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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39화 (39/306)

39화. 친구가 더 중요합니다

마초가 혼자 술자리를 빠져나가서 조운과 안다를 맺는 동안, 저택 한켠에서는 원소와 감군 저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초의 전투 기록은 잘 보았다. 여기에 적힌 게 전부 사실이겠지?”

“그렇습니다. 서전에서 우저근이 이끄는 2만 선봉대를 흩어 버린 것은 온전히 마초의 공입니다.”

“그렇다면 저 마초라는 젊은이는 어느 수준의 무장이라고 봐야 하는가? 저수,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지금도 매우 뛰어난 무장입니다. 10년 후에는 상장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대의 말이 틀렸다.”

원소가 고개를 저었다. 저수는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 정도의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니. 마초는 지금도 상장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다. 10년 후? 그때는 천하제일이겠지.”

원소는 본래 군재가 뛰어난 자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마초는 그저 말을 잘 타고 용감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궁기병을 자기 몸처럼 다루는 지휘력, 강행군을 하는 데 필요한 부대 장악력, 전장을 정확히 예측하는 안목, 그리고 개인의 무용까지. 마초보다 더 뛰어난 무장은 지금도 찾기 어렵다.”

“하오나 주공, 그의 곁에는 대단히 우수한 부장들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방덕과 서황은 능히 일군을 이끌 만한 재목입니다. 조운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공손찬 밑에 있을 때부터 우리의 골칫거리였던 자입니다.”

“그만한 자들을 부리는 것이 바로 실력이다.”

저수는 참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러니 자신만큼 뛰어난 아랫사람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뛰어난 아랫사람을 부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수가 이해할 수 있을까? 원소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부장들 말인데, 방덕이라는 자가 아직 연회장에 있지?”

“그렇습니다.”

“그자와 얘기를 좀 해야겠군. 불러오너라.”

“알겠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려 하십니까?”

“임관 제의.”

원소가 판단하기에 방덕과 서황은 대단한 지휘관들이었다. 방덕은 궁기병을 자기 몸처럼 다뤄서 흑산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서황은 처음 지휘하는 원소군 중기병대를 이끌고 도하에 성공해서 적진에 돌격했다.

‘이만한 무장은 하북을 다 뒤져도 찾기 힘들지. 둘 다 무명이지만 틀림없이 대단한 재목들이다.’

원소는 하북을 평정하기 위해 우수한 기병대장이 필요했다. 여포에게 공을 들인 것도 그래서였다. 대 공손찬 전선의 영웅인 국의가 있었지만, 원소가 보기에 그는 건방이 지나쳤다. 그러니 곧 숙청해야 할 인물이었다. 안량과 문추는 하북 전체에 이름을 떨치는 용장이지만 이미 나이가 적지 않았다.

원소가 원하는 건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반면에 명성은 높지 않아서 자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젊은 무장이었다.

마초는 마등의 아들이니 현실적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그의 휘하에 있는 우수한 장수를 끌어들여 볼 참이었다.

‘서황은 얼마 전에 마초와 싸우고 사로잡힌 항장이라고 했다. 사람됨이 고지식한 자이니 벌써부터 주인을 바꾸지는 않을 테고, 주군을 너무 빨리 갈아탄다면 본인의 평판에도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나 방덕은 다르다.

원소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방덕은 서량의 한미한 집안 출신이다. 어려서 고아가 된 그를 마등이 거둬서 군관으로 삼았다. 다섯 살 아래인 마등의 아들 마초와 같이 무예를 수련하며 친구처럼 자란 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가군에서 그의 위치는 무엇일까?

대외적으로는 마등의 가족이나 다름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그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혈육과 혈육이 아닌 자를 구분하게 마련이다. 마등이 그에게 친부모와 같은 은혜를 주었다면, 분명히 친자식인 마초의 그림자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마치 명문가의 얼자 같은 존재로군. 나는 이런 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지.’

첩이 낳은 자식을 서자라고 하고 천민 신분의 첩이 낳은 자식을 특별히 얼자라고 한다. 원소 자신이 바로 명문 원가의 얼자였다.

방덕은 태생적으로 그림자가 되기를 강요받는 신분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재주는 그림자에 머무르기는 너무나 크다.

‘그러니 더 큰 명예와 영광으로 유혹하면 넘어올 것이다.’

저수가 방덕을 데려오자 원소는 만면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방덕의 의향을 물었다.

“거절합니다.”

그러나 방덕의 대답은 원소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원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퉁명스럽게 말을 끊었다.

“어째서인가?”

원소는 표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고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뭘 그런 걸 물으십니까? 제 주인은 정서장군이기 때문입니다.”

저수가 끼어들었다.

“방 교위, 그래도 기주목께서 방 교위를 이렇게 좋게 봐주시지 않소? 상산상이라는 자리가 마음에 차지 않으시오? 상산국의 상이라면 평원상 유비, 하내태수 장양 같은 명사들과 같은 반열이오.”

방덕은 23살이다. 이 나이에 상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여남 원가 같은 대단한 명문가의 적통이거나, 아니면 한 지역을 제패한 독립된 군벌이거나. 방덕 같은 변방의 무관이라면 상상해본 적도 없을 정도의 파격적인 승진인 것이다.

“상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는 저도 압니다.”

그러나 방덕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명공께서 저를 좋게 봐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명공, 저는 정서장군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정서장군께서 살아 계신 한 그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쯤 되자 원소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아, 마초가 있는 한 그대는 마초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마등의 가신으로 살다가 마초의 가신이 될 운명인 것이다. 그만한 재주를 가지고 평생 그림자에 만족하겠다는 말인가?”

“평생 그렇게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방덕이 말했다.

“저는 정서장군의 수하이지 마맹기의 수하가 아닙니다. 정서장군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충성을 다하고, 이후에 얼마간 마맹기에게 친구로서 도리를 다하면, 그때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요.”

“그때가 언제가 될 줄 알고 그러는가? 그렇게 기다리다가는 때가 늦을 걸세.”

“상관없습니다. 제가 재주는 있다고 명공께서도 인정하시지 않았습니까? 먼 훗날에 명성이 얻고 싶어지면 한 번 싸움으로 얻으면 그만입니다.”

듣고 있던 저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방 교위,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으시오?”

“안 될 건 또 뭐겠습니까? 그때 가서 천하제일의 무장에게 도전하면 되지요. 저라면 천하제일의 무장과도 해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명성이 얻고 싶으면 언제라도 얻을 수 있다. 나라면 천하제일의 무장과 겨루더라도 해 볼 만하다.

방덕의 자신감은 예상보다 더 강했다. 원소는 방덕의 답변을 듣자 그저 껄껄 웃었다.

“걸물이구만. 내가 실례했네. 그대가 이토록 지위와 명성을 가볍게 여길 줄은 몰랐네.”

“지위와 명성도 중요합니다. 다만 지금은 친구가 더 중요할 뿐입니다.”

방덕은 그렇게 원소의 영입 제의를 일축했다.

방덕이 방을 나가자 원소는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쉽군. 방덕은 하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만한 재목이라고 봤건만. 그에게 안량, 문추, 고람과 함께 하북사정주(河北四庭柱)라는 이름을 주려 했는데, 본인의 뜻이 저러니 어쩔 수 없지.”

감군 저수가 대답했다.

“주공, 그러나 하북 땅에 인재는 많습니다. 하북의 기둥이 될 만한 젊은 무장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아아, 그대가 추천한 그 젊은 교위 말인가? 아마 방덕과 비슷한 나이 또래였지?”

“그렇습니다. 지위가 낮아서 백관들의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대장군의 재목인 것은 확실합니다.”

“알았다. 내일 바로 만나보도록 하겠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나?”

원소가 접견을 허락하자 저수의 눈이 빛났다.

“장합, 자는 준예. 하간국 출신입니다. 틀림없이 주공께 큰 힘이 될 인물입니다.”

* * *

그리고 며칠 후.

남쪽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마초는 나관중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마궁수 선생, 사람들이 환호해 주니까 좋냐? 좋아? 장군이 그만하라고 하면 좀 그만하지? 엉?”

“소…송구합니다.”

“송구하면 군 생활이 끝나냐? 도대체 태양 소저니 뭐니 그런 소리는 왜 떠들고 다닌 거야? 이제 소문이 쫙 퍼져서 나를 보는 사람마다 태양 얘기를 할 거 아냐?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나관중이 떠드는 바람에 마초가 양하원을 보고 ‘그대는 태양이다’라고 외쳤던 사실이 원소군 전체에 퍼졌다. 소문은 곧 하북 전체에 퍼질 것이고 이어서 천하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래서 마초는 상당히 짜증이 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막말이 나왔다.

반면 양하원은 그런 나관중을 감쌌다.

“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만큼 서로 사랑한다고 과시하면 좋잖아. 마궁수 선생, 잘했어요.”

“앗, 감사합니다, 태양 소저.”

“으하하하! 그 호칭은 계속 들어도 듣기 좋군요. 핫하하하하!”

양하원은 태양 소저라는 호칭이 몹시 마음에 들었는지 말 위에서 호쾌하게 웃었다. 마초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여튼 둘 다 정상은 아니야. 서황, 하내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내일 오후면 도착할 것입니다.”

기주 상산국을 떠난 마초 일행은 왔던 길을 되짚어 서쪽으로 향하는 대신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사례주 하내군이다.

“뭐, 좋아. 하내태수 장양에게는 연통을 해 두었으니 내일 낮에 마중을 나오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후 단주와 번 소저의 혼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아쉽군요.”

“나도 아쉬워.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상산에서 열흘씩이나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상산 전투가 끝나고 하후란과 번선의는 혼인하기로 했다. 이로써 그녀가 조범의 형수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될지는 두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것이리라.

마초 일행은 일정상 혼례에 참석하지 못하고 서량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마 공자가 아니었으면 우리 의종은 몰살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불러 주십시오. 반드시 달려가겠습니다.”

하후란은 거듭 고개를 숙여 가며 마초에게 감사를 표했었다.

‘나중에 어떻게든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마초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후란과의 친교를 잘 마무리했다. 조운도, 하후란도 당장 데려오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인연이 닿으면 같이 할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서량으로 돌아갈 때는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남쪽으로 길게 돌아가는 길이다. 마초는 일행에게 일정을 설명했다.

“하내군에서 태수 장양을 만난다. 그리고 홍농군에서 또 만날 사람이 있지.”

눈치를 보던 나관중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하내에서 장 태수를 만나시려는 건 알겠는데, 홍농에서는 누구를 만나시려구요?”

“넌 또 왜 끼어들어?”

마초가 일갈하자 나관중은 다시 풀이 죽어서 뒤로 빠졌다. 마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대꾸했다.

“홍농에서 만날 사람은 가 보면 알아. 그보다 지금 하내에서 만날 사람에 집중하자고.”

“장 태수 말입니까? 지난 생에서 알던 사이는 아니라고 하셨죠?”

“그래. 하지만 들리는 말마다 전부 평판이 좋더군. 사람됨이 호탕하고 의기가 있다고 말이야. 사람이 너무 좋아서 결국 부하가 배신해서 죽었다고 들었지만, 어쨌든 알아두면 쓸모가 있을 거야.”

인맥이 나중에 정확히 어떻게 쓰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괜찮은 사람과 인맥을 만들 수 있으면 일단 만들어 두자는 게 마초가 세상을 살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하내에서 만나려는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비장군, 아무리 그래도, 사마방은 좀…….”

“왜? 사마방이 어때서? 억만금을 가졌다는 하내 사마가의 가주잖아?”

“사마의의 아버지란 말입니다. 사마의가 어떤 놈인지는 제가 말씀드렸죠?”

“그래, 아주 나쁜 놈이라고 그랬잖아.”

마초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쁜 놈이고 자시고 간에 알아두면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지난 생에서 소문을 듣기로 하내의 사마가가 뒷구멍으로 장사를 엄청 크게 하는 모양이더라고. 나도 나중에 비단이나 소금 교역을 크게 할 계획이니 혹시 사마가와 거래하게 될 수도 있잖아? 미리 알아두면 좋지.”

이 시기의 지역 상업은 지방 호족들이 쥐고 있었다. 다만 사대부가 상업을 한다는 게 떳떳하게 여겨지는 일은 아닌지라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면서 뒤로 몰래 장사를 하는 게 보통이었다.

나관중이 말하는 사마의는 하내 사마가의 둘째 아들이다. 나이는 이제 열여섯일 것이다.

‘사마의라는 놈의 후손이 나중에 위나라 황위를 찬탈하고 삼국을 통일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알 게 뭐야. 어차피 위나라도 조조 아들놈이 한나라의 황위를 찬탈해서 세운 나라인데. 됐고, 다시 살게 됐으니 나도 부자 한 번 해 보자.’

이때까지만 해도 마초의 생각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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