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56화 (56/306)

56화. 마초 대 여포

“이게 무슨…….”

여포가 나타났다는 중군을 향해 달리는 동안 마초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전장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용기, 고통과 투지, 절망과 환희가 뒤엉켜서 무장들에게 기묘한 감각을 전달한다.

그러나 마초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감각은 그가 30년간의 전장 경험으로 알고 있는 감각과는 사뭇 달랐다.

절영을 탄 채 의문을 안고 달려서 중군이 있는 자리에 도달했을 때, 마초는 위화감의 원인을 깨달았다.

용기 없는 공포.

투지 없는 고통.

환희 없는 절망.

마가군 병사들도, 장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서량의 용장과 강병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는 공포와 고통과 절망 외에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를 딛고 거대한 말 위에 올라탄 사내였다. 말의 털빛은 피처럼 붉고, 머리에 쓴 관에 장식한 두 가닥 깃털도 아름답게 붉었다.

영준한 외모의 30대 남자. 8척 장신에 갑옷 위로도 느껴지는 근육질의 체구. 피처럼 붉은 말과 오른손에 쥔 거대한 칼.

‘익히 알려진 여포의 모습 그대로군.’

여포가 이끌고 있는 부대는 보병이 주력이었다. 기병 비율은 오히려 마가군 중군이 더 높았다. 그러나 분명히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은 여포군이었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마가군 기병대가 여포군 보병을 향해 돌격했다. 긴 창을 쓰는 서량 최강의 병사들이었다. 보병대를 이끄는 여포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단기필마로 마가군 기병대에 뛰어들었다.

맹장이 무서운 건 갑주가 부실하고 체격이 작은 징집병들 사이에 뛰어들어 말 위에서 장병기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만약 최정예 돌격기병이 상대라면 어떤 맹장이라도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여포는 서량병들의 창에 꿰어 죽거나, 만약 살아남는다면 서량병을 상대하는 사이 마초와 방덕의 협공에 당할 것이다.

먼발치에서 달려가며 그 모습을 보던 마초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두에 선 서량병 한 기가 여포에게 창을 내지른 순간, 마초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예상과는 달랐다.

척.

여포는 6척 길이의 대도를 들어 서량병의 창대에 갖다 댔다. 척 하고 가볍게 갖다 댄 듯한 대도는 그대로 창대를 절반이나 파고 들어가서 박혔다. 여포가 대도를 들어 올리자 창대는 서량병의 손을 떠나서 여포의 손에 들어갔다.

“이놈!”

서량병은 주눅 들지 않고 그대로 칼을 뽑아 여포를 베려 했다. 그러나 여포가 빼앗은 창을 휘둘러 서량병의 말머리를 가격하는 것이 더 빨랐다.

쾅!

여포가 휘두른 창에 맞은 말머리가 폭음과 함께 그대로 터져나갔다. 사람의 몸통만큼 큰 말머리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과일마냥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목만 남은 말은 기묘한 동작으로 사람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여포의 손에 있던 창도 산산이 부서져서 짤막한 자루만 남아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여포는 뒤이어 달려오는 서량병들을 향해 오른손에 든 대도를 들어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쾅!

다시 한번 폭음이 터졌다. 서량병 셋의 몸통과 말머리 세 개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세 사람과 세 마리 말이 칼에 맞았지만 아무도 베이지 않았다. 그저 터져나갔을 뿐이었다.

여포는 거대한 칼을 쓴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름은 무인도(無刃刀), 날이 없는 칼이라는 뜻이었다.

여포가 휘두르는 무인도의 위력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제야 여포가 어째서 날이 없는 칼을 쓰는지 깨달았다.

날을 세운 채로 저런 참격을 날리면 칼이 깨져나갈 것이다. 여포의 힘을 받아낼 수 있는 칼날은 세상에 없다. 그러니 날을 세우지 않고 두터운 쇠뭉치 같은 칼을 쓰는 것이다.

“온후(여포의 작위)의 뒤를 따라라!”

“달려들어라!”

여포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진 마가군 기병들에게 여포가 이끄는 병주 보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기병은 달려야 기병이다. 그러나 지금 마가군 기병들은 여포가 진을 휘젓는 바람에 대열을 다시 짜고 있었다. 병주병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푹.

“으아악!”

기병 한 기를 보병 대여섯 명이 빈틈없이 둘러싸고 창을 찌르자 기병들도 이내 하나둘씩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여포는 그대로 말을 달려 마가군 보병대로 뛰어 들어갔다. 피처럼 붉은 털을 가진 적토마는 보통 말의 두 배가 넘을 만큼 거대했다.

콰드드득!

“으아아악!”

제1열의 보병들이 적토마의 발굽에 깔리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제2열의 보병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포가 휘두르는 무인도였다. 무인도가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폭음 소리와 함께 사람의 팔다리가 찢겨져 하늘을 날았다.

마초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맹장들이 즐비한 서량에서도 한 사람의 무장 때문에 대패한 적은 없다. 여포가 이 정도였던가?’

마가군은 천하에 짝을 찾기 힘든 정예병이다. 그러나 여포가 전장을 몇 번 휘젓자 마가군 보병대의 대열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서량에서만 이십 년을 종군한 노병들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무위였다. 그 사이 병주병들은 어느새 마가군 기병대를 제압하고 마가군 보병대로 뛰어들고 있었다.

일이 그쯤 되자 여포는 전장 한켠으로 빠져나왔다. 안장에 매달고 있던 가죽 부대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마유주였다.

여유롭게 마유주를 마시던 여포의 눈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한 기가 들어왔다. 거대한 흑갈색 말을 탄 젊은 무장이었다.

“저놈이 마초인가.”

여포가 중얼거리는 동안 마초는 핏발이 선 눈으로 여포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손으로는 긴 창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절영이 내달리는 속도를 실어서 내찌를 생각이었다.

절영을 탄 마초가 코앞까지 육박했지만 적토마를 탄 여포는 여전히 마유주를 마시며 가만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1장으로 좁혀진 순간, 마초는 아무 말 없이 오른손에 쥔 창을 길게 내질렀다. 여포의 칼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목표는 여포가 아니라 적토마였다.

‘여포만큼 골치 아픈 게 적토마다. 아무리 개인의 무용이 뛰어나도 명마가 없으면 그저 개인일 뿐, 혼자 전투의 승패를 바꾸기는 어렵다.’

마초 자신이 절영을 타 보고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맹장은 수십 명의 적을 베어 넘길 뿐이다. 그러나 명마를 탄 맹장은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 종횡무진하며 적진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러니 적토마를 먼저 노릴 셈이었다. 마초의 창이 날았다.

휘이잉!

그러나 마초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적토마는 마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이 알아서 옆으로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겨서 공격을 피했다.

“크윽!”

창으로 허공을 크게 헛 찌른 마초가 휘청이며 여포와 교차했다. 여포는 마초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여전히 마유주만 마시고 있었다.

여포는 마유주를 다 비우고 나서야 가죽 부대를 옆으로 던지고 마초를 응시했다.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다는 걸 말해 주듯이 머리에 쓴 봉시관에 달린 산새의 깃털 두 가닥이 움찔거렸다.

“생각보다 더 어린놈이군.”

마초는 여포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다 당했지. 드디어 만났구나, 여포.”

여포와 적토마가 가진 무위가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직접 보니 마초의 예상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첫 창을 적토마가 너무나도 쉽게 피했을 때는 마초도 당황했다.

그러나 마초에게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네놈이 가진 천하제일의 이름도 오늘로 끝이다.”

“천하제일?”

여포의 표정이 따로 변한 건 아니다. 그러나 마초는 왠지 모르게 그가 비웃음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얘기나 늘어놓는 걸 보니 시시한 놈이군.”

이번에는 여포가 선수를 취했다. 무인도를 머리 위로 쳐들고 적토마를 몰아 육박해 들어왔다.

마초는 여포가 휘두르는 거대한 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온몸에 피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 무인도가 낙하하기 시작할 때, 그 큼직한 옆면을 마초의 창대가 후려쳤다.

퍽!

창대로 옆면을 맞은 무인도의 궤도가 빗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절영은 마초의 마음을 아는 듯이 맞는 순간 힘차게 땅을 구르며 창대에 같이 힘을 전달했다. 여포가 탄 적토마는 발굽으로 땅을 긁으며 쭉 밀려나지 않고 버텼다.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여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의 얼굴에서 당혹감이나 분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작 한 수를 받아냈다고 놀라나? 이제부터다.”

마초는 기세 좋게 여포를 향해 뛰어들었다. 창으로 강력한 일격을 찔러 갈 참이었다.

그러나 여포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순간, 여포가 발하는 살기가 짓누르듯이 마초를 덮쳤다.

“큭!”

마초는 찌르려던 창을 거두고 급히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뉘었다. 여포의 무인도는 방금 전까지 마초의 몸통이 있던 자리를 횡으로 크게 베고 지나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부웅!

몸을 누인 마초의 눈앞에서 무인도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풍압이 마초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바람 때문에 실핏줄이 터졌는지 눈이 뜨거워졌다.

마초는 절영의 잔등 위에 누운 채로 그대로 왼손에 쥔 창을 옆으로 뻗어서 여포가 있을 만한 자리를 찔렀다.

깡!

보지도 않고 내지른 창은 여포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갔다. 하지만 맑은 쇳소리와 함께 가로막혔다. 여포가 쥔 무인도의 거대한 칼날이 그대로 방패가 됐다. 병사들이 들고 옮기기도 힘겨워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칼이었지만 여포는 무인도를 들고 한 손으로 말채찍처럼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무장과 두 마리 명마가 뒤얽히며 순식간에 몇 수가 교차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양쪽 병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여포가 휘두르는 무인도의 위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마초는 노련한 무장처럼 창으로 무인도의 옆을 쳐서 힘을 죽이고, 공격의 궤도를 예측해서 피하면서 여포에게 계속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렇게 겉보기에는 아주 잘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은 마초도 곤경에 처해 있었다.

‘엄청난 놈이구나.’

마초는 거친 서량에서도 가장 거칠다고 알려진 자였다. 지난 생에서도 내로라하는 맹장들과 숱하게 겨뤘다. 회귀한 다음에는 달인의 기술을 가진 채 젊은 육체를 얻었으니 더욱 강해졌다. 말 위에서는 더욱 강해지는 마초가 명마 절영까지 얻었다. 그러니 천하를 다 뒤져도 지금의 마초와 대적할 만한 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직접 창칼을 맞대 보니 여포의 무위는 그런 마초보다도 더 위에 있었다.

‘큰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포, 천하제일이란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마초는 창을 크게 찔러서 여포를 물러나게 하고는 자신도 3장 밖으로 물러났다. 숨을 고르는 마초를 보고 여포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데 벌써 지쳤나?”

“재미?”

마초는 헛웃음이 나왔다.

“허세 부리지 마라, 여포. 네가 강한 건 알겠지만, 너 또한 나 정도의 상대와 싸운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 싸움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죽이자니 조금 아깝군.”

“으하하하!”

마초는 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과연 천하제일인다운 배포로구나.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서 싸움의 재미니, 승리의 쾌감이니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원래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다. 여포와의 싸움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일각 가까이 지났으니 슬슬 방덕이 도착할 때가 됐다.

“나와의 싸움이 재미있나? 그래, 너는 싸움을 마음껏 즐겨라.”

두두두.

뒤쪽에서 희미하게 발굽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방덕이 달려오는 소리다.

마초는 여포를 보면서 악당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여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비열하게 이겨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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