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33화 (33/306)

33화. 상산 전투 (1)

상산 북쪽을 흐르는 강, 호타하.

흑산적 우저근은 호타하의 북쪽에서 원소군의 도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소군의 선봉장 순우경은 본래 낙양에서 서원팔교위로 금군을 지휘하던 명장이다. 그러니 진정현에 나가 있는 3천 병력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순우경이 진정현의 3천 병력을 전멸시키고 기세를 올리며 호타하를 건너는 때에 맞춰, 인근 산에서 매복하고 있던 우리의 2만 군사가 한꺼번에 순우경의 군대를 들이친다. 대두령이 알려준 책략이 실로 이치에 맞다. 이 책략이라면 순우경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대두령 장연에게 직접 훈련받은 창진에도 이제 어지간히 자신이 붙었다. 강을 건너다 공격을 받아서 발이 묶인 기병대 정도는 이 창진으로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기병은 달릴 수 있어야 기병이 아닌가?

그렇게 기대하며 순우경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우저근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두령, 우저근 두령!”

“무슨 일이냐?”

전령은 숨이 곧 넘어갈 듯이 달려와서 우저근 앞에 말을 세우고 뛰어내렸다.

“급보! 동쪽에서 적의 기병대가 나타났습니다!”

“뭣이?”

호타하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상대 기병대는 이미 호타하를 건넜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병이 무슨 수로 강을 건너왔다는 것이냐? 동쪽 백 리 지점까지 우리가 다 확보해 두고 있지 않느냐?”

“그게 하곡양까지 우회해서 강을 건너온 모양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랬다면 지금보다 삼 일은 더 걸렸을 텐데!”

적이 원소군 선봉대에서 갈라져 나와서 하곡양으로 우회했다면 엿새는 걸렸을 거리이다.

그 거리를 불과 삼 일 만에 주파했다는 말인가?

“이런 제길! 산을 내려가서 진형을 취해라. 일단 동쪽에서 오는 놈들을 상대한다.”

우저근은 당혹스러웠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빠른 행군을 했다면 적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피로가 쌓여 있을 것이다.

‘잡을 수 있다. 우리가 훈련한 창진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잡을 수 있어. 그놈들부터 때려잡은 후 남쪽에서 도하하는 순우경군을 상대하면 된다.’

우저근은 그렇게 다짐했다.

* * *

하곡양 쪽으로 우회한 마초의 병사들은 총 일천 기였다.

마초가 서량에서부터 데려온 마가군의 추격대가 500, 그리고 의종의 단원들로 편성한 기병대가 500기였다. 서황이 이끄는 원소군 기병대와 하후란이 이끄는 치중대는 순우경의 본대와 함께 있었다.

의종이 전문 기병이 아니라서 다소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의종은 말 장사를 하면서 창술을 수련하는 집단이다. 갑옷을 입으면 그대로 강력한 기병대로 변신하는 것이 의종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강행군도 이렇게 잘 따라올 줄은 몰랐군. 마가군의 행군 속도는 천하제일인데 말이야.”

마초는 조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단원들이 조금 힘겨워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행군으로 많이 배웠네.”

조운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초와 조운은 같이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다. 감정 없이 주먹을 나눈 상대끼리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함께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기 마련이다.

“피곤하겠지만 지금 바로 전투해야 할 것 같군. 문제없겠나?”

“물론. 사기는 최고조다.”

조운이 대답하자 마초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월길, 상대의 배치는?”

“병력은 약 2만, 그중에서 1장이 넘는 장창을 쓰는 창병이 약 4천입니다.”

“그들이 핵심이군. 창병들이 선봉에 서서 우리 기병대를 맞이할 것이다.”

장창은 운용이 까다로운 병기다.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굳이 포함시킨 부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장창병이 펼치는 창진을 어떻게 깨느냐가 이번 전투의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흑산적의 창진 정도는 내가 아니라도 잘 깰 수 있는 사람이 있지. 방덕, 준비하라!”

“분부대로.”

방덕이 말에 채찍질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마가군 500기가 일사불란하게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방덕이 이끄는 마가군은 호타하를 좌측에 두고 옆으로 길게 늘어진 횡대를 취했다. 마초는 조운이 이끄는 의종과 함께 우익에 자리하고 있었다.

멀리 우저근의 흑산적 진영이 창병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보였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창진을 깨 볼까.”

두두두두.

방덕이 수신호를 하자 마가군이 좌우로 갈라졌다. 우렁찬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일사불란하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기병들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두 갈래의 마가군 기병들이 각자 대각선으로 말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장창병은 창진을 만든 채로 돌격하는 기병을 기다릴 경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기병이 돌격하지 않는다면?

마가군 기병들이 창병 쪽으로 다가가지 않고 두 갈래로 갈라지자 흑산적 창병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야, 돌격하지 않는 건가?”

“대체 저놈들은 뭐야?”

웅성거리던 흑산적 창병들 중 눈이 좋은 누군가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궁기병, 저놈들은 궁기병이다!”

“뭣이?”

흑산적들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양옆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퍼퍼퍽!

“으아아악!”

대각선 두 갈래로 갈라진 마가군 기병들이 양쪽에서 십자포화를 날렸다. 목표는 흑산적 창병대였다. 양쪽에서 화살이 날아드니 피할 재간이 없었다.

원소군의 주력 기병대는 중기병이다. 흑산적이 연마한 창진도 중기병의 돌격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대해야 하는 것은 경장 궁기병이었다.

마가군 기병대 500기는 열 발이 든 전통 한 개를 다 비웠다. 양쪽에서 5천 발의 화살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자 흑산적이 만든 창진은 어지럽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제길, 대형을 재편하라! 양쪽을 막아라!”

우저근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창병들을 독려했지만 이미 흐트러진 전열을 수습하기는 쉽지 않았다. 간신히 화살이 날아오는 양쪽으로 방패병들을 배치했을 때, 마가군의 움직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좋아, 달려라.”

방덕의 신호가 떨어지자 마가군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각선 좌측에 있던 300기는 그대로 흑산적 진영을 좌측에 둔 채 옆으로 달렸다. 대각선 우측에 있던 200기도 흑산적 진영을 좌측에 둔 채 앞으로 달렸다.

500명의 마가군 기병대는 달리면서 그대로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이러기 위해 몸의 왼편에 적을 둔 것이다.

“뭣이, 달리면서 활을 쏜다고!”

흑산적들이 놀라서 탄성을 지르기도 전에 화살이 파고들었다. 채 피하지 못한 흑산적들이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저근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궁병, 궁병을 앞으로 보내!”

그러나 궁병대를 전진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4천이나 되는 많은 수의 장창병이 패착이었다. 흑산적의 창진 앞에 나타난 마가군 궁기병은 고작 5백에 불과했지만,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흑산적 궁병대는 4천 장창병에 가로막혀서 마가군 궁기병을 요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흑산적들이 힘겹게 대열을 재편하는 동안 마가군은 두 번째 전통을 깨끗이 비웠다.

후방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초가 나직하게 말했다.

“정예 보병대라면 궁기병을 만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흑산적, 우리 마가군과는 훈련도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그러다 보니 진형을 바꾸는 동안 500기의 마가군 궁기병에게 일인당 20발씩, 총 1만 발의 화살을 맞게 된 것이다.

우익에서 대기하던 마초와 조운에게도 흑산적 궁병대가 전진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내 차례로군. 절영을 끌고 오너라!”

마초가 호령하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흑갈색 털에 금빛 갈기가 난 거대한 말을 데려왔다. 의종에게서 받은 명마 절영이었다. 마초는 그대로 말 위에서 몸을 날려 절영으로 옮겨 탔다. 절영은 최대한 체력을 아껴 두었다가 돌격할 때만 쓸 셈이었던 것이다.

조운도 평상시 타는 말보다 훨씬 체격이 큰 말로 옮겨 탔다. 눈부시게 하얀 털을 가진 백마였다.

“부탁한다, 백룡.”

조운은 백마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백마 백룡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돌격이다!”

절영을 탄 마초가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 백룡을 탄 조운과 의종의 500 기병대가 그 뒤를 따랐다.

기병대는 저마다 긴 창을 틀어쥐고 있었다. 흑산적들이 창진으로 막으려고 했던 바로 그 돌격기병이었다.

그들이 돌격하는 길의 끝에는 흑산적 궁병대가 있었다.

“쏴라! 저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흑산적 우저근은 돌격기병이 나타나자 기겁을 해서 소리쳤다.

그러나 일제사격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전법이다. 일제사격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정예병이라고 할 만하다. 우저근이 이끄는 선봉군이 흑산적 중에서는 나름대로 강병들이었지만 대규모 전투의 변수에 대응하기에는 지휘관의 지휘 능력도, 부대의 훈련도도 턱없이 부족했다.

마초는 적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하자 조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룡, 나는 먼저 돌입한다! 부대를 이끌고 따라와라!”

마초는 그 말을 남기고는 절영에게 채찍질을 해서 달려 나갔다.

“알았다, 맹기. 뒤에서 보고 있다가 위험해지면 구원하겠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는 뜻에서 절영이라는 이름이 붙은 말이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절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부우웅.

몸을 한껏 숙였지만,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압력이 마치 몸을 날려 버릴 듯했다.

돌격하는 의종 기병대의 선두에서 흑갈색 말 한 마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절영을 탄 마초는 흑산적 궁병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일제사격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빨리 궁병대에 충돌했다.

콰직!

마초의 창이 상대를 꿰뚫었다. 마초는 그대로 창을 위로 크게 들어 올렸다. 창에는 세 명이 꿰어져 있었다. 마초는 적병 세 명이 꿰어 있는 첫 창을 그대로 버리고 말 안장에 꽂아 놓은 두 자루의 창을 양손에 들었다.

따로 고삐를 조작하지 않아도 절영은 마초의 마음을 아는 듯이 움직였다. 상대의 움직임을 피해 가며 전장을 휘젓기 시작했다. 마초가 양손에 들고 있는 두 자루의 창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가는 곳마다 피를 뿌렸다.

콰직!

흑산적들이 마초의 무예에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조운이 이끄는 의종 기병대가 다시 한번 대열에 충돌했다.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려면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 대형은 이미 마초에 의해 와해된 후였다.

단 1기가 돌격해서 궁병대의 진형이 망가진 것이다.

“좋아, 너무 오래 머무를 필요 없지. 창병대로 간다!”

마초는 그대로 궁병대의 진영을 헤집고 창병대 쪽으로 돌진했다. 그가 가는 곳에 그대로 길이 열렸다. 가끔 저항하는 부대가 있었지만, 절영을 탄 마초에게는 대적할 수 없었다.

퍽! 퍽!

마초가 두 자루의 창을 크게 돌리면서 휘두르자 순식간에 마초의 곁에 불가침의 원이 그려졌다. 원의 지름은 창의 길이와 일치했다.

흑산적 궁병대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무모한 돌격을 감행한 1기가 아군인 흑산적 진영의 중심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저 1기를 잡으려면 아군을 향해 화살을 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궁병대의 걱정은 곧 해소되었다. 마초가 진영을 흐트러뜨리자 바로 조운이 이끄는 의종 기병대가 돌격해서 육박해 왔기 때문이다. 조운을 상대해야 하니 마초를 상대하는 것을 걱정할 여유가 없어졌다.

“으아아악!”

마초가 긴 직선을 그리며 달리는 길을 따라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달리면서 흘긋 뒤를 보니 대열이 무너진 흑산적 보병들은 일방적인 살육을 당하고 있었다. 창에 찔려 죽는 자보다 말발굽에 밟혀 죽는 자가 많고, 적의 말발굽에 밟혀 죽는 자보다 등을 돌리고 도망치다가 아군에게 밟혀 죽는 자가 더 많았다.

조운과 의종 기병대가 그렇게 궁병을 무너뜨리는 사이 마초는 적진을 돌파해서 창병 대열의 뒤에서 나타났다.

천하제일의 무장이 누구일까?

여러 사람이 여러 답변을 할 것이다. 그러나 천하의 누구라도 지금 마초를 봤다면 저 사내 또한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인정할 것이다.

창진을 갖추지 못한 창병들은 등 뒤에서 나타난 명마를 탄 무장에게 힘없이 쓰러져 갔다. 마초는 마치 풀을 베듯이 쉽게 적들의 수급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저놈만 잡아라! 그러면 이길 수 있… 컥!”

각자 백 명 남짓을 지휘하는 소두령들이 부하들을 독려해서 기를 쓰고 마초를 잡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그중에 특히 위협적인 소두령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고 누구 손에 죽는지도 모르는 채 세상을 떠났다. 방덕이 날리는 화살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마가군 500과 의종 500, 고작 1천 명의 기병대 앞에 흑산적 2만 선봉군의 대형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있었다.

“도부수를, 도부수를 보내!”

우저근은 벌써 쉬어버린 목으로 연신 소리를 쳤다. 도부수를 보내서 말 다리를 찍을 셈이었다.

그러나 사기가 꺾인 부대는 급격하게 무너진다. 도부수들은 도주하는 창병들을 뚫고 힘겹게 마초에게 다가가야 했다.

그리고 다가가서도 문제였다.

“건방진 놈들. 절영을 타면 낙마하지 않지!”

마초는 자신 있게 외치면서 태연하게 흑산적을 도륙해 나갔다. 마초를 태운 절영은 새 주인과의 호흡이 기쁜 듯이 전후좌우로 크고 작게 움직이며 마초를 낙마시키려는 적병들의 공세를 피해 냈다. 마치 인간의 행동 양식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영리한 말이었다.

“오오, 과연 마상 마초로군.”

“이것이 바로 절영 마초인가?”

“말 중에서는 절영, 사람 중에서는 마초가 최고로구나.”

심지어 의종의 단원들 중에도 넋을 잃고 마초와 절영의 활약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천신만고 끝에 도부수들이 겨우 마초를 포위해 갈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두령, 원소군 놈들이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빨리 틀어막아! 별동대를 보내라!”

“그것이… 이미 중기병 1500기가 먼저 도하에 성공했습니다.”

“어째서 중기병이 그렇게 빠르게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냐! 대체 어떤 놈이 지휘하길래!”

우저근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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