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72화 (72/306)

72화. 의심하는 곽사, 결심하는 이각

다음 날,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곽사는 아내 팽 씨를 마주했다.

“치연이 당귀를 보냈다지? 빨리 달여와.”

“상공,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오.”

“무슨 소리야?”

팽 씨는 말없이 이각이 보낸 당귀를 뭉쳐서 마당에 기르는 개에게 던졌다. 쓴 냄새가 나는 풀이건만 이상하게 개는 당귀를 잘 받아먹었다. 미리 당귀에 고기 냄새가 배도록 팽 씨가 밤새 고기 사이에 재어 놓았기 때문이다.

“케엑!”

당귀를 받아먹은 개는 잠시 후 온몸을 뒤틀며 먹은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곽사도 적잖이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상공이 없는 동안 천자가 보낸 어의가 와서 그럽디다. 탕약을 먹는 자에게 당귀는 독약이라고. 내 혹시나 싶어서 개에게 며칠간 탕약을 먹여 봤는데, 그걸 먹이고 나서 당귀를 먹이니 저 꼴이 되네요.”

“으음…….”

“천자가 상공에게 탕약을 내렸다는 걸 이각도 뻔히 알죠?”

“알지, 그야.”

“그럼 답은 하나구려. 상공의 기를 쇠하게 하려고 일부러 독이나 다름없는 약재를 보낸 거예요!”

“아니, 잠깐, 아무리 그렇다고 이럴 수가 있나?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어요? 자꾸 멍청한 소리 할 거예요?”

“이 여편네가 누구보고 멍청하다는 거야!”

팽 씨에게는 이각과 곽사의 사이를 끊어 놓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렇게 일을 꾸며서 곽사에게 이각의 모함을 해대자 곽사도 어영부영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었다. 잠시 큰소리를 치며 옥신각신하던 두 부부는 부부싸움의 결말이 흔히 그렇듯이 어찌어찌 옷을 벗어 던지고 교접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각이란 작자가 뭘 먹이려고 하면 조심해요. 틀림없이 상공을 해하려는 목적일 테니까.”

“이틀이 멀다 하고 연회 자리를 만드는데 내가 뭐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술은 가급적 먹지 말고, 과음을 시키려고 하면 똥물이라도 먹어서 토하고 들어와요!”

“거 알았으니 조용히 해. 여편네가 시끄럽게 말이야.”

과연 어의가 보낸 탕약의 힘인지 곽사는 절륜한 남성을 뽐내며 아내와 관계를 가졌다. 그로서도 앵속에 취하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는 상대는 아내뿐이었다.

곽사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여 오랜만에 흡족하게 만들어 주고자 했다. 절정을 늦추기 위해 이런저런 딴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치연이 나를 쇠약하게 만들려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번조를 손바닥 뒤집듯 죽여 버린 냉혈한 아닌가? 확실한 건 없지만 조심은 해야겠다.’

그러나 나이 탓인지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함에도 곽사의 절륜한 남성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

“지금도 이 모양인데, 당귀까지 먹어서 쇠약해졌어봐요! 아주 송장 신세였겠지!”

팽 씨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 * *

이각의 부하 중에 송과라는 자가 있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나중에 이각을 배신하려 하다 들켜서 죽음을 맞는다고만 알려져 있던 자다.

이감이 이끄는 시랑군 중에는 낙양의 금군 출신이 많았는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송과의 실체를 대강 알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송과는 본래 낙양의 건달패로 온갖 더러운 일들을 하던 자였다. 그러다가 새 권력자가 된 동탁에게 뒷세계의 정보를 갖다 바치며 줄을 댔고,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고 죽은 다음에는 이각에게 줄을 대며 장안에서까지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송과는 상당히 수완이 좋아서 장안으로 천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대의 앵속 공급을 틀어쥐었다. 이각이 곽사에게 건네는 앵속의 출처가 바로 송과의 조직이었다. 본래 장안의 앵속은 물량도 적고 가격도 비싸서 평범한 사람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물건이었지만, 송과는 기근과 함께 찾아온 매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파격적인 가격할인을 통해 판로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런 송과가 본거지로 쓰고 있는 객점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여윈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쑥 들어간 사내였다. 말라 보였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가만히 그를 훑어보던 문지기가 물었다.

“뉘슈?”

“곽 장군의 명을 받고 온 이감이라고 하네. 송과 대인은 안에 계신가?”

“으응? 대사마가 아니라 곽 장군이요? 곽 장군께서 두령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그건 내가 송 대인을 뵙고 얘기함세. 안에 계시다는 말이지?”

“그렇수다. 내가 안내할 테니 따라오시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안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 됐어.”

눈이 쑥 들어간 사내, 이감은 그렇게 말하고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응? 그게 무슨… 흡!”

이감은 아무 살기도 없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칼을 뽑아서 문지기의 배에 찔러 넣었다. 문지기는 뭐라 외치려 했으나 뒤이어 이감의 칼이 목줄기를 베고 지나가서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감은 간단하게 문지기를 처리하고 뒤쪽의 사내에게 물었다. 폭이 넓은 삿갓으로 눈을 가린 청년이었다.

“주공, 직접 들어가시겠습니까?”

삿갓을 쓴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감이 문을 열자 마초가 장도를 뽑아 들고 단신으로 객점 안으로 돌입했다.

“끄아악!”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 소리가 몇 차례 들리고 객점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마초는 다시 객점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송과의 목이 들려 있었다.

“이감, 이곳을 수색해서 앵속을 전부 찾아내라. 다른 건 필요 없고 앵속만 찾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이감을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랑군 부하들을 풀어 객점 안에서 앵속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부하들 중 두 명이 마초에게 송과의 목을 받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 속에 던지려는 모양이었다.

“죽어 마땅한 놈이 또 하나 죽었군요.”

이감이 담담하게 말했다. 마초도 대답했다.

“그래, 이 송과까지 처리했으니 이각의 전력도 상당히 줄었다. 병사의 수는 많더라도 장수들이 많이 죽었으니 위세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마가군과의 싸움이 시작된 후 이제까지 번조, 이몽, 왕방, 송과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번조는 이각군 내에서 손꼽히는 강대한 세력가였으니 분명히 타격이 있을 것이다.

“앵속을 공급하던 송과가 갑자기 습격을 받아 죽게 됐지요. 이제부터 이 시기에 맞춰서…….”

“곽사가 이각을 찾지 않게 된다면, 이각도 의심이 생기겠지.”

이미 충소가 기녀에게 흘린 거짓 정보로 ‘번조, 곽사 중 누군가가 마등과 내통하고 있다’는 의심을 했었던 이각이다. 일단 번조를 의심해서 죽였지만, 만약 곽사에게서 이상한 낌새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곽사와의 싸움이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맞습니다. 이제 이각은 곽사가 앵속을 노려서 송과를 죽이고 앵속을 빼앗은 것으로 의심할 겁니다.”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의 역사에서도 사소한 이유로 이각과 곽사가 내분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고, 몇 가지 불쏘시개가 될 만한 사건들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래. 이제 이각과 곽사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감, 충 대부는 무사히 옮겼나?”

간의대부 충소는 기녀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후, 이각의 추적을 피해 일가족을 다 데리고 잠적한 상태였다.

“무사히 옮겼습니다. 설마 그런 대담한 장소에 숨기실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각이 아무리 장안을 이 잡듯이 뒤져도 찾지 못할 겁니다.”

“내 생각은 아니고, 가후의 생각이다.”

“가후… 그러고 보니 이번 계획을 전부 짠 것이 가후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네. 앉아서 천 리 밖의 일을 꿰뚫어 보는 인물이야. 지모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서 실제로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에 큰 역할을 했지.”

가후는 이각에게 큰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각 말고도 가후를 높이 평가해서 가후의 지모를 빌리고 싶어 하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가 상서의 인맥이라면, 폐하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감은 낙양의 금군 출신이다. 천자를 입에 담자 묘한 감상에 젖는 듯했다. 마초는 이감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 우리 계획 최고의 협력자. 간의대부 충소를 자신의 궁에 숨기고 있는 사람. 당금 천자가 가후를 신뢰하니까 일이 쉽게 풀리더군.”

“다행입니다. 제가 잠시 알현했을 때도 나이는 어리지만 영용한 분이었습니다. 좋은 천자가 되실 겁니다.”

이감은 한 황실에 대한 충성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마초 자신은 어떤가?

‘너무 복잡한 문제다. 일단 천자를 탈출시키고, 이각을 베고, 그다음에 생각하자.’

“천자는 천자의 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겠지. 이감, 그대에게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원수들의 목을 보여주겠다는 말씀 말이군요.”

“이각과 곽사의 목은 반드시 그대에게 보여주겠다.”

마초와 이감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장안성, 대사마의 치소.

이각은 여전히 고양이처럼 길게 뽑은 눈매를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곽사가 표기장군부에서 계집들과 뒹굴고 있다고? 앵속에 잔뜩 취해서?”

이각의 사위 호봉이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표기장군이 이곳에 발걸음을 하지 않은지 벌써 여러 날이 됐습니다.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하던 대로 계집질을 계속하고 있는데, 앵속을 어디선가 잔뜩 구해서 계집들에게 먹이고 있답니다.”

곽사는 아내 팽 씨가 난리를 치자 더 이상 이각을 찾지 않았다. 이각이 보낸 당귀를 먹은 개가 토하는 것을 봤으니 뭔가 의심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앵속이 아쉬웠지만 풍익의 장기에게 받은 앵속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각이 그런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다. 이각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송과를 죽이고 앵속을 다 가져갔는데, 때마침 곽사가 이곳에 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앵속을 계속 써 재끼고 있다?”

“어르신, 송과도 어지간히 무공이 있는 자입니다. 하룻밤 사이 송과와 그의 패거리를 몰살시킬 수 있는 자라면 무예가 아주 뛰어난 자인데, 장안성에 그만한 무예를 갖춘 자는…….”

“알고 있어.”

장안에 그 정도의 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이각은 송과 일당을 몰살시킬 수 있을 만한 고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렸다.

‘나는 당연히 아니다. 내 사위 호봉도 아니다. 태위 황보숭? 그자는 이런 지저분한 일에 가담할 자가 아니다. 남는 건 호분(虎賁, 황궁의 근위대) 왕월과 상홍 정도인데…….’

그러나 황궁의 무관들이 갑자기 송과를 죽이고 앵속을 빼앗을 리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단 한 명, 곽사만이 남는다.

기녀 경패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간의대부 충소는 마등과 함께 ‘이각과 가장 가까운 자’와 결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등과 결탁한 자는 곽사 아니면 번조다. 이각은 먼저 번조를 시켜서 미오성의 마등을 공격하게 했다. 그런데 마등이 싸움을 피하고 너무 쉽게 미오성을 내주는 것을 보니 번조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가차 없이 번조를 목 졸라 죽였는데, 그 후로 곽사 쪽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계속 생겼다.

‘어쩌면 마등, 충소와 결탁한 자는 번조가 아닐 수도 있겠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미오성 전투에서 곽사가 보인 태도도 새삼스럽게 수상했다. 여포와 연합해서 마등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포가 곽사에게 트집을 잡아서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게 만약 곽사가 마등과 내통한다는 증좌를 잡아서 그랬던 것이라면?

“곽사는 최근 뭔가 이상해졌어. 뭐가 문제인지 내가 부르는 연회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았지. 그러다가 내 수하를 죽이고 앵속을 빼앗았다. 그렇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어르신?”

이각의 권력은 압도적인 무력과 그 무력을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공포에서 나온다.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이각 자신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공포로 집권한 권력자가 배신의 위험을 감지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곽사를 죽여야겠다.”

이각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벽에 걸려 있는 장검을 꺼내 들었다. 날 폭은 보통의 장검과 비슷하지만 길이는 사람의 키만큼 긴 장검이었다. 오랜만에 이 칼을 쓸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표기장군부를 친다. 모두 준비해.”

“존명!”

이각의 수하들이 일제히 손을 모아서 군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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