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32화 (32/306)

32화. 여포가 했던 걸 나는 못 할 것 같나

업성, 기주목의 치소.

장연을 치기 위해 출정 준비를 마친 기주목 원소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얼마 전 상산 유협집단 의종의 귀부를 주선하고 돌아간 마초였다.

“그래서, 마 공자의 이야기는 나보고 기병과 치중을 내어 달라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장연의 본영에 아직 처녀 한 명이 잡혀 있습니다. 저에게 기병과 치중을 빌려주십시오.”

원소는 마초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원소군은 이제 장연을 치기 위해 출정한다. 원소와 마초가 원래 약조한 바는 마초가 이끄는 500 기병대는 첫 전투에서 마가군의 깃발만 올려서 서량의 마가군이 원소군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첫 전투에서 잡은 포로들을 학살하고 마가군의 소행으로 꾸며서 잔혹한 서량 기병대가 참전했다고 선전하려 했다. 흑산적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

그런데 마초는 지금 흑산적 본영을 직접 들이칠 테니 군사를 빌려달라고 청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소의 계획이 틀어진다.

원소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 공자를 돕고는 싶으나 상황이 다소 곤란하게 되었소. 우리는 장연을 치기 위해 내일 바로 출정하려던 참이오. 상산으로 대병력이 진군하면 상대도 반격에 나설 것이오. 첫 번째로 큰 싸움이 벌어질 만한 곳은 아마도…….”

원소가 모사 곽도를 흘끗 돌아보자 곽도가 대신 대답했다.

“상산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큰 평야를 끼고 있는 곳, 진정현이 될 것입니다.”

마초 일행이 진정현령 조백을 베고 잡혀 있는 처녀들을 구출해 온 바로 그곳이었다.

“공자도 알다시피 흑산적은 훈련도가 낮은 보병 위주이지만 그 숫자가 많소. 그런 그들에게 타격을 입히려면 첫 싸움에서부터 기병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오. 그러니 기병을 빌려 드리기는 어렵소이다.”

“그 역할을 제가 하겠습니다.”

마초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역할을 하겠다 함은, 전투에 참가해서 군기만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군공을 세우겠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명공께서도 기병을 잘 다루는 무장이 필요하실 것입니다. 본래 여포의 귀부를 받아들여 흑산적 장연을 치는 선봉으로 쓰려고 하셨지요?”

마초는 그렇게 말하고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쥐 같은 인상을 한 사내가 곽도. 원소의 친위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최측근 모사다.

풍채가 좋고 나이 지긋한 사내가 저수. 본래 기주의 호족 출신으로 입지가 탄탄한 자다.

험상궂은 중년 사내는 국의. 공손찬과 싸울 때 큰 공을 세운 무장이다.

유달리 체격이 큰 무장 두 명도 보였다. 아마 이들은 안량과 문추일 것이다.

‘장합은 보이지 않는군. 아직 직위가 낮은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주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합은 마초가 지난 생에서 겨루었던 적수 중에서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상대였다. 지금은 원소 휘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마초는 내쳐 말을 이었다.

“명공께 군사와 치중을 빌리는 대신, 여포에게 맡기시려고 했던 선봉의 역할을 제가 하겠습니다. 첫 싸움에서 흑산적의 선봉을 무너뜨려 예기를 꺾겠습니다. 대신 첫 싸움이 끝나면 저는 빌려주신 군사와 치중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흑산적의 본영으로 쳐들어가 잡혀 있는 사람을 구할 생각입니다.”

좌중이 잠시 술렁거렸다.

이번 전투에서 장연이 동원하는 병력만 십만이 넘을 것이다. 선봉의 숫자만 일만을 훌쩍 넘을 것이다.

채 스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이가, 그것도 빌린 군사를 가지고 그런 적을 깨뜨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좌중에서 한 사내가 나섰다.

“마 공자의 뜻은 잘 알겠으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흑산적들이 비록 기병 전력이 부족하다 하나, 최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연이 직접 병사들을 조련하고 있소이다. 긴 창을 든 병사들에게 창진을 훈련시켰으니 공자가 말을 잘 다룬다 한들 쉽지 않을 것이오.”

원소의 숙장, 순우경이었다.

‘순우경은 역시 구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군. 얕볼 수 없는 자다.’

순우경의 이름은 마초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조정이 장안으로 옮겨 가기 전, 낙양 조정에서 원소, 조조와 함께 서원팔교위의 일원이었다. 조정에서 금군을 이끌던 무장인 만큼 군사적 능력은 대단히 뛰어날 것이다.

“순우 장군께서 우려하시는 바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흑산적의 창진을 깰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비록 귀한 손님이시지만 군문에서는 허언이 없소이다. 꼭 그리하셔야 할 것이오.”

“물론입니다. 기병을 이끌고 첫 싸움에서 흑산적의 선봉을 깨뜨려 보이겠습니다.”

마초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곰곰이 듣고 있던 원소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좋소. 마 공자에게 기병 천오백과 치중 이천을 내어 주겠소. 기존에 선봉을 맡기로 한 순우경 장군과 공동으로 선봉에 서서 적을 깨뜨려 주기 바라오. 출진은 내일이오.”

원소가 시원스럽게 결정하자 더는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군의가 끝나고 퇴청하는 원소의 뒤에 감군 저수가 따라붙었다.

“주공,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약 마초가 패하기라도 한다면 우리 군의 사기가 꺾입니다.”

원소는 저수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저 마초라는 애송이는 우리가 군사를 빌려주지 않으면 자기 혼자서라도 쳐들어갈 기세였네. 어차피 흑산적 포로를 학살하고 마초에게 덮어씌운다는 계략은 쓸 수 없게 되었으니 마초의 능력에 한 번 걸어 보는 수밖에. 그 마등의 아들이니 기병전은 웬만큼 잘하겠지.”

“그러나 승리를 기대하기에는 마초의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이제 갓 스물이니 군을 이끌어 본 경험도 부족하고 만용을 부리기 쉬운 나이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글쎄, 그때는… 아들의 원수를 같이 갚자고 마등을 끌어들여 볼까?”

원소가 그렇게 또 다른 모략에 몰두하는 동안, 마초 일행은 원소로부터 기병대와 치중을 넘겨받고 부대를 편성하고 있었다.

마가군과 강족 전사대를 합쳐서 500기, 의종 단원들로 이루어진 기병 500기, 그리고 원소에게 빌린 1500기를 합쳐서 도합 2500의 기병대와 이를 지원할 2000의 치중대. 마초가 이끌어야 하는 병력은 도합 4500명에 달했다.

“원 기주에게 받은 천오백 기병대는 서황이 지휘한다.”

“이천 치중대는 하후란이 맡는다.”

“의종 단원들 오백 명을 기병대로 편성하고, 조운이 지휘를 맡는다.”

“마가군 기병 오백의 총지휘는 방덕이 맡는다.”

“월길은 강족 전사대를 이끌고 적진 정찰을 맡는다.”

마초는 그렇게 일행의 역할을 분배했다.

이튿날 원소군은 흑산적과의 전투를 위해 출진했다. 마초의 부대는 선봉을 맡아 가장 앞에 서서 상산을 향해 진군했다.

회귀한 이후, 벌써 몇 번이고 싸움을 거쳤지만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수만의 적과 맞서 싸우는 대규모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초는 행군을 하면서도 계속 말 위에서 전투를 구상했다.

그런 마초의 눈치를 슬슬 보던 나관중이 틈을 타서 물었다.

“비장군, 비장군.”

“음, 관중. 무슨 일인가?”

“그… 괜찮으시겠습니까? 듣자 하니 흑산적들에게 장연이 직접 창진을 가르쳤다고 하던데요. 기병이 돌격해도 보병들이 긴 창을 들고 있으면 뚫기 어렵지 않습니까?”

군문의 일을 전혀 모르는 나관중이다. 그러나 보병이 긴 창을 들고 있으면 기병이라도 뚫기 어렵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나관중의 우려와는 달리 마초의 표정에는 걱정이 없었다.

“흥, 그까짓 창진. 내가 한두 번 뚫어본 줄 알아?”

“아, 지난 생에서 창진을 상대해 보셨습니까?”

“상대해 보다 뿐인가? 아주 지겹도록 뚫어봤지. 게다가 나에게 창진을 펼친 상대는…….”

조조. 천하제일의 지휘관이다.

“…하여튼 아주 강한 놈이었지. 그에 비하면 흑산적들 따위가 펼치는 건 창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일 것이다. 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여물지 않은 풋사과 같은 놈들.”

마초는 혼자서 흑산적 욕을 한참 하고는 다시 나관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래 상산 전투에서는 여포가 선봉에 서서 흑산적을 꺾었던 바 있지.”

“예, 제가 아는 역사도 그렇습니다.”

“여포가 했던 걸 나는 못 할 것 같나?”

기병을 이끄는 마초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가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야. 방덕, 서황, 조운이 함께 한다. 이 정도의 포진으로 그까짓 흑산적 선봉대를 뚫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관중 너는 구경이나 하라고.”

* * *

“삼천이라, 생각보다 병력이 적군.”

원소군의 군의가 열리는 군막 안.

선봉을 맡은 순우경과 마초는 행군의 속도 그대로 상산국을 접수하고 최북단의 진정현에 이르렀다.

진정현에 이르러서야 첫 싸움이 시작될 판이었다. 진정현에 진을 치고 있는 수비병은 약 삼천 명. 예상보다 더 적은 병력이었다.

‘이, 삼천 명을 흩어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초는 첫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그대로 독자 행동을 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이런 작은 싸움에 한 번 쓰고 만다면 마초에게 기병을 내어 준 것은 결국 손해로 끝날 것이다.’

순우경이 척후의 보고를 받고 잠시 고민하는 사이, 공동 선봉을 맡은 마초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이것은 함정입니다.”

“함정이라?”

“첫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서 우리를 우쭐하게 만들려는 교병계일 것입니다. 장연은 아마도 저 삼천 병력을 버리는 패로 써서 우리가 기세를 타고 진군하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진정현을 빠른시간에 점령하고 기세를 타서 북쪽으로 진군하게 되면…….”

마초가 탁상에 펼쳐진 지도에서 길게 늘어진 푸른 선을 짚었다.

“바로 이 강, 호타하를 건너게 됩니다. 우리가 강을 건너는 동안 적군이 쏟아져 나오면 우리는 도하를 멈추고 적을 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을 건너느라 발이 묶인 기병은 보병의 공격을 당해내기 어렵지요. 장연이 노리는 바는 그것일 것입니다.”

순우경 또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다. 마초의 확신에 찬 말을 듣자 막연하게 들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 공자의 말이 실로 옳소. 그러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소?”

“순우 장군께서는 이대로 병사들을 휘몰아 진정현을 함락하십시오. 그리고 그대로 기세를 올려서 도하 작전을 준비하십시오. 마치 적의 교병계에 걸려든 것처럼 그대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마 공자께서는?”

“제가 이끄는 부대는 동쪽에 있는 하곡양현으로 우회해서 호타하를 건널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매복해 있는 적을 들이칠 것입니다. 순우 장군께서는 때맞춰 호타하를 건너십시오. 적들은 강을 건너온 저의 부대와 맞서느라 장군의 본대가 도하하는 것을 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현을 함락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오. 마 공자가 하곡양으로 우회한다면 6, 7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 정도의 시간차가 있으면 적도 눈치채지 않겠소?”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마초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마가군의 행군 속도는 통상의 기병대보다 두 배 빠릅니다. 사흘 안에 하곡양으로 우회하여 호타하 건너편에 당도하겠습니다. 순우 장군은 이틀 안에 진정현을 함락하고 사흘째에 바로 도하를 하십시오. 제가 그곳에서 적과 싸우고 있겠습니다.”

순우경은 마초를 마주 보았다. 표정에서 젊은이의 만용이 아니라 노련한 무장의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스무 살 무렵의 애송이라고 했는데, 마치 전쟁터에서 30년을 보낸 사람 같구나.’

그러나 상대의 전략 전술을 잘 파악하고, 설득력 있게 의견을 낸다고 해서 명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구상한 전략을 실현하는 능력이다. 이 마초라는 사내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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