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55화 (55/306)

55화. 다가오는 비장(飛將)

“형님이 휘두르는 정의의 칼날, 이번 싸움에서도 기대하겠습니다!”

“전쟁터에서는 비장군이라고 부르라고 몇 번을 말했냐?”

“아, 예, 비장군. 정의의 칼날은 제가 온 정성을 들여서 날카롭게 갈아 놓았습니다!”

마초는 당번병 마대에게 장도를 받아서 칼날을 살펴보았다. 날의 상태를 보니 과연 제대로 손질한 것 같았다.

“좋아. 맹획, 절영의 발굽 손질은 제대로 했겠지?”

“흥, 이대로 천릿길을 달릴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손질했다. 아니, 손질했습니다.”

“음, 좋아. 평상시에는 네 멋대로 말해도 좋지만, 전쟁터에서는 말버릇에 유의하라고. 역시 마대보다는 네가 아주 조금 낫군.”

“따…딱히 비장군에게 칭찬받으려고 존대를 하는 건……!”

마초가 맹획을 칭찬하자 맹획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마대는 맹획과 비교당하자 입이 댓 발이나 나왔지만, 마초는 그런 사촌 아우를 무시하고 맹획을 보며 말했다.

“누가 칭찬이래? 병사들에게는 당연한 거야. 전쟁터에서 상관에게 함부로 말하다가 걸리면 태형감이니까 조심해라. 서량병은 태형도 독해서 몇 대 맞으면 잘 낫지도 않아.”

마초가 한참 두 당번병을 놀리고 있을 무렵 전령의 보고가 들어왔다.

“여포군과의 거리가 십 리 안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대형을 짜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좋아. 아군도 전투대형으로 바꾼다.”

마초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지시했다.

거리가 십 리도 되지 않는다면 보병의 행군 속도로는 약 반 시진(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전에 서로의 군세가 육안으로 확인될 테니 전투 개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가군 병사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있었다. 장평관을 손쉽게 떨어뜨리고 얼마 후에는 마초가 명장 서영을 벴다. 이제는 미오성 공략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병사들도 짐작하고 있었다. 저 미오성을 떨어뜨리면 장평관을 총력으로 막으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마가군에 승산이 있었다.

‘그러니 군사들의 분위기가 밝을 수밖에 없지. 내 경험상 병사들은 너무 진지한 것보다는 여유가 있을 때 더 잘 싸운다.’

너무 진지하면 전황이 나빠졌을 때 공포에 짓눌리기 쉽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전황이 조금 나빠져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군은 5천, 적군은 3천. 그러나 적군의 대장은 그 유명한 여포다. 아마도 그와 그가 이끄는 직속 부대의 무용에 의해 어느 정도의 변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포를 잡는 게 중요하다.”

아군의 좌익에는 월길이 이끄는 강족 기병대가, 우익에는 마휴가 이끄는 보병대가 배치되어 있다. 강족 기병들은 활을 쏘고 재빠르게 도망가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러니 적은 좌익보다는 우익을 노릴 것이다.

“그런데 이공자는 괜찮겠지요?”

나관중이 옆에서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마초는 태연했다.

“휴도 마가의 사내다. 이미 난전에서 충분히 통할 실력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휴의 옆에는 올돌골이 있잖아?”

우익에 배치된 보병들을 미끼로 적의 좌익이 달려들었을 때, 올돌골이 이끄는 남만병들이 달려들 것이다. 남만병은 실로 용맹했다. 기병이라면 말의 다리를 찍고 보병이라면 그대로 기세로 밀어붙여서 와해시켜 버릴 것이다.

만약 적이 아군 좌익의 강족 기병대로 달려든다면?

“그때는 활을 쏘고 도망가면 되지. 강족들은 그게 특기니까.”

마초는 중군을 두텁게 한 진영을 취하고 있었다. 마초 자신과 방덕이 모두 중군에 위치했다. 이번 전투의 관건은 여포다. 사기도, 병종도, 병사의 수도 마가군이 우세하다. 오로지 변수는 여포 개인, 그리고 그가 이끄는 기병대 함진영이 발휘하는 무용이었다. 그것을 통제하면 이기는 싸움이다.

그러니 여포의 위치가 확인되면 마초와 방덕, 둘이 같이 달려들어서 여포를 잡을 셈이었다. 나관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천하의 여포라고 해도 비장군과 방 교위를 동시에 상대하는 정도의 싸움은 겪어보지 못했겠지요.”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여포가 유비, 관우, 장비와 3대 1로 싸우고, 조조 휘하의 맹장들과 6대 1로 싸운 일화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삼국지연의의 창작이다.

그것을 창작한 나관중 본인은 지금 후한말에 전생해서 마초와 여포의 싸움을 목도하기 직전에 있었다.

드디어 두 부대가 관중 평야의 벌판에서 마주 섰다. 여포가 이끄는 병주병들은 먼발치에서 봐도 군기가 엄정했다. 지휘관의 호령에 따라 좌익과 우익이 같이 전진했다. 허를 찌르는 계책 없이 힘으로 승부할 모양이었다.

“정면으로 힘 싸움을 벌여 준다면 우리는 좋지. 자신감이 대단하군.”

서량과 병주의 강병들은 빈틈없이 포진을 유지한 채 침착하고 빠르게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혔다.

휘이이잉.

퍼퍼퍽!

100장 거리에 들어오자 일제히 화살이 날았다. 서로 화살을 두 차례 주고받았을 무렵, 마가군의 좌익과 여포군의 우익, 마가군의 우익과 여포군의 좌익이 충돌했다.

마초는 굳은 얼굴로 계속 전황을 지켜보았다. 오늘 자신의 역할은 여포를 잡는 것이다. 섣불리 나설 필요는 없었다.

우익 쪽에서 먼저 전령이 달려왔다.

“보고! 전황 아군에게 불리, 진영이 조금씩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익 쪽인가.”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전령에게 물었다.

“여포냐? 아니면 함진영이냐?”

“둘 다 아닙니다. 상대 장수가 분명히 여포는 아닌 것으로 확인했고, 돌입한 부대도 함진영이 아닌 보병대입니다.”

“그래?”

마초의 눈썹이 크게 치켜 올라갔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올돌골의 남만병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열심히 싸우고 있으나 상대의 기세에 밀리고 있습니다. 대단한 맹장이 있습니다.”

“대단한 맹장? 고순이라면 함진영과 함께 움직일 텐데?”

마초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포군의 이름난 맹장은 여포, 고순, 그리고 장료가 있다. 그 중 장료는 이감의 첩보를 통해 여포군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렇다면 여포와 고순이 남는데… 둘 다 아니라고?’

여포군이기 때문에 숨은 맹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올돌골을 배치한 것이다. 그라면 어지간한 맹장도 당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좌익 쪽에서도 전령이 달려왔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해서 마초의 코앞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서 땅을 미끄러지며 제 자리에 섰다.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전령의 태도가 좌익 쪽의 전황을 말해 주었다.

“보고! 좌익에…….”

“여포냐?”

“그것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장군, 적 사이에 맹장이 껴 있습니다. 원군이 오지 않으면 좌익은 궤멸됩니다!”

“양쪽에 다 맹장이라. 알았다.”

마초는 짧게 대답하고 방덕에게 말했다.

“영명, 우리는 좌익으로 가자. 아무래도 그쪽에 여포가 있는 듯하다.”

“알았다. 우익에도 어지간한 놈이 있는 모양인데, 어떻게 할 셈인가?”

“우익에는 이감과 시랑군을 보내지. 시랑군은 최정예다. 우익의 상대가 어지간한 맹장인 것 같지만 여포도, 고순도 아니라면 이감과 시랑군이 충분히 구원할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좌익의 여포를 잡는다.”

마초가 이감에게 눈짓을 하자 이감이 포권해서 군례를 취한 후 우익으로 달렸다. 마초는 절영을 몰아 좌익으로 달렸다. 서량병 중에서도 최정예로 이루어진 마가군 기병대, 그리고 방덕이 마초의 뒤를 따랐다.

마초는 좌익으로 달리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드디어 여포와 싸운다.

‘지난 생에서부터 사람들은 지긋지긋하게 나를 그와 비교했다. 그러나 내가 거병했을 때는 이미 여포가 죽은 지 오래였지. 다시 태어나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구나.’

여포가 정확히 몇 살인지는 마초도 몰랐다. 대략 15살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여포가 중원에 이름을 떨칠 때 마초는 서량에서 대기근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기 급급한 초급 장교일 뿐이었다. 마초가 서량에서 천하를 진동시킬 때는 여포가 이미 죽은 다음이었다.

그런 여포와 드디어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짧은 만남이 되겠군. 이대로 놈의 수급을 취할 것이다.’

한 번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가 다시 태어난 몸이다. 이제 와서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놓고 굳이 호승심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무용이 뛰어난 여포를 먼저 제거할 생각이었다.

혼자서는 여포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만전에 기하기 위해 방덕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방영명과 함께 싸운다면 여포가 아니라 패왕 항우를 상대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2대 1의 싸움이니 비겁하다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그런 악명에는 개의치 않을 셈이었다.

마초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방덕과 함께 좌익에 도착했다. 그런데 좌익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는 아무래도 여포 같지 않았다.

“설마 저놈이 여포는 아니겠지?”

좌익에 배치한 월길의 강족 기병대를 여포군 기병들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선두에서 여포군을 이끄는 장수는 보통 키에 마른 체구를 한 장수였다. 얼굴에는 큼지막한 화상 자국이 있었다.

“끼헤헤헤, 죽어라!”

장수는 번개같이 빠른 솜씨로 말 위에서 창을 좌우로 찔렀다. 그의 창이 가는 곳마다 군사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살육이 그리 즐거운지 혀를 길게 빼물고 경박한 웃음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피를 볼 때마다 혓바닥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마초는 방덕을 바라보았다. 방덕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

여포는 8척 장신에 영준한 외모를 한 30대 남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 자의 나이는 대략 30대 같았지만, 키도 한참 작고 외모도 영준함과는 몹시 동떨어져 있었다. 얼굴에는 큼직하게 화상 자국이 있었다.

마초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엄한 놈에게 낚인 것 같군. 빨리 해치우고 중군으로 복귀한다.”

마초는 지체없이 장수를 향해 말을 달렸다. 한 창으로 찌를 생각이었다.

혓바닥을 길게 빼문 장수는 마초가 오는 걸 보자 작은 눈을 크게 뜨고 광소를 터뜨렸다.

“끼헤헤헤, 보아하니 네가 마초구나! 어디 이 성렴 님을 따라와 보거라!”

성렴은 자신의 진영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성렴이 이끌고 온 기병들도 일제히 말머리를 돌렸다. 성렴이 탄 말도, 병주 기병들의 말도 하나같이 빨랐다.

“감히 도망치겠다? 쥐새끼 같은 놈들!”

마초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절영에 채찍질을 했다.

상대의 말이 얼마나 빠르든 절영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마초는 순식간에 도망치는 성렴의 후미에 있는 병주 기병대를 따라잡았다.

“귀찮게 하지 말고 비켜라!”

마초의 창이 가는 곳마다 병주 기병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이들은 흑산적과는 전혀 달랐다.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이 그 자리를 메웠다. 마초가 무위를 발휘해서 너덧 명을 순식간에 찌르고 베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다섯 명을 벤다면, 평범한 군사들은 그대로 50명, 100명이 겁을 먹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러나 병주병은 달랐다. 다섯 명이 베이면 그저 다섯 명이 쓰러질 뿐, 후열의 다섯 명이 그대로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다면 100명이든 200명이든 다 죽여주마! 비켜라!”

마초는 창을 크게 휘두르며 기어이 길을 열었다. 그러나 적장 성렴은 그새 멀찌감치 떨어진 후였다.

절영을 타고 쫓아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으나, 어느새 여포군 궁기병들이 나타나서 마초에게 위협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빠른 말을 타고 혼자 달려오다 보니 다른 군사들은 아직 마초를 따라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초는 결국 말머리를 돌렸다. 좌익을 교란시키던 적장 성렴이 퇴각했으니 좌익은 수습될 것이다. 그보다 지금은 빨리 중군으로 복귀해야 했다. 적장을 벴다면 좋았겠지만, 베지 못했다면 미련을 두지 말고 원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효장(驍將) 성렴인가. 예상보다 더 강한 놈이었군.”

마초의 지난 생, 원래의 역사에서는 마초 대신 여포가 원소군의 선봉을 맡아 상산 전투에서 흑산적을 격파한다. 이때 여포와 함께 활약했다고 알려진 장수가 효장 성렴과 건장 위월이었다. 마초군의 좌익에 배치된 강족 기병대도 어지간한 정예들이지만 저 성렴의 활약에 완전히 눌려 있었다. 아마도 우익을 습격해서 이감을 원군으로 보내게 만든 것은 건장 위월일 것이다.

여포의 부장들이 예상보다 강하다. 서황이나 방덕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의 활약은 가능하지만, 그들 외에는 마가군에서 이렇게 혼자서 전쟁터를 누비고 전황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인물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다시 중군으로 돌아간다!”

이제 여포가 있는 곳은 둘 중의 하나다. 적진에서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중군 쪽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마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중군에 도착하기도 전에 들어맞았다.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전령이 마초 앞에 다가와서 힘겹게 보고를 올렸다.

“비장군, 적 중군이 아군 중군에 접근하여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여포가 나타났습니다.”

“알았다.”

마초는 짧게 답하고 방덕을 돌아보았다.

“영명, 나는 이대로 여포에게 달려가겠다. 군사들이 상할 테니 나라도 먼저 가서 놈을 잡아놓고 있겠다.”

“알았다. 대신 내가 도착할 때까지 무리하지 마라.”

마초는 대답 대신 절영에 채찍질을 했다. 마초와 방덕을 비롯한 마가군 기병대는 전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절영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름에 걸맞게 그중에서도 유독 빠른 속도로 대열의 선두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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