마초가 화경(化經)을 사용한 것이다. 일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곽사도 처음 보는 절초였다.

곽사는 땅을 내려친 대도를 회수하려 했으나, 마초가 왼손에 든 장도가 되돌아오는 게 더 빨랐다.

퍼퍽.

“크윽!”

곽사는 대도를 포기하고 얼른 오른손을 빼냈다. 그러나 마초의 칼날에 걸린 손가락 두 개가 하늘로 날아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초는 곽사를 향해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군지 말했다.

“한(漢) 태향후(斄鄕侯), 표기장군(驃騎將軍) 영(領) 양주목(凉州牧).”

이번에는 촉에 귀부한 후 유비에게 받은 벼슬이었다. 마초가 회귀한 내막을 모르는 곽사는 말을 들어도 마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너도 표기장군이 되고 싶다는 거냐?”

“이해가 안 가면 그냥 들어라.”

마초는 곽사의 말을 일축하고 장도를 공중에서 빙글 돌렸다.

휘릭.

칼날에 묻은 피가 허공에 흩날렸다. 곽사는 여유 있는 마초의 모습을 보자 앵속 기운이 확 깨는 느낌을 받았다.

‘이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고수가 아니다. 이대로는 내가 불리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곽사는 주변의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곽사 자신이 등 뒤를 맡기는 정예병들이었다.

“모두 이놈에게 덤벼라! 창을 내질러서 꼼짝 못 하게 해!”

곽사의 명을 받은 군사들 십여 명이 지체없이 움직였다. 그들이 긴 창을 들고 마초를 둘러싼 사이, 곽사는 몸을 빼내 태수의 치소쪽으로 달려갔다. 품 안에서는 앵속과 갖은 약재를 섞어 만든 환약을 꺼냈다.

‘한 번에 두 알씩만 먹어야 한다고 했었지.’

환약은 전부 열 알이었다. 곽사는 망설임 없이 열 알을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으…….”

앵속 기운이 돌자 잠시 사물이 일그러져 보이다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잘려나간 손가락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태수의 치소는 천자가 머무는 곳이다. 호위 하나가 노호성을 지르며 곽사에게 창을 찔러 왔다.

픽!

“아니?”

호위의 눈이 커졌다. 창은 곽사의 가슴팍에 정확히 박혔다. 깊이가 반 치밖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뻑!

곽사가 주먹으로 후려치자 호위는 일 장이나 날아가서 땅바닥을 굴렀다. 주먹에 맞은 두개골이 움푹 패어 있었다.

환약을 먹자 머리는 빨라지고 힘은 더욱 강해졌다. 원래도 바위처럼 단단했던 몸은 이제 도검을 다 튕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흐흐흐, 효과가 좋군. 이 정도면 저 삿갓 쓴 놈을 죽일 수 있겠군.”

곽사가 그렇게 태수의 치소로 들어가 있는 동안, 마초는 창을 든 십여 명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모두 창을 찔러라!”

일제히 창을 찌르기 위해 병사 하나가 구령을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마초가 그 병사의 품으로 파고드는 게 더 빨랐다.

쉬익!

마초가 장도를 휘두르자 병사의 목이 하늘로 날았다. 마초는 목을 잃은 병사의 시체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시체에게서 창을 빼앗아 들고는 자신을 겨눈 병사들의 창을 옆에서부터 쓸었다.

퍼퍼퍽!

창대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나며 다섯 병사들이 든 다섯 자루 창이 한꺼번에 쓸려서 바닥에 처박혔다. 속도와 완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경력의 흐름을 읽고 이용할 수 있는 절정고수만이 보일 수 있는 무공이었다.

“방해하지 마라.”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병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동작이 급해 보이지 않았지만 병사들이 땅에 처박힌 창을 다시 들기도 전에 어느새 마초는 병사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마초가 걸어 지나간 뒤에야 병사들의 팔, 다리, 목이 하나둘씩 떨어져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흐아악!”

곽사군 병사들의 끔찍스러운 비명을 뒤로 하고 삿갓을 쓴 마초가 태수의 치소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곽사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쥐새끼처럼 도망을 다니다니. 나와라, 곽사.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했느냐? 아직 다 설명하지 못했다.”

쇄액!

마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도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마초는 급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대들보에 무릎을 걸고 곽사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곽사는 그 거대한 몸으로 곡예를 하듯 한 바퀴 돌아서 땅에 착지했다.

“용케 피했구나. 허나 이번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곽사는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눈빛은 고순도의 앵속에 잔뜩 취해서 광인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근육으로 뒤덮인 거대한 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쌨다.

곽사가 휘두른 대도에 맞아서 마초의 삿갓에 흠이 파였다. 흠 너머로 푸른 눈이 드러났다. 곽사는 상대의 푸른 눈을 보자 마등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 눈깔… 설마 네놈, 마수성의 아들이냐?”

마초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곽사에게 다가갔다. 마초가 다가오자 곽사도 대도를 그러쥐고 잔뜩 노렸다. 거리가 일 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마초가 뒷발을 힘차게 구르며 곽사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곽사도 대각선으로 마초를 베어 내렸다.

‘벴다!’

곽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초는 곽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치고 들어왔다. 칼을 베어 내리지 않고 세운 채로 길게 뛰어서 곽사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곽사는 허공에 대도를 헛치면서, 칼을 세워 든 마초를 품으로 끌어안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초는 곽사의 품 안에 들어가자 지체없이 잔뜩 세운 칼을 베어 내렸다.

퍽!

그러나 두 쪽이 날 줄 알았던 곽사는 멀쩡히 서 있었다. 마초가 짧게 내려친 칼은 곽사의 가슴 근육에 물려 있었다.

퍼억!

곽사는 대도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마초를 후려쳤다. 마초는 칼을 놓치고 그대로 튕겨 나가서 바닥을 미끄러졌다. 앵속에 취한 곽사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잘린 코와 입에서는 여름인데도 연기 같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흐흐, 이 몸은 이제 도검불침(刀劍不侵)이다. 어디 발버둥 쳐봐라.”

“칼날에 베이지 않는다고? 알았다.”

마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삿갓을 벗어 던졌다. 입가에 흐른 피를 슥 닦고 바닥에 구르는 창을 집어 들었다. 방금 곽사가 때려죽인 호위가 쓰던 창이었다. 창대는 중간이 반쯤 부러져 있었다.

우직.

마초는 창을 완전히 부러뜨리고 둘로 부러진 창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그러면 이걸로 꿰어 죽여주마.”

팟!

마초와 곽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앵속환을 먹고 감각이 예민해진 곽사의 대도는 이전보다 한층 더 빠르게 마초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마초는 왼손에 든 창대로 정확히 대도의 옆면을 때렸다.

탕!

대도는 허공에서 궤도를 틀며 크게 빗나갔다.

“느리구나, 그놈의 칼에 비하면.”

콰직!

마초가 오른손으로 든 창촉이 곽사의 왼쪽 날개죽지에 박혔다. 곽사는 그 와중에도 근육에 힘을 줘서 창날을 물었다. 쑥 들어가는 듯하던 창날은 결국 한 치 반 정도를 파고들자 곽사의 근육에 물려서 멈췄다. 곽사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으하하, 잔재주를 피울 셈이냐!”

콰직!

곽사가 기세 좋게 내지른 포효가 끝나기도 전에 마초가 발을 들어 얕게 박힌 창촉을 걷어찼다. 발이 망치 역할을 하자 얕게 박힌 창촉은 못처럼 곽사의 몸속으로 쑥 박혀 들어갔다.

“크윽…….”

앵속으로 통증이 마비된 곽사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마초는 몸을 돌려 곽사가 내던진 장도를 집었다. 그리고 곽사를 바라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또 한 번 말했다.

“한신, 영포와 같이 용맹한 자.”

이번에는 그의 적수였던 양부가 그에 대해서 내렸던 평가였다.

곽사는 다시 대도를 치켜들고 마초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초는 장도를 들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디 진짜 도검불침인지 한번 보자.”

마초는 곽사의 공격을 지켜보다 결정적인 순간 출수했다. 5척 장도의 칼날이 곽사의 팔을 향해 날았다.

퍽!

칼날이 뼈와 살을 자르는 소리가 풍익태수의 치소 안을 울렸다. 대도를 쥐었던 곽사의 오른팔이 팔꿈치부터 잘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곽사의 잘린 팔뚝은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계속 꿈틀거렸다. 팔뚝이 요동치는 대로 피가 뿜어지는 방향이 달라져서 근처는 이내 피범벅이 되었다.

퍽!

그때, 다시 한번 타격음이 울렸다.

“컥…….”

이번에는 마초가 곤경에 처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곽사는 잘린 팔의 절단면으로 그대로 마초의 얼굴을 후려쳤다. 싸우는 팔을 잘랐으니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마초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격을 받았다.

퍽! 퍽! 퍽!

곽사는 멀쩡한 왼손으로 마초의 목과 칼을 든 오른손을 한꺼번에 틀어쥐고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오른팔의 절단면으로 계속 마초의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곽사의 팔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마초의 온몸을 적셨다.

“죽어라, 이놈!”

곽사의 표정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고 큰 부상을 입었으니 어차피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마초와 같이 죽을 셈이었다.

마초는 곽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힘을 썼으나 완력으로는 곽사를 당해낼 수 없었다. 팔뚝의 절단면으로 계속 얻어맞자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마초의 머릿속에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마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손에 쥐고 있는 장도를 놓았다.

장도가 밑으로 떨어지고, 곽사에게 제압당하지 않은 왼손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장도를 받아냈다.

턱.

칼 손잡이가 아니라 칼날을 쥐어서 손에서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초는 왼손으로 장도의 칼날을 쥐고 그대로 올려 찔렀다. 목표는 곽사의 아래턱이었다.

푹!

장도가 곽사의 아래턱에 박혔다.

곽사는 그대로 고개를 치켜들어 뒤로 젖힌 채 꼿꼿이 선 채로 굳어 있었다. 마초는 얼굴에 칼이 박힌 곽사를 뒤로 하고 일어났다.

“아우를 잃은 형이다. 그러니 너는 입을 조심했어야 했다.”

마초는 곽사에게 등을 돌린 채 얼굴을 닦으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때.

“크아악!”

곽사의 뒤로 젖혀진 머리가 다시 앞으로 튕겨졌다. 곽사는 턱에서 머리 위로 칼이 꽂힌 채 마초를 향해 달려와서 몸으로 마초를 밀어붙였다.

퍽!

“큭… 이놈이!”

곽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몸으로 마초를 덮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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