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40화 (40/306)

40화. 하내의 사마가

하내태수 장양은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마초 일행을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서량기병대를 이끌어 상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장연의 목을 친 마초의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게 하내까지 퍼져나갔다.

‘사실 장연의 목을 친 건 조자룡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내가 한 걸로 돼 있으니 말이야.’

마초는 술자리가 열리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나관중을 동원했다. 태양 소저의 이야기는 쏙 빼버리고 나관중이 각색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게 했다.

“으하하, 마초 공자가 정말 대단한 호걸이구만. 데운 술이 식기 전에 장연의 목을 벤다니, 어떻게 그런 멋진 말을 생각했는가? 내가 장연과 싸웠다면 그렇게는 못 했을 걸세.”

“핫하하하!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 고작 흑산적 장연 따위를 잡는데 장 태수께서 친히 나서는 것도 아니 될 말이지요. 장연은 그저 저 정도가 상대하면 되는 자였습니다.”

“하하하 이녀석 하하하!”

마초가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자 장양은 신이 나서 마초를 아들처럼 대했다. 어느새 고주망태가 된 장양을 보니 칭찬을 너무 좋아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

‘부하들에게 신망도 있고, 대화를 나눠보면 군웅치고는 백성 생각도 하는 편이군. 여기서 교류해 두는 게 좋겠다.’

마초는 더욱 신이 나서 장양에게 술을 권했다.

그가 신이 날 만한 이유는 또 있었다. 하내의 대호족 사마가의 가주 사마방이 연회 자리에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마방을 한번 만나보겠다고 귀찮게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준 셈이었다.

“사마 대인, 천하에 재물 하면 사마가를 가장 알아주지 않습니까? 제가 조만간 서량에서 소금 광산을 하나 발견할 것 같은데 조언을 좀 해주십시오.”

“허허, 마 공자. 우리 집안이 과거에 재물을 모았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다 정리하고 소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허, 그러지 마시고 저에게만 좀 알려주십시오. 소금 사업을 하려면 뭐부터 챙겨야 합니까?”

“허허, 이것 참. 정히 그러시면 몇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사마방은 난처한 웃음을 지은 후, 소금 사업의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마초는 진지한 눈을 하고 사마방의 말을 경청했다.

이 시기의 호족들은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뒤로 상단을 운영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마초도 그런 요령을 배워서 돈을 벌어 볼 작정이었다.

‘10년 후, 조용히 은퇴해서 가족들과 평화롭게 살려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회귀 전, 소금 장수였던 나관중은 후대에 발견되는 암염 광산의 위치를 알고 있다. 나중에 그것을 찾아내면 마가군은 막대한 이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나관중은 이런 마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 구석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역사를 알려줬는데도 사마가의 인물하고 어울리다니 참…….’

심란한 마음에 술을 몇 잔 털어 넣은 나관중은 이내 사마방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사마 씨들을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술이 마구 들어갔다.

‘저자가 사마가의 가주란 말이지. 중원 제일의 부호이자, 나중에 천하를 도둑질하는 사마의의 아버지. 어디 낯짝이나 한번 보자.’

사마가의 후손들이 세운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지만, 부패가 심해 제대로 나라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중국 대륙으로 남하하는 이민족들을 막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300년간의 난세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사마가는 역사의 죄인이지. 그런데 역사의 죄인치고는 꽤…….’

잘생긴 인물이었다. 사마방은 무장처럼 당당한 체격에 풍성한 수염, 단정한 얼굴을 한 40대의 선비였다.

그보다 더 잘생긴 건 사마방의 옆에 앉아 있는 청년이었다.

‘사마방과 꼭 닮은 걸 보니 아들이겠군. 나이는 20대 초반쯤인가? 사마의는 아직 10대일 테니, 그렇다면 저자는…….’

사마의의 형. 사마가의 장남 사마랑일 것이다.

정작 사마랑의 앞에 앉아 있는 마초는 한참 동안 사마방과 사업 얘기를 한 뒤에야 사마랑에게 관심을 가졌다.

“여기 계신 공자는 사마 대인의 아드님이십니까?”

“불민한 큰아들입니다. 백달, 마 공자께 인사드려라.”

“마 공자를 뵙습니다. 사마랑, 자는 백달입니다.”

마초는 사마랑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 20대 초반쯤으로 보였지만 위엄까지 느껴지는 당당한 풍채의 청년이었다. 반면 몸가짐은 점잖고 단정해서 귀족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중원 제일 부잣집에, 300년을 이어 온 명문가의 장남이니 어련하겠나.’

사실 명문 하면 마가도 빠지지 않는다. 후한의 개국공신과 황후를 배출한 집안인 것이다. 그러나 돈을 좇지 않다 보니 몇 대만에 몰락해서 마등의 대에 이르러서는 나무꾼 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러니까 돈은 무조건 많아야 한다. 그러자면 사마가하고 미리 친하게 지내 둬야지.’

마초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사마랑에게 술을 권했다.

“사마 공자와 저는 나이가 비슷하지요. 각자 천하를 위해 힘쓰다 보면 앞으로 계속 만날 일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미리 잘 부탁합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초와 사마랑 사이에 몇 잔의 술이 오갔다. 사마방은 두 사람이 교류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이내 자리를 떴다.

“저는 잠시 다른 볼일을 보고 오겠습니다. 마 공자께서는 아들이 불민하다고 물리치지 마시고 부디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십시오.”

“무슨 말씀을, 저야말로 사마 공자 같은 이름 높은 선비와 교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초는 상산 전투에서 흑산적을 대파한 영웅이니 이제 곧 중원에 이름이 알려질 것이다. 그러니 미리 알아두면 사마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마초는 사마랑과 단둘이 남게 되자 슬쩍 궁금한 것을 물었다.

“사마 공자는 원래 연주목 조조 밑에서 벼슬을 하셨지요?”

“그랬었습니다. 지금은 병이 들어 고향에서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관직에 들어야 하겠지요.”

“그래, 조조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초가 묻자 사마랑은 잔잔히 웃었다. 마초는 사마랑의 웃는 표정이 묘하게 슬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조 연주는 영웅입니다. 생각이 세심하고 깊으면서 결단력이 있고, 심지가 굳으면서 유연함도 갖췄으니 가히 난세를 바로잡을 만한 인물이지요. 마 공자께서는 어찌 그걸 물으십니까?”

“글쎄, 내가 듣던 말과 달라서 말입니다. 그는 야심이 지나치게 크니, 치세라면 능신이 될 만한 인물이지만 난세에는 간웅이 될 인물이라 들었소.”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사마랑은 그런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웃으며 대꾸했다.

“마 공자께서 식견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맞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저 올곧기만 한 인물이 어떻게 이 난세를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난세를 바로잡는다라. 사마 공자께서 생각하는 난세를 바로잡는 방법은 무엇이오?”

“다시는 난세가 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이 나라의 제도를 송두리째 바꿔야 합니다.”

“이 나라의 제도라면?”

“호족의 대토지 소유입니다. 천하의 근본은 백성이며, 백성의 삶은 경작할 땅을 근본으로 합니다. 그러나 광무제께서 역적 왕망을 토벌하고 나라를 세우신 이래 200년간 백성이 경작하는 땅은 점점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반면 호족들이 가진 땅은 점점 늘어났지. 사마 공자의 뜻을 잘 알겠소.”

‘이런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나.’

원래의 역사에서 사마랑은 몇 군데의 지방관을 역임하는데 가는 곳마다 훌륭한 통치를 펼쳐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조조에게 정전제(井田制)의 부활을 골자로 하는 토지 개혁안을 내지만 거절당하고, 이후 아버지 사마랑보다 먼저 죽는다.

정전제는 자영농 8가구가 100무의 땅을 9등분하여 8개의 땅은 각자 경작하고, 1개의 땅은 공전으로 삼아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로 세금을 내는 제도다.

‘9등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자의 진짜 의도는 오랫동안 전란으로 황폐해진 농경지를 몰락 농민들에게 분배하려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호족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기 어렵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당장 사마가부터가 그런 호족 집안이 아닌가.

마초는 사마랑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마 공자의 뜻은 참으로 아름답소. 그러나 그게 가능하겠소?”

“글쎄요. 그러나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따지기 전에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하하하!”

사마랑의 말을 들은 마초는 별안간 크게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은 마초는 손사래를 치며 사마랑에게 말했다.

“이거 미안합니다. 사마 공자께서 내 아우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기에 놀랐을 뿐, 다른 뜻은 없소이다.”

“마 공자의 아우님이요?”

마초는 둘째 아우 마휴와의 문답을 떠올렸다.

* * *

“기울어 가는 조정을 바로잡고 한의 사직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힘 있는 군웅이 황위를 찬탈한다면 천하는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우리가 천자를 모시고 천하를 평정하여 조정의 힘을 회복하고, 권신이 되지 않은 채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란(治亂)의 방법입니다.”

그날은 마초와 부간, 이회, 마휴가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였다. 자리가 무르익자 화제는 천하 대세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네. 그러나 우리는 서량 군벌일세. 조정에서는 서량을 귀찮은 혹덩어리로만 여기고 있고, 또 서량 군벌 동탁이 사직을 농단한 선례가 있으니 사대부들의 여론도 우리에게 극히 나쁘지 않나. 우리가 힘을 기른다 한들 천자를 모시고 중앙 정치를 하는 것은 무리일세.”

부간은 서량 군벌로서의 현실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마휴는 이상론을 말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언재(부간의 자) 형. 그러나 할 수 있고 없고를 따지기 전에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마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지금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력을 가진 군웅뿐이다.

천자를 모시고 천하를 평정한 뒤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은 자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조정의 충신이 되지, 결코 군웅이 되지 않는다. 천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가 되려는 야심을 가진 자, 부하들에게 고단한 충신의 길만을 강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보상을 안길 수 있는 자만이 군웅이 될 수 있다. 조조나 원소가 대표적이다. 손권도 마찬가지다. 유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이치를 아는 마초는 마휴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정치 토론을 하는데 이 정도 기백은 있어야지! 현실의 벽은 나중에 깨달아도 늦지 않아. 지금은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할 때다!”

청년의 몸에 들어간 중년 남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부간과 이회는 친구의 말투가 뭔가 중년 같다고 생각했지만 마휴가 던진 묵직한 주제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 *

“하하, 내 아우도 사마 공자처럼 마음이 맑고 뜻이 높습니다.”

마초는 웃으며 사마랑을 바라봤다.

딱히 이상주의자들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세상살이의 풍파를 너무 많이 겪었다.

그러나 마초는 마휴나 사마랑 같은 이들의 이상론이 싫지 않았다.

‘조조 같은 놈들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나. 저런 이들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 거지.’

사마가의 후계자와 안면이나 트려는 게 원래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본 사마랑은 마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입으로만 이상을 떠드는 서생이 아니다. 정전제가 진짜 시행됐다면 하내의 사마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을 테니까. 그만큼의 각오가 있는 인물이다.’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인물. 마초의 눈에는 사마랑이 그렇게 보였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야심만만한 둘째 사마의가 가주가 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마초와 사마랑은 시간이 늦도록 술잔을 나눴다. 술자리는 밤이 되어서야 파했다. 적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사마랑의 걸음걸이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마랑은 마초와 작별을 고하고 타고 온 수레에 올랐다.

수레 안에는 10대 후반쯤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유독 흰 얼굴과 붉은 입술이 도드라졌다.

“마초는 만나 보셨습니까. 어떤 사람이던가요?”

그러나 소녀의 입에서는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녀가 아니라 여장을 한 소년인 것이다.

사마랑은 소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순한 무장이 아니다. 나이는 네 또래일 텐데 마치 마흔이 넘은 것처럼 지혜로운 자였다. 저 사람에게도 영웅의 자질이 있구나.”

“그런가요?”

소년은 고개를 홱 돌렸다.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가 등 뒤로 돌았다. 소년의 등 뒤에는 절영을 탄 마초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

사마랑은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달. 몸을 돌리지 않고 뒤를 볼 수 있는 자는 낭고의 상이라 하여 남들에게 배척당한다. 그러니 몸가짐을 조심하거라.”

“그리하겠습니다. 형님은 마음 씀씀이가 자상하십니다.”

사마가의 차남, 사마의는 사마랑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형님은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여장에나 탐닉하는 정신 나간 아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여장은 자신의 야망을 숨기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도. 필요하다면 혈육이라도 제거할 생각인 것도.

그리고 자신의 야망은 고작 사마가의 가주 따위가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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