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장평관, 서황 대 고순
장평관, 동문 성벽 위.
덜컥.
서황은 피 묻은 대부를 옆에 기대고 성벽에 걸터앉았다. 성벽 아래로 개미 떼처럼 많은 적군이 내려다보였다. 장안 방면에서 곽사가 이끄는 원군이 장평관을 두드린 지 벌써 여러 날이었다. 장평관 공략에 나선 곽사군은 물경 2만을 헤아렸다.
“아무리 베도 줄어들지를 않는군.”
미오성 공략에 나선 마초의 대패 소식이 전해진 후, 장평관을 지키던 마등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마초를 구원하러 나섰다. 여포와의 투장에서 총대장 마초와 부장 방덕이 동시에 쓰러지는 바람에 지휘 체계가 마비,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오천 군사를 이끌고 나섰고 서전에서도 대승을 거뒀지만, 한 번의 패배로 인해 마초에게 남은 군사는 일천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마등이 직접 구원하러 나선 것이다. 대패를 당해서 꺾인 사기를 되살리고, 흩어진 군사들을 다시 규합하기 위해서는 수장 마등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마등은 장평관의 수비를 서황에게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
“공명(서황의 자), 내가 출성한 후 장평관 수비를 맡아서 장안 방면의 공격을 막아라. 다만 적의 수가 많으니 당해내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럴 때는 우선순위를 기억해라.”
서황은 마등에게 반문했었다.
“우선순위가 어떻게 됩니까?”
“첫째는 그대. 둘째는 병사들. 셋째가 성이다. 이 순으로 지켜라.”
“정서장군, 그 말씀은…….”
“당해내기 어렵거든 성을 내주고 퇴각하라. 성을 내주고 곱게 퇴각하기도 어렵거든 그대만이라도 몸을 피하라. 살아남아야 반격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마등은 부하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마초가 대패한 이상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등에게는 전력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전력은 서황이고, 두 번째는 병사들이었다. 어차피 서황의 능력으로 힘에 부칠 정도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뜻이다. 마등이 서황을 본 시간은 일 년도 되지 않지만, 그 정도면 서황이 얼마나 뛰어난 장재인지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서황도 죽을 각오로 성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그 또한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장평관을 지키고, 안 되면 병사들을 이끌고 야음을 틈타 퇴각할 계획이었다. 마등은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자신만이라도 탈출하라고 했지만 거기까지는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곽사군은 계속해서 성벽을 올랐다.
“돌과 화살과 끓는 물로 막아내고는 있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구나.”
끝내 성벽 위로 진입하는 몇몇 병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대부를 휘둘러서 베어 내고는 있었지만, 슬슬 한계가 보였다.
잠시 곽사군 진영을 내려다보던 서황은 품 안에서 말린 양고기를 꺼내서 씹기 시작했다. 땀에 절어서 지독한 냄새가 났지만 소중한 저녁 식사였다. 지켜보던 군관들이 다가와서 서황에게 휴식을 권했다.
“별부사마, 이만 들어가시지요. 식사와 목욕물이 준비돼 있습니다.”
“나는 됐다. 따뜻한 밥이 있으면 다친 병사들에게 돌려라. 그보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예, 오늘 밤 결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습니다.”
“알았다.”
준비란 장평관을 비우고 퇴각할 준비를 말한다.
이미 오늘부터 성벽을 올라온 적이 생긴 이상, 성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황의 무위가 워낙 뛰어나니 내일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레도 그렇게 버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다음 날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오늘 야음을 틈타 한 발짝 빠르게 성을 비우고 서쪽으로 퇴각할 셈이었다. 마침 오늘 밤은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다. 시야가 어두우니 그나마 퇴각하기는 쉬울 것이다.
“장평관을 내주는 건 참으로 아쉽군. 그러나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서황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마초의 대패 소식이 들어왔을 때는 서황도 귀를 의심했다. 싸움이라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하던 자신을 간단히 사로잡은 마초다. 상산 전투에서 2500 기병을 휘몰아 2만 흑산적을 궤멸시킨 영웅이기도 하다. 서황이 직접 본 마초의 무용과 지휘 능력은 이미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수준이었다.
“여포가 그렇게까지 강하다는 말인가.”
천하제일로 거론되는 자와 진짜 천하제일인 사이에 그렇게나 큰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서황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군문에 든 자에게 패배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조조나 원소도 대패한 적이 있다. 한 번 졌다고 마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마초의 나이가 스무 살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행여 마음에 큰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비장군은 30년이나 되는 긴 꿈을 꿔서 사실 중년이나 다름없다고 말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패배의 상처가 가볍지는 않을 터. 군사들이 많이 상했을 테니 패배의 기억을 씻어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황도 마초의 꿈 이야기를 반쯤은 믿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마초가 그만큼 노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황은 마초가 걱정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서황은 양고기 조각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퇴각을 지휘해야 했다. 병사들에게 가장 어려운 명령은 돌격이 아니라 퇴각이다. 적군 몰래 퇴각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임무였다.
다행히 힘든 싸움을 거치면서 군관들과 병사들도 서황에 대한 신뢰가 생긴 후였다. 늦은 밤중에 일어나서도 서황의 지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퇴각을 준비했다. 서량 방면으로 난 서문을 열고 병사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황 자신은 퇴각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나갈 계획이었다. 혹시라도 일이 틀어져서 곽사군이 동문으로 야습이라도 해 오면 그것도 방비해야 했다.
그러나 일은 동문이 아닌 서문에서 터졌다.
“별부사마, 퇴각하는 아군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전령은 곧 숨이 넘어갈 듯했다.
“습격? 서문은 서량 방면으로 나 있지 않느냐? 대체 곽사군도 아니고 누가 습격한다는 말이냐?”
“함진영입니다!”
함진영(陷陳營)은 적의 진영을 함락시킨다는 뜻이다. 여포 휘하의 최정예 기병대였다. 이 시대에 칼로 밥을 먹는 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여포가 별동대를 보내서 장평관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알았다.”
서황은 짧게 대답하고는 수하의 군관들을 불러 모아 지시를 내렸다.
“소란이 동문으로 전해지지 않게 하라. 마지막까지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휘하라. 계획에 없는 길로 탈출로를 바꾸더라도 함진영이 있는 방향은 피해라. 일단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별부사마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군관 하나가 묻자 서황은 대부를 집어 들고 말에 올라타서 대답했다.
“나는 그동안 함진영을 막겠다.”
서황은 함진영이 나타났다는 서문 밖으로 말을 달렸다.
검은 갑옷을 맞춰 입은 기병대가 퇴각하는 병사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좋은 무장을 갖춘 부대였다. 하나같이 좋은 쇠를 아낌없이 부어 만든 번쩍이는 창을 들고 장검을 차고 있었다. 심지어 말에까지 갑옷을 입혀 놓았다. 여포가 자랑하는 함진영이었다.
퍽!
서황은 아무 말 없이 대부를 들고 눈에 보이는 기병들을 찍어 나갔다.
서황이 지금 타고 있는 말은 서역의 준마였다. 원래 마초가 마등에게 전투용으로 빌려 타던 바로 그 말이었다. 마초가 절영을 얻은 후, 이 말은 서황의 차지가 되었다. 원래 남들보다 크고 무거운 체격으로 평범한 말을 타면 가진 무예를 다 발휘할 수 없던 그였다. 자신을 태우고도 가볍게 움직이는 준마에 오르자 적진을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서황은 눈앞에 있는 함진영 기병을 향해 대부를 크게 내리쳤다.
콰직!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철갑을 두른 기병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함진영은 투구와 갑옷을 잘 갖춘 것은 물론 말에까지 마갑을 입혀 놓은 철기병이었지만 관중 최고의 무사가 묵직한 도끼날로 내려치는 것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여포가 자랑하는 함진영 기병들이 서황의 도끼날 앞에 속절없이 스러져 나갔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장수가 이윽고 앞으로 나섰다.
“모두 물러나라. 너희들이 당해 낼 상대가 아니다.”
장수는 왼손에 큼지막한 방패를 들고 칼을 뽑아 들었다. 투구, 갑옷, 전포까지 새까만 갑옷으로 맞춰 입고 흑마를 탄 장수였다. 강철로 된 방패도 검은색이었고 야습에서 빛이 반사되는 걸 막기 위함인지 칼날까지 검게 태워 놓고 있었다.
장수는 서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평관을 수비하는 게 하동의 서황이라고 들었다. 네가 서황인가?”
서황은 고개를 돌려 장수를 마주 보았다. 어두운 밤에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칼날까지 검은색이니 그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귀하는 함진영의 대장 고순이겠군.”
“그렇다. 투장을 청한다, 서황. 병사들을 상하게 하지 말고 둘이서 승부를 내자.”
“바라던 바다.”
서황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바로 서역의 준마를 달려서 고순에게 뛰어 들어갔다.
‘고순이라면 여포 휘하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맹장이다. 지금 고순을 벤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전과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었다. 서황은 대부를 힘 있게 틀어쥐었다. 나관중이 만들어 준 자루가 긴 도끼는 마치 원래부터 쓰던 것처럼 서황의 손에 착 붙었다. 오른쪽 상단으로 크게 치켜든 대부가 대각선으로 떨어졌다.
깡!
고순은 방패를 비스듬하게 기울여 대부의 공격을 흘려내면서 막았다. 도끼날과 방패가 부딪쳐 불꽃이 튀면서 잠시 시야가 생겼다. 무표정한 얼굴의 고순은 왼손의 방패로 서황의 일격을 막은 후, 오른손의 칼을 움직여 서황의 빈틈을 찔러 왔다.
“큭…….”
서황은 한 합을 겨룬 후 뒤로 물러났다. 고순의 칼날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피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순의 모습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가 갸우뚱하는 게 느껴졌다. 치명상을 피한 게 놀라운 모양이었다.
“얕게 들어갔나? 하동의 서황이 마초에게 패했다기에 별거 아닌 줄 알았더니 제법이로군.”
서황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한번 고순에게 말을 달려 들어갔다. 무기의 길이는 자신이 더 길다. 이번에는 대부의 날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의 원거리에서 휘둘렀다. 반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깡! 깡!
연달아 두 번의 파열음이 울렸다. 고순은 다시 한번 방패로 대부의 날을 막아내면서 검으로 대부의 자루를 후려쳤다. 서황의 무거운 대부가 크게 밖으로 벗어났다. 고순은 그대로 말을 몰아 서로 병장기를 휘두르기 어려운 근접 거리까지 짓쳐 들어왔다. 서황이 급히 대부를 회수하려 했지만 고순이 방패의 가장자리로 서황을 후려치는 게 더 빨랐다.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말을 탄 두 장수가 다시 한번 떨어졌다. 고순의 방패 일격을 받아낸 서황의 오른팔은 마비된 듯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갑옷을 벗고 살펴보면 꺼멓게 피멍이 들고 피가 배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이 팔로는 대부를 휘두르는 것도 무리다.
‘이 고순이라는 자도 대단한 고수다. 게다가 어두워서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군. 이 상태로 싸움을 계속 끄는 것은 무리다.’
서황은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대부를 옮겨 잡고 고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고순은 방패와 칼을 절묘하게 놀리며 서황을 압박해 왔지만, 서황은 정면충돌을 피하고 대부를 짧게 잡고 칼을 쳐내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은 천천히 죽어갈 뿐이다. 전력으로 덤벼라.”
고순은 입으로는 도발을 했지만, 행동은 여전히 신중했다. 칼과 방패를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놀려서 서황을 압박했다. 그렇게 20여 합을 버티자 서황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쌓여 갔다. 서황이 서서히 패배해 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서황은 그렇게 고순의 공격을 힘겹게 버티며 계속 병사들 쪽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한바탕 난리를 치는 사이에 병사들은 장평관을 버리고 퇴각하고 있었다.
서황과 어울려 투장을 하던 고순도 이내 서황의 의도를 눈치챘다.
“설마, 병사들이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나?”
깡!
방패와 대부가 부딪히고 불꽃이 튀었다. 불꽃으로 다시 한번 드러난 고순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서황은 서역의 준마를 몰아서 고순과 병사들 사이에 섰다.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흘리고 있었고 방패에 맞은 오른손은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표정에는 당혹감이 없었다.
“이제 병사들이 거의 다 퇴각한 것 같군.”
서황이 왼손의 대부를 고쳐 잡았다. 이제까지는 짧게 잡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왼손으로 대부의 자루 끄트머리를 잡고 한껏 길게 들었다. 서황은 그렇게 왼손으로 쥔 대부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오른손 팔뚝으로 자루 중간을 받쳤다.
“그러니 소원대로 전력으로 덤벼 주마, 고순.”
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달이 다시 나타났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달빛이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야가 밝아졌다.
서황은 그제야 고순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였다. 검은 갑옷과 투구, 검은 말, 칼과 방패의 선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새 주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서역의 준마가 달려 나갔다. 준마는 마지막 일격이라는 걸 직감한 듯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렸다. 서황의 시야에 들어오는 고순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아졌다.
서황은 정확히 2장 밖에서 말을 멈추면서 길게 잡은 대부를 휘둘렀다. 오른손으로 대부를 쥘 수는 없었지만, 대신 힘차게 밀었다. 말이 순간적으로 멈추면서 말과 사람이 달려오던 무게가 대부의 날 끝에 실렸다. 그런 대부를 붙들고 있는 왼손이 곧 터질 듯이 붉게 변하고 왼팔뚝에는 어지럽게 힘줄이 솟았다.
“흡!”
고순은 도끼날이 떨어지는 걸 보며 황급히 방패를 치켜들며 몸을 틀었다. 달빛 탓인지 서황의 이번 일격은 정확했다. 자신의 몸 중심선을 노리고 떨어졌으니 반격할 여유가 없었다.
깡!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고순이 황급히 뒤로 몸을 피했다.
서황의 공격을 막은 방패의 귀퉁이가 쪼개져 나갔다. 방패를 들었던 왼팔은 부러진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죽기로 싸워 생사를 가름하고 싶으나.”
서황은 그렇게 말하며 말을 달려오던 탄력을 죽이기 위해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내가 사정이 있으니 오늘은 더 이상 겨루기 어렵겠군. 이 정도면 투장을 청한 상대에게 예우는 충분히 됐겠지. 다음에 다시 겨루자, 고순.”
서황은 병사들이 다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 이내 자신도 몸을 돌렸다. 서역의 준마는 순식간에 고순과 함진영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서황이 멀어지자 고순은 낮게 중얼거렸다.
“하동의 서황, 마초에게 패했다기에 관중 최고라는 이름이 허명인 줄 알았더니 진짜였군. 설마 이렇게 승부를 가리지 못할 줄이야.”
고순은 함진영을 휘몰아 장평관으로 달렸다. 서황과 마가군이 빠져나간 장평관을 얼른 점령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장평관에는 이미 곽사군의 깃발이 올라와 있었다. 서황의 부대가 빠져나가자 그새 빈틈을 노려 장평관을 점령한 것이다.
함진영이 처음 맛보는 임무 실패였다.
“완전히 한 방 먹었군.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이길 것이다, 서황.”
고순의 눈이 전의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