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52화 (52/306)

52화. 돌진하는 마초

“…미오성의 수비대장은 여포. 원소에게 의탁하러 떠나는 여포를 이각이 다시 붙잡았습니다. 미오성을 통째로 내주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곧 여포와 대결해야 합니다.”

이감의 말이 끝나자 좌중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휴, 나관중, 방덕, 마대, 맹획 모두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마초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여튼 이번 생은 쉽게 가는 법이 없군.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의 계획은 장평관을 틀어막은 채 미오성을 함락하고, 미오성에 비축된 식량을 기반으로 장기전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오성의 수비대장이 누구든 달라질 건 없다.”

전황은 마가군에 유리했다. 계획대로 장평관을 먼저 떨어뜨렸으니 미오성은 고립되었다. 미오성의 수비대장이 어지간히 뛰어난 장수라도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미오성의 수비대장이 어지간한 장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인, 여포라면 어떨 것인가.

마휴가 마초에게 물었다.

“형님, 장평관의 수비병 일부를 빼서 미오성 공략 인원을 늘리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곧 장안 방면에서 원군이 쏟아질 테니 장평관의 수비도 중요하다. 미오성 공략은 처음 계획대로 내가 이끄는 오천 병력으로 실행한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을 때, 마초가 빙글빙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활로가 뚫릴 것 같다. 이감이 재미있는 정보를 가지고 왔거든. 이감, 직접 설명해봐.”

이감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시작했다.

“여포군의 군리 하나를 매수해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미오성의 전각 최상층에는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많이 유폐되어 있습니다. 동탁 사후, 이 미오성을 인계받은 이각은 나중에 쓸모가 있을 수 있는 인물들을 대외적으로 죽었다고 알리고 미오성에 유폐하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크게 세 사람 정도 중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마휴가 되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첫 번째는 동탁의 손녀 동백. 미색이 빼어나서 여포가 동탁 생전부터 탐내던 여인입니다. 여포가 이각의 복귀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는 동백에 대한 욕정도 포함되어 있는 듯합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거취를 결정하다니…….”

“여포는 재물과 여색, 두 가지만 보고 움직이는 자라고 합니다. 여포가 동탁의 시비 초선이라는 여인을 탐내서 동탁과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와 다릅니다.”

“여포가 동탁의 시비를 탐냈던 게 아니라는 말입니까?”

“탐낸 건 맞습니다. 다만 동탁은 자신의 시비 정도는 여포가 가지고 싶어 하면 갖게 해 줬다고 합니다.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여포가 동탁의 손녀를 첩으로 요구해서라고 하더군요.”

“주군의 손녀를… 아니, 그보다 여포는 동탁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았습니까?”

마휴는 기가 막혔다. 사실 말이 좋아서 첩이지, 여포의 인간성을 고려하자면 자신의 성노리개로 요구했을 것이다.

“하여튼 추잡한 인간이군요. 다른 유폐자는 누가 있습니까?”

“두 번째로 황완이 있습니다.”

“황완?”

이번에는 방덕이 이감을 보며 반문했다.

“사도와 태위를 지낸 고관 아니오? 여포와 함께 동탁 암살에 참여했다가 나중에 이각에 의해 제거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습니다. 사실은 이각이 죽이지 않고 미오성에 유폐한 모양입니다.”

황완은 조부 때부터 삼공을 지낸 명문가 출신인데, 5년 전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려는 동탁에게 반대하다 면직되었다.

“황완은 명성이 매우 높은 인물이니 우리 손으로 구해낸다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되겠지. 더 중요한 건 세 번째 인물이다. 이감, 설명해 보게.”

“예. 세 번째는 서영입니다.”

“서영이라고요?”

마휴가 놀랐다. 방덕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나관중은 아예 눈이 두 배로 커져서 반문했다.

“동탁의 부하였던 서영 말입니까? 조조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그 서영이 살아있다고요?”

이감 대신 마초가 대답했다.

“그래, 그 서영 맞아.”

동탁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출신으로 뛰어난 무용과 지휘 능력을 가진 무장들이다. 서영 또한 동탁 생전에 이각, 곽사, 여포에게 뒤지지 않는 큰 신임을 받은 무장이었다.

지금(194년)으로부터 5년 전, 중원의 제후들이 모여서 연합을 결성하고 동탁과 결전을 벌였다. 조조, 원소, 원술, 유비, 손견 등 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영웅들이 참전한 큰 싸움이었다.

서영은 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훗날 중국 대륙의 최강자가 되는 조조와 싸워서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때 조조는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아 죽음의 위기를 맞을 정도로 고전했으며, 종형제 조홍이 자신의 말을 조조에게 양보하여 겨우 살아났다고 전해진다.

이감이 말을 이었다.

“그 서영이 미오성 최상층에 유폐되어 살아 있습니다. 여포는 서영을 선봉장으로 삼아 아군을 상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포도 모자라서 우리가 이제부터 그 서영과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관중은 다음 상대가 서영이라는 말을 듣자 적잖이 당황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서영을 허무하게 전사하는 것으로 처리한 것은 나관중 본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실제의 서영이 얼마나 뛰어난 무장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편 마초는 태연했다. 여유 있는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잘 됐지. 병사들도 서영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오히려 문제 아닙니까? 병사들이 서영의 이름에 주눅이 들면 어쩌시려고요?”

나관중은 의아했으나 마초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서전에서 그 서영을 대파한다면?”

방덕, 마휴, 이감, 나관중의 시선이 마초에게 모였다.

“상대의 선봉장 서영이 명성이 높은 게 오히려 다행이다. 선봉끼리 대결에서 서영을 크게 꺾으면 우리의 명성이 퍼지고 병사들의 사기도 올라갈 것이다. 승리한 병사들은 상대의 총대장이 누구든 크게 겁내지 않겠지. 설령 그게 여포라도.”

마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형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계책이 있으십니까?”

“계책이라. 물론 있지.”

마초는 그렇게 말하며 마휴의 눈을 응시했다.

“정면에서 쳐부순다. 그게 계책이다.”

* * *

병주병.

병주 땅에서 징집한 병사들을 말한다. 병주는 낙양과 장안의 북쪽에 위치한 땅인데, 이곳은 한나라의 가장 위험한 적인 흉노와의 최전선이다.

지금 서영의 눈앞에 도열한 삼천 명의 병사들은 수백 년에 걸쳐 흉노와의 싸움을 치러 온 병주 땅의 병사들이었다.

“크흐흐흐, 오랜만에 사내다운 놈들을 보는군.”

백전노장 서영은 병주병을 맡고 나서 신호체계와 기강을 점검했다. 이는 현대전에서도 중요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의 전쟁에서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랜 실전으로 단련된 병주병들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썩 마음에 드는 병사들이었다. 병주병들은 신호체계를 빠르게 이해했다. 하는 행동들도 단단히 군기가 들어 있었다. 서영은 한껏 웃으면서 옆에 있는 송헌을 바라보았다. 여포가 서영에게 붙여 준 부장이었다.

“여포라는 놈은 하여간 구제불능이군. 이런 좋은 병사들을 두고 싸움이 귀찮다고 계집질에 몰두하고 있다니.”

“그래도 온후(여포의 작위)께서 병사들의 처우에는 많은 신경을 써 주십니다.”

“크흐흐흐, 네놈도 여포의 수하라고 그놈 편을 드는 것이냐?”

“꼭 편을 들려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온후는 수하들을 후하게 대하십니다. 온후를 따르다 보면 봉급이 밀리는 법도 없고, 밥도 다른 부대보다 잘 먹는 편이지요. 심지어 장안에서 처녀들을 수천 명이나 끌고 와서 말단 병졸들까지 위무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까?”

송헌은 담담한 말투로 여포를 칭찬했다.

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여포는 분명히 부하들에게 보상을 아끼지 않는 지휘관이었다. 밥도 잘 먹고 봉급도 넉넉히 받고 여자도 안게 해 주었다. 여포군은 매번 이기니 다른 부대보다 생존율도 높았다. 그러니 여포군의 병졸들 중에서는 여포를 신처럼 숭배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높은 사기. 서영은 그것이 여포군이 가진 강함의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크흐흐흐, 하긴 나에게도 절세의 미녀를 매일 밤 품도록 했지. 그래, 여포가 영리한 놈인 것만은 인정하마. 어쨌든 그놈 덕분에 죽기 전에 제대로 한번 날뛸 수 있겠군.”

병에 걸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서영은 마지막 전쟁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마초는 안중에도 없었다. 서영이 원하는 상대는 마초의 아버지 마등이었다. 하급 군관의 신분에서 기병을 다루는 솜씨 하나로 일약 군웅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자다.

“크흐흐, 마등이라면 이 서영의 마지막 상대로 부족함이 없겠지.”

서영은 어서 빨리 마초의 목을 베고 마등을 끌어내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그를 부장 송헌이 일깨웠다.

“장군, 그러나 지금은 마초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온후의 말에 의하면 마초가 나이는 어리지만 만만치 않은 적수일 것이라고 합니다.”

“크하하하, 송헌. 네놈이 드디어 미쳤느냐? 내가 바로 서영이다. 조조를 박살낸 그 서영이란 말이다.”

서영은 앙천대소하며 상대편 진영을 바라보았다. 먼발치에서 서량병으로 보이는 군사들 한 무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초가 이끄는 미오성 공략부대가 틀림없었다.

“저런 애송이를 경계하다니, 여포놈은 마흔도 안 돼서 벌써 기백이 약해지나 보군. 하긴 그렇게 무리하게 계집질을 해 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서영은 창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마초 같은 애송이는 간단한 전술 지휘만으로 시체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 마초가 병주병의 공격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기를 바랐다. 직접 투장을 통해 마초의 목을 베고 싶었기 때문이다. 늙은 서영의 피는 그렇게 뜨거웠다.

* * *

서영이 이끄는 병주병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초는 척후로 나간 이감과 월길을 불러들였다.

“적의 포진에 대해 보고하라.”

“예, 비장군. 적의 대장은 서영, 부장은 여포 밑에서 몇 차례 공을 세운 송헌이라는 장수입니다. 그들이 이끄는 병주병의 수는 약 삼천이고 군기가 엄정합니다.”

이감이 먼저 보고하자 월길도 바로 말을 이었다.

“중앙과 우익은 보병 위주인데 좌익은 태반이 기병입니다. 딱 보기에도 좌익의 기병들이 정예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좌익의 기병대가 크게 우회해서 아군의 오른쪽 옆구리를 찌를 생각이겠군.”

상대는 아마도 아군의 우익에서 허점을 보고 정예병을 좌익에 배치했을 것이다. 아군의 우익에는 첫눈에 보기에 무장 상태나 군기가 허술해 보이는 부대, 남만병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군의 우익이 위험하게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맹 당번병?”

마초는 고개를 슬쩍 돌려서 옆을 보며 말했다. 마초의 옆에는 말 하나에 당번병 둘이 같이 타고 털레털레 쫓아오고 있었다. 까치머리를 한 마대는 뒤에서 말고삐를 잡고, 찰랑찰랑한 머리의 맹획은 마대의 앞에 탄 채였다. 둘 다 서로 바싹 붙어서 가는 게 불만인지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흥! 그걸 말이라고? 우리 남중의 전사들은 어떤 상대에게도 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올돌골의 용맹은 너도 직접 봤으니 알겠지? 상대가 어떤 놈들이건 이길 것이다.”

“좋아, 좋아. 그런데 가급적이면 귀중한 남만병의 손실이 없이 이기는 게 좋잖아? 그러니 내가 남만병이 싸우지 않아도 될 방법을 찾아 주지. 잘 견식하고 배워라, 맹 당번병.”

마초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나관중이 끼어들었다.

“비장군, 그러면 남만병을 후방으로 이동시키시렵니까?”

“아니.”

“네? 적이 기병으로 남만병들을 들이칠 것이라고 보고 계신 것 아닌가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서영이라는 늙은이의 포진을 보니 알겠어. 중앙의 보병대는 우리의 주력을 견뎌내는 방패의 역할, 좌익의 기병대는 크게 우회해서 우리 진영을 옆에서 찌르는 창의 역할이겠지.”

중무장한 보병대가 상대 주력을 붙잡아 놓는 동안 기동력을 갖춘 기병이 상대의 측면이나 후방을 들이쳐서 대열을 붕괴시킨다.

훗날 ‘망치와 모루’라고 불리며 일세를 풍미하게 되는 전술이었다. 이 시대에는 망치와 모루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지휘관이라면 비슷한 개념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마초는 이것을 ‘방패와 창’ 전술이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남만병을 싸우지 않게 하시렵니까?”

나관중이 반문하자 마초는 웃음을 보였다. 눈은 웃지 않고 입으로만 웃는 그 특유의 악당 웃음이었다.

“방패를 깬다.”

“방패라면… 적의 중군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래. 방패가 상대의 창을 막을 수 있어야 방패지. 방패가 깨지면 방패와 창 전술도 끝이야.”

진짜로 그렇게 된다면 상대의 기병이 아군의 측면에 닿기도 전에 승패가 기울게 될 것이다.

마초는 기병대를 중앙으로 모았다. 서량병 중에서도 이름난 마가군 기병대, 그중에서도 최정예였다.

“들어라. 오늘은 천하제일이라는 동탁군 중에서도 가장 강한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백전노장 서영과 흉노와의 싸움으로 단련된 병주병들이다. 그러니까…….”

마초는 마가군 기병들을 죽 둘러보며 씩 웃었다.

“오늘 그놈들을 때려 부수면 우리가 천하제일이다.”

마초는 기병대를 이끌고 그대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적의 중군이었다.

마가군 기병대의 움직임은 서영의 눈에도 들어왔다. 서영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흐, 멍청한 놈들. 저렇게까지 생각이 없다니. 송헌, 좌익의 기병대를 내보내라.”

“알겠습니다.”

송헌이 짧게 말하고 신호기를 올리자 좌익의 기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우회하여 상대 우익의 무장이 빈약한 이민족 부대를 들이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중앙의 중보병들이 상대 중앙의 기병을 틀어막고 있을 것이다.

중보병들은 송헌의 신호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백 명으로 나뉜 소부대들이 저마다 일사불란하게 진영을 짰다.

“간격을 유지해라!”

부대와 부대 사이는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길로 전령이 말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면 어떤 혼란한 상황에서도 지휘관의 명령이 일사불란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단단해 보이는 포진이었지만 마초는 코웃음을 쳤다.

“하여튼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아서 문제야. 진짜 정예병이면 난전에서는 알아서 하도록 맡기면 되지, 꼭 전령을 보내야겠나?”

마초가 수신호를 하자 뒤따라오던 당번병 마대가 뿔나팔을 불었다. 큰 산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 우는 소리가 관중 평야에 퍼져나갔다.

부우우우—

일제 돌격의 신호였다.

“단숨에 꿰뚫는다!”

마초는 스스로 다짐하듯 부르짖으며 달려 나갔다. 앞으로 나선 마가군 기병들이 일제히 최고속도를 내서 육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 최선두에서 달리는 것은 황금빛 갈기를 가진 흑갈색 말을 탄 청년 장수, 마초였다.

쾅!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영군 중보병들이 짜고 있는 진영에 마가군 기병대가 충돌했다.

“크… 크윽!”

“버텨라! 물러서지 마라!”

서영군 중보병들은 말과 사람이 한 몸으로 가하는 충격에 짓밟히고 뒤로 밀려나면서도 결코 등을 보이지 않았다. 과연 천하제일을 다투는 병주병이라고 할 만한 강단이었다.

“크흐흐, 이렇게 되면 보병의 승리다.”

후방에서 전황을 살피는 서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마가군의 돌격은 무모했다. 기병대의 돌격은 상황이 잘 받쳐주면 한 방에 전황을 뒤집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저지당하면 상대에게 역전의 기회를 준다.

‘가장 위력적인 최초의 돌격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병이 이긴 것이다.’

상대가 한두 번 더 돌격하더라도 보병대의 2열, 3열이 그 돌격을 받아내면 된다. 3번째 돌격이 일어나기 전에 상대 진영을 우회하고 있는 좌익의 병주병 기병대가 무장이 허술한 마가군의 우익을 들이칠 것이다.

‘병주 보병이 단단한 방패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병주 기병은 날카로운 창이지. 마초라는 놈의 수급을 곧 볼 수 있겠군.’

서영은 우회 공격에 무너지는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장에 이변이 발생했다.

“장군, 적 수십 기가 아군의 진영 안으로 돌입했습니다!”

“뭣이? 돌격은 실패하지 않았더냐?”

“아군 보병대에 돌격하지 않은 놈들이 있습니다. 부대 간의 간격을 이용해서, 마치 아군 전령들처럼 그 틈으로 말을 달리고 있습니다.”

“크흐흐, 이런 얼빠진… 길이라도 잃었다더냐?”

“그게 아니라… 외람되오나 장군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전령의 말을 들은 서영은 귀를 의심했다.

“나를 노려? 단 수십 기가?”

“그렇습니다. 아군의 본진 쪽으로 직진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놈, 여포에게 뭘 배운 것이냐? 그런 놈들은 항상 선두에 무용이 뛰어난 놈을 하나 세운다. 선두를 잡아! 칼싸움으로 안 되겠으면 극으로 말 다리라도 걸어서 낙마시키면 되지 않느냐?”

“그게… 그자가 무슨 이상한 말을 타고 있어서 낙마하지 않습니다!”

“이런 등신 같은 놈…….”

서영은 전령이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자 답답해서 직접 상대를 보러 나섰다.

억센 서량병이니 틀림없이 그사이에 싸움 잘하는 무사가 껴 있을 것이다. 그런 자를 준마에 태우고 앞장세워서 진영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술책이 분명했다.

“내가 직접 가서 한 창으로 꿰어 주마.”

척.

서영은 창을 쥐었다.

한때는 천하를 진동시켰던 서영의 창이다. 서량병 선봉장쯤은 바로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일단 서영의 의도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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