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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4화 (24/306)

24화. 권법승부 (2)

방덕은 인사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뻐억!

“크아아악!”

방덕의 주먹이 안면에 꽂히자 자응은 괴성을 지르며 1장이나 되는 거리를 날아가서 나동그라졌다.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던 그는 이내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 죽었나?”

주변에서 자응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첫 번째 대결은 마가군이 승리했다.

자응은 의종에서 가장 뛰어난 권사 중 하나였다. 자응이 맥없이 쓰러지자 의종 사이에서 조금씩 동요하는 기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후란은 동요하지 않고 두 번째 대결에 나설 단원을 지목했다.

“자상, 나가라.”

“존명!”

자상이라고 불린 사내가 하후란을 향해 군례를 취한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섰다.

“상산의 코끼리, 자상이다! 감히 나와 대적하려는 자가 누구냐!”

자상이 노호성을 지르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만큼 이 자상이라는 사내에 대한 신뢰가 큰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상은 9척의 키에 아름드리나무 같은 허리통을 가진 엄청난 거구의 사내였다.

“이번엔 코끼리군요.”

“음, 꽤 강해 보이는데?”

그러나 마초 일행은 태연하게 문답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누가 나갈 텐가?”

마초가 좌중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마초 본인도, 다른 일행들도 누가 나갈지 알고 있었다.

“소장이 나가겠습니다.”

서황이었다.

“서 사마, 나는 주먹을 딱 한 번 쓰고 끝냈소. 오래 끌면 나와 비교가 될 거요.”

“딱 한 번?”

방덕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자 서황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두고 보기나 하시오. 방 교위보다 주먹을 많이 내지는 않을 테니.”

“오호, 자신감이 대단하군.”

서황이 그답지 않게 호언장담을 던지고 앞으로 나섰다.

자상은 서황을 보며 기싸움을 벌이려는 듯 다시 한번 노호성을 내질렀다.

“내가 의종의 자상이다!”

“알고 있다, 코끼리. 어서 덤비기나 해라.”

서황이 자상의 도발을 일축하자 자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모욕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네놈이 감히!”

자상이 쿵쿵거리며 달려와서 서황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자상의 주먹은 거대해서 주먹보다 오히려 철퇴에 가까워 보였다.

자상의 큼지막한 주먹이 날아드는 것에 맞춰서 서황은 슬쩍 몸을 숙이며 자상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어?”

자상이 당황했던 것도 잠시, 서황은 자상을 짐짝처럼 양어깨에 걸쳐 메고 번쩍 들면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서황에게 통제당하게 된 자상은 허공에 붕 떠서 몸부림을 쳤다.

“이, 이놈!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내려놓아 달라? 알았다.”

300근이 넘을 듯한 자상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서황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한 후 그대로 등짝에 걸머진 자상과 함께 바닥에 누웠다.

콰직!

마룻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자상의 몸이 푹 꺼진 마루 속으로 딸려 들어갔다.

서황은 바닥에 부딪힌 자상이 그대로 실신한 것을 확인한 후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털고 마가군 일행 사이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방덕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먹은 한 번도 쓰지 않았소.”

“하하, 이번에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니 승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소.”

“승부는 다음에도 하겠으나 이번에는 내가 이긴 게 맞소. 주먹을 쓰는 횟수를 비교하자고 하지 않았소?”

“권법에서는 타격만큼이나 금나도 중요한데 어찌 주먹의 횟수만으로 길고 짧음을 가릴 수 있겠소?”

서황과 방덕이 졸렬한 언쟁을 벌이는 동안 의종의 단원들은 기세가 눈에 띄게 꺾이고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의종은 밤낮없이 무예를 수련하는 집단이다. 주로 익히는 것은 상산창술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창술에 기반한 권법도 익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응과 자상은 권법에 가장 능한 최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어지간한 무장과 상대해도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사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량에서 왔다는 두 명의 무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이래서는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 두 사람은 괴물이다. 설령 세 번째 대결에서 1승을 한다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을 어떻게 당해낸다는 말인가?’

‘아니, 세 번째 대결에서 1승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저 두 사람과 비슷한 고수가 또 없으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패배에 대한 예감이 순식간에 의종 사이에 번져 나갔다.

반면 마가군 진영에서는 잔뜩 신이 난 월길이 날뛰고 있었다.

“하하하, 역시 방 교위와 서 사마는 대단하다니까! 비장군, 세 번째로는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제가 한인들 권법은 모르지만, 씨름이라면 어지간히 잘합니다. 세 번째 상대는 제가 이겨 보이겠습니다.”

“월길 네가? 음…….”

마초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자응과 자상이라는 자들의 무공 수준으로 봤을 때 월길의 무력이 그 정도 인물들을 당해내기에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길은 이민족이다. 그것도 이곳 기주에서는 보기 힘든 강족이다. 유협집단이 외지인에게 무력 대결에서 지는 것만으로도 잔뜩 독이 올라 있을 텐데 굳이 이민족인 월길을 내보내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 맞을까 싶었다. 마초도 무장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나가서 싸우겠다는 월길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선뜻 허락하기 어려웠다.

마초는 고민하다가 하후란 쪽을 보았다. 의외로 하후란의 표정은 담담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상당히 침착한 자로군. 역시 볼수록 탐이 난단 말이야.’

“세 번째 승부를 시작하겠다. 의종에서는 나, 단주 하후란이 직접 나선다.”

순간 웅성거리던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잠시 후 단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단주,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맞습니다. 단주께서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들을 이겨 보이겠습니다.”

“단주, 차라리 창을 들고 이 녀석들을 전부 쓸어 버리지요! 굳이 권법 놀음에 장단을 맞춰 줄 필요가 있습니까?”

의종의 단원들은 저마다 격앙돼서 떠들었다. 제법 유대가 끈끈한 모양이었다.

“그만, 그만.”

하후란이 손을 들어 웅성거리는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차라리 잘 됐다. 이들의 권법 실력이 이 정도라면 병장기 실력도 대강 짐작이 간다. 이들의 제안은 피를 보지 않고 승패를 가르는 일이니 취할 만하다. 그리고 의종은 한 번 뱉은 말을 지키지 않는 법이 없으니 섣불리 병장기에 손을 대지 마라.”

하후란이 단호하게 단원들의 항의를 끊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월길은 시무룩해졌다. 상대의 수장이 직접 나선다면 이쪽에서도 수장인 마초가 직접 나서는 것이 예의에 맞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내가 결단했으니 내가 마무리하겠다. 너희들 중 단주의 명에 이의 있는 자가 있는가?”

하후란이 말하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나는 이의가 있다.”

쪽문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의종 백 명과 마가군 오십 명의 시선이 전부 쪽문으로 쏠렸다.

“이, 이 목소리는…….”

“설마……!”

쪽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흰옷을 입은 키가 큰 청년이었다. 몸에 군살이 없었지만, 어깨와 가슴에는 잘 발달된 근육의 부피감이 느껴졌다.

청년은 대단한 미남이었다. 우뚝한 콧날과 강인한 턱선에서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굵은 눈썹 아래로 빛나는 두 눈은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내들은 감히 마주 보기 어렵고, 여인이라면 혼을 빼앗길 만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젊은 미남자라는 점에서는 마초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청년 쪽이 조금 더 근육이 많고 얼굴선이 남성적인 편이었다.

단주의 말을 끊으며 갑자기 등장한 미청년 때문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의종의 단원들은 새롭게 등장한 청년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나관중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보자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마초를 돌아봤다.

나관중의 눈에 비친 마초는 절반은 당혹감에 일그러지고 절반은 반가움이 가득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장군, 혹시 저 사람이…….”

“맞아, 바로 저 녀석이다.”

미청년은 거침없이 하후란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란. 아니 이제 단주인가?”

“기별도 없던 녀석이 갑자기 어쩐 일이냐?”

“단원들 몇이 찾아와서 알려 주더군. 장연이 단주를 못살게 굴고 있다고.”

“장연의… 사형의 말은 저자들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저자들이 너를 사칭해서 사형의 수하들을 수천이나 해친 모양이다.”

“사형의 수하라고 해 봐야 결국 흑산적의 패거리들 아닌가? 죽어 마땅한 놈들일 뿐이다.”

“자룡, 하지만 너를 사칭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내 이름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야 공손찬 밑에 있으면서 남의 피를 많이 봤으니 허명이 조금 돌기는 했겠지.”

미청년은 마초가 자신을 사칭했다고 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란, 사형의 꿍꿍이에 말려들지 마라. 사형은 이제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사형은 야심에 눈에 멀었다. 그에게 우리 의종은, 상산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걸 모르는 자가 있느냐? 네 말대로 사형이 우리 의종의 안위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건 둘째 문제다. 우리는 조직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이 일대에서 가장 강한 군웅에게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저들을 이겨야 하고.”

“저들과 싸워서 승부를 가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저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저들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말한 미청년은 마초 일행을 돌아보았다.

“천하의 의종이 다른 집단과 비무를 해서 전패로 끝나는 것만은 두고 볼 수가 없군. 마지막 승부는 나에게 맡겨라. 단주는 너지만, 이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상산창술의 전인인 나다.”

“알았다. 너에게 맡기마.”

하후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청년은 양쪽 군사들이 싸움을 위해 벌려 선 가운데의 널찍한 공간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마가군 병사들은 어지간해서는 동요하지 않는 거친 서량병들이다. 그러나 청년의 모습이 하도 위풍당당하여 다들 자기도 모르는 새 기세에 눌려 있었다. 청년은 마가군 진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성은 조, 이름은 운, 자는 자룡. 이곳 상산 출신이다. 내 상대는 누구인가?”

“여… 역시!”

조운이 본명을 밝히자 나관중은 곧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거슬러 와서 옛 동료를 보면서 감회에 젖어 있던 마초는 나관중의 그런 모습을 보자 얼굴을 확 찌푸렸다.

“또, 또 시작이다. 조자룡이가 그렇게 좋냐?.”

“비장군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저처럼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꿈속에서 제갈공명, 관운장, 조자룡을 만나고는 합니다. 그 조자룡이 지금 제 눈앞에 있는데 진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나관중이 살던 시대에 민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국지의 인물은 장비였다. 조운의 인기는 그 정도는 아니고 나관중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송나라 때 조정에서 왕으로 추존하고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된 관우는 그 순위에서 논외로 쳐야 하는 수준이었다.

‘아, 하지만 내가 무사히 삼국지연의만 완성했어도 조자룡이 최고 인기 인물이 됐을 텐데!’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쓰면서 조자룡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있는 대로 힘을 줘서 썼다. 무사히 삼국지연의를 완성했다면 조자룡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는 조자룡이 등장하는 장면을 쓸 때마다 필력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마초는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소원 성취해서 아주 좋겠군, 좋겠어. 나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한데 말이야.”

그때 가만히 눈치를 보던 월길이 끼어들었다.

“헤헤, 비장군. 저들이 단주가 아니라 다른 자를 마지막 상대로 내세웠으니 제가 나가서 상대해도 되겠죠?”

“아니, 그만둬라. 내가 상대하마.”

“네? 아니 왜요?”

“네가 여기서 죽는 건 싫으니까.”

마초는 월길에게 그 말을 남기고 조자룡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성은 마, 이름은 초, 자는 맹기. 서량에서 왔다.”

두 사람은 불과 1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았다.

“상산의 조자룡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었다. 우리가 상황이 부득이하여 흑산적을 토벌하며 그대의 이름을 빌렸다. 싸움이 끝나면 그대와 길게 얘기를 나누며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겠다.”

“내 이름을 파는 건 개의치 않겠지만.”

조운은 뒤쪽에 모여서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의종을 흘긋 돌아보았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의종을 대표해서 이 승부는 가리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그대를 이긴 후 다른 두 장사를 이기면 우리의 승리지? 그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 또한 사정이 부득이하여 손에 사정을 둘 수 없으니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말라.”

조운은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전력을 다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만이 보이는 태도였다.

옛 동료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조운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에 마초는 심기가 뒤틀려서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하여튼 온몸이 담덩어리로 된 놈이구나. 좋다, 여기서 주먹을 맞대서 길고 짧은 것을 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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