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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37화 (37/306)

37화. 일신시담

장연은 5천 기를 이끌고 전장을 가로질러 의종 근처로 접근했다. 5백 기에 불과한 의종보다 열 배 많은 병력이었다.

기병대를 정렬시킨 장연은 철창을 들고 대열의 앞으로 나섰다. 상대편에는 두 청년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자룡, 그리고 무모한 놈. 역시 네놈들이군.”

장연은 먼저 마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모한 놈, 대체 네놈은 진짜 이름이 뭐냐? 조자룡이냐, 아니면 염행이냐?”

“마초다.”

“허, 역시 그랬군. 정서장군 마등의 아들이 이렇게 사기나 치고 다니는 놈이었을 줄이야.”

“인간쓰레기는 등쳐먹어도 된다는 주의라서. 여기까지는 뭐 하러 왔냐?”

“네놈이 납치해 간 내 신부를 되찾으러 왔다.”

마초는 하늘을 바라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으하하하, 납치해간 신부? 등신 같은 놈, 그 여자는 원래 내 정인이다.”

“멍청한 놈, 그래서 정인을 되찾으러 천 리 길을 달려왔나? 멍청한 짓의 대가는 죽음으로 치러라.”

장연은 부하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때 조운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사형.”

“아, 자룡이냐.”

“어째서 원소와 싸우는데 우리 단원들을 미끼로 쓰려고 하셨소? 얘기를 들어 봅시다.”

“어째서냐고?”

장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했다.

“그걸 정녕 몰라서 묻느냐? 너희를 미끼로 쓰는 게 이길 확률을 가장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것뿐이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내 손에 달린 목숨이 백만에 달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나에게 사사로운 정으로 합당한 계책을 쓰지 말라는 말이냐?”

“사형은 사부님의 가르침을 잊으셨소?”

“아아, 가르침. 그 개똥 같은 가르침.”

장연이 조운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이무회우, 이우보의. 무로서 벗을 만나고, 벗으로서 의롭게 된다. 뭐,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자룡, 너도 이제 스물둘이나 먹었으니 정신을 차려라. 세상일이 그렇게 성현들 말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무슨 뜻이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다. 오로지 그것만이 불변의 법칙이다. 나를 봐라. 내 손으로 부모 형제를 살해했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느냐? 왜 그렇겠느냐? 오직 내가 강하기 때문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마초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못 참고 끼어들었다.

“어허, 이거 완전히 패륜아구만. 내가 개인 사정으로 어지간한 패륜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는데 네놈은 좀 심한걸?”

“무모한 마초. 너는 패륜에 대해 아나?”

장연이 마초를 노려보며 말했다. 심각한 순간이었지만 장연이 패륜을 말하자 마초는 왠지 무안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응? 아아… 그야 남들만큼은 알기는 아는데…….”

“패륜을 저지른 자는 강해진다. 패륜을 저지른 자에게는 평범한 자들이 보지 못하는 영역이 보이게 되지.”

“그래?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던걸.”

장연은 마초가 말끝마다 토를 달자 상당히 짜증이 났다. 마초는 진심이었지만 장연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어쨌든 상관없다. 너희들은 둘 다 여기서 죽을 것이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네놈이 천자라도 될 셈인가? 여기 상산을 도읍으로 하고? 장씨 천자라니 아주 볼만하겠군.”

마초가 이죽거리자 장연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저 청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리라.

자신과 어머니를 한자리에서 겁탈한 상산왕 유간이 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이 죽인 것은 아들을 범한 아버지와 아들을 상납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나 또한 황실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제후왕의 얼자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했다. 그것이 황실의 종친이라는 이유로, 유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버지 같은 인간에게 왕작을 준, 한에 대한 그 나름의 복수였다.

장연은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마초를 보며 물었다.

“내 신부는 어디에 있나?”

“글쎄, 나를 사로잡고 고문이라도 해 보겠어? 그러면 가르쳐 줄지도 모르지.”

“저 마초라는 놈을 죽여라.”

장연은 마초가 이죽거리는 말을 무시하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난전 중에 신부를 빼돌렸다 한들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마초를 잡아 죽이고 신부는 따로 찾아내면 그만이다.

장연이 직접 육성한 흑산적 기병 수백 기가 마초의 앞으로 달려왔다.

“개떼처럼 많이도 몰려오는군.”

마초는 씩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장도를 뽑아 들고 왼손으로는 창을 비껴 잡았다. 전부 당해 내는 건 무리겠지만 조운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장연의 등 뒤에서 조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형, 상산창술의 전인으로서 생사결을 청하오!”

장연은 조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내 실책으로 네놈을 살려 둬서 많은 부하들을 죽게 만들었으니 내 손으로 네놈 목숨을 거둬야겠다.”

장연은 천천히 말을 몰아 조운 쪽으로 다가갔다. 10장 거리로 접근하자 별안간 조운이 말에서 내렸다.

“무슨 짓이냐?”

“땅 위에서 겨룹시다. 그렇게 해야만 사형에게도 승산이 있소.”

“자룡, 관직을 하더니 많이 건방져졌구나.”

장연은 픽 웃더니 말에서 내렸다. 땅에 발을 딛고 철창을 든 조운과 장연은 서로 다섯 장 거리까지 다가간 후 대치했다.

“네놈이 코흘리개 어린애일 때 이미 상산창술의 전인이 된 나다.”

부우웅.

장연이 철창을 허공에 한 번 돌렸다. 열 근에 달하는 묵직한 철창이 수숫대처럼 가볍게 허공을 가르고 바람이 일었다.

“상산창술의 전인이란 결국 절기 애각을 터득한 자. 전인끼리의 승부는 애각의 위력에 따라 갈린다는 것을 잊었느냐? 십 년이 넘게 갈고 다듬은 나의 애각이다. 고작 삼 년 전에 터득한 네가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 텐데?”

“무를 통해 벗을 만나고, 벗을 통해 의롭게 된다.”

장연의 물음에 조운은 대답 대신 의종의 구호를 읊조렸다.

“전인이란 이무회우 이우보의를 실천하는 자. 사형은 의종의 정신을 잊었으니 이미 전인이 아니오. 그러니 나는 지지 않소.”

조운은 철창을 앞으로 내밀어 장연을 겨누었다.

“하하하, 자룡아. 네가 살아 온 세상에서는 그런 꿈 같은 소리가 먹히더냐? 그래, 너는 본래 성도 있고 자도 있는 사대부 집안의 자식이니 그럴 만도 하지. 헌데 말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런 달콤한 말로 되는 곳이 아니었다. 세상은 아귀들이 사는 지옥이다. 아귀지옥을 살아가는 요령은 따로 있는 법이다.”

조운은 더 듣지 않았다. 보법을 밟으며 장연을 향해 창을 찔러 갔다.

“세상이 아귀지옥이라면.”

조운의 찌르기에 맞춰서 장연도 창을 찔러 왔다.

깡!

허공에서 두 자루의 철창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그 지옥에 떨어진 사형은 무엇을 하셨소? 그저 똑같이 아귀가 되려고 하셨소?”

조운과 장연은 동시에 창을 감아 돌렸다. 창대를 통해 두 사람이 힘 대결을 하게 되었다.

“아니. 아귀들보다 더 악랄해지기로 했지.”

콰직!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로 땅바닥을 강하게 굴렀다. 몸의 중심을 낮추는 힘을 창대에 전달해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고자 함이었다. 강한 발 구름에 흙바닥이 패었다.

“내가 가장 악랄한 아귀가 되어 놈들을 전부 잡아먹을 것이다. 썩어빠진 호족도, 사대부도, 황실도, 그리고 이 빌어먹을 한나라도. 창천(蒼天)은 이제 끝이다.”

텅!

장연이 가진 공력은 실로 웅혼했다. 두 사람의 창대가 팽팽하게 맞서 힘을 겨뤘지만 결국 장연의 창대는 제자리에 남고, 조운의 창대는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조운은 재빨리 뒤로 보법을 밟아서 거리를 유지했다.

“공손찬의 휘하에 있을 때 평원상 유비를 만났소. 그가 그러더군요. 세상은 아귀지옥이니 승리하려면 아귀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은.”

조운은 가슴 높이에서 창을 눕혀 장연에게 겨눴다. 상산창술 절기 애각의 자세였다. 아직 그는 초식의 숙련도도, 내공의 심후함도 장연에게 미치지 못한다. 절기로 한방 승부를 보려는 참이었다. 장연도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같은 자세를 취했다.

“패배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 하는 말이라고.”

조운과 장연이 동시에 진각을 밟으며 창을 찔러 들어갔다.

조운은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 느껴졌다. 자신의 창끝이 장연의 창 끝을 향해 정확히 발출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창끝이 서로 부딪힌 순간, 조운의 창날이 깨져나갔다.

콰장창!

굉음과 함께 조운이 뒤로 날아갔다. 철창의 날이 산산이 부서졌다. 자루도 창날에 가까운 쪽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듯이 길고 날카롭게 깨져나갔다. 반면 장연의 철창은 멀쩡했다.

“자룡, 이게 너와 나의 실력 차이다. 애각이라고 다 같은 애각이 아니다.”

장연은 담담했다.

“패배할 용기? 어디서 웃기는 말을 듣고 왔구나. 그런 건 이 난세에 세력을 일구지 못한 자의 궤변에 불과하다. 나처럼 승리하려는 자가 취할 만한 말이 아니다. 그런 궤변이나 늘어놓는 자가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조운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깨진 창대를 오른손에 들고 자연체의 자세를 취했다. 그런 그를 향해 장연이 다시 한번 창을 내밀어 애각의 자세를 취했다.

“잘 가라, 자룡. 너는 역사에 남을 만한 재능이 있었으나 삶의 방식을 잘못 택했다.”

장연이 조운을 향해 창을 찔러 가며 애각을 발출했다.

조운은 자연체를 취한 채 가만히 찔러 들어오는 창을 바라보았다.

애각은 절벽에 창흔을 새길 정도로 강력한 찌르기 기술이다. 그러려면 온몸의 힘을 모아서 창날로 발출해야 한다. 힘이 창날 끝의 한 점에 실리는 것이 아니라 창날 끝에서 창대 끝까지 이어지는 선에 실리도록 해야 한다. 창끝이 아니라 창 전체가 강력한 힘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조운은 온몸의 힘을 빼고 찔러 오는 창을 마주했다. 그리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장연의 창끝은 공기를 가르고 조운의 왼쪽 가슴께까지 도달했다. 그대로 심장이 뚫리는 듯 보였다.

‘지금이다!’

그 순간, 조운은 온몸의 진기를 끌어올려 급격하게 폭발시켰다. 몸이 팽이처럼 돌면서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퍼억!

창끝이 조운의 가슴팍을 길게 스치며 선혈이 낭자하게 튀었다. 창대 전체에 실려서 근처까지 느껴지는 강력한 힘이 조운이 회전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심장에는 닿지 못했다.

창 전체에 실린 힘을 몸으로 받아 흘려보내자 조운의 회전은 더욱 강해졌다. 강한 찌르기 공격을 최대한 몸 가까이 끌어들여, 상대가 발출하는 진기를 역이용하는 초식이었다. 장연이 발출하는 강맹한 힘은 그대로 조운이 회전하는 힘으로 변환되었다.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킨 조운이 부러진 창대를 쥔 오른손을 쭉 뻗었다.

콰직!

두 사람의 신형이 교차했다.

장연은 철창을 든 채 두세 발짝을 걸어가다 멈췄다. 가슴에 부러진 창대가 박혀 있었다.

“실로… 놀랍구나, 자룡.”

짧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상대 공격을 맞으면서 반격하다니 대담하기 짝이 없구나. 애각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한 초식이냐?”

“그렇소. 정확히는 사형과 싸울 때를 대비한 것이오. 앞으로는 상산창술의 또 다른 절기가 될 것이오.”

“그런가. 내 창이 한 치만 깊게 들어갔으면 너는 즉사했을 것이다. 한 치만 얕게 들어갔으면 네 창은 나에게 닿지 못했을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 한 치를 정확하게 봤구나. 실로…….”

장연은 비틀거리며 두어 발짝을 더 걷다가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패배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절기로군. 훌륭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하의 꿈도 이대로 끝인가. 그러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 창천이었다. 장연은 창천을 바라보며 자신이 꿈을 위해 희생시킨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쌍둥이 형들과 동문 사형제들과 부하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사라져갔다.

“아무런 후회도 들지 않는 걸 보니 나도 썩 괜찮은 인생을 살았군.”

장연은 땅에 무릎을 꿇은 채 광소를 터뜨렸다.

가슴에 난 상처를 대강 지혈한 조운은 웃고 있는 장연을 바라보다 조용히 등을 돌리고 자신의 군사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장연의 물음이 들렸다.

“대담한 사제여, 내 목숨을 앗아가는 이 절기… 이름이 무엇이냐?”

조운은 제자리에 멈추고 고개만 돌려서 등 뒤의 장연을 쳐다보았다.

“상산창술 조가식, 일신시담(一身是膽).”

장연은 절기의 이름을 듣고 낮은 소리로 웃었다. 폐가 상했는지 웃음소리에 바람 소리가 섞여 나왔다.

“그래, 너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온몸이 담덩어리로 된 너에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장연은 말이 없었다. 잠시 동안 굳어 있던 그가 이윽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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