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간계 (2)
여포는 학맹과 진의록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등이 곽사와 내통을 하고 있다고?”
진의록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온후! 제가 마등군 진영에 갔을 때 산해진미에 악공에 무희까지 동원해서 융숭한 대접을 하기에 어쩐 일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곽사가 보낸 사자에게 대접하려고 준비했다지 뭡니까!”
학맹도 한마디 거들었다.
“온후, 아무래도 낌새가 수상합니다. 곽사는 주제넘게 자신이 온후와 대적할 수 있다고 믿는 자입니다. 온후와의 단기접전에서 패한 사실이 천하에 알려졌으니 앙심을 품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그놈의 코를 잘랐지.”
여포는 그렇게 말하고는 왼쪽 눈두덩을 쓰다듬었다. 눈 위에서 아래로 길게 베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초의 5척 장도에 베인 상처였다.
전장에서 제대로 상처를 입어 본 게 얼마 만인가? 적토마를 얻은 후, 상대 장수의 칼날에 상처를 입은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손견이었지. 강한 녀석이었다.’
여포는 동탁의 휘하에 있을 무렵 양인 전투에서 손견과 상대한 적이 있다. 손견은 변변한 기병대도 없는 강동의 군사들을 이끌고 서량병과 병주병을 압도하는 괴물이었다. 만약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살았다면 천하제일로 불리는 것은 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힘이나 무예는 여포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칼날은 이상하게 무겁고 예리했다.
‘얼마 전에 상대한 마초도 손견 못지않은 놈이었지.’
게다가 마초는 젊다. 어쩌면 손견보다 더 강한 무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여포를 향해 학맹이 말했다.
“온후,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가 미오성에 들어올 때도 영접했던 것은 이각이고, 곽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곽사가 온후에 대한 미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등과 내통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의록도 다시 거들었다.
“그렇습니다요, 온후. 곽사라면 마등과 온후를 동시에 해하려는 꿍꿍이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인입니다요.”
“꿍꿍이?”
여포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진의록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오…온후?”
콱!
여포는 대답 없이 한 손으로 진의록의 턱을 붙잡았다. 진의록의 얼굴이 작지는 않았지만, 여포의 손이 워낙 커서 한 손에 턱이 다 들어왔다. 턱을 붙잡고 들어 올리자 진의록의 두 발이 허공에 떴다.
“컥, 커억…….”
“진의록. 이제 생각났다. 내가 찍었던 계집을 네놈이 빼돌렸지?”
“컥, 오, 온후…….”
“하동의 두혜라는 계집을 내가 찍었었는데 네놈이 못 찾겠다고 둘러댔었지. 얼마 전에 생각나서 확인해 보니 네놈 처가 두 씨 성을 쓴다고 하더군.”
“온, 온후, 죽을죄를…….”
여포가 손을 놓자 진의록은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학맹. 저놈의 집에 사람을 보내서 두혜를 끌고 와라. 동백을 길들이는 것도 곧 끝날 테니 늦지 마라.”
“알겠습니다, 온후.”
초선에 동백도 모자라서 진의록의 처 두 씨까지 탐내고 있는 여포다. 그는 미색이 있다면 처녀와 유부녀, 늙은이와 젊은이, 귀족과 천민을 가리지 않았다. 부하들의 처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진의록. 네놈은 두혜가 말을 잘 들으면 살려 주마. 뻣뻣하게 군다면 그날로 죽은 목숨일 줄 알아라.”
“아이고, 온후…….”
자기 아내와 딸의 이름도 헷갈리는 여포지만 눈에 띄는 미녀였던 두 씨의 이름은 한번 듣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혜의 일을 처리한 여포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진의록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마등군에서 너를 접대한 건 누구였느냐?”
“흑흑, 온후… 그게 마등의 아들 마초였습니다.”
“마초?”
여포는 문득 눈가에 난 상처가 아려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초라. 알았다. 내가 곽사를 만나 보겠다.”
학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온후, 만약에 곽사에게 꿍꿍이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죽여야지.”
여포는 그렇게 대답했다. 마초라는 이름을 들으니 뭔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꼭 누군가 죽여야 할 듯한 기분이었다.
* * *
그 무렵, 곽사와 마등은 군사들을 물린 채 널찍한 공간을 만들고 단둘이 마주하고 있었다.
“항상 곽 장군을 흠모했는데 오늘 이렇게 단둘이 뵙게 되는군요. 이 마모의 영광입니다.”
마등은 잘생긴 얼굴에 한껏 웃음을 띠고 곽사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곽사는 못생긴 얼굴을 뒤룩거리며 대답했다.
“마수성, 인사말은 집어치우고 용건을 말해라.”
“용건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서량에서 칼 밥을 먹는 자라면 누구나 곽 장군을 존경합니다. 저도 가까이에서 한번 뵙고 싶었지요.”
곽사의 무용은 서량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서량에서도 무용하면 이각과 곽사가 첫손에 꼽혔다. 그다음으로 꼽히는 게 그들보다 약간 후기지수인 마등이었다.
마등은 지금 마초와 나관중이 입안한 계략을 실행하고 있었다. 여기서 마등이 해야 할 역할은 곽사와 하하 웃으면서 사이좋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평소 곽사를 극도로 혐오하는 마등이지만, 그 또한 사람 만나는 일에 익숙한 중년 사내다. 싫은 티를 내지 않은 채 그저 곽사에게 덕담만을 건넸다.
‘어서 걸려들어라.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냉큼 나온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잠시 후, 곽사는 마침내 마등이 기다리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앵속은 언제부터 키웠나?”
“아아, 알고 계셨습니까? 이거 원 민망해서… 가난해서 병사들 봉급 줄 돈이 없으니 말입니다.”
“왜 키웠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질 좋은 앵속을 잔뜩 가지고 있다지? 나에게 넘겨라.”
“예? 곽 장군께요? 아이고, 이것 참…….”
마등이 난처한 듯 웃음을 보이자 곽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수성. 나는 협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대로 죽고 싶나?”
“그럼요. 제가 어찌 곽 장군하고 협상을 하겠습니까? 곽 장군께서 2만 대군을 휘몰아치시면 저희 마가군은 당해낼 방법이 없는데 말입니다.”
“2만 대군 같은 소리 집어치워라.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 목을 따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등은 순간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려 했지만 40대의 원숙함으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았다.
“아이고 곽 장군, 알겠습니다. 앵속은 밭째로 가져가십시오. 밭은 북지군에 있습니다.”
“북지군? 멀리도 숨겨 놨군. 북지 어디에 있느냐?”
“북지군에 야고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백파적 호재라는 자가 밭을 만들었기에 제가 그자를 좀 혼내 주고 인수한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백파적 호재는 앵속 재배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자금줄이 있었다면 괜히 양하원을 납치했다가 마초에게 팔다리가 다 잘려서 끔찍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고산… 알았다. 나에게 앵속밭을 넘겼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대신이라기에는 뭐하지만, 장군께서 사정을 좀 봐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말이지요.”
마등은 씩 웃으며 곽사를 바라보았다. 거래는 주고받는 것이다.
“뭐냐?”
“앞으로 닷새만 싸움을 멈춰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이번 싸움도 끝낼 때가 됐습니다. 여포놈을 한번 두들겨 보고 여의치 않으면 서량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여포를 두들긴다는 얘기를 듣자 곽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알이 뒤룩거리고 있지도 않은 코가 벌름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수성, 이 멍청한 놈… 마초라는 애송이가 여포하고 싸워서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신통한 일인데, 정신을 못 차리고 여포하고 다시 붙으려고 하는군. 잘 됐다. 두 놈이 싸워서 하나가 죽으면 내가 다른 하나의 목을 취하면 그만이다.’
곽사는 짐짓 침착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알았다. 대신 앞으로 딱 닷새만이다. 엿새째 되는 날 아침에는 관중 평야에서 사라져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줄 알아라.”
“으하하하! 과연 곽 장군은 도량이 있으십니다. 하하하! 껄껄껄!”
마등은 손뼉까지 치면서 과장되게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양 진영의 군사들이 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회담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병사들의 눈에는 수장 둘이 하하호호 떠들기만 하다가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진영으로 돌아온 마등은 부리나케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군막에서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마초와 마가군의 주요 장수들이 군막으로 들어갔다.
“곽사, 저놈의 목을 언젠가 잘라야겠는데.”
마등은 집기를 잔뜩 부수자 화가 좀 풀려서 다시 여유 있는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집기는 투구로 부쉈는지 통짜 철로 만든 투구가 잔뜩 찌그러져서 나뒹굴었다.
“멧돼지 같은 놈하고 협상까지 하고 오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초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자신이었으면 혐오감을 못 참고 베어 버렸을 것이다. 마등은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인내심이 마초보다 한 수 위였다.
“말도 마라. 계략 쓰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구나.”
“그래도 이 계략으로 곽사와 여포, 둘 중 하나는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마등과 마초는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곽사와 여포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는 이간계.
이감이 곽사가 앵속을 많이 쓴다는 정보를 입수해 오자 이간계를 성공시킬 방법이 보였다. 마초는 처음 회귀했을 때 만났던 풍익의 장기에게 사람을 보내서 곽사에게 앵속을 진상하도록 하면서 은근히 마등이 앵속밭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게 했다. 그러니 마등이 회담을 청했을 때, 곽사는 앵속에 눈이 멀어 회담을 받아들였다. 마등과 곽사의 회담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한편으로는 이감이 매수했던 여포군의 군리 진의록을 이용해서 반간계를 걸었다. 진의록은 마가군 진영에 사자로 왔다가 곽사와 마등이 내통하는 듯한 의심을 안고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와 곽사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며칠간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포의 귀에 들어간다면?’
여포와 곽사의 사이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신뢰하지 못하는 아군은 적보다 더 무섭다.
“이 계략이 맹기 네가 지난 생에서 당했던 계략이라고 했느냐?”
지난 생에서 마초 자신이 조조와 싸울 때, 조조의 모사로 있던 가후에게 당한 바로 그 계략이었다. 마초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 그때 이 계략에 걸려서 한 숙부와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이… 뭐 이젠 지난 일이니까요. 그보다 한 가지, 계략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그래. 서찰 말이냐?”
“그렇습니다.”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서찰을 펼쳤다. 죽간이 아니라 비싼 종이에 쓴 서찰이었다. 군데군데 먹이 죽죽 그어져서 마치 나중에 지운 것처럼 보였다. 읽다 보면 문장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 먹이 그어진 부분에 뭔가 중요한 내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등은 그 서찰을 보면서 혀를 찼다.
“어떤 자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영리하고도 악랄한 계략이로구나. 서찰을 이렇게 만들면 받는 사람이 중요한 내용을 지웠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예. 이 계략을 썼던 가후라는 자는 참으로 영리하고도 악랄한 자입니다. 모르면 한 번은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군데군데 먹으로 지워진 서찰에 정서장군의 인장이 찍혔다. 이 서찰을 곽사가 읽고 있다면, 마등이 보낸 서찰에 중요한 내용을 곽사가 지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 서찰을 곽사군에 보내겠습니다. 여포의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싸움을 잘한다고 전쟁에서 꼭 이기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이기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설마 내가 인생을 두 번째 사는 줄은 모르겠지. 이제부터 네놈이 당할 시간이다, 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