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38화 (38/306)

38화. 맹우

“그,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그 순간 마초 장군이 말했지요. ‘그대는 별이 아니라 태양이다! 하늘에 태양이 단 하나뿐이듯이 나에게 여인도 그대 하나뿐이니라!’”

“오옷! 그래서요?”

“그러자 장연이 그러더군요. ‘닥쳐라! 네가 양 소저를 데려가려면 나를 꺾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 마초 장군께서는 노호성을 터뜨리셨습니다. ‘장연, 발칙한 도적놈아! 서량의 금마초가 간다!’”

“금마초? 금마초가 뭐요?”

“비단(錦) 같은 마초라는 뜻이지요.”

“오오, 실로 마 장군에게 어울리는 별명입니다.”

상산국 진정현, 얼마 전까지 현령이었던 조백의 저택.

조백이 죽은 후 이곳은 상산을 점령한 원소군의 사령부로 쓰이고 있었다. 지금은 상산 전투의 대승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원소의 휘하 장수들 앞에서 마초의 무용담을 과장해서 늘어놓고 있는 자는 나관중이었다.

“그때, 출진하려는 마초 장군을 방덕 교위가 붙잡았습니다. 방 교위가 말하기를, ‘여기 따뜻하게 데운 술이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술을 드시고 출진하십시오.’”

나관중에게는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그가 이야기를 꾸며내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듣는 사람은 그의 말에 사로잡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러니 술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원소군의 장수와 모사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관중의 입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초 장군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소?”

“마초 장군이 말하기를, ‘필요없다.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돌아와서 마시겠노라.’”

“오옷!”

“캬아!”

원소군의 장수와 모사들은 나관중이 꾸며내는 이야기 속의 마초에게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

“마초 장군이 그 말을 남기고 출정하자! 어지럽게 북이 울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지요! 잠시 후, 마가군의 군막으로 마초 장군이 돌아왔습니다. 손에는 뭔가 담긴 보따리를 들고 말입니다.”

“그… 그 보따리의 정체가 설마?”

“마초 장군이 방덕 교위 앞에 보따리를 내던지며 말했습니다. ‘자, 여기 장연의 목이 있다.’ 그리고는 아까 데워 놓은 술을 마시는데, 술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서 따뜻하지 뭡니까!”

“아니, 어찌 그럴 수가 있소?”

“마초 장군은 실로 영웅호걸이구려!”

좌중의 원소군 장수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용히 앉아서 나관중의 말을 듣던 마초는 과도한 각색에 민망하여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관중? 이제 그쯤 하지?”

“아니, 뭐 제가 없는 얘기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다음에는…….”

마초는 그쯤에서 나관중을 조용히 시키려고 하였으나 나관중은 이미 신이 나서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깨끗이 무시당하자 마초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관중? 그대는 벼슬이 뭐지?”

“아, 저야 비장군의 휘하에서 마궁수로 있지요. 다 아시면서?”

“네 이놈! 어르신들의 연회 자리에 어찌 마궁수 따위가 끼어든다는 말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마초가 버럭 화를 내자 나관중은 기가 팍 죽어서 입을 닫았다. 그러자 다급해진 것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던 원소군 장수들이었다. 모사 심배가 나서서 짐짓 근엄한 태도로 마초에게 말했다.

“마 공자, 이 자의 말솜씨가 범상치 않으니 어찌 마궁수인 줄 알겠습니까?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 보시지요.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그때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마초는 기가 막혔으나 원소군 장수들이 나관중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초의 눈치를 살살 보던 나관중은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뒷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뒷목을 잡고 나관중의 이야기를 듣던 마초는 민망함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뒷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영명, 부탁한다.”

“아아, 그래. 마궁수 선생,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방덕은 의외로 이런 쪽을 좋아하는지 흥미롭게 나관중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원소군의 장수들은 마초가 나가거나 말거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나관중이 풀어내는 이야기에만 심취해 있었다.

마초 일행이 원소군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 사정은 이렇다.

흑산적의 영역으로 돌입해서 양하원을 구출, 상산으로 돌아오던 마초 일행은 장연이 이끄는 본대와 마주쳤다. 패색이 짙어졌을 때 장연과 조운, 두 사형제 간에 생사결이 벌어졌고 여기서 조운이 승리하며 장연은 사망했다.

대두령이 전사하자 흑산적들은 구심점을 잃고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호타하를 건너서 진군한 원소군은 크고 작은 싸움에서 연일 승전보를 전해 오고 있었다. 게다가 흑산적은 원소군에게 죽고 다치는 숫자보다 내부에서 와해 되어 도망치는 숫자가 더 많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산 전투의 대승으로 하북의 패권이 원소에게 결정적으로 기울어진 건 분명하다.’

이로써 원소는 객장 마초를 활용하여 상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마초는 원소의 군사를 빌려서 양하원을 구출할 수 있었다. 의종은 마초의 주선을 통해 원소에게 귀부해서 상산국의 관군이 되었다. 그러니 외부 세력의 위협에서 상산을 지킨다는 의종의 목적도 달성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조운의 입장이었다.

조운은 바로 몇 달 전까지 원소의 적대세력인 공손찬군에 있던 무장이다. 의종과 함께 귀부하여 상산도위가 된 하후란처럼 원소의 벼슬을 받을 수도 없었다. 상산 전투에서 원소군에 속해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도 난감해했다.

“비록 상황이 부득이하여 그리되었지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공손백규 장군 휘하에는 아직도 나를 따라갔던 단원들이 일부 남아있으니 그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네. 그러니 이 공은 맹기 자네가 세운 것으로 해 주게.”

마초도 처음에는 민망함에 거절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세가 부득이했다.

‘장연이 아무리 흑산적이라도 조정에서 정식으로 인수를 받은 평난중랑장이다. 지금 떠돌이 무사나 마찬가지인 자룡이 장연을 죽였다는 게 알려지면 자룡이 위험해진다.’

위명이라는 것도 결국 신분과 지위가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초도 수긍하고 대외적으로 장연을 죽인 건 마초 자신인 것으로 선전하기로 했다.

‘나는 정서장군의 장자이니 부패한 관원이 이걸 빌미로 행패를 부릴 수 없다. 서량은 기주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으니 흑산적들이 복수하러 찾아오는 것도 무리다. 나라면 괜찮겠지.’

그래서 나관중에게 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내서 둘러대라고 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나관중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엄청난 무용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양하원과의 사이에 있었던 손발이 수축되는 것 같은 문답은 숨기고 싶었지만, 나관중이 거리낌 없이 떠들고 다녔다.

“태양 소저가 뭐야? 태양 소저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늙으니까 감수성만 풍부해졌나?”

마초는 한탄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어쨌든 태양이라고 불린 양하원 본인은 마초의 과도한 언사에 상당히 흡족해하며 지난 과오를 용서하기로 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혼자 숙소로 돌아온 마초는 조운과 마주쳤다. 연회 자리가 불편했던 조운 또한 먼저 숙소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마침 잘 됐군. 자룡 자네와 할 말이 있다.”

늦은 밤에 두 남자가 술 대신 차를 놓고 마주 앉았다. 조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할 말이라는 게 무엇인가?”

마초는 조운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배어 나왔다.

“자룡, 자네 이제 갈 곳이 없지?”

“갈 곳이라…….”

조운은 친형의 상을 핑계로 공손찬군을 사직하고 고향인 상산으로 돌아왔다. 공손찬군은 장연의 흑산적과 동맹관계다. 그런데 탈상을 하자마자 원소군과 함께 흑산적과 싸웠다.

의종의 단주 하후란은 원소에게 상산도위 벼슬을 받고 의종 단원들은 도위 휘하의 관군이 되었다. 그러나 조운은 입장상 원소에게 관직을 받을 수 없었다. 조운 본인도 그럴 의지가 없었다.

“맹기, 자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고맙네. 허나 나는 관직이나 군공에는 관심이 없네. 의로운 칼이 필요한 곳이 곧 무사가 있을 곳 아니겠는가? 상산의 정세도 안정되지 않았으니 아직 내가 할 일이 있을 걸세.”

“관직, 군공, 녹봉… 그래, 무사의 삶에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러나 그것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도 맞지 않는가? 나와 함께 정서장군을 섬기세. 자네의 재주라면 중하게 쓰일 걸세. 그건 내가 보증하지.”

마등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인물이다. 조운이 마가군에 들어온다면 틀림없이 중용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맏아들로서 떼를 써서라도 조운을 중용하게 만들 참이었다.

“자네가 마음을 써 주는 건 정말로 고맙네. 하지만 나는 달리 할 일이 있을 듯하니 상산에서 마방을 맡아 보면서 때를 기다리겠네. 결코 자네와 정서장군을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님을 이해해 주게.”

조운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마초는 조운이 그렇게 말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까 참으로 아쉽군.”

“미안하네, 진심으로.”

“뭐 선택은 자네의 몫이니까. 다만 이유는 들어 보세. 혹시 평원상 때문인가?”

평원상이란 청주 평원국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말한다. 국의 상은 군의 태수와 동격이니 상당히 높은 관직이다.

이 시기의 평원상은 유비, 자는 현덕.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 사람이었다.

조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맹기, 자네가 평원상을 아는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지. 혹시 자네 나중에 평원상을 따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네.”

조운은 솔직했다.

“이 난세는 무장 하나의 힘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어. 단순한 군웅이 아니라 천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보기에는 평원상이 그런 인물이라고 보였네. 나중에 그분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분과 함께할 생각이네.”

“그런가. 알았네.”

마초는 길게 묻지 않았다. 유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마초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 오랫동안 유비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사람 홀리는 재주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힌 양반이라니까.’

조운이 다시 말했다.

“미안하네. 그러나 맹기 자네가 보여준 의로움은 잊지 않겠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의종은 온전치 못했을 걸세.”

“미안하면…….”

마초는 조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지? 내가 장연과 싸워야 할 때 자네 부탁을 들어준 것처럼.”

“그러세. 뭔가?”

조운은 부탁이 뭔지 듣지도 않고 선선히 승낙했다.

‘하여튼 고지식한 놈. 내가 뭘 부탁할 줄 알고 이렇게 쉽게 승낙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운의 남자다운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마초는 품속에서 술병을 하나 꺼냈다.

“이건 말젖을 발효해서 만든 마유주. 초원의 유목민들이 즐겨 먹는 술이지. 이걸 나눠 마시고 의형제가 되도록 하세.”

“의형제? 그건 좋지만, 문제가 하나 있네. 따져보니 자네보다는 내가 나이가 많은데, 내가 형이 되면 자네가 필요할 때 부탁하기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굳이 마유주까지 구해 왔지.”

마초는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초원의 의형제를 ‘안다’라고 하네. 우리 말로 보통 의형제라고 하는데 사실 맹우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군. 안다끼리는 높고 낮음이 없는 동등한 사이일세. 이제부터 서로에게 안다가 되도록 하세.”

“뭔지 알겠군. 일전에 선비족들이 비슷한 풍습을 가진 걸 본 적이 있네.”

“원래 선비족 풍습이야. 지금은 우리 동네 강족들 사이에서 대유행이라 좀 따라해 봤지. 이렇게 나보다 나이 많은 분과 자연스럽게 의형제도 맺고. 선비족들은 아버지뻘하고도 안다를 맺더라고.”

“그렇게 하세.”

조운은 흔쾌히 승낙했다. 두 사람은 초원의 풍습대로 마유주를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형제여, 그대의 어려움을 내가 함께 나눌 것을 맹세한다.”

“형제여, 그대의 원한을 나의 원한으로 여길 것을 맹세한다.”

“형제여, 그대에게 받는 만큼 그대에게 줄 것임을 맹세한다.”

“어때?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을 때는 한날한시에 죽자, 뭐 이런 것보다 합리적이지? 이민족 풍습이라도 좋은 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확실히 그렇군.”

정담을 나누는 사이 가죽 부대에 든 마유주 한 병이 다 떨어졌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안다가 된 것이다.

‘마가군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자. 언젠가 안다의 이름으로 자룡의 도움을 크게 받을 날이 있겠지.’

마초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멀리서 동이 텄는지 방 안으로 희뿌연 빛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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