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가후의 모략 (1)
가후는 평상시 상서성에서 업무를 보지만 정기적으로 대사마의 치소로 가서 결재를 받는다. 그런 날이 오래되다 보니 대사마 이각의 속관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대사마의 치소에 들어설 때부터 속관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대사마께 무슨 일이 있는가?”
“상서 대인, 어제부터 대사마께서 계속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내가 가서 알아보겠네.”
가후는 이미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마초와 함께 이각의 정권을 무너뜨릴 계략을 짠 게 가후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치소에 들어서자 이각은 입을 비죽 내밀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가 상서, 이제 오면 어떻게 해!”
“고정하십시오, 대사마.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럼, 무슨 일이 있지. 에휴…….”
이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기녀 경패를 통해 얻은 정보를 말했다.
“충소라는 놈이 역적모의를 하는 줄은 알았지만 살려 뒀다가 언젠가 역이용하려고 했는데, 이제 이놈이 나하고 가장 가까운 인물을 끌어들였다네? 이걸 어떻게 하지?”
“대사마, 일단 신중하셔야 합니다. 충소는 기생 놀음에 빠져서 사람이 못쓰게 된 지 오래입니다. 기녀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고 허풍을 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역시 충소를 잡아들여서 입을 열 때까지 두들겨 패는 게 좋겠지?”
“그건 안 됩니다.”
“왜? 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사실일 경우가 문제입니다. 진짜로 충소에게 매수된 사람이 있다면 충소가 잡혀 들어오는 순간 손을 쓰거나 숨어버릴 수 있습니다.”
“흥, 그럼 어떻게 해?”
“만약 진짜로 매수된 사람이 있다면 누구겠습니까?”
“그야 둘 중의 하나겠지. 곽사거나, 아니면 번조거나.”
동탁 사후 정권을 잡은 서량 파벌의 무장들은 이각, 곽사, 장제, 번조 총 네 명이다. 그중 장제는 이각과 크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 지금은 멀리 떨어진 홍농군에 주둔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곽사와 번조다.
“만약 충소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보기에는 곽 장군보다 번 장군이 더 위험합니다.”
“으응? 그건 왜지?”
“곽 장군은 마등과 가까운 사이라고 이미 의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포가 곽 장군을 의심했는데, 그 결과 일이 틀어지고 미오성이 마등에게 넘어갔습니다. 결국 마등만 이득을 보지 않았습니까?”
“흠, 확실히 그렇지.”
“만약 마등이 번 장군과 결탁해서 일을 꾸미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번조가 마등과 한패라고?”
“그렇다면 앞뒤가 다 맞습니다. 곽 장군의 부곡은 여포와의 싸움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마등이 장기전으로 가면 곽 장군도 형세가 어려워집니다. 만약 이대로 장평관의 곽 장군과 미오성의 마등이 오랫동안 대치하다가, 마등이 한번 싸움을 이긴다면 대사마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때는 내가 직접 곽사를 구원하러 가야겠지.”
“그렇게 대사마께서 장안을 비우셨을 때, 후방에 남은 번 장군이 장안성에서 내응한다면 한순간에 일이 어그러질 것입니다.”
“으음…….”
이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곽사는 이각의 오랜 동지이지만 욕심이 많고 신의가 없는 자였다. 그렇기에 이각도 내심으로는 곽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후의 말을 듣고 보니 곽사는 마등과 내통해서 별로 이득을 본 게 없다. 가후의 말처럼 된다면 진짜 무서운 것은 번조였다. 그는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네 사람 중 말석에 있는 무장이었다.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어서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그냥 번조를 잡아서 물고를 내?”
“대사마, 제가 드리는 말씀은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번 장군도 대사마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이 아닙니까? 섣불리 그렇게 대하시는 건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의심이 드는걸?”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번 장군을 출진시켜서 마등의 군영을 습격하게 하십시오.”
“오호, 번조에게 마등을 치게 한다?”
“그렇습니다. 만약 번 장군이 결백하다면 마등과 용감하게 싸울 것입니다. 마등과 뒷거래가 있다면 싸우는 시늉만 하고 서로의 군사가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사마께서는 번 장군이 마등과 크게 싸우면 번 장군을 포상하시고, 마등과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면 번 장군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오, 그러면 되겠구나! 가 상서는 역시 똑똑해! 호호호호!”
이각은 활짝 웃으면서 가후를 꽉 끌어안았다. 체격은 평범해도 괴력을 지닌 이각이다. 가후는 여윈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간신히 참았다.
“대사마께서 좋아해 주시니 다행이군요.”
“암암, 그럼! 그래서 번조가 마등과 한바탕 크게 싸우고 돌아오면 범인은 곽사라는 얘기가 되겠군?”
“대사마, 그것까지는 신중하셔야 합니다. 곽 장군은 대사마의 오랜 벗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곽 장군이 그렇게까지 했으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충소의 허풍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호호호호, 곽사가 평소에 가 상서를 그렇게 구박했는데도 가 상서는 곽사를 모함하지 않는구나! 참 인품이 좋아!”
이각은 그렇게 가후를 칭찬하며 깔깔 웃었다.
이각이 곽사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에 걸려들 리 없다. 가후는 그렇게 되도록 차근차근 그물을 펼칠 셈이었다.
* * *
“이런 제길, 내가 아무리 그놈들보다 밑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갑자기 나보고 마등을 치라고?”
우장군 번조는 거칠게 투덜거렸다. 그 또한 서량에서 무사로 살다가 실력 하나로 동탁의 눈에 들어서 장군까지 출세한 인물이었다.
‘동네 무부일 때는 내가 최고인 줄만 알았지.’
그러나 막상 동탁군에 들어와 보니 이각, 곽사, 여포, 서영 같은 괴물들이 즐비했다. 이 자들에게 한 수 접자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번조는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세력을 키웠다. 그 와중에 동탁이 여포의 손에 죽고, 이후 정권을 잡은 이각에게 줄을 잘 서서 우장군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얻었다.
이각과 곽사가 함부로 대하는 것만 빼면 탄탄대로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 이각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자신을 불러내서 미오성에 틀어박힌 마등을 치라는 것이 아닌가?
“마등이 동탁군에 있었다면 나의 서열은 또 한 단계 밀려났겠지.”
싸움터에서 미친개처럼 싸운다고 자부하는 번조였지만, 마등에게는 자신이 없었다. 마등은 서량의 야차라고 불리던 자였다. 번조로서는 참으로 만나기 싫은 상대였다.
“그래도 명색이 우장군이니 군사들의 수도 많고 무장 상태도 좋다. 일단 적당히 싸우면서 상황을 보자.”
번조는 그런 생각으로 미오성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척후병을 보내 미오성을 정탐하게 하니, 상황은 번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뭣이? 마등이 미오성에서 철군했다고?”
“그렇습니다, 우장군! 이미 전원이 빠져나가서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오성을 지키며 결사적으로 항전해야 할 마등의 군사들은 그곳에 없었다. 미오성에 쌓여 있던 양식은 이미 다 옮겨서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금붙이와 비단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풍악을 울려라!”
번조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등이 남기고 간 재물을 군사들에게 나눠주고 기세 좋게 장평관으로 개선했다.
장평관에는 개선장군 번조를 환영하기 위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번조를 환영하기 위해 떨떠름한 표정의 곽사는 물론, 대사마 이각까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호호호호, 우리 번조가 이제 철이 들었구나! 그래, 마수성이가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그렇습니다, 치연 형님. 아니, 대사마. 아무리 마수성이라도 천하의 이 번조하고 싸우기는 겁이 났는가 봅니다. 핫핫핫핫!”
번조는 그렇게 기세 좋게 떠들며 웃었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이각의 눈이 샐쭉해졌다.
“번조야.”
“예, 대사마. 말씀하십시오. 핫하하하!”
“너는 내가 호구로 보이니?”
“네?”
턱.
짧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뭔가가 번조의 목에 감겨왔다. 이각의 사위 호봉이 뒤에서 팔을 얽어서 번조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컥, 커억…….”
“번조 너, 마수성이하고 내통했니?”
“컥컥, 대사마, 그게 무슨…….”
“마수성이가 네가 무서워서 도망갔다? 너 서량의 야차가 어떤 놈인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호봉의 조르기는 더욱 강력해졌다. 번조는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사…마… 억…울…….”
“여포하고는 그렇게 죽일 듯이 싸웠으면서 번조는 피한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냐는 말이야. 번조의 부곡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이각은 그렇게 말하며 호봉에게 눈짓을 했다. 호봉은 번조의 그대로 목을 돌려 꺾었다.
우두둑!
목이 꺾여 죽은 번조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호봉이 번조의 코에 손을 대 보고 장인 이각에게 고했다.
“어르신, 죽었습니다.”
“흥, 건방지게 굴고 있어. 감히 마수성이하고 내통을 해?”
이각은 순식간에 시신이 된 옛 동료에게 한참 욕을 하다가 갑자기 주변에 빽 소리를 질렀다.
“얘! 뭣들 하니! 저놈을 치우지 못해!”
“예, 예, 대사마.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오체분시해!”
뜬금없이 목 졸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시신을 다섯 조각내라고 지시하는 이각이다.
곽사는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듯했다.
“치연, 괜찮겠나? 혹시 우리가 오해한 거라면…….”
“오해? 그럴 리가.”
이각은 곽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번조가 출진하기로 결정 나자마자 간의대부 충소란 놈이 보이지 않아. 틀림없이 켕기는 게 있는 거지. 충소는 번조가 마등과 싸우지 않을 걸 예상했을 거야.”
잡아들여서 대질심문하려던 충소가 사라지자 이각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한번 의심을 품으니 마등이 철수한 것도 둘이 같은 편이라 쓸데없이 병사를 소모하기 싫어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용력이 뛰어난 사위 호봉을 시켜서 번조의 목을 졸라 죽이게 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이각은 번조가 내통하는 것을 의심하고 사위 호봉을 시켜서 죽인다. 차이점은 원래의 역사에서는 번조가 한수와 가깝다는 사실을 의심했다는 것이고, 이번에는 마초와 가후의 계략에 걸려서 마등과 내통하는 것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이각은 한번 눈이 뒤집히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는다. 평소 미친놈처럼 살다가도 이각이 화가 났을 때만 침착한 지성인이 되는 곽사와는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곽사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고 일단 이각의 비위를 맞추기로 했다.
“치연, 너의 혜안으로 번조의 내통을 미리 잡았군. 역시 대사마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지략이다.”
“으응? 호호호, 그게 무슨 소리니? 아무렴 내가 했으려고. 이게 다 가 상서의 지략이란다.”
“가후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그래, 안 그래도 저 번조라는 놈 마음에 안 들었는데, 가 상서는 어떻게 내 맘을 꼭 알고 그런 진언을 했을까? 어쨌든 번조의 부곡은 마수성이가 낼름 먹어 치울 뻔했는데 미리 막아서 다행이네. 곽사 네 부대에 편성해서 잘 다독이도록 해.”
이각은 그렇게 번조의 부곡을 곽사의 부곡으로 편입시키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져갔다.
곽사는 있지도 않은 코를 벌름거리고 성치 않은 눈을 껌뻑거리며 생각했다.
“충소의 말을 들어 보면 틀림없이 우리 중의 누군가와 내통을 하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나는 아니니 아마 번조가 맞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가후가 진언했다고?”
평소 가후를 핍박하던 곽사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의 정체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로는 하루 종일 생각해도 더 이상 답을 찾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