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45화 (45/306)

45화. 마초가 한수를 유폐하다

갑작스럽게 마초가 신종을 요구하자 한수 일행은 당황했다. 한수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것은 부장 후선이었다. 후선은 칼자국이 난 입을 씰룩거리며 외쳤다.

“무례한 놈, 감히 진서장군(한수)께 남의 휘하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이냐! 아무리 정서장군의 세력이 강하다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마초는 후선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인상이 써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후선은 지난 생에서 한수 휘하에 있다가 독립하여 자신도 군벌이 된다. 그리고 마초가 조조와 싸울 때 같이 봉기한 서량군벌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때도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느라 도움이 안 되던 놈이지. 그냥 죽일까?’

마초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인내심을 되찾았다.

‘지금은 한 숙부를 설득하는 게 목적이다. 가급적 피를 보지 않는 게 좋겠지.’

마초는 후선의 말을 무시하고 한수에게 내쳐 물었다.

“자, 숙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서장군께 귀부하는 것을 포함하여 세 가지 조건을 수락하고 군량을 가져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한수도 어지간히 노련한 사내였지만 마초가 대뜸 귀부를 요구하자 노기를 감출 수 없었다.

“맹기 조카. 내가 비록 떳떳하지 못하게 이 자리에 있다지만 나를 이리 욕보일 수가 있느냐? 군웅이 패하면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수성 형에게 신종하는 문제를 본인도 아니고 아들인 네 앞에서 결정하라는 말이냐?”

“그렇다! 이런 발칙한 어린놈!”

한수에 이어서 후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마초도 인내심의 끈이 끊어졌다. 마초는 서황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황, 저놈을 조용히 시켜.”

“알겠습니다.”

서황은 후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니 이놈이?”

후선은 서황이 다가오자 노하여 칼을 뽑아 서황을 베려 했으나 서황의 손이 더 빨랐다.

턱.

서황이 오른손으로 후선의 허리춤에 있는 칼자루를 틀어쥐니 후선은 칼을 빼지 못했다. 당황한 후선이 발검을 포기하고 주먹을 날리려고 했으나 이미 서황은 왼손으로 후선의 목을 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린 후였다.

“컥, 커억…….”

“잠시 조용히 계시오.”

서황은 그렇게 말하고 주먹으로 허공에 뜬 후선의 배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퍽! 퍽! 쾅!

주먹이 닿을 때마다 후선의 배에서는 폭발음이 일어나고 입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힘있게 내지르던 비명 소리가 구슬픈 음색으로 바뀔 때쯤 서황은 주먹질을 멈췄다. 후선은 그대로 허공에 매달린 채 축 늘어졌다.

후선이 조용해지자 마초는 다시 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숙부, 바깥의 군사들은 이미 제압됐습니다. 농현으로 간 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어쩌시겠습니까?”

“제법이구나, 맹기.”

이번에는 한수가 씩 웃고는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 들었다.

“이렇게 나를 제압하고 내 부곡을 흡수할 셈이냐? 하지만 내가 죽으면 부곡을 흡수할 수도 없겠지. 어디 한번 해 봐라.”

한수가 여기서 죽어 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수 또한 병사 수가 1만을 헤아리는 큰 세력을 가진 군웅이다. 여기서 한수가 죽는다면 틀림없이 복수하려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각과의 큰 싸움을 앞둔 마등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터였다.

그러니 한수는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려는 참이었다. 마초는 한수의 말을 듣자 그제서야 어깨에 짊어진 마수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서로가 이렇게 입장이 다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마초도 어깨에 짊어진 5척 장도를 뽑아 들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칼로 결정하시죠.”

마초와 한수가 각자의 칼로 상대를 겨누며 대치했다.

선수는 한수가 취했다. 장검을 두 손으로 잡고 크게 돌리며 횡베기로 마초의 얼굴을 노렸다.

부웅!

마초는 장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얼굴이 있던 자리를 한수의 장검이 베고 지나갔다. 칼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뭐야, 조카를 진짜 베어 죽일 셈입니까?”

“싸울 때는 죽일 생각으로만 싸우는 거다. 수성 형이 가르쳐 주지 않더냐?”

만약 마초가 칼에 맞아 죽기라도 하면 한수도 뒷일을 수습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한수는 뒷일은 생각지 않는 듯 강맹하게 장검을 휘둘러 공격해 들어왔다.

마초는 한수에게 군웅으로서 은퇴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어차피 마초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군웅으로 계속 살아갈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마초,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는 고수다. 이번 승부에는 목숨을 걸어야겠군.’

“합!”

짧은 기합과 함께 한수가 머리 위로 치켜든 칼을 내리쳤다.

끼긱.

마초는 한수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장도를 들어 한수의 장검과 맞댔다. 칼날이 맞닿으며 미끄러지는 쇳소리가 울렸다.

‘힘 싸움을 걸 셈인가? 감히 나에게!’

한수는 완력에 자신이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마초와 칼을 맞대자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러나 마초는 청경의 수법으로 능숙하게 힘을 옆으로 흘렸다. 두 사람이 머리 위에서 맞댄 칼은 마초의 왼쪽, 한수의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때, 마초가 쥔 장도의 칼날이 한수의 장검 위를 미끄러지며 안으로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끼이익!

칼날이 칼날을 긁는 소리가 울리며 불꽃이 튀었다. 한수는 몸을 빼려 했지만, 마초의 칼날은 한수의 계산보다 훨씬 빨라서 순식간에 칼자루까지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칼받이가 있다.’

이럴 때 상대의 칼날에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해 칼날과 칼자루 사이에 칼받이를 둔다. 한수의 장검은 실용성을 위해 일부러 큼직하게 칼받이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한수는 칼받이로 마초의 칼날을 받아내고 다음 수를 펼칠 생각이었다.

퍽!

그러나 마초의 참격은 한수의 생각보다 예리했다. 미끄러진 칼날이 그대로 칼받이를 베고 한수의 손에 닿았다. 검을 쥔 한수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허공으로 날았다.

“큭, 이놈이!”

이대로는 진다. 한수는 멀쩡한 왼손으로 칼을 쥐고 그대로 마초를 향해 크게 뿌렸다. 마지막 승부수였다.

마초는 옆으로 몸을 돌려서 이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한수의 오른손 엄지를 베어낸 5척 장도가 다시 돌아와서 칼등으로 한수의 왼손을 쳤다.

깡!

한수는 결국 장검을 놓쳤다. 칼등에 맞은 왼손의 네 손가락이 부러져서 흔들거렸다.

“엄지가 상했으니 앞으로 숟가락을 드실 때 어려움이 많겠군요.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송구하게 됐습니다. 숙부의 무공이 고강하여 저도 사정을 봐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마초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한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로써 자신의 군웅 생활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 마음대로 처분해라.”

“진서장군을 모셔라.”

마초가 말하자 마가군 병사들이 한수에게 다가가 군례를 올리고 다친 손을 치료했다. 결국 한수를 유폐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훗… 후하하하!”

한수는 허공을 바라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이제 마초에 의해 자신이 유폐되면 자신의 세력은 와해될 것이다. 자신이 죽지 않고 붙잡혀 있으니 수하들이 섣불리 복수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 우두머리가 의형제의 군량을 털다 사로잡혔으니 세력은 자연스럽게 와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10년을 쌓아 온 한수의 군웅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약관의 마초였다.

* * *

후한 흥평 원년(194년), 2월.

마가군의 참모들과 장수들은 정서장군부에 모여 앉았다. 이제부터 이어질 큰 싸움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모인 것을 확인하고 마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명, 한문약(문약은 한수의 자)의 동태는 어떠한가?”

한수를 감시하고 있는 방덕이 대답했다.

“좋은 집에 모셔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식사도 잘하시고 시비들에게 농담도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군. 비록 일이 그렇게 되었지만, 문약은 나와 한때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부족함이 없도록 보살펴라.”

“명심하겠습니다.”

마등은 그러고 나서 마초를 돌아보았다.

“맹기, 한수군의 잔당들에 대한 소식은 들어온 것이 있느냐?”

“한 숙부가 유폐된 후 이탈자가 많이 생기고 몇 개의 파벌로 쪼개졌습니다. 한 숙부의 부장이었던 성공영이 이끄는 파벌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실력과 인망이 있는 자이니 2, 3년 후에는 어느 정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다. 공명, 병사들의 훈련 상태는 어떠한가?”

마등은 이번에는 연병을 맡아보고 있는 서황에게 물었다.

“작년에 모집한 신병들은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혔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실전경험뿐입니다. 한수 장군의 부곡 중 우리에게 흡수된 무리들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좋다, 그들을 모두 포함한 가용 병력은?”

“총병력은 정병 2만, 치중 1만 5천입니다. 정병 중 1만은 정예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정병은 전투병, 치중은 수송대와 지원병력을 말한다. 1만 정병이 출진할 경우 최소 5천, 권장 1만의 치중대가 따라붙어야 한다.

서황이 답변하자 마초가 뒤이어 말했다.

“그리고 강족 기병대가 있습니다. 아단부 등 우리와의 협력 관계에 있는 부락에서 총 2천 기병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좋다. 우리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구나.”

마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중을 돌아보았다. 일동의 시선이 수장 마등에게 집중되었다.

“오늘 모두를 모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의 큰일을 발표하기 위함이다.”

두 가지 모두 어떤 건인지 모두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첫째, 익주목 유언과의 동맹이 성사되었다. 유 익주가 군량 10만 석과 함께 우리와 같이 싸울 지원군까지 보내 주었다.”

참모들과 장수들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환호성을 내는 자도 있었다.

익주는 다른 이름으로 촉이라고 불리며 현대의 사천성에 해당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식량 생산이 많은 곳이다. 훗날 유비가 촉한을 세우는 비옥한 땅이기도 했다. 그 익주의 지배자가 마가군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지원군은 5천, 익주의 파족과 남중의 만족 등 이민족으로 이루어진 부대다. 열흘 안으로 도착할 것이다.”

파족과 만족은 하나하나가 강인한 전사들이다. 당장은 북방의 기후에 적응하기 어렵겠지만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눈이 녹고 봄이 오면 우리는 이각을 친다.”

자리에 모든 모든 참모와 장수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대사마 이각.

그 또한 마등과 같은 서량의 무장 출신으로, 원래는 동탁의 수하였으나 동탁 사후 정권을 장악한 자다.

귀족들에게는 황실을 능멸하는 역적이고, 백성들에게는 폭정을 일삼는 악당이다. 그러나 그에게 도전하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그는 한나라 조정의 권한을 틀어쥔 최고 권력자이고, 서량병을 이끌던 시절부터 명성을 떨친 무장이기도 했다.

작년의 군량고 습격 건으로 마등과 이각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오래 전부터 이각과의 결전을 예감하고 있었다. 어차피 계속되는 기근으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마등은 자리에 모인 일동을 돌아보았다.

“이각은 강하다. 그는 과거에 서량 최고의 무장이었다. 이각의 측근인 표기장군 곽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번 출정에서는 모두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마가군은 상대의 강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좌중은 태연했다.

“그리고 이각은 허수아비가 된 천자를 끼고 있다. 따라서 지면 우리는 역적이 된다.”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누군가 반문하자 마등은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걸 물어? 이기면 살아남는 거지.”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땅은 척박하고 사람들은 거칠다. 행정력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수시로 이민족들과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문명을 갖춘 대제국 한나라도 포기하려고 했던 곳이 서량이다.

지금 정서장군부에 모여 있는 자들은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서 살아남아 온 자들이었다.

“좋다, 제장들. 대사마 어르신께 서량 사내들의 싸움을 보여주자. 장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호의호식해서 다 잊어버렸을 거다.”

마등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결전의 날은 3월 초하루, 지금부터 20일 뒤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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