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59화 (59/306)

59화. 여포와 싸울 계책

미오성 밖 30리, 마가군의 숙영지.

주춤주춤하면서 비장군 마초의 군막에 들어서는 자는 나관중이었다.

“뭐야, 왜 그렇게 우물쭈물해? 들어오려면 빨리 들어와.”

마초가 한마디 하자 나관중은 한숨을 폭 쉬고는 들어와서 앉았다.

“저야 비장군께서 낙담하셨을까 봐 조심스러웠죠.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야지. 병사들이 그렇게나 많이 상했는데 내가 누워만 있으면 되겠나.”

“장평관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함진영이 장평관을 습격했지만, 다행히 서 사마가 최소한의 피해로 병사들을 지켜내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장평관은 곽사군이 점령해서 함진영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서황이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군.”

마초는 깍지 낀 두 손을 베고 누운 채로 그렇게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군. 여포군에게는 회전에서 대패하고, 기껏 점령한 장평관은 곽사에게 내준 것인가.”

지난 생에서부터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마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열 배가 넘는 세력을 가진 조조에게 정면으로 싸움을 걸었었다. 비록 세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전쟁은 패배로 돌아갔지만, 조조가 자랑하는 명장들과의 전투에서도 비등한 전력일 때는 시종일관 우세했던 그다.

그러나 여포는 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직접 부딪혀 본 여포군의 부장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맹장들이었다. 여포의 부대 지휘 능력도 대단하거니와 병사들의 사기도 보통이 아니었다. 최정예인 함진영은 장평관을 우회 공격하느라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나머지 군사들도 여간내기가 아니더군.”

여포가 보유한 인적자원, 지휘능력, 부대 장악력.

모든 게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돌이켜 보면 용병술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서황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 때문에 일이 틀어졌을 뿐, 그가 아니었다면 회전에서 마초의 부대를 격파하면서 장평관까지 장악해서 한 번 싸움으로 모든 게 끝났을 것이다.

나관중은 한숨을 쉬면서 전투를 복기했다.

“그런 여포가 가진 약점은 두 가지였죠. 하나는 전투를 귀찮아 해서 제대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전투에 나설 때 지나치게 선봉에 많이 서는 위험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비장군께서는 이 두 가지 약점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서영이라면 천하에 이름난 맹장이니 여포로서는 적절한 인물에게 전투를 위임했다고 할 수 있다. 마초는 서전에서 그 서영을 격파해서 사기를 올렸다. 귀찮아서 제대로 나서지 않던 여포를 끌어낸 것이다.

그다음에는 여포가 선봉에 서서 아군 진영으로 돌격할 것을 정확히 예측하고 방덕과 함께 2대 1로 여포를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설마 둘이서 여포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줄은 몰랐지. 역시 서황까지 껴서 3대 1로 싸웠어야 했나? 제길.”

여포의 무위는 달인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부족했다. 둘이 같이 덤비는 마초와 방덕을 말 그대로 압도했다. 마초 자신도, 방덕도 중태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났다.

때맞춰 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철리길이 마가군을 수습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전멸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비장군의 전략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실 여포의 부장들이 그렇게 강한 것도 예상 밖이었지 않습니까?”

“그래. 이름이 성렴과 위월이라고 했던가.”

효장 성렴과 건장 위월.

본래의 역사에서는 상산 전투에서 여포의 양 날개를 맡아 흑산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 외의 기록이 전혀 없으니 나관중도 성렴과 위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마초가 말했다.

“월길이 이끌던 좌익은 성렴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마휴와 올돌골이 이끄는 우익도 위월에게 크게 고전했다고 하지. 이감까지 가세해서 셋이 협격을 해서 겨우 퇴각시켰다던가.”

나관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료가 없는데도 이 정도라니. 여포가 왜 그렇게 무모한 전투 방식을 쓰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군. 일단 상황을 무력 대결로 만들면 어떤 전장이든 이겨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최초의 전략이 어그러졌군요. 장평관을 선점해서 이각, 곽사의 원군을 막아 두고 미오성을 탈취하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마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미오성 수비병에게 회전에서 패하고 장평관은 빼앗겼지. 여포를 정면 대결로 잡는 건 불가능하다. 뭔가…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른 방법.

계속 마초의 눈치를 보던 나관중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비장군. 제가 군문의 일은 잘 모릅니다만…….”

“잘 모릅니다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여포의 약점을 찌를 만한 계책이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요. 이게 제가 군문의 일을 모르는 상태로 생각해 낸 것이라 말이 되는 얘기인지를 저도 잘 모르겠어서…….”

팟!

마초가 누운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리고 얼떨떨해서 쳐다보는 나관중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계책! 계책이 있구나!”

“예? 아니 계책이라기는 좀… 그러니까 이게 계책이 될지 안 될지를 비장군께서 좀 판단해 주십시오. 저는 뭔가 새로운 발상을 막 떠올리는 건 잘합니다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나관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단 얘기해 봐! 상산에서도 관중 너의 계책으로 흑산적들을 손쉽게 잡았잖아?”

“흠흠…….”

나관중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얘기를 시작했다.

“여포의 약점을 굳이 찾자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약점? 그런 건 없어. 스스로의 무예를 과신해서 무모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거? 그건 이미 찔러봤는데 무예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보다 병력이 적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장평관이 떨어지고 2만이 넘는 곽사군과 여포군이 같이 싸우게 됐으니 이제 그것도 약점이 아니지.”

“그렇죠. 여포군은 2만 곽사군과 같이 싸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게 약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뭔가가 떠오른 듯, 마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나관중은 내쳐 말을 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풍익의 호족 팽가의 저택이었죠. 저는 곽사의 처남 팽가 밑에서 부엌일 하는 가노로 있었구요.”

“그래, 그랬지.”

“그때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말이 있습니다. 여포와 곽사의 사이가 지독하게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여포가 다툼 끝에 곽사의 코를 베어서 곽사는 여포에 대한 원한이 사무친 상태라고 합니다.”

“그야 여포나 곽사나 모두하고 사이가 안 좋은 놈들이잖아.”

“그런 둘이 같이 싸우게 되었지요. 병력의 질은 여포군이 좋지만 숫자는 곽사군이 많고, 회전에서는 여포군이 이겼지만 장평관을 탈환한 건 곽사군이고. 그렇게 서로의 입지가 비등한데 두 세력의 수장은 사이가 극히 나쁘고. 그러니…….”

“둘 사이에 내분을 만들어 보자?”

“그렇습니다.”

마초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포와 곽사 사이에 내분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허나 어떻게 내분을 만든다는 말인가?”

“그… 이게 말씀드리기가 참 조심스러운데…….”

나관중은 쭈뼛쭈뼛하며 마초의 눈치를 보았다.

“왜? 말해 봐. 아니 말해. 기탄없이 말해야 내가 듣고 채택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마초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나관중을 다그쳤다. 나관중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얘기를 시작했다.

“비장군. 혹시 이 방법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나관중은 곽사와 여포 사이에 내분을 일으킬 자신의 계책에 대해 설명했다.

말을 다 들은 마초는 멍하니 나관중을 바라볼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 역시 얘기하지 말 걸 그랬나? 기분이 팍 상한 건 아니겠지?’

나관중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무렵, 멍하게 있던 마초가 입을 열었다.

“관중.”

“예… 예?”

“너 혹시 천재 아니냐?”

“네?”

나관중은 기가 막혀서 마초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떨 때는 진짜 아둔해 보이는데 어떨 때는 천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설마 이런 계략을 생각해 내다니…….”

“…그건 칭찬이죠?”

“칭찬이지, 그럼.”

“아니 그런데 이건 비장군도 잘 알고 계신 방법이잖아요? 저는 그래서 이미 생각해 보셨을 줄 알고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웠는데…….”

“그게… 떠올리기 싫은 일이라서 그런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관중이 말한 방법은 지난 생에서 마초가 다른 사람에게 걸려서 크게 곤욕을 치렀던 계략이었다.

“어쨌든 이 방법을 써 보면 효과가 좀 있겠죠?”

“그래. 그 계책이라면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초의 목소리에 드디어 힘이 돌아왔다.

“내가 천하에 이름을 날릴 때가 되니까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나를 여포하고 비교하더군. 내가 여포를 꼭 닮았다나?”

‘그야 둘 다 같은 패륜아니까…….’

나관중은 생각만 했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정도의 분별은 있었다.

“만약 비장군과 여포가 꼭 닮았다면…….”

“내가 걸렸던 계략에 여포도 걸려들겠지. 재미있군.”

마초의 입꼬리가 드디어 올라갔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이를 드러내고 웃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눈은 웃지 않는 예의 그 악당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천하제일의 무인은 여포다. 내가 무장으로서는 여포를 이길 수 없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싸움이라는 게 칼 잘 쓰고 군사들 잘 부리는 걸로 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나관중은 마초의 악당 같은 표정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마초가 이제까지 딱히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근본은 악한 사람인 것 같았다.

“어른의 싸움을 가르쳐주마, 여포.”

청년의 몸을 가졌지만 50년의 인생을 살아 온 사내가 그렇게 읊조렸다.

* * *

다음날, 마등의 군막.

앞으로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가군의 군의가 열리고 있었다. 마가군 수장 마등이 자리에 모인 제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미오성 회전에서는 여포에게 패했고, 장평관은 곽사에게 내줬다. 이렇게 보니 엄청난 위기 같군.”

마등은 그렇게 말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수염은 풍성하지만 결이 고왔다. 강족과의 혼혈인 그는 높은 콧날과 움푹한 눈매 등 서역인을 연상시키는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그의 수염은 서역인 중에서도 신독(身毒, 인도)이나 안식국(安息國, 페르시아) 사람들보다 더 서쪽에 산다는 눈이 푸른 사람들을 닮아서 결이 곱고 뻗치지 않았다. 길게 기르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멋진 수염이었다.

입으로는 위기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등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나마 서황이 장평관을 지키던 병사들을 거의 살려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부간, 적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마등이 묻자 종사 부간이 나서서 대답했다. 올해 스무 살, 마초와 동문수학한 젊은 청년이었다.

“예, 정서장군. 우리 숙영지를 사이에 두고 약 3천의 여포군이 서쪽에, 2만 곽사군이 동쪽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 마등의 총병력은 정병만 따졌을 때 1만 4천 정도였다. 병력으로는 상당한 열세에 처해 있는 셈이다.

“좋다. 오늘 제장들을 모이게 한 것은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여포에게 패하면서 첫 번째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앞으로 닥쳐올 기근을 버티기 위해서라도 미오성 공략은 필요하다. 오늘은 미오성을 공략할 방법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사실 마등의 머릿속에는 퇴각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은밀하게 준비할 셈이었다. 수장이 퇴각을 생각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마등은 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미오성 공략의 방책을 물었다.

그렇지만 마땅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지루한 논의가 계속될 때, 군막을 열고 마초가 들어왔다.

“비장군 마초가 주공을 뵙습니다.”

전쟁터이니 부자 이전에 상하관계다. 마초는 마등에게 군례를 올렸다.

“비장군은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을 텐데. 더 쉬지 않아도 괜찮은가?”

“저 때문에 잃은 장졸이 천이 넘는데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 적을 깨뜨릴 계책을 논하신다고 하니 누워서 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등은 그렇게 말하는 마초를 바라보았다.

“비장군, 적은 강성하다. 곽사가 이끄는 군은 우리보다 수가 훨씬 많고, 여포가 이끄는 군은 수는 적지만 실로 강하다. 그들을 깨뜨릴 계책이 있는가?”

“깨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여포에게는 약점이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약점이라고 할만한 건 여포군의 적은 숫자였는데, 이 또한 곽사가 이끄는 2만의 원군이 합류하며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초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곽사가 여포군을 지원하러 오면서 한 가지 약점이 새로 생겼습니다.”

“한 가지 약점?”

“그렇습니다. 바로 여포와 곽사 간에 뿌리 깊은 반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등도 여포와 곽사의 사이가 극히 나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동탁이 죽은 후, 여포는 곽사와 사이가 틀어져서 크게 싸움을 벌인다. 이때 여포와 곽사가 일대일 승부를 벌인 것이 역사서에 기록된 몇 안 되는 단기접전의 사례 중 하나일 정도다.

“그러니 여포와 곽사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내분이 일어난 아군은 적보다 더 위협적입니다. 만약 계책을 써서 둘 사이에 내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가만히 얘기를 듣던 마등의 표정에 흥미롭다는 뜻이 나타났다. 마초의 눈이 빛났다.

“곽사의 2만 군사가 여포를 치는 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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