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늑대는 오지 않는가
초평 4년(193년), 하북에서는 기주의 원소, 유주의 공손찬, 병주의 장연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몇 달 전, 원소의 근거지 업은 장연의 침공을 받아 흑산적의 손아귀에 떨어졌었다. 공손찬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연회를 벌이고 있던 원소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귀환하여 업을 탈환한다.
업성, 기주목의 치소.
“결국 여포는 오지 않는가?”
힘 있는 목소리로 묻는 자가 기주목 원소였다. 대단히 잘생긴 용모를 한 마흔 살 전후의 사내였다. 건장한 체격과 풍성한 수염이 그의 용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만약 원소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 자라면 그의 건강이 그렇게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으리라. 눈 밑 살은 검고 안색도 좋지 못했다. 청년 시절 서원팔교위의 일원이었고 지금도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무위를 뽐내는 무골이었지만, 무예 실력과는 상관없이 원소의 몸은 이른 나이에 점차 쇠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소의 수하들은 그의 위엄에 눌려 그를 똑바로 마주보기 어려웠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귀부하기로 한 다음에 갑자기 이각이 화해를 청하며 파격적인 보수를 제시해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동탁이 지은 미오성을 여포에게 통째로 맡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답하는 자는 모사 곽도. 갸름한 얼굴에 듬성듬성한 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다. 예주 영천 출신으로, 하북의 호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원소군에서 드물게 원소의 친위 세력에 속하는 자였다.
“파격적인 보수라. 그는 철저하게 재물과 여색만 보고 움직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렇습니다. 여포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것을 보면 실로 늑대 같은 자입니다. 어쩌면 귀부가 무산된 것이 다행일 수도 있겠습니다.”
원소는 곽도의 말을 듣고 엷은 웃음을 보였다.
“패업에는 벽이 없다. 충신이라면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하면 되고, 늑대라면 먹이로 길들이면 그만이다. 이번에는 그가 활약할 기회였는데 무산된 것이 아쉽군. 허나 인연이 닿으면 그 또한 나의 패업에 동참할 날이 있겠지.”
태연하게 말은 했으나 내심으로는 초조한 원소다.
원소의 진중에는 대기병 전술에 능한 장수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공손찬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보병을 상대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장연이 이끄는 흑산적은 기병전력은 부족하지만, 그 수가 백만에 달한다. 이러한 다수의 보병을 상대하려면 강력한 기병대와 유능한 기병대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 천하제일의 기병대라고 불리는 함진영과 천하제일의 기병대장으로 이름난 여포가 필요했던 것이다.
‘미오성을 통째로 맡길 정도면 이각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마등의 세력이 그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을 듯한데,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가?’
이각이 여포를 다시 불러들인 사정은 원소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나선 것은 대 공손찬 전선의 영웅 국의였다.
“명공,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 국의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공손가놈의 졸개들을 쓸어 버렸던 것처럼 흑산적들도 남김없이 소탕하겠습니다.”
국의는 원소가 전임 기주목 한복에게서 기주를 탈취하기 전부터 하북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일구고 있던 군웅이었다. 공손찬과의 싸움에서 세운 높은 군공이 더해져 지금도 수하라기보다는 객장의 위치에 있었다.
그렇기에 국의는 원소를 주공이라 부르지 않았다. 주종 관계가 아님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국의, 건방진 놈. 천박하고 무식한 놈.’
원소는 국의를 언젠가 손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세상에 다시없을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겠지만 그에게는 가장 자신 있는 행동이었다.
“국공이 이토록 용맹하니 나에게는 큰 복이오. 허나 흑산적의 수가 많으니 무리하게 싸우다가는 우리 병사들을 상할 것이오. 그들의 예봉을 꺾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봅시다.”
국의는 양주 서평군, 그러니까 서량 출신이다. 변방 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듯한 거친 태도가 원소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소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감군 저수가 들어왔다.
“주공, 회견을 청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인가?”
“정서장군 마등의 장자, 마초라고 합니다.”
“마등이라. 아마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라고 했었지?”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마등의 아비가 강족 여인과 통혼할 정도로 집안이 한미했다고 하니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복파장군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지. 그러니 만나 보기는 해야겠군. 지금은 조회 중이니 마초에게 한 시진 후 들어오라고 하게.”
그렇게 처리하려던 원소는 문득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아니, 잠깐. 귀빈을 맞는 예로 마초 공자를 대접해라. 한 시진 안에 연회를 준비하고 그곳으로 모시도록 해라. 나도 시간을 맞춰 연회에 참석할 테니.”
기병대장이 필요했던 원소는 호사가들에게 천하제일의 기병대장이 누구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단연 여포가 첫 손에 꼽혔다. 그다음은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각, 곽사, 황보숭, 공손찬, 그리고 서량의 마등이 그들이었다.
‘마등이라면 천하에 이름난 기병대장. 마침 나에게 기병대장이 필요한 차에 그 아들이 찾아왔다. 만나봐야겠군.’
* * *
잠시 후.
업성에서는 마초 일행의 방문을 환영하는 연회가 열렸다.
연회는 마초의 눈에도 충분히 호화로워 보였다. 불과 한 시진 만에 이 정도의 연회를 준비하는 것이 마치 원소의 실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업에 온 것을 환영하오, 마 공자.”
원소는 짐짓 과장된 태도로 마초를 환대했다.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태도, 유려한 언변과 힘 있는 목소리, 호소력 있는 눈빛. 누구라도 그런 원소의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원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쪽 구석에 있던 나관중이 마초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자가 원본초, 과연 딱 봐도 범상치 않군요. 천하통일에 가까이 갔던 자는 그릇이 다른가 봅니다.”
“관중, 그보다 일이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되었다.”
“네? 뭐가 말입니까?”
“원공이 말하기를 여포가 오지 않기로 했다는군.”
마초의 말에 나관중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곧 일어날 상산 전투에서 원소군은 흑산적에게 승리를 거둔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흑산적의 군대를 유린한 것은 원소군의 기병대였다.
이때 원소군의 기병대를 지휘한 것이 바로 여포였다.
여포는 이각, 곽사와 사이가 틀어져 장안을 떠난 후 하북의 원소에게 잠시 의탁한다. 그동안 상산 전투에서 기병을 이끌고 눈부신 전공을 세운다. 이때 여포의 활약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마중적토 인중여포라 불리게 된다.
말 중에서는 적토마가 최고고 사람 중에서는 여포가 최고라는 뜻이다.
미래에서 회귀한 마초와 나관중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포가 원소에게 오지 않게 되었다니… 어째서일까요?”
“글쎄, 원공이 그 이유까지는 자세히 말해 주지 않는군. 여포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이라면 원공도 잘 모를 수도 있지.”
“상산 전투에 여포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원공이 진다면, 아니 지지는 않더라도 대승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서 역사가 틀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래의 역사에서 원소는 여포를 앞세워 장연의 흑산적에게 대승을 거둔다. 그때를 기점으로 하북의 최강 세력으로 떠오르고, 이내 하북을 제패하여 중원 최대의 세력이 된다.
상산 전투의 대승이 아니었어도 장기적으로는 원소가 가장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원소의 수명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대세가 원소에게 기울기 전에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까지 다 계산할 수는 없지.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마초는 여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의종을 원소에게 귀부하도록 주선하고, 의종의 도움을 받아 양하원과 농현 처녀들을 흑산적에게서 구출하는 일이다.
그 사이 원소가 자리에 돌아왔다.
“오늘 마 공자와 교분을 쌓게 되었으니 참으로 원모의 큰 복이오. 정서장군에게 이렇게 영준한 아들이 있다니 참 부러울 일이오. 내 큰아들도 마 공자 또래인데 이놈은 영 시원치가 않아서 말이오.”
원소는 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마초는 적당히 겸양하며 원소의 농담을 받았지만, 사실 그냥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소의 망나니 큰아들 원담이 이때쯤 청주로 갔다고 하던가? 평소에 어지간히 속을 썩기는 했나 보군. 저렇게 자연스럽게 농담이 나오는 걸 보면.’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합시다. 상산에 의종이라는 유협 집단이 있다고 하였소?”
“그렇습니다, 원공. 저와는 교분이 두터운 호걸들입니다. 아까 소개해 드린 하후란이 의종의 단주입니다. 이들을 수하로 부리시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 공자. 사대부가 사대부 노릇을 못 해서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참으로 맞소.”
원소는 웃음기를 머금고 마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오. 사대부가 시원치 않다고 백성들이 너도나도 무리 지어 유협이라고 자칭하면 세상이 어찌 되겠소? 백성이 이상과 무력을 동시에 갖추면 유협이 되오. 그런데 만약 이상이 훼손되고 무력만 남게 된다면 흑산적이나 황건적과 다를 바 없는 도적이 되는 것이오. 그러니 백성이 무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오. 아무리 난세라지만 나는 유협 집단을 인정할 생각이 없소.”
무력은 사대부, 즉 귀족의 것이다. 그것이 원소의 생각이었다.
마초는 겉으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난감하군. 이제 뭐라고 설득한다?’
어려운 문제였다. 원소는 한나라 최고의 명문가인 여남 원가의 인물이다. 4대를 이어 오며 다섯 정승을 배출해서 사세오공이라고 불리는 집안이다. 그런 자의 입장을 말 몇 마디로 돌려놓기는 어려운 일이다.
당장 원소가 생사를 걸고 싸우고 있는 장연이 바로 그렇게 무력을 갖춘 백성이었다.
원소는 마초가 난감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껄껄 웃었다.
“하하, 그러나 마 공자의 위신도 있으니 내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음. 저 하후란이라는 청년은 몇 마디 나눠 보니 인품도 믿을 만하고 군사와 법령에도 밝더군. 그러니 하후란을 상산도위로 삼겠소. 그 밑의 군졸은 신임 하후 도위가 알아서 뽑도록 하고.”
도위는 군, 또는 국의 군사를 맡아 보는 무관직이었다. 하후란에게 상산국의 무관으로 사관하고, 의종은 관군이 되라는 소리였다.
“원공,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후란은 재주가 있고 충직한 자이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마초는 얼른 포권하며 원소에게 예를 표했다. 원소는 하후란이 관직을 맡고 의종은 그 밑의 관군이 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상당히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원소도 여유 있는 표정으로 답례했다.
“어디까지나 관군으로 있어야 하오. 이 원소는 유협집단은 인정하지 않소이다.”
도위라면 상당한 고위 관직이다. 진정현보다 상위 행정기관인 상산국의 도위이니 진정현령 조백에게 휘둘릴 일도 없을 것이다. 마초는 하후란을 불러 기주목 원소에게 주종의 예를 올리도록 했다. 하후란은 원소와 마초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장연의 휘하에서 원소의 휘하로 얼른 주인을 바꾸지 않으면 의종이 궤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관군이 되라고 하면 반발하는 단원들도 있겠지만 하후란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의종의 귀부 문제를 해결하자 마초도 한시름을 놓았다.
이제 적당히 연회를 파하고 상산으로 돌아가서 처녀들을 구출하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마초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을 때 원소가 제안을 해왔다. 마등이 이끄는 마가군을 끌어들이자는 제안이었다.
“원공과 아버님이 동맹을 맺고, 마가군의 기병대로 장연의 뒤를 치자고요?”
“그렇소. 정서장군께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오. 내가 공자의 제안을 들어 드렸으니, 공자께서도 한번 잘 생각해 주시오.”
마초는 대단히 난감해졌다.
“원공, 송구하오나 이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정서장군부에서 일개 비장군으로 있을 뿐입니다. 이는 정서장군이 직접 듣지 않으면 뭐라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
원소는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장자라는 것보다 직위를 먼저 생각하다니, 같은 큰아들인데 어찌 이렇게 다를까?”
하북의 문제아 원담에게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공자의 말이 참으로 이치에 닿소. 그러면 그저 공자의 의견을 말해 주시오. 내가 정서장군에게 서찰을 보내면 이 동맹이 성사될 것 같소?”
“어렵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일천 기 이상의 병력이 서량에서 이곳까지 진군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싸움의 때를 놓칠 것입니다. 정서장군이 적당히 생색만 내는 것이라면 모를까, 출병하여 멀리 떨어진 장연군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초 자신은 보급을 포기하고 기병만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는 500이라는 소수 병력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무리하게 이동한 것이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싸울 수 없으니 일천 이상의 기병대가 이동하려면 반드시 치중을 동반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수레의 속도에 행군 속도가 맞춰지게 된다. 이 속도로 먼 하북에서 원소군과 공동 작전을 벌이는 것은 무리였다.
“역시 젊은이는 솔직하군.”
원소는 그제야 진짜 속내를 내보였다.
“그러면 공자가 이 원모에게 도움을 조금 주시오. 나는 열흘 후 상산에 있는 흑산적의 무리를 칠 것이오. 그때 공자의 병력을 데리고 첫 전투에 참여해 주시오.”
“첫 전투에 참여한다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지요?”
“말 그대로 참여하는 것이오. 군공은 없어도 상관없소. 마가군의 군기를 올려서 마 공자가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오. 첫 전투에서 그렇게만 해 주시면 더 이상은 청하지 않겠소.”
‘아, 이거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마초는 고민스러웠지만 더 이상은 거절할 수 없었다. 원소의 말은 선봉에 서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군기만 올리고 잠깐 싸우는 척을 해 주고 가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원소는 이제부터 의종을 거둘 예정이었다. 마초로서는 일견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부탁을 거절할 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원공의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뜻에서.”
마초는 짐짓 결단력이 있는 척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원소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술잔을 돌렸다.
시간을 거슬러 회귀하며 많이 노회해진 마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노회하기로는 천하에 짝을 찾을 수 없다는 사내였다. 원소에게는 마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내 연회가 파하고 마초 일행은 숙소로 돌아갔다. 오늘은 일찌감치 침소에 들어 여독을 풀고 내일 아침 일찍 상산으로 다시 출발할 참이었다.
텅 빈 연회장에 남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원소에게 저수가 다가왔다.
“주공, 뜻하셨던 바는 이루셨습니까?”
“그래. 애초에 마등을 여기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마초를 통해 마가군의 이름만을 빌리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첫 전투에서 잡은 흑산적 포로들은 전부 학살하실 계획이군요.”
“필요하다면 백성들도 일부 더해서. 흑산적들은 마등이 보낸 서량 기병대의 소행으로 알게 될 것이다. 흑산적은 대의명분을 가진 놈들이 아니다. 대항하다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기가 꺾이겠지.”
“마초는 첫 전투에 들러리를 선 후 고향에 돌아갔을 때 이 소식을 듣게 되겠군요.”
흑산적들은 기본적으로 기병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마등이 서량 기병대를 원군으로 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두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첫 전투에서 이긴 후, 포로에 대한 대학살을 벌이고 서량 기병대의 소행으로 꾸며서 두려움을 극대화한다.
원소가 좋아하는 방식의 모략이었다.
“그 마초라는 청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서량에서 오랑캐들이나 상대하기에는 아까운 젊은이다. 영리하고 기백이 있어.”
허나 재능에 비해 아비를 잘못 만났다. 내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원소는 마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자신의 큰아들 원담을 떠올렸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 * *
며칠 후.
의종이 운영하는 마방에 돌아온 마초 일행과 의종의 간부들이 모여 앉았다. 원소를 만나고 온 마초와 장연을 만나고 온 조운이 각자의 성과에 대해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후란은 마초를 통해 상산도위의 인수를 받고 원소에게 귀부하기로 했고, 조운은 의종의 신임 단주를 가장하여 번선의를 조백의 첩으로 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조백의 저택에는 농현에서 끌려 온 처녀들이 머무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 공자 덕에 원본초에게 귀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 공자를 도울 차례입니다.”
하후란이 말하자 마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번 소저와 조백의 혼례식을 틈타 농현의 처녀들을 구출한다. 혼례식 당일, 해가 지면 조백의 저택을 습격할 것이다. 하후란, 조자룡, 자네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네.”
가만히 듣고 있던 조운이 입을 열었다.
“무를 통해 벗을 만났으니.”
뒤이어 하후란이 말을 받았다.
“벗을 통해 의롭게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의롭게 쓰는 일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동시에 자리에 모여 있던 의종의 모든 단원들이 마초를 향해 군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