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나관중이 무기를 만들다
대륙의 가을은 짧다. 천수군 농현의 마가군 둔영에도 겨울이 다가왔다.
나관중은 오늘도 어김없이 정서장군부 비장군의 치소로 등청했다. 비장군 마초는 자신의 치소 옆에 아예 나관중이 일을 볼 수 있도록 작업실을 만들어 준 상태였다.
나관중의 신분은 여전히 마궁수였지만, 하는 일은 일반적인 마궁수들과 전혀 달랐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연구였다. 원나라에서 먹던 미래의 음식을 재현하기 위해 부엌일 하는 일꾼들을 데리고 매일같이 두부와 두장을 개량하고 술을 담그고 있었다.
“소주를 완성하면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후한 시대의 술은 대부분 도수가 낮은 탁주이다. 서량은 지역 특성상 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도 보편적으로 먹었다. 이 시대에 증류식 소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술꾼이라면 대부분 탁주보다 소주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니 원나라 수준의 소주를 만들 수 있으면 중원 전역에 팔아서 큰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나관중은 지난 생에서 어깨너머로 봤던 양조법을 떠올려 가며 일꾼들에게 술을 빚게 했으나 아직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였다.
또 하나 그가 신경 쓰는 것은 기록이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한 역사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관중이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삼국지 이후의 중국사는 유목제국과 한족의 충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 기록은 마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나라 시대의 문물을 도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도입하려는 것은 미래의 무기였다.
“내가 화약에 대해 지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화포나 화창을 만들 수 있었다면 그대로 천하통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관중은 화약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군인이나 국가에 소속된 장인이 아니고서는 화약의 제조법을 아는 것은 무리였다.
대신 삼국지연의를 쓰기 위한 취재의 결과로 창이나 검 같은 병장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서장군부에 소속된 대장간 장인들이 솜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때의 무기들을 잔뜩 만들었으니 오늘은 방 교위, 서 사마와 함께 함께 쓸만한 게 있는지 시연해 봐야겠다.’
등청하는 길에는 병사들의 기합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별부사마 서황이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소리였다. 마초가 그를 두고 연병의 귀재라고 했는데, 군문의 일을 잘 모르는 나관중이 보기에도 서황의 훈련은 유독 강하고 엄격했다. 저 훈련을 받으면서 겨울을 나면 신병들도 자기 몫을 하는 병사가 되리라.
갑자기 찾아온 추위로 인해 병사들의 몸이 둔해졌는지, 서황은 훈련을 중단하고 병사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별부사마는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그렇게 일장 훈시를 늘어놓던 서황은 지나가던 나관중을 보고 눈짓을 했다. 그 또한 미래의 무기에 관심이 있으니 잠시 후 따라 들어가겠다는 뜻이었다.
나관중이 비장군의 치소로 들어서자 방덕이 그를 반겼다.
“마궁수 선생 왔나?”
“방 교위, 벌써 와 계셨군요. 그런데 저분은…….”
나관중의 눈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는 청년이 들어왔다. 눈 밑이 거무튀튀하고 볼이 핼쑥해서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비장군 치소의 주인 마초였다.
“비장군, 혼례식이 끝나고 보름 후에 등청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닷새나 남았는데 어쩐 일이세요?”
“죽…을…….”
마초가 말을 잇지 못하자 방덕이 대신 설명했다.
“그러니까 맹기의 말은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말이지.”
“예? 아니 새신랑이 왜 죽을 것 같아요?”
나관중은 혼례를 치러본 적이 없다. 잠시 의아하게 생각하던 그는 방덕이 귓속말을 하자 이내 진상을 깨달았다.
‘하루에 다섯 번씩 한다나…….’
‘아… 그러면 죽을 정도인가요?’
‘매일같이 그러다 보면 죽고도 남지.’
반쯤 실신한 상태의 마초를 뒤로하고 또 한 명의 젊은이가 나관중에게 인사했다. 마초의 동생 마휴였다.
“마궁수 선생이군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마휴입니다.”
“아, 이공자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 군문에 드시는 건가요?”
“그렇게 됐어요. 저도 형님처럼 무공을 세우고 싶어서요, 하하.”
회귀한 지 불과 여섯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마초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형님은 이 여섯 달 동안 풍익에서 아버님을 구해내고, 양봉군을 완전히 해체시키고, 백파적 호재를 토벌하고, 기주 상산까지 가서 흑산적 대두령 장연의 목을 베었지요. 게다가 군량을 넉넉히 구해서 이 흉년에 우리 세력권에서는 배를 곯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단한 일입니다. 서량에서는 이제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중원에도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누워 있던 마초가 벌떡 일어났다.
“장연의 목을 벤 건 내가 아니라 내 의형제 조자룡이야. 휴, 너는 진실을 알고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형님.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요. 특히 데운 술이 식기 전에 장연의 목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일화는 이제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걸요?”
“아, 거참 난감하구만. 어쨌든 관중, 오늘은 미래의 무기를 가지고 오기로 했다지? 꺼내 봐.”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나관중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손수레를 덮어 놓은 포를 걷었다.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들이 여러 점 쏟아져 나왔다.
“일단 어느 분이 사용할지 모르니 적당히 모양만 따서 만들었습니다. 채택이 되면 쇠를 다시 녹여서 만들 것이니 감안해서 봐주십시오.”
‘하지만 전부 채택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그러나 자신감이 넘치는 나관중과는 달리 마초, 방덕, 마휴의 반응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는데…….”
마초는 말끝을 흐리며 거대한 병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긴 자루 끝에 큼직하고 휘어진 칼날이 달려 있는 무기였다. 송나라 때부터 널리 쓰이게 된 언월도였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한 바 있다.
“하하하하! 그게 바로 청룡언월도! 힘과 충의의 상징! 어떻습니까!”
마초는 청룡언월도를 몇 번 휘둘러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슷하게 생긴 자루가 긴 대도는 지금도 있잖아. 근데 이거 뭐 이렇게 무거워?”
“무겁다니요? 청룡언월도라 함은 82근이 기본인데, 이건 불과 30근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니 30근짜리를 휘두르면 그걸 누가 맞아주나?”
“네?”
“그렇잖아. 물론 나나 방영명이라면 30근 정도를 휘두를 힘은 충분해. 그런데 그럴 바에는 10근짜리 무기를 들고 더 빨리 휘두르는 게 낫지. 사람은 가벼운 칼이라도 맞으면 죽으니까. 이런 무거운 걸 어디다 쓰겠어?”
마초가 핀잔을 주자 나관중의 안색이 급 어두워졌다. 마초는 청룡언월도를 내려놓고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뱀처럼 휘어진 창날이 달린 사모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비의 무기였다.
“이 창은 왜 이렇게 길어? 그리고 창날은 왜 뱀처럼 휘어져 있지?”
“그것은 바로 장팔사모! 이걸 짚고 다리 앞에 버티고 서면 백만대군도 호령 한 번으로 물리치는…….”
“뭐야, 이게? 이렇게 긴 걸 어디서 휘둘러? 그리고 창날이 휘어지면 쇠만 많이 들지 아무 이득이 없잖아?”
마초는 청룡언월도에 이어 장팔사모에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나관중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러나 수레를 뒤적거리던 마휴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병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궁수 선생, 하지만 이 병기는 꽤 재밌어 보이는군요.”
“이공자!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그것은 바로 방천화극! 최강의 무인을 위한 무기입니다!”
방천화극은 장창의 날 옆에 초승달처럼 생긴 월아를 달아서 찌르기와 베기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였다. 이 시대에 주로 쓰이는 극보다 무게중심이 좋고 베는 면적이 넓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된 무기였다.
“요건 좀 괜찮네. 하지만 월아의 베는 각을 정확히 맞춰야 하고 관리도 까다로워 보이는군. 장수 전용 무기로만 쓸 수 있겠어.”
마초는 방천화극을 보고서는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을 내렸다.
“비장군, 그러시면 방천화극은 한 번 써 보시겠어요?”
“아니, 나는 싫어. 지금처럼 창과 장도를 쓰면 되는데 굳이 저런걸?”
마초와 달리 마휴는 방천화극에 상당히 관심을 보였다.
“마궁수 선생, 이건 내가 쓰도록 할게요. 원래는 창을 썼지만, 이 방천화극이 제 창술 방식에 더 맞아 보이는군요.”
“이공자, 과연! 천하제일의 무인이 되실 겁니다!”
“하하, 그 정도의 재능이 없다는 건 내가 더 잘 알아요.”
마휴는 그렇게 방천화극을 선택했다. 그때 서황이 연병을 마치고 치소에 들어왔다.
“마궁수 선생이 만들었다는 무기가 이것들이군. 내 것도 있소?”
“물론, 서 사마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무기를 하나 만들어 왔습니다.”
나관중이 씩 웃으며 도끼를 한 자루 내밀었다. 자루는 창처럼 길었고, 자루 끝에 매달린 도끼날도 위아래로 길어서 마치 언월도처럼 베는 면적이 넓은 무기였다. 삼국지연의에서 서황의 무기로 설정된 대부였다.
“이건 꽤 마음에 드는군.”
“그렇지요? 이게 바로 대부입니다. 서 사마께서 싸우시는 걸 보고 만들었습니다.”
“지금 쓰는 극보다 나에게 더 맞겠군. 고맙게 쓰겠소.”
서황은 대부를 선택했다. 방덕은 서황이 전용 무기를 잡는 걸 보자 남은 무기가 있는지 수레 안쪽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마궁수 선생, 내 거는 뭐 없나?”
“자, 이건 어떻습니까? 양날의 칼끝이 세 가닥으로 갈라진 삼첨양인도!”
“괴상하게 생겼군. 뭐 실용성이 전혀 없지 않나? 다른 건?”
“가시 돋친 철추로 한 방에 뼈를 부수는 철질려골타!”
“그냥 철퇴에 긴 자루를 달면 되지, 뭐 이런 무기를…….”
방덕도 마초처럼 나관중의 무기들에 혹평을 했다. 그렇게 나관중이 풀이 죽어 있을 때 방덕이 눈을 빛내며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긴 곤봉의 끝에 짧은 곤봉을 엮어서 도리깨처럼 휘두르게 만든 무기였다.
“이거 괜찮군.”
“아, 그건 편곤입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기병들이 들고 다니더군요. 그걸 쓰시겠습니까?”
“음, 병사들이 다루기에 괜찮아 보이는군.”
편곤은 농사지을 때 쓰는 도리깨와 구조가 비슷하여 익히기 쉽고 파괴력이 강하다. 기병이 들게 되면 패주하는 적을 추격해서 섬멸할 때 유용하고, 보병이 쓰게 되면 긴 길이를 살려 검으로 무장한 상대 보병을 상대할 때 적합하다. 방덕은 편곤의 전술적 가치를 바로 눈치챘다.
마초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곤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는 일부 유목민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일부 부대에 채택하면 충분히 활용도가 있을 것이다.
“관중, 그리고 내가 말했던 그 물건은 만들어 봤나?”
“예. 제가 봤던 원나라 기병들의 물건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나관중이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말안장이었다. 부드럽고 평평한 가죽 안장과는 달리 나무와 쇠로 뼈대를 만들어서 단단했다. 뒤쪽에는 등받이가 올라와 있었다.
“이런 모양이라는 거지?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군.”
“예, 비장군. 재질은 좀 더 연구를 해 봐야 합니다. 하지만 모양은 저렇게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장인들은 얼마든지 불러 줄 테니 이 안장을 연구해 줘. 오늘 여러 가지 무기를 선보였지만, 이게 바로 최강의 무기가 될 것이다.”
나관중은 마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덕, 서황, 마휴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말안장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숨은 뜻을 깨달았다.
“딱딱해서 흔들리지 않는 고정식 안장, 그리고 등받이가 있군요.”
“이 고정식 안장을 쓴다면, 적진에 돌격해서 상대와 충돌했을 때 몸이 밀려나지 않고…….”
“충격을 상대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게 되겠지.”
정사 삼국지에서는 마초의 서량병에 대해 ‘관서의 병사들은 긴 창을 잘 쓴다’고 평했다. 이 시기의 기병은 일반적으로 궁기병이었지만, 마초는 긴 창을 사용하는 돌격기병까지 잘 운용한 점이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중원 전역에 명성을 날린 기병 지휘관으로 30년을 전장에서 보낸 마초다. 당연히 기병 돌격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돌격의 위력은 결국 말과 창에서 나온다. 더 강한 돌격기병을 만들려면 결국 발전된 형태의 안장과 창이 필요해.’
이런 마초의 고민에 해답을 제시해준 게 나관중이었다. 등받이가 있는 고정식 안장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는지, 나관중이 살던 원나라 때에는 단단한 안장이 보편화됐다고 했다.
“이 고정식 안장을 완성하고, 긴 창을 쓰는 병사들을 육성한다. 시간은 몇 년 걸리겠지만 돌격을 통해 어떤 진이든 부술 수 있는 기병대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안장은 최강의 병기가 되겠지.”
그 기병대를 어디에 쓸 것인가?
그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급적 쓸 일이 없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나관중, 서황, 방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휴가 말했다.
“당장 써먹지 못하는 게 아쉽군요. 내년 봄이면 이각과 싸우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래. 안장을 완성하고 여기에 맞게 병사들을 훈련시키려면 몇 년이 필요하지. 이각과의 싸움에서는 쓰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사마 이각. 그와의 싸움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생에서 마가군은 이각에게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각을 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지.”
마휴가 마초를 보며 물었다.
“해결해야 할 일이요?”
“그래. 큰 싸움에 나서기 전에는 항상 후방을 안정시키고 가야지.”
이각은 동쪽의 장안성에 있다. 그러니 후방이라면 서쪽, 서량 방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