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비장신위
마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귀에 들리는 발굽 소리로 방덕이 어느 거리까지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이다!’
마초는 창을 비껴들고 절영을 몰아서 여포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여포도 무인도를 틀어쥐고 마초를 향해 적토마를 몰았다.
두 사람이 교차하려고 할 때, 마초는 별안간 옆으로 말을 몰아서 여포를 피했다.
“뭐지?”
말의 속도를 살려서 달려 들어가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거리, 창칼을 휘둘러서 상대를 공격하기에는 지나치게 긴 거리에서 두 사람이 대치했다. 그때였다.
쇄애애액!
방덕이 쏜 화살이 날았다. 통상의 화살보다 더 크고 빠르고 강한, 그리고 정확한 화살이었다.
깡!
여포는 무인도를 들어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막지 않았다면 목 아래를 정확히 꿰뚫었을 궤도로 날아온 화살이었다.
마초는 여포가 화살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절영을 몰아 여포에게 육박해 들어갔다. 여포가 화살을 막은 순간, 마초가 내지른 창이 여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콰직!
여포는 무인도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겨드랑이에 창을 끼웠다. 한 번 힘을 주자 창대가 부러져 나갔다. 긴 창은 마초의 손에 들려 있을 때는 신기와 같은 움직임으로 무인도를 받아냈지만, 여포의 품속에 들어오니 그저 나무로 만든 창대에 불과했다.
오른팔로는 무인도를 들어 방덕이 쏜 화살을 막고, 왼팔로는 마초가 내지른 창을 부쉈다. 여포는 그렇게 양팔이 묶였다.
하지만 마초는 아직 창을 들지 않은 한팔이 자유로웠다.
마초의 왼손에는 어느새 5척 장도가 들려 있었다. 장도의 손잡이는 마초의 품 안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칼끝은 마초가 손잡이를 조작하는 대로 크게 상하로 한 바퀴 돌았다. 위로 솟은 장도가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오늘 여포의 칼을 계속 부드럽게 받아내던 마초다. 그러나 이번 일격은 여포를 두 쪽 내겠다는 듯 강하고 맹렬했다. 창을 찔러서 상대의 방어를 열고 장도로 치명타를 입히는 기술, 서황과의 싸움에서 썼던 절초였다.
서걱.
칼끝에 뭔가 닿았다. 그러나 깊게 베이지는 않은 듯했다. 여포는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들었다.
퍽!
여포의 왼손에서 피가 튀었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왼손으로 잡아낸 것이다.
“대단하구나.”
여포의 얼굴은 한쪽 눈썹에서 턱까지 세로로 길게 베여서 피가 흘렀다.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낸 왼손도 피투성이가 돼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천하제일을 운운하길래 보나 마나 시시한 놈들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보니 싸움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놈들이군.”
여포는 마초와 방덕의 협공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흥, 설마 서량 출신이 싸움 못 할까 걱정했었나?”
마초는 겉으로는 기세 좋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초조했다.
‘영명과의 협공이라면 반드시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포, 이자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방덕과는 눈을 감고도 같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맞는다. 그러니 마초와 방덕이 같이 싸우면 단순히 두 사람의 무위가 더해지는 것 이상의 상승효과가 일어난다.
방덕의 활 솜씨는 신궁의 경지다. 방덕이 활로 견제하는 동안 자신이 창칼로 밀어붙이면 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해도 방덕의 두 번째 화살이 날아드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마초의 계산은 그랬다. 그러나 여포는 자신의 칼을 한 끗 차이로 피해내고 방덕이 날리는 두 번째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냈다. 그렇게 계산이 틀어졌다.
여포는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서량, 그래. 너희들도 변방 사람이니 싸움을 알고 있구나. 중원 놈들과는 다르군.”
마초는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도 중원 사람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반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중원에 얼마나 강자가 많은지도 잘 알고 있었다.
‘허저가 예주 출신이던가. 장비와 조운은 하북 출신이고.’
마초는 지난 생에 만났던 절정고수들을 떠올렸다. 여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중원 놈들은 싸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의니, 협이니 하면서 이상한 명분을 붙여서 싸움을 시시한 놀이로 만들려고 하지. 싸움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이기지 못하면 내일이 없는 변방의 사람들뿐이다. 마치 네놈들처럼.”
여포는 2대 1의 비열한 방법으로 자신을 잡으려고 한 마초와 방덕을 순수하게 칭찬했다.
“천하제일인이 칭찬해 주시니 황송하구만.”
어느새 근처에 다가온 군졸 하나가 마초를 향해 새 창을 던졌다. 마초는 또 하나의 창을 받아들고는 여포의 주위를 빙글 돌았다. 먼발치에서 방덕도 위치를 다시 잡는 게 보였다. 방덕은 여포의 좌측에, 마초는 정면에 위치했다.
‘여포, 과연 대단한 강자다. 그러나 2대 1이니 우리가 지지는 않을 것이다. 될 때까지 밀어붙인다.’
“우리가 싸움을 잘하는 게 그렇게 기쁘면 상으로 목이라도 내놓고 가라!”
마초는 그렇게 외치며 창을 다시 비껴 잡고 여포를 향해 달렸다. 여포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머리에 장식한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은 마치 웃는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래, 상을 주마.”
여포는 낮게 읊조리며 마초를 향해 말을 몰았다. 무인도는 왼손에 든 채였다.
두 사람이 충돌하기 직전, 여포의 좌측에서 방덕이 화살을 날렸다. 여포는 왼손에 든 무인도를 크게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뒤이어 마초가 찔러 오는 창끝이 여포를 덮쳤다.
여포의 칼보다 마초의 창끝이 여포의 몸에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 순간, 여포의 왼팔에 힘줄이 솟으며 무인도가 가속했다.
무인도는 공간을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마초의 창끝보다 훨씬 빠르게 날았다. 마초가 내지른 창끝이 여포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무인도가 창대를 후려치며 폭음이 일었다.
쾅!
창은 그대로 터져나갔다. 마초의 손에는 짤막한 창대만이 남고 창을 쥔 두 손은 찢어져서 피가 튀었다. 여포는 그대로 비어 있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마초의 옆구리에 주먹이 꽂혔다.
퍽!
마초의 몸이 순간적으로 말안장에서 붕 떴다. 아직 아픔이 머리까지 전달되지도 않았지만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초는 칼을 뽑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절영을 몰아 서너 발짝 물러섰다. 이윽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크윽…….”
상대는 갑주를 입은 상대를 주먹으로 후려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했다. 그러나 여포의 오른손은 멀쩡해 보였다.
마초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수습해서 간신히 장도를 뽑아 들었다. 적토마를 탄 여포가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냐, 오너라.”
머리가 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들면서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강한 상대와 생사를 걸고 싸울 때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었다.
‘동관에서 허저와, 한중에서 서황과,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인가.’
지금의 자신은 그때보다 더욱 강하다. 그러나 지금 싸우는 상대는 그 이상으로 강하다. 마초는 여포가 치켜든 무인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칼을 휘두르는 손목을 노릴 참이었다.
무인도가 공중에서 낙하하는 찰나, 마초는 정확하게 여포의 왼손 손목을 향해 장도를 발출했다. 정확한 박자였다. 한 치의 차이로 마초의 칼이 더 먼저 닿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여포의 칼이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저 무거운 칼을 내려치면서 중간에 멈춘다고?’
말도 안 되는 손목 힘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초는 온 힘을 다해서 장도를 회수했다. 여포의 무인도는 다시 마초를 향해 내리쳐졌다. 칼날과 칼날이 부딪혔다.
쾅!
다시 한번 폭음이 일었다. 무인도와 충돌한 5척 장도는 그대로 터져나갔다. 부러져 나간 칼끝이 핑그르 돌면서 마초의 가슴께에 박혔다.
절영이 순간적으로 몸을 빼지 않았으면 장도 대신 마초 자신의 몸이 터져나갔을 것이다.
마초는 간신히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텼다. 가슴에는 부러진 칼날이 상당히 깊게 박혀 있었다. 천행으로 급소를 피했을 뿐, 운이 없었으면 즉사했을 만한 상황이었다. 주먹에 맞은 갈비뼈는 부러졌는지 절영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격통이 몰려왔다.
졌다.
저 사내는 이길 수 없다. 마초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저놈과 같이 찌르고 같이 죽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인도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변할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다고 동귀어진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도주뿐이다. 마초는 말머리를 돌렸다.
절영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 전속력을 내며 여포의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고 절영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이다. 순식간에 보통의 무장이라면 따라갈 엄두도 못 낼 만큼 멀어졌다.
그러나 여포는 적토마를 타고 있었다. 그대로 적토마를 달려서 절영을 타고 도망치는 마초의 뒤를 쫓았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큭… 따라잡히면 죽겠군.”
마초는 등 뒤의 여포를 확인했다. 여포는 말을 달려서 자신을 쫓고 있는 지금도 무표정했다. 마초가 죽음을 각오하고 말머리를 돌릴지 고민하는 사이, 별안간 여포가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
타닥!
적토마는 균형을 잡기 위해 땅을 미끄러지며 잠시 속도를 늦췄다. 방덕이 화살을 날린 것이다.
여포가 화살을 피하기 위해 잠시 속도를 늦춘 동안 마초와 절영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여포는 멀찌감치 서서 자신을 방해한 방덕을 쳐다보았다. 100장이 넘게 떨어져 있었지만, 눈이 좋은 그에게는 방덕의 일거수일투족이 똑똑히 보였다.
“할 수 없군.”
여포는 제자리에 멈췄다.
마초를 포기하고 방덕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무인도를 집어넣고 적토마의 잔등에서 각궁을 꺼내 들었다. 보통 무사들의 각궁보다 두 배나 큰 대궁이었다. 각궁에 거는 화살은 단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고 길었다.
여포가 화살을 걸어 방덕을 겨냥했을 때, 방덕은 먼저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여포는 방덕의 손이 시위를 놓기 직전, 적토마의 배를 발로 차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쇄애액!
적토마가 정확한 시점에 움직이자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여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여포도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방덕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의 꼬리는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요동쳤지만 묵직한 화살촉은 궤도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방덕은 급히 몸을 틀었다.
퍽!
화살은 방덕이 탄 말의 목을 그대로 꿰뚫고 방덕의 옆구리를 길게 찢어내면서 지나갔다. 몸을 틀지 않았으면 그대로 말과 사람이 함께 즉사했을 것이다. 방덕이 낙마해서 땅바닥을 굴렀다. 수하의 군졸들이 급히 달려와서 방패로 시야를 가리고는 부상을 당한 방덕을 들쳐업었다.
여포는 활을 내리고 병사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수신호를 받은 부장 조성이 외쳤다.
“돌격, 돌격이다! 서량병들을 살려두지 마라!”
병주병들은 그대로 마가군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마가군 병사들은 그대로 그 대열에 휩쓸렸다. 칼에 맞은 마초와 화살에 맞은 방덕은 더 이상 군사들을 지휘하지 못했다.
마가군 중군은 여포가 이끄는 병주병들의 돌격에 그대로 꺾이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중군이 무너지니 그때까지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마휴의 우익도 결국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월길의 좌익은 이미 여포의 부장 성렴에게 큰 피해를 입은 후였다.
가슴에 칼날이 박힌 마초는 간신히 몸을 빼서 퇴각하는 게 고작이었다. 칼날을 함부로 빼다가 잘못되면 즉사하는 부위였다. 그러니 의원에게 치료받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총대장과 부대장이 동시에 후송되면 병사들로서도 방법이 없다. 마초가 이끄는 서량병들은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병주병들은 일제히 돌격해서 퇴각하는 서량병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여포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