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48화 (48/306)

48화. 출진, 장평관으로

이각과의 싸움을 위해 출진하는 마가군은 정병이 1만 5천, 치중이 1만으로 총 2만 5천이었다.

정병 1만 5천은 마가군의 정예병이 1만, 유언이 보내 준 남만병 총 3천, 강족 기병대 2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중 마초의 휘하에는 정병 5천이 있었다. 마가군 3천과 남만병 1천, 강족 기병대 1천이 마초 휘하에 배속되었다. 이번 이각전의 승패를 책임진 부대였다.

마등은 과감하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아들 마초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초는 양봉군과의 전투를 통해 군량을 구해 온 일로 마가군 전체에게 큰 신임을 받고 있었다. 상산 전투에서 흑산적을 대파하고 장연의 목을 벤 일로 중원 전역에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무장이기도 했다.

“이미 훌륭한 무장이다. 이제는 아들을 무장으로 육성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인재를 활용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장군 마초에게 맡길 것이다.”

이것이 마등의 생각이었다. 정서장군부의 참모들도 이견이 없었다.

그러니 병졸들 사이에서도 마초는 인기가 높았다. 공을 세우고 싶은 자들은 누구나 마초의 근처에 배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작 마초의 가장 가까이에서 잡일을 하는 비장군 치소의 신입 당번병은 마초에게 불만이 많았다.

“흥, 전략전술을 가르쳐준다더니 매일 차나 끓여 오게 하는군. 언제까지 다시 끓여 오라고 시킬 셈이냐?”

“감히 형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차 한 잔을 끓여도 성심을 다해서 하라는 형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흥, 차를 끓이면서 가르침을 얻는 건 네놈 같은 돌머리 정도겠지.”

“뭣이? 비무를 통해 네놈 말본새를 고쳐 주마. 울어라, 정의의 칼날이여!”

“이 멍청이들아 그만들 하지 못해!”

마초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마대와 맹획이 동시에 잠잠해졌다. 마초는 두 당번병을 조용히 시키고 나서 맹획이 타온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맹획, 이번에 끓인 차는 꽤 괜찮구나. 역시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시키니까 발전이 있군.”

“흥, 따… 딱히 너에게 칭찬받으려고 그런 건 아니야!”

마초가 차 맛을 칭찬하자 맹획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빽 질렀다. 마초는 그런 맹획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도 지금은 당번병이지만 앞으로 남만병들을 통솔할 자가 아니냐? 조직을 이끄는 자에게는 그렇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 유연한 태도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너보고 차를 일곱 번이나 다시 타오라고 시킨 거야.”

“흥, 처음부터 어떻게 타라고 말해줬으면 더 빨리 마음에 드는 차를 마실 수 있었을 거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왜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지? 차를 어떻게 다시 타야 하는지.”

마초가 반문하자 맹획은 순간 말을 잃었다.

“흥, 그건…….”

“자존심 때문이겠지.”

마초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라, 맹획. 네가 자존심을 버리고 나에게 처음부터 어떻게 차를 탈지 물어봤다면 일곱 번이나 수고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차를 타는 정도의 일에서는 자존심을 세워도 상관없어. 차를 잘못 탄 것에 대한 책임은 너 혼자 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부족을 이끄는 일에서는 그렇게 네 자존심을 세우다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을 부족 전체가 지게 된다. 그러니 우두머리에게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야. 그걸 알려주기 위해 나는 차를 일곱 번 다시 끓이게 시킨 거고.”

맹획은 마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속으로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남을 이끄는 자가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면 따르는 자들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것인가…….”

“그래. 네가 정녕 세우고 싶은 게 맹획의 자존심인지, 남만족의 자존심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라.”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차를 홀짝였다.

“뭐, 앞의 여섯 번은 정말로 차가 맛없기는 했지만.”

마대는 마초의 말을 듣자 상당히 감명받은 눈치였다.

“역시 형님에게는 깊은 생각이 있으셨군요. 이 마대,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형님의 칼날이 되겠습니다!”

“너는 얼른 15세 병이나 고쳐라. 지금 네 수준이 저 남만 바보하고 똑같다는 걸 깨달으라고 두 사람을 붙여 놓은 거야. 15세 병이든 뭐든 싸움만 잘하면 병사들은 따르겠지만 언행에 무게감이 있어야 상관에게 신임을 받을 수 있다. 상관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큰일을 맡을 수 없어.”

마대는 지난 생에서 독특한 정신세계 탓인지 제갈량에게 큰 임무를 부여받지 못했었다. 마초는 마대에게 그렇게 핀잔을 주고 다시 작전 구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군막에서 같이 작전을 구상하던 마휴가 그 모습을 보고 하하 웃었다.

“그래도 대가 형님 곁에 있으면서 조금씩이나마 점잖게 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긴 한데, 성의 장군은 대체 저 녀석을 맡아서 뭘 가르쳤던 거야? 무예만 가르쳤나 보군. 철은 아직 성의 장군의 문하에 있다고 했지?”

“예. 들리는 소식으로는 철이 습득이 빠르지는 않지만, 그릇은 꽤 크다고 하셨다더군요.”

“그래, 그렇겠지.”

마초와 마휴의 동생 마철은 명석하지는 않았지만 끈기가 있었다. 마철이 대기만성형의 인재라는 것은 친형인 마초도 알고 있었다. 비록 지난 생에서는 마초의 거병 때문에 처형당하는 바람에 그 그릇을 증명하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서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형님, 그런데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서주에서 조맹덕이 백성들을 수십만이나 학살했다고 합니다.”

맹덕은 조조의 자다. 마휴의 말을 듣자 마초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서주대학살.

연주목 조조가 서주에 거주 중인 아버지 조숭을 연주로 모셔오려 했으나, 서주자사 도겸의 부하 장개라는 자가 재물을 탐해 조숭 일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족을 잃은 조조는 이성을 잃고 서주 땅을 폐허로 만들기 위해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한다.

이때 조조의 손에 죽은 백성이 십만을 넘어가며, 시체가 강을 메워 강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 지난 생의 기억에 따르면 조조가 서주 원정을 떠난 사이에 연주 호족들이 조조에게 반기를 든다. 그들은 조조를 축출하고 대신 여포에게 연주를 맡기게 되지. 그런데 여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원래의 역사에서 여포는 이각과 사이가 틀어진 후 원소에게 의지하여 상산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이후 다시 원소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조조가 자리를 비운 연주를 점거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여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마초는 본의 아니게 상산 전투에서 원소군의 선봉장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여포가 했던 일이다.

“꼭 여포가 아니라도 연주에 다른 변고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조조의 기반도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는 자를 백성들이 따르겠습니까?”

마초는 지난 생의 기억이 떠올라서 쓸쓸한 눈으로 마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건 맞다. 조조는 가족의 복수를 핑계로 대의를 저버린 자다.”

조조는 분명히 악인이다. 그런데 마초 자신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만약 대의를 위해 가족을 저버린 자가 있다면 어떻겠느냐? 조조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형님, 또 그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휴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두 가지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형님께서 말씀하셨던 상황은 거병하지 않으면 조조에게 서량을 통째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조조의 학살은 경우가 다릅니다. 서주 땅에 사는 수십만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은 아무 죄가 없지.”

“그렇습니다. 가족의 복수라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설령 가족을 잃었다고 해도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복수라는 핑계로 자신의 광기를 발산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휴, 네가 그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쩌겠느냐?”

“저는…….”

마휴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제 실수로 가족이 죽었다면 가족의 꿈을 대신 이루겠습니다.”

“꿈을 이룬다고?”

“예. 대신 꿈을 이뤄서 그가 살아가며 남기려 했던 것들을 제가 대신 남기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참으로 너다운 대답이다.”

마초는 이상주의자 동생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마휴가 내쳐 말했다.

“복수는 한다면 직접 책임이 있는 자에게 해야지요. 조조의 부친을 직접 죽인 장개라는 자, 거기서 더 나아가자면 총책임자인 서주자사 도겸 정도를 베면 될 일이 아닙니까? 정작 장개와 도겸은 베지도 못하고 무고한 백성들만 죽어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래. 조조는 이런 학살을 통해서 세상을 향해 자신에게 적대하지 말라는 경고는 날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원수의 목은 취하지 못했지.”

“맞습니다. 서량의 사내라면, 마가의 사내라면 취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 무고한 자를 희생시키지 않되 원수의 목은 반드시 벤다. 이게 마가의 방식이지.”

마초는 마휴를 바라보며 힘있게 말했다.

* * *

후한 흥평 원년(194년), 3월 초하루.

마등이 이끄는 마가군이 이각을 치기 위해 출병했다. 치중을 제외하고 정병만 1만 5천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이각의 본거지는 황도 장안성이다. 장안성의 서쪽에는 장평관이라는 관문이 있고, 마가군의 둔영과 장평관 사이에는 동탁이 지은 요새 미오성이 있다. 마등은 미오성을 그냥 지나쳐서 바로 장평관으로 향했다.

“마수성이 장평관으로 오고 있다고?”

장평관의 수비대장은 셈이 빠른 이몽이었다. 원래 미오성을 수비하던 그였지만 군량고를 탈취당한 후 장평관 수비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미오성 수비는 능력 있는 다른 장수로 교체되었고, 장평관 수비도 중요한 임무였지만 이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사치스럽게 꾸며진 미오성에 주둔하는 게 훨씬 편하기도 했거니와 눈앞에서 마등을 놓쳐 버린 탓에 좌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총 병력은 지금 파악 중이나, 정병 2만은 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흠… 이 자가 돌았나? 고작 그 숫자로 장평관을 넘어 장안성을 친다고?”

이몽은 전령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왕방이 말했다. 이몽과 함께 장평관 수비의 임무를 맡은 자였다.

“이 장군, 뭘 그리 고민하고 있소? 그 정도면 당장 나가서 맞서 싸웁시다. 내 마등이라는 놈을 요절을 내놓고야 말겠소.”

이몽은 왕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왕방도 이몽처럼 예전부터 동탁을 따르던 자였는데, 서량 출신인 이몽과는 달리 병주 출신이었다. 따라서 그는 서량의 군관 시절 마등의 모습을 잘 모르고 있었다.

“왕 장군, 그러다 뒈지는 수가 있소.”

“으응? 그게 무슨 말이오?”

“마등 그자가 지금은 허허 웃고 다니면서 선비들을 모으고 있지. 젊은 시절에는 야차나 다름없던 자요. 서량 출신 무장들에게 물어보시오, 평지에서 마등의 기병대와 싸우겠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지.”

마가군은 천하에서 가장 빠른 부대이며 비등한 숫자의 싸움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 부대로 이름이 높았다. 천하의 강병이라는 서량병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강하다고 이름난 부대였고, 그 부대를 만든 것은 오로지 마등의 역량이었다.

‘하긴, 예전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잘 벌이던 자다. 정서장군까지 달고 나서는 좀 점잖아졌나 싶었는데 사람 참 변하지 않는군.’

평지에서 마가군 기병대와 회전을 벌이는 것은 분명히 이몽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대사마 이각이나 표기장군 곽사, 아니면 여포 같은 천하에 이름난 기병대장들뿐일 것이다.

왕방은 그런 이몽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불퉁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관문 안에만 틀어박혀 있겠다는 거요? 그랬다가는 대사마가 가만히 있겠소?”

“그러면 어쩌자는 거요? 섣불리 평지에서 싸우면 죽은 목숨이오. 대사마가 죽은 목숨을 살려주기라도 한다오?”

이몽과 왕방이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전령이 들어와서 보고를 올렸다.

“장군, 마등군 선봉대가 장평관 앞에 집결했습니다!”

“뭣이? 벌써?”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행군 속도다. 이몽과 왕방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군, 적이 먼 길을 와서 피곤할 테니 지금 바로 들이칩시다. 어떻소?”

“왕 장군은 정말 셈이 안 되는군. 벌써 도착했다면 전원 기병일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 말을 타고 이 높은 성벽을 넘지는 못할 것이 아니오? 일단 장평관을 굳게 지키며 원군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오.”

기병은 평지에서는 무섭지만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몽은 빠르게 셈을 끝낸 뒤 왕방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왕방은 계속 몸이 달아서 씨근거렸다. 전령이 뒤이어 말했다.

“장군, 그런데 적장이 성문 앞에서 회견을 청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을 멀찍이 물리고 장군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가지가지 하는군. 그래, 선봉대를 이끄는 적장이 누구냐?”

“마등 본인입니다.”

이몽의 눈썹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뭔가 꿍꿍이가 있겠군. 알았다, 내가 나가서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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