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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63화 (63/306)

63화. 상실

철군하는 여포군을 습격해서 여인들이 탄 수레를 탈취하는 것은 마초가 맡기로 했다.

“여포에게 한 방 먹여야겠다!”

라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마초는 혹시 여포가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서 방덕과 서황까지 데리고 떠났다.

여포군이 철군하는 날, 마초의 부장 마휴는 마가군 진영을 지키고 있었다.

“과연 형님은 대단하다. 천하제일이라는 여포와 당당히 겨루고, 비록 용맹으로 이기기 어렵더라도 지모를 사용해서 결국 여포를 궁지에 몰아넣었구나. 이제 날이 밝으면 빈 미오성은 우리의 차지가 되겠지.”

마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천화극을 바라보았다. 나관중은 자신에게 미래에 쓰인다는 이 무기를 만들어 주며 최강의 무인에게 어울리는 무기라고 했다.

“최강의 무인 같은 건 내가 아니라 형님에게 어울리는 말이지. 하지만 최강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저 난세를 끝내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데 도움이 되면 그만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은 무예도, 학문도 그저 평범했다. 마휴처럼 높은 이상을 품은 자에게는 괴로운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냈다.

“나에게 큰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도 좋다. 그런 건 형님 같은 영웅들의 몫이다. 나는 그저 그들을 도와 치란(治亂)을 이루면 그만이다.”

치란. 난세를 다스리는 것.

입신양명도, 부귀영화도 아닌 그것이 마휴가 가진 꿈이었다.

마휴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형님이 조금 더 천하 백성들을 생각하면 좋을 텐데.”

마초는 일 년 전 어느 날, 열병을 앓고 나서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난폭한 성정은 많이 유해지고 노련미와 지혜가 더해졌다. 원래도 뛰어났던 무예는 더욱 출중해졌다. 자기 말로는 30년이나 되는 긴 꿈을 꾸었다는데 정말로 30살은 더 먹은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무뚝뚝하던 형은 그날 이후로 아버지와 아우들, 그리고 아내에 대해 거리낌 없이 애정을 드러냈다.

‘형님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너무 현실적으로 변한 면도 있지. 예전에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는데.’

형의 야망과 자신의 이상을 겹쳐서 천하를 안정시키려는 포부를 가졌던 마휴는 형이 좀 더 천하에 관심을 두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휴가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휴의 옆에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뒤이어 주변이 소란해지며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설마… 야습인가?”

마휴는 이를 악물고 말에 올라타 방천화극을 쥐었다.

곽사군은 지금 장평관까지 후퇴한 상태다. 이렇게 대담하게 마가군 진지에 야습을 가할 만한 상대라면 여포군뿐이다.

마휴의 예감은 적중했다. 화살이 몇 번 쏟아진 후 검은 옷을 입은 철갑기병들이 뛰어 들어와 마가군 병사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여포가 자랑하는 함진영이었다.

“이놈들, 덤벼라!”

마휴는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함진영 기병들과 맞서 싸웠다. 여포가 자랑하는 정예들이었지만 마휴 또한 마가의 사내였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방천화극을 들고 함진영을 하나씩 베어 넘겼다. 용감하게 싸우는 마휴의 모습은 어두운 밤에도 눈에 띄었다.

그런 마휴에게 이윽고 한 장수가 다가왔다.

“독특한 창을 쓰는 놈이군. 송헌이 월아를 단 창을 쓰는 놈에게 죽었다고 했던가.”

마휴는 숨을 헐떡거리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피처럼 붉은 말을 탄 장한이었다. 투구가 아니라 작은 관을 쓰고 영준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관에는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을 꽂아서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여포.”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는지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마휴의 입에서 혼잣말이 나왔다.

“철군하는 길에 야습을 하다니 과연 대담하구나.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나 보군.”

그러니 더더욱 그냥 보낼 수 없다.

마휴는 여포를 노려보았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이길 수 없는 대로 상대해 주리라.’

“송헌을 죽인 건 마등의 둘째 아들이라고 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여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거대한 칼을 뽑아 들었다. 날을 세우지 않은 대도, 무인도였다.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여기서 죽어라.”

여포가 모는 적토마는 예상보다 더욱 빨랐다. 순식간에 마휴의 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쾅!

무인도는 방천화극의 자루를 그대로 부러뜨리고 마휴의 몸통을 반이나 파고들었다. 폭음이 터지고 뭔지 알 수 없는 붉은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휴는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여포는 그대로 무인도를 회수하려고 했다.

턱.

그때, 몸통이 다 부서진 마휴가 왼팔로 무인도를 끌어안았다. 오른손에는 부러진 방천화극의 월아를 쥐고 있었다.

“난세를, 끝내려면…….”

마휴가 오른손에 쥔 월아로 여포의 얼굴을 힘껏 때렸다.

퍽!

생각지도 못했던 일격이었다. 투구를 쓰지 않은 여포는 그대로 마휴의 일격을 얼굴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여포의 왼쪽 눈두덩에 월아가 세로로 길게 박혔다.

“네놈을, 여기서…….”

마휴는 월아를 여포의 얼굴에 깊게 박아 넣기 위해 계속 힘을 썼다. 그러나 부서진 몸통에서는 힘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낑낑거리던 마휴의 몸이 이내 차게 식었다.

마휴의 숨이 끊어지자 여포는 얼굴에 박힌 월아를 뽑아 들었다. 마휴가 휘두른 월아는 왼쪽 눈두덩에 깊게 상처를 냈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실명했을 것이다. 마초가 낸 오른쪽 눈두덩의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물었지만 마휴가 낸 상처는 계속 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포는 마휴에게 좋은 평을 하지 않았다.

“난세를 끝낸다고? 대의니 뭐니 하는 시시한 소리를 하는 놈이었나. 제 형보다 못하군.”

그렇게 내뱉고 돌아서려는 찰나, 자신의 얼굴을 찍었던 월아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게 생긴 무기로군. 긴 무기를 하나 만들려고 했었는데 이걸 써 볼까.”

여포는 부러진 방천화극의 월아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 * *

여인들을 태운 수레는 대열의 최후미에 있었다. 마초가 이끄는 기습부대는 혈투 끝에 여인들이 탄 수레를 탈취했다.

여포의 본대는 승패가 기울자 여인들을 포기하고 길을 나섰다. 마초의 부대를 상대하기에는 숫자도 적었고, 마가군 본영을 야습하러 간 여포와 집결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초도 퇴각하는 본대를 굳이 추격하지 않았다.

방덕과 서황이 수레를 호위해서 돌아오는 사이, 마초는 말을 달려 먼저 마가군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포의 야습을 받아 피바다가 된 진영이었다.

“이런 제길!”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마초의 눈에 소년 장수의 시신이 들어왔다. 아우 마휴였다. 그의 몸에는 뭔가 폭발한 듯 거대한 상처가 나 있었다. 무인도가 남긴 흔적이었다.

“으아아악!”

마초는 마휴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했다. 죽은 아우의 몸에 남아 있는 무인도의 도흔을 보자 그대로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그대로 절영을 몰아서 말발굽 자국을 따라 달렸다. 마가군 최정예 백여 기가 마초를 따랐다. 그러나 분노에 눈이 뒤집혀 말을 모는 마초와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알고 달리는 절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나둘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통과하는 산길로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어느새 아무도 없이 혼자 달리게 되었다. 그때 마초의 눈에 행군 중인 기병대가 들어왔다. 여포의 함진영이었다.

“전부 죽여 주마!”

마초가 내지르는 함성은 꼭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지난 생에서 마휴는 마초 때문에 죽었다.

중원과 하북을 제패한 조조는 서량의 마등에게 위위 벼슬을 제시했다. 황궁의 수비를 담당하는 높은 관직이었지만, 사실 서량 군벌을 이끌고 딴마음을 품지 말라는 일종의 인질이었다. 두 아우 마휴와 마철도 조정의 벼슬을 받고 허도로 간 마등을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서량에 남아서 마가군을 이끌게 된 것은 마초였다.

마초가 거병한 이후 마등과 마휴, 마철은 처형되었다.

정확히는 마초가 패했을 때 처형되었다. 인질은 살아 있어야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마초가 1차 봉기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승패가 기울었을 때, 그래서 굳이 인질을 잡아 둘 필요가 없어지자 아버지와 두 아우는 처형되었다.

‘내가, 내가 패하지 않았더라면……!’

지난 생에서 패하지 않았더라면, 조조에게 큰 승리를 거둬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했다면, 마휴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 생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여포에게 서전에서 승리를 거둬서 그 목을 취했다면, 마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크아악!”

마초는 비명 같은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장도를 뽑아 휘둘렀다. 푸른 눈이 붉게 충혈되어 피눈물이 흘렀다. 칼날이 닿는 곳마다 검은 갑옷의 기병들이 쓰러져 나갔다.

후미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열의 역방향으로 한 기가 달려왔다. 피처럼 붉은 적토마를 탄 여포였다. 여포는 고개를 돌려 고순에게 말했다.

“함진영을 이끌고 먼저 가라. 나는 저놈을 처리하고 따라가겠다.”

“온후, 그래도 온후를 기다렸다 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지체할 때가 아니다. 적토마를 타고 달리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니 먼저 이동하라.”

“존명!”

고순은 여포에게 군례를 올리고 함진영을 지휘해서 멀어져 갔다.

“서량의 마초. 참으로 지긋지긋한 놈이구나.”

여포는 무인도를 치켜들었다. 상대는 평정심을 잃은 상태니 참격 한 방으로 끝낼 참이었다.

부우웅!

여포는 처음부터 가장 빠른 속도로 무인도를 휘둘렀다. 마초는 아무 대꾸도 없이 장도를 뽑아 들고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피눈물로 인해 시야가 벌겋게 보였다.

끼기기긱!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불꽃이 튀었다.

여포의 무인도는 마지막까지 가속하지 못하고 중간에 멈췄다. 상대의 칼날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마초가 휘두른 장도는 여포의 무인도보다 더 빨라서, 넓은 칼날을 절반이나 파고들어 있었다.

“무인도를… 벴다고?”

여포는 눈을 의심했다. 괴력을 지니고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른 그에게 예리한 무기는 필요 없었다. 그저 아무리 휘둘러도 날이 상하지 않는 두터운 칼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한 상대는 그런 무인도를 얇은 장도로 베어냈다.

텅!

여포는 무인도를 바닥에 던지고 적토마를 몰아 뒤로 물러났다. 마초는 예상한 듯이 무인도에 박힌 장도를 놓고 안장에 꽂은 창을 빼 들었다. 피눈물로 인해 시야는 온통 붉었지만, 여포가 쓴 봉시관과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마초는 여포의 가슴께에 창을 찔렀다.

쉬익!

여포는 겨드랑이에 창을 끼워서 부러뜨리려 했으나 그런 식으로 대응하기에는 마초가 찌른 창이 너무 빨랐다. 어쩔 수 없이 몸을 크게 틀어서 마초의 창을 피했다. 그러면서 여포는 품에서 마휴에게 빼앗은 방천화극의 월아를 꺼내서 치켜들었다. 여포가 휘두르는 월아가 마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주먹질로 상대를 낙마시키는 괴력을 지닌 여포다. 저 월아를 몸으로 받아내면 죽는다.

휘릭.

마초는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낙마하게 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 여포의 월아가 마초의 가슴에 적중했지만, 뒤로 물러나며 받은 일격이라 깊이 박히지는 않았다. 절영이 땅바닥을 미끄러지며 멈췄다. 마초는 몇 바퀴 데굴데굴 구른 후 땅에서 일어났다.

낙마해서 굴렀으니 온몸이 성한 곳이 없을 것이지만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죽은 아우에 대한 복수심만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뚜벅. 뚜벅.

마초는 몸에 박힌 월아를 뽑아 던져 버리고 땅바닥에 구르는 무인도 쪽으로 다가갔다.

드드득.

무인도의 도신에 박힌 자신의 5척 장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절영에 올라타서 여포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적토마를 탄 여포는 어느새 훌쩍 멀어져 있었다.

달려 들어오는 마초를 보며 여포는 눈을 의심했다. 앞에서 달리는 적토마와 뒤쫓는 절영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렇게 말을 잘 타는 놈이 있었나.”

여포는 인상을 찌푸리고 마초를 상대하기 위해 남은 무기를 찾았다.

“이제 남은 무기는 이것뿐이군.”

무인도는 마초의 칼날에 베였다. 월아는 마초의 몸에 박혔다. 이제 여포의 손에 남은 무기는 하나뿐이었다.

여포는 대궁(大弓)을 꺼내 화살을 메겼다. 화살은 단창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했다.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동안 마초는 절영을 채찍질해서 어느새 자신의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지금껏 이토록 자신을 몰아붙인 상대가 있었던가?

여포는 가만히 앞을 바라보았다. 흑갈색 준마에 올라타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청년 장수가 보였다. 눌러 쓴 투구 사이로 길고 검은 머리칼이 비어져 나와 흩날렸다. 잘 생겼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눈매는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실로 야차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마초는 여포를 두 쪽 내겠다는 듯 장도를 잔뜩 치켜들고 있었다. 여포는 코앞까지 다가온 마초의 미간을 겨냥하고 가만히 시위를 놓았다.

타앙!

화살은 마초가 쓴 투구를 직격했다. 맑은 금속성이 울려 퍼지고 투구가 벗겨져서 하늘로 날았다. 화살에 맞은 마초의 몸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튕겨져 나갔다. 목이 뒤로 크게 꺾여 있는 게 보였다.

우당탕.

1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 머리에 화살을 맞은 마초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절영도 같이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마초와 여포가 싸우는 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난 산길이었다. 화살에 맞은 사람과 말은 몇 바퀴 바닥을 구른 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승패가 났다.

“이 정도면 죽었겠군.”

여포는 무심한 동작으로 활을 안장에 걸고 말머리를 돌렸다. 절벽 사이로 나 있는 산길에 적토마의 발굽 소리가 멀어지고 적막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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