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53화 (53/306)

53화. 마휴 대 송헌

마가군 기병대가 병주병 보병대와 충돌했을 때, 마초는 그대로 병주병들이 짠 진영 사이의 간격을 따라 말을 달렸다. 본진으로 파고들어 가려는 목적이었다. 방덕과 마휴, 그리고 수십 기만이 마초의 뒤를 따랐다.

병주병들의 저항이 거셌으나 마초가 양손에 하나씩 긴 창을 들고 휘두르자 피바람이 일어나며 길이 조금씩 넓어졌다. 몇몇 용감한 병사들이 극을 들고 말의 다리를 찍으려고 시도했으나 마초가 탄 말은 절영이었다. 절영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기막힌 각도로 칼과 도끼와 극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각 진영을 지휘하는 백부장들이 그런 마초를 막으려고 시도했으나 열심히 지휘하다 보면 뜻밖의 위협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열을 바꾼다! 갑조와 을조는 뒤로 후퇴하고 병조가… 커억!”

적절한 지휘를 통해 전황을 바꾸려는 백부장들에게는 꼭 화살이 날아들었다. 진영 속으로 돌입한 마가군 수십 기의 가운데쯤에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을 노려 맞출 수 있는 궁술의 달인이 있었다.

서량의 신궁 방덕이었다.

“저 가운데 있는 활잡이를 잡아!”

용감한 병사들이 방덕을 잡아 보겠다고 달려들었지만 방덕은 개의치 않고 활을 계속 날렸다. 그의 옆에는 긴 창의 끝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을 붙인 무기를 든 소년 장수가 있었다.

“꿈도 꾸지 마라, 이놈들! 방영명의 터럭 한 올도 건드리게 하지 않겠다!”

마휴가 방천화극을 휘둘러 방덕에게 접근하는 적병들을 베어 넘겼다. 방천화극의 월아에 베인 병주병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공자, 그새 무공이 많이 늘었군요.”

“별말씀을. 방 교위는 적병은 신경 쓰지 말고 상대 백부장을 쏘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마휴에게는 방덕이나 서황과 같은 타고난 재능은 없다. 그러나 그 또한 마등의 아들이자 제자이며, 매일같이 마초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으며 대련을 거듭해 온 동생이자 사형제였다. 마휴의 화극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어김없이 병주병들이 쓰러져 나갔다.

그러자 병주병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한 명씩 진영을 이탈하려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중절영(馬中絶影), 인중마초(人中馬超)라고 들어봤나?”

마초는 상산 전투에서 얻은 별명을 외쳤다.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서영군 병사들에게 굳이 창을 내지르지는 않았다.

‘등을 돌리고 도주하는 병사는 그 자체로 전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선전해 준다.’

이대로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면 적군의 사기를 꺾은 후 병주병 독전관의 칼에 죽음을 맞을 것이다. 마초는 그저 호쾌하게 웃으며 도망치는 병사들의 등 뒤에 대고 외쳤다.

“가서 너희 대장 여포에게 전해라. 말 중에서는 절영이 최고고, 사람 중에서는 마초가 최고라고!”

마초 일행이 그렇게 적진을 휩쓸자 단단하던 병주병들의 대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가군 기병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가군 기병대의 두번째 대열이 돌격하자 병주병 보병대가 밀리는 거리가 더 커졌다. 방패를 놓치고 바닥에 쓰러진 몇몇 병사들은 말발굽에 죽음을 맞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송헌은 애가 타서 서영을 보며 말했다.

“장군, 저놈들 수십 기가 진영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대로라면 세 번째 돌격에서는…….”

“무너지겠구나.”

서영이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가셔 있었다.

보병대 사이로 단 수십 기가 쳐들어와서 진영을 무너뜨렸다. 예상치도 못한 강맹한 돌입이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서영이지만 이런 무모한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크흐흐흐, 꼭 여포 같은 놈이구나.”

그러나 서영은 이내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번 웃음은 조금 더 광소에 가까웠다.

“여포와는 꼭 한번 창을 맞대고 싶었다. 마침 여포와 비슷한 놈이 서량에 있으니 내 오늘 저놈의 수급을 취해야겠다.”

서영은 그렇게 말하며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갔다. 진영 안으로 돌입한 수십 기의 선두에 선 장수와 투장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는 와중에서도 서영은 노련한 무장답게 송헌에게 지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송헌, 내가 선두를 상대하는 사이에 수십 기의 중간에 있는 활잡이를 잡아라. 선두에만 눈을 뺏기지 마라. 그놈이 활로 우리 쪽 백부장들을 족족 쓰러뜨리지 않았으면 결코 저놈들이 이렇게 날뛰지 못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놈이 마가군의 핵심이다.”

“존명!”

송헌은 서영에게 군례를 올리고 말을 몰아서 활잡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가 보기에도 서영의 지시는 참으로 옳았다.

그런데 활잡이를 잡으러 가는 송헌에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월아가 달린 창을 든 소년이 그를 가로막은 것이다.

“건방진 어린놈, 감히 나 송헌을 대적하려 해!”

송헌은 천하제일인 여포에게 인정받은 장수다. 객장인 서영을 선봉으로 내세우면서도 부장으로 붙일 정도로 신뢰하는 장수다.

그런 그에게 이제 17, 8세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이 달려들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송헌은 노호성을 지르며 칼을 뽑아 소년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송헌이 빼어 든 칼은 말 위에서 쓰기 편하도록 살짝 휘어진 5척 장도였다.

“마침 5척 장도인가.”

소년 장수, 마휴는 달려드는 송헌을 침착하게 응시했다.

여포의 부하 장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용맹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첫 출진에서 상대하는 적장으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마가의 사내. 이겨내리라.”

마휴는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송헌의 칼끝을 눈으로 좇았다.

5척 장도라면 그가 질리도록 상대해 본 무기였다. 아버지이자 사부인 마등의 애병이었고, 형이자 사형인 마초의 애병이기도 했다. 첫 출진에서 만난 적장이 5척 장도를 쓰는 것은 분명히 행운이었다.

쾅!

송헌이 내려친 칼끝은 무겁고 강했다. 칼이 가진 원래의 질량보다 훨씬 강한 일격이 방천화극의 창대를 후려쳤다. 마휴는 허리가 주저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큭, 그리고 여기서는…….”

상대는 칼을 돌려서 옆으로 크게 벨 것이다. 마휴는 마등과 마초에게 질리도록 당해 온 공격을 생각하며 방천화극을 세워 옆에서 날아오는 일격에 대비했다.

쾅!

다시 한번 송헌의 칼이 창대를 강하게 때렸다. 막아낸 마휴의 몸이 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재는 타고나는 것이다. 마등, 마초, 방덕 같은 절정고수가 되는 것은 타고나야만 가능했다.

‘나에게 그런 천재성은 없다.’

마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17년간 형에게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예의 신이 있다면 마휴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원망한 적이 없다.

형의 눈부신 재능. 그로 인해 매일 계속되는 좌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온몸에 묻어 버린 형에 대한 질투심.

그 모든 걸 감수하면서 매일 성실하게 노력을 쌓아 올렸다. 다루기 어려운 5척 장도는 포기하고 창술에만 매진했다. 혼자 세 시진을 수련하면 보통 두 시진은 울면서 창을 들었다.

마휴가 두 번째 공격까지 막아내자 송헌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놈이…….”

송헌은 칼을 뒤로 젖혔다가 마휴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송헌은 마휴의 등 뒤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만도를 뽑아든 짧은 턱수염의 청년, 송헌이 원래 노리려고 했던 그 활잡이였다.

“으윽…….”

송헌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활잡이의 눈빛은 마주 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벌했다. 서량이나 병주 같은 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변방 무사의 눈이었다.

그러다 보니 송헌이 발출한 찌르기는 자신도 모르는 새 조금 힘이 빠졌다. 약간 무뎌진 칼끝을 마휴가 놓치지 않았다.

깡!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송헌의 칼끝이 멎었다. 마휴가 방천화극의 월아와 창대 사이에 찔러 오는 칼날을 끼운 것이다. 마휴는 대담하게 오른손을 월아 바로 아래쪽까지 올려서 잡았다.

“힘도, 속도도 없는 자가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더 용감해야 한다!”

드득!

마휴는 송헌 쪽으로 뛰어들며 넓게 펼쳐 잡은 방천화극을 그대로 접었다. 장도의 손잡이만 잡고 있는 송헌은 무기끼리 끼워진 채 벌이는 힘 싸움에서 창대를 넓게 잡은 마휴를 당할 수 없었다. 재빠르게 장도를 놓아 버리고 다른 칼을 뽑아 들려고 했으나 마휴가 창을 찔러 오는 게 더 빨랐다.

퍽!

“큭…….”

송헌은 설마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애송이에게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가슴에 창날이 박힌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송헌은 핏발이 선 눈으로 소리쳤다.

“이놈! 내가 바로 온후의…….”

퍽!

그러나 송헌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마휴는 침착하게 창날을 뽑아낸 후 방천화극을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월아가 송헌의 목을 베고 지나가자 머리가 폭발하듯이 하늘로 날았다.

“너는 온후를 어지간히 사랑하나 보구나. 내가 무예를 사랑하는 것만큼.”

마휴는 송헌의 떨어진 목을 보며 중얼거렸다.

싸움은 끝났다. 마휴의 승리였다.

십 년이 넘게 무예라는 것을 짝사랑했다. 천재로 태어난 자신의 형 마초는 무예의 최고 경지를 자유자재로 희롱했지만, 범재로 태어난 마휴에게는 먼발치에서 무예를 슬쩍 보는 것만이 허락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휴는 무예에 대한 짝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죽도록 따라다녀야 겨우 한 번 웃음을 보여 주는 여인처럼, 무예는 십 년이 넘게 피나는 수련을 거듭한 마휴에게 겨우 한 번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마휴는 그제서야 투구 안쪽이 땀으로 푹 젖은 것을 깨달았다. 투구를 벗자 머리칼이 쏟아져 내렸다. 땀이 마치 비처럼 말 잔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공자, 절초였습니다.”

방덕이 자신이 입고 있던 비단 전포의 귀퉁이를 잘라서 마휴에게 내밀었다. 수건으로 쓰라는 뜻이었다. 마휴는 군례를 표한 뒤, 비단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방 교위, 아까 기백으로 저자를 움찔하게 만들었지요?”

“응? 들켰나요? 하하하.”

마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도 한 사람의 무장입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이죠. 이공자의 용맹한 싸움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도 모르게 옛날 버릇이 나왔군요. 앞으로는 이공자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방덕은 실로 흐뭇했다.

그의 주군 마등의 아들들. 그에게는 어려운 도련님들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첫째 마초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방덕을 아랫사람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좀 너무 건방지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초의 가치관이 문제지 결코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마초는 나이나 지위가 어지간히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건방졌다.

둘째 마휴는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성격이 밝았다. 무예가 늘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마휴에게 수시로 대련 상대가 되어 주다 보니 마휴가 마치 자신의 아우 같은 느낌이 드는 방덕이었다.

셋째 마철은 말수가 적지만 진지하고 성실했다. 몇 년만 있으면 믿음직한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다.

‘셋 다 나에게는 귀한 친구요, 형제들이다. 주공의 자제들이 하나같이 썩 괜찮은 재목들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송헌이 투장 끝에 죽자 적병들은 감히 방덕과 마휴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방덕은 마휴의 곁으로 가서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이공자, 이제 앞으로 가시지요. 비장군이 적장과 대치하고 있을 겁니다.”

방덕의 말을 들은 마휴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순간, 마초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 흰 수염이 성성한 서영이었다.

“크흐흐흐, 나에게 한 방 먹인 게 누군가 했더니 생각보다 더 어린놈이구나. 설마 정면으로 보병대를 깨고 들어올 줄이야.”

우회기동 중인 좌익의 병주병 기병대가 본진에 계속 있었다면, 마가군 기병대가 이토록 어이없게 진영을 돌파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진의 측후면을 찔러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이었는데, 마초가 불과 수십 기만으로 진영을 돌파해 버리면서 결정적인 패착이 될 위기에 처했다.

“한 방 먹었으니 한 방 더 먹으라고. 서영, 정서장군부 비장군 마초가 투장을 청한다.”

마초가 창을 들어 서영을 가리켰다. 서영의 흰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마초… 설마 총지휘관이 직접 수십 기만 이끌고 아군 진영으로 들어왔다는 말이냐?”

“귀가 잘 안 들리나? 내가 마초라고 이름을 댔잖아?”

마초가 대꾸하자 서영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크하하하하! 완전히 미친놈이로구나. 하는 짓이 여포놈을 꼭 닮았어!”

“그런 소리 많이 들었지. 그래서 불만인가?”

“천만에. 여포와 창을 맞대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네놈은 애송이지만 여포라고 생각하고 상대해 주마. 영광으로 알아라.”

서영의 말을 듣자 마초는 피식 웃었다.

“죽어야 할 때 안 죽고 살아있는 주제에 말은 많군. 이제 살 만큼 살았을 테니 동탁 곁으로 보내주마.”

마초 자신도 죽어야 할 때 안 죽고 살아있는 존재였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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