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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7화 (27/306)

27화. 벗을 통해 의롭게 되다

비연은 원래 진정현의 관노였다.

현의 관아에 딸린 관비였던 그의 모친은 자식을 낳았지만, 아비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원래도 고단했던 관비의 삶은 한꺼번에 사내아이 세쌍둥이가 태어나자 더욱 고단해졌다. 관비 하나의 품삯으로 사내아이 셋을 동시에 먹이는 것은 무리였다.

허약한 자식에게 정성을 쏟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매일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는 동물들은 건강한 새끼에게 우선적으로 먹을 것을 분배한다.

비연의 모친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덩치가 크고 눈이 또렷한 첫째 아이, 그다음으로 보통은 되는 체구의 둘째 아이를 우선 먹이게 되었다. 세쌍둥이 중에서도 가장 작고 왜소한 셋째는 굶기 일쑤였다.

그러다 첫째 아이가 죽었다. 모친이 일을 나간 사이 누군가가 목을 졸라 죽인 듯했다. 그녀는 대강의 진실을 짐작했지만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

몇 년 후,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 그때 둘째도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죽었다.

제비 새끼들은 어미가 먹이를 물어 오면 저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의 건강을 과시한다.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서 어미에게서 먹이를 받아내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마치 제비 새끼들이 벌이는 것 같은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가장 왜소하게 태어난 셋째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비연(飛燕, 제비)이라고 불렀다.

* * *

비연이 열한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가 사는 기주 상산은 상산군이 아니라 상산국으로 불리고 있었다. 황실의 종친을 제후왕으로 삼아 지방의 군현을 영지로 분봉하는데, 상산 또한 영제의 친척인 상산왕 유간의 봉지였기 때문이다.

한의 제후왕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다. 제후국 내에서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군의 태수에 해당하는 상(相)이고, 제후왕은 그저 식읍을 받아서 지역사회에서 적당히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보장해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상산왕 유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관노비 두 명의 운명 정도는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간은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관비와 그의 어린 아들을 자신의 집으로 들였다. 자신의 노리개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의 엽색 행각은 도를 지나쳐서 모자를 동시에 겁탈하는 것에 이르렀다. 제후왕이 열한 살 난 비연의 몸을 탐하는 동안 비연의 모친은 옆에서 제후왕의 몸을 애무했다.

그때 비연과 모친의 눈이 마주쳤다. 모친의 눈빛에 슬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후왕의 첩이 되면 먹고 사는 걱정에서 해방되기 때문이었다.

상산왕 유간이 종기가 나자 진정현의 의원 동연이 치료를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대강의 사정을 알게 된 동연은 어린아이라도 구해 보고자 사내아이와 교접할 경우 병세가 나빠질 수 있다며 핑계를 대서 비연을 빼내 왔다.

동연은 그렇게 구해 낸 비연에게 상산창술을 가르쳤다.

비연은 무예의 천재였다. 열일곱이 되자 상산창술의 절기를 전부 익히고 전인이 되었다. 그와 창을 맞대 본 동문 사형제들은 그가 제비처럼 몸이 빨라서 비연이라고 불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연의 사제이자 의종의 단주였던 소쌍은 비연을 의종에 입단시켰다. 비연은 말 장사와 조직을 통솔하는 일에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무예에도 능하고 단원들에게도 신망이 높은 비연이 스물셋이 되자 소쌍은 그에게 단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때 문제가 일어났다.

비연이 상산 최대 유협집단의 수장이 되자 상산왕 유간은 비연을 양자로 들이고자 하였다. 당시 한나라 조정은 지방을 통제할 힘을 잃었다. 유간은 자신이 한실의 종친이라는 명분, 막대한 재산, 거기에 의종의 무력을 결합해서 지역에서 군웅 노릇을 하려는 계산이었다. 비연의 모친도 십수 년 만에 재회한 아들에게 이를 부추겼다.

마침 상산왕부에 의문의 화재가 일어나서 유간과 비연의 모친이 타 죽지 않았으면 비연은 유연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 *

“그날 이후로 사형은 급속도로 난폭해졌습니다. 관원들을 죽이면서 관부에 원한을 사고 다녔지요.”

하후란의 이야기를 들은 마초는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세상인 건 알고 있지만, 장연의 삶은 도가 지나치군. 그런데 어쩌다 의종의 단주 자리를 버리고 흑산적이 된 건가?”

“마침 그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비연 사형은 의종과 함께 황건적에 합류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은 사형을 파문했지요. 의종의 절반 정도는 파문당한 사형을 따라 도적이 되었습니다.”

비연이 떠나고 공석이 된 단주 자리에는 소쌍이 복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후란이 새로운 단주가 되었을 때쯤, 비연이 흑산적 우두머리 장우각의 죽음을 기리며 장연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100만 흑산적의 대두령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후의 일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조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니 우리들은 강한 상대에게 붙어서 안전을 보장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대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아시다시피 흑산적이지요. 백만 흑산적과 싸울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장연은 그렇게 세력을 늘려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그저 제후가 되고 싶은 것인가?”

“사형의 목적은 한의 파멸입니다.”

“한을 파멸시킨 다음에는?”

“그 뒤는 자세히 모릅니다. 아마도 썩은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구만.”

이야기를 듣는 마초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오히려 마초 일행 사이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지만 도적단 대두령의 목표치고는 너무 허황되지 않습니까?”

서황과 월길은 선뜻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됐어. 그럴 수도 있지. 오래 살다 보니 별의별 놈들을 다 봐 와서.”

“별의별 놈이라니요?”

“과부하고 간통하다가 걸려서 친아들을 화살받이로 쓰는 자도 있었고, 무장이면서 타국 왕이 사돈을 맺자고 하니 범의 자식을 개의 새끼와 혼인하게 할 수 없다고 막말을 하는 자도 있었고…….”

‘그리고 아버지와 아우들과 처와 자식을 전부 죽음으로 내몰게 한 패륜아도 있었지.’

마초는 조조와 관우에 이어서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어쨌든 장연이 그런 과거를 갖고 있으니 하후 단주, 아까 장연이 의종 단주 시절에 관부와 계속 충돌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사형은 한나라의 모든 것을 부정하니까 관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명문가나 황실에 대해서도 강렬한 증오를 여러 번 드러냈습니다. 아니, 그는 사대부 전체를 증오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장연이 하북의 패자가 된다면…….”

한쪽 벽에 묵묵히 팔짱을 끼고 기대 있던 조운이 말을 받았다.

“사대부 전체에 대한 학살이 일어날 것이오.”

마초는 혀를 끌끌 찼다.

“그것 참 피곤하게 사는 위인이군. 증오로 세상을 다 태워 버리겠다는 건가? 그 정도라면 이제 의종에서도 생각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나? 장연에게 귀부한 채로 계속 있다가는 결국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할 텐데.”

“대안을 찾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 봤습니다.”

하후란은 조운 쪽을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선대 단주이신 소쌍 사숙이 하북 각지를 돌며 군웅으로 성장할 만한 능력과 의기를 갖춘 인물들을 찾았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적합한 인물을 찾아내기는 했으나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세력은 너무 미약합니다.”

“…그 인물이 혹시 한실(漢室, 한나라 황실)의 종친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귀 큰 협객이오?”

“아니, 마 공자께서 유 대인을 어찌 아십니까?”

“뭐 어쩌다 보니 좀 아는 사이가 되었지.”

하후란이 찾았다는 인물은 유비가 틀림없었다.

마초가 유비와 아는 사이라는 말이 나오자 구석에서 조용히 서 있던 조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이미 유비에게 단단히 매료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마초는 조운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헛웃음을 짓고는 하후란에게 물었다.

“유비 대인은 지금 세력이 미약하니 상산을 맡을 수 없었겠지. 그 말고 다른 대안은 없었나? 유주의 공손찬이 난폭하다고는 하나 흑산적보다는 낫지 않겠나?”

“물론 그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 단원들 일부가 공손찬군에 귀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조자룡이 공손찬군에 들어간 것도 의종 전체를 위한 계획의 일부였겠군.”

조운이 마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소. 그러나 계획은 실패했소.”

“실패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공손백규(백규는 공손찬의 자)는 천하를 다투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 상산조차 밝게 다스려 줄 재목이 되지 못하오. 그의 휘하에서 나는 유주 각지를 돌며 흑산적보다 더 악랄하게 징발을 하고, 오환(烏丸, 중국 동북부의 이민족)과 선비(鮮卑, 중국 북부의 유목민)족들의 시체로 산을 쌓아야 했소. 그러니 마 공자가 내 이름을 사칭하거나 말거나 나는 별로 상관할 바가 아니오. 어차피 떳떳하지 못한 이름인데 더 이상 더럽혀질 게 무엇이 있겠소?”

조운의 자조적인 말에서 그 나이의 젊은이가 품기 어려운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공손찬도 장연 못지않게 나쁜 놈이고, 그의 휘하에 있던 세월이 후회스럽다는 이야기였다.

마초는 조운의 말을 듣다 보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공손찬이 정말 그렇게 악한 자라면… 자룡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들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군.’

마초가 유비군에 합류했을 때, 조운은 이미 오랫동안 유비를 따른 숙장이었다. 오랜 세월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권력의 중심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고, 도덕적 결벽증에 가까운 태도를 계속 보여 왔다.

이는 어쩌면 공손찬 휘하에 있었던 초년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공손찬의 명을 받아 강제로 병사와 군량을 징발했겠지. 참혹한 꼴을 많이 봤겠군.’

마초는 조운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위로했다.

“무인으로서 주군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잘못된 명이라도 일단 수행하고, 정히 안 되겠으면 밝은 주군을 새로 택하는 것이 옳은 길일 것이다. 과도하게 자신을 책망하여 무력하게 사는 것보다 밝은 주군을 택하여 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의로운 자가 취할 방법이다.”

조운은 마초의 말을 듣자 긴 한숨을 쉬었다.

“공자의 말이 지극히 옳소.”

조운이 말하는 동안 마초의 머릿속은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 이 녀석을 마가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엄청난 힘이 된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미 유 사군을 만나 버린 것 같단 말이야. 어지간해서는 유 사군을 두고 아버님의 휘하로 들겠다고 할 리가 없다. 관직이나 재물 따위로 유혹해 봐야 들은 척도 안 할 위인이고, 일단 최선을 다해 의종을 도와준 후 진솔하게 터놓고 얘기해 봐야겠다. 어차피 지금 장연에게 납치된 처녀들을 구하려면 의종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초는 다시 하후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황은 이해했다.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상산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은 원소에게 귀부하는 것 같군. 당장은 공손찬이나 장연이 강해 보일지 모르나 앞으로 하북의 패자는 원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멀리 있는 공손찬과는 달리 원소의 세력은 이곳 상산에서 가깝지 않은가?”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 간단치 않다는 것인가? 원소가 속이 시커먼 자인 것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공손찬이나 장연보다는 덜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원소는 내정을 안정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의 휘하에 있는 고을들은 공손찬이나 장연의 세력권에 있는 고을들보다 백성들의 삶도 풍족하다. 의종은 딱히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니 원소에게 붙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하후란은 고개를 저었다.

“원본초(본초는 원소의 자)가 공손찬이나 장연 사형에 비해 백성을 살피는 군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본초는 우리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만나 주지 않는다니?”

“귀족 중에서도 가문의 명성이 있는 자가 아니면 그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사세오공을 배출한 명문 원가의 인물 아닙니까?”

사세오공이란 4대를 이어 오는 동안 다섯 명의 재상을 배출했다는 뜻이다. 원소의 집안인 여남 원가는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명문가였다.

그런 배경을 가진 인물에게 백성이란 보살피거나 다스릴 대상이지,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알기로 원소는 얼자(孼子, 천민 첩의 자식)라서 그 집안에서도 좋은 대접은 못 받았다던데, 그런 주제에 그렇게 귀족 행세가 심한가.”

마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귀족 행세는 그런 자들이 더 심한 법이다.

“우리 중 명문가의 자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원본초를 만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좋아, 좋아. 가문의 명성이 있는 자가 아니면 만나 주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조상님을 잘 뒀으면 만나 볼 수 있다는 말이겠군.”

“그렇습니다. 교류하는 상대의 가문의 격을 크게 따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됐군.”

마초는 하후란과 조운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복파장군 마원의 8대손이라면 원소를 만나기에 부족함이 없겠지. 내가 그대들과 원소의 만남을 주선하겠다.”

“예?”

“복파장군 마원이요?”

하후란과 의종 단원들이 눈이 커졌다. 마초의 선조가 복파장군 마원이라는 말을 듣자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원은 후한의 창업군주 광무제 휘하의 무장으로서 그중에서도 첫손 꼽히는 공신이다. 마원의 딸이 광무제의 아들 명제와 혼인하여 황후가 되었으니 황실의 외척이기도 하다.

‘마원이라면 그냥 이름난 인물 정도가 아니다. 역사서에 나오는 인물 아닌가? 이 자가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라고?’

놀란 하후란을 향해 마초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조상님께서 지나치게 청렴하셨는지 나의 조부님 대에 와서는 생활이 몹시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혈통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 내가 원소를 만나서 의종의 귀부를 주선해 보겠네.”

“마 공자,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원본초와 장연 사형은 곧 큰 싸움을 벌일 예정입니다.”

“나도 알고 있어.”

마초는 나관중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관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산 전투.

지속적으로 세력을 확대해 가던 장연은 원소의 본거지 업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원소는 업을 탈환한 후 상산에서 장연군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한다.

‘이때 원소군의 선봉장이었던 장수가 천하제일인, 여포다. 이각과의 사이가 틀어져서 잠시 원소의 객장으로 있는 동안 하북의 판도를 결정짓는 큰 활약을 하게 되지.’

이 시기 북방에서 무예를 닦는 젊은이라면 여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초 또한 여포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자라 왔기에 그의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원소는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 세력에게 승리하고, 뒤이어 상산 전투에서 장연에게 승리하면서 하북에서 제일가는 군웅으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 시기가 바로 초평 4년(193년) 여름, 지금이었다.

“지금쯤 원소의 휘하에는 여포가 있을 것이다. 원소는 여포를 앞세워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하후 단주는 지금 빨리 귀부하는 것이 좋겠네. 그리고 귀부를 주선해 줄 수 있는 나도 지금밖에는 시간이 없어. 따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

마초의 말을 들은 하후란은 조운 쪽을 쳐다봤다. 조운은 하후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여라.’

‘자룡, 그래도 괜찮겠나?’

‘그래. 만약 내가 흑산적의 대두령이라면… 의종을, 그리고 상산 전체를 거대한 화살받이로 쓰는 전략을 채택할 것이다. 이 일대의 지형을 고려해 볼 때, 상산을 유린한 원소군이 호타하를 넘어서 북상할 때 들이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니까.’

그러니 화살받이가 되기 싫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후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마초를 보며 말했다.

“마 공자의 말이 옳습니다. 상산을 위해 원본초의 편에 서서 장연과 싸우겠습니다. 공자께서 도와주십시오.”

“잘 생각했네. 무를 통해 벗을 만났으니, 벗을 통해 의롭게 되도록 내가 돕겠다.”

마초가 퉁퉁 부은 얼굴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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