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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연의-23화 (23/306)

23화. 권법승부 (1)

오십 명의 마초 일행을 창을 든 백 명의 의종 단원들이 둘러쌌다.

마초는 마방 일꾼인 줄 알았던 청년들이 창을 들고 포위망을 만드는 움직임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녀석들이군. 이거 곤란하게 됐는걸.”

이대로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길 자신은 있다. 50대 100으로 숫자에서는 두 배 차이가 나지만 자신과 방덕, 서황은 이런 장정들을 수십 명이라도 베어 넘길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병사들이 상하는 것이었다. 군웅이나 도적이라면 모를까, 먼 타지에서 말 상인들과 싸우면서 병사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말 상인치고는 이상하게 전술에 능숙해서 숙련된 창병들처럼 움직였다. 아군의 피해가 날 것이 분명했다.

마초는 상대와 일단 대화를 하기로 했다.

“내 정체가 알고 싶다고 했는가? 사정이 있어서 이곳 기주까지 오게 된 서량의 무장이다. 중간에 흑산적을 토벌하면서 일을 쉽게 하기 위해 흑산적과 동맹인 공손찬군의 장수 조자룡이라고 둘러댔지.”

마초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곳 상산은 조운의 고향이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그 나이 또래의 청년이 백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조운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량의 무장이라고?”

“그래. 정서장군부 비장군 마초, 자는 맹기라고 한다. 정서장군 마등 어르신이 나의 부친이 되신다.”

청년들 사이에서 잠깐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마등은 세력이 작을지언정 원소나 공손찬, 장연 같은 군웅이었다. 그의 아들이라면 동네 유협집단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정서장군 마등이라면 양주 천수군에 주둔하지 않는가? 그 아드님이 기주까지는 무슨 일로 왔습니까?”

마초의 신분을 알게 되자 하후란의 말투가 변했다.

“우리는 사람을 찾고 있다. 이곳에서는 사람만 찾아서 서량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사정이다. 더 이상은 알려 줄 수 없다.”

“좋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정서장군의 아들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소?”

문답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마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그대에게 증명을 하는가? 말 장사면 말이나 팔고 돈이나 받아 갈 것이지, 그대가 상산 태수라도 되는가?”

하후란은 마초의 격앙된 말을 듣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쪽도 곤란한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대들이 일을 벌인 통에 내 사형제가 상황이 아주 곤란하게 되었소이다.”

“흑산적 몇 놈 때려죽였기로 곤란해질 일이 뭐야?”

“…이곳 사정을 전혀 모르는 걸 보니 진짜 서량에서 온 게 맞기는 맞는 모양이군.”

하후란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 기주 상산국은 평난중랑장 장연 어르신의 영역입니다. 공자가 흑산적이라고 부르는 녹림의 대두령이지요. 우리는 기주 상산국의 유협 집단이며, 의종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장연 어르신에게 충성의 맹약을 맺고 있습니다.”

마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귀하들은 동네 청년들이 모여 말 장사를 하는 깡패 집단이고, 흑산적 장연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거로군. 그건 알겠는데, 사형제가 곤란해졌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우리 의종은 모두 상산창술을 익힌 동문 사형제간입니다. 그대가 사칭한 조자룡 또한 우리 의종의 일원이고 사형제올시다. 의종의 일원이 의종과 맹약을 맺은 장연 중랑장의 수하들을 공격한 것이 돼 버렸다는 말입니다.”

“응? 조자룡이가 너희들하고 같이 깡패짓을 했어?”

마초의 눈이 동그래졌다. 순수하게 놀란 것이다.

“깡패짓은 무슨, 공자도 관부의 인물이라고 어지간히 우리를 깔보시는군. 우리는 그저 장사를 할 뿐이외다. 마굿간을 둘러봤으니 알겠지만 우리는 말 키우는 실력을 바탕으로 좋은 말을 적당한 값에 파는 겁니다. 다만 말 장사라는 게 이민족이나 산적의 위협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무력이 꼭 필요한 거지요.”

“그러니까 그런 상인들을 보고 깡패라고 한다네.”

유협집단에 대한 견해 차이야 어찌 됐든 마초는 이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군웅도 아니고 도적도 아니고, 이런 동네 깡패들하고 싸워서 남는 게 뭐야?’

보통의 유협 집단과의 충돌이라면 마초나 방덕이 몇 명을 베면 간단히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의종이라고 칭하는 이들의 움직임을 보니 개인적인 창술 수련뿐만 아니라 창병으로서의 조직적인 진형 훈련도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이들과 싸운다면 손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있는 싸움인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미안하게 됐군. 그대들이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내가 서찰을 써 줄 수 있다.”

“서찰이라.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공자.”

하후란은 침착하게 마초를 보며 말했다.

“나는 장연 중랑장에게 가짜 조자룡의 목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공자도 사정이 있고 또 정서장군의 장자이시니 그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합니다. 공자와 장연 중랑장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니 여기서 정중히 동행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그래서 나를 장연에게 끌고 가시겠다?”

“어디까지나 예를 갖추는 형태를 취해 드리지요.”

“흐음…….”

마초는 하후란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말은 정중한 동행이었지만 결국 군웅의 아들을 연행해서 끌고 가겠다는 소리였다. 그런 말을 담담하게 내뱉는 하후란의 모습이 제법 기백이 있어 보였다. 마초가 어디서 본 얼굴 같기도 했으나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디서 본 얼굴 같기도 한데…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상당히 쓸만해 보이는데?’

마초는 하후란의 당당하고 침착한 태도와 말 키우는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거부한다면 어찌할 텐가? 설마 무력으로 나를 잡을 텐가?”

“그 방법밖에 없겠군요.”

“하후란 단주, 잘 생각하라. 지금 우리 숫자가 50명이지만 뿔피리를 불면 500기가 달려올 것이다. 게다가 그대도 서량병의 무서움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우리도 이 100명이 다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의종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하후란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당당하지? 뭔가 숨겨둔 패가 있나?’

“의종, 공자를 모실 준비를 해라.”

하후란의 말이 떨어지자 백여 명의 청년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고 창을 앞으로 내뻗으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다 떠들었나?”

성큼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서는 자는 방덕이었다. 오늘은 활이 아니라 폭이 넓고 휘어진 칼을 들고 있었다. 방덕의 애병, 선비족의 양식을 따라 만든 만도였다. 방덕의 옆으로 서황이 극과 방패를 들고 섰다.

마가군 병사들도 각각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창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서량의 정예병들이었다.

나관중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초의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비장군, 아무래도 싸움은 피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조자룡과 같은 상산창술을 수련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조자룡 같은 고수가 더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관중, 강한 건 무술이 아니라 사람이야. 어느 무술을 수련했는지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나관중에게 대답하면서 마초의 머리에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래, 이 방법을 써 봐야겠군.’

그 사이 마가군과 의종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후란은 왼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공격의 신호인 모양이었다.

“잠깐! 하후 단주, 제안할 것이 있다.”

마초가 두 무리의 충돌을 제지했다.

“무엇입니까?”

“그대들은 어쨌든 힘으로 우리를 제압하기만 하면 그만이 아닌가?”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좋아, 그러면 서로의 힘을 겨루어서 진 쪽이 깨끗이 승복하도록 하자. 단 지금처럼 병장기를 들고 싸워서는 서로 불필요한 목숨이 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권장으로 겨뤄 보자고.”

“권장으로? 맨손으로 겨루자는 말입니까?”

“그렇지. 서로 병장기를 들고 상대하면 의종의 단원들도, 마가군의 군사들도 숱하게 죽어 나갈 것이다. 나는 군사들이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병장기를 놓고 권장으로 겨루어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승부를 내도록 하자.”

“일리가 있군요. 허나 난전 중에 맨손으로만 싸우라고 하면 통제가 되겠습니까?”

마초는 하후란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난전 중에 병장기를 쓰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겠지. 그러니까 서로 대표를 뽑아서 겨뤄야지.”

“대표를?”

“그래. 그대와 내가 단둘이 승부를 가려도 좋고, 서로 세 명이나 다섯 명을 뽑아서 겨루는 방식도 좋다. 아니면 그대들의 수가 우리보다 두 배 많으니 우리는 세 명, 그대들은 여섯 명을 뽑아서 겨루어도 좋겠지. 제안은 내가 했으니 방법은 그대가 선택하라.”

의종의 입장에서도 여기서 서량병들을 상대하면 인명이 상할 수밖에 없다. 하후란은 마초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 공자의 말이 옳습니다. 단 의종은 항상 정정당당한 싸움을 하는 것이 원칙이니 숫자는 동등하게 맞추기로 하지요. 1대 1은 너무 적고, 5대 5는 너무 많으니 3대 3으로 합시다.”

“좋아, 그러면 2승을 먼저 하는 쪽이 이기는 건가?”

“아니, 모두가 결과에 납득할 수 있도록 승리한 대표는 다시 출전할 수 있는 것으로 합시다. 만약 1승 2패가 되면 승리한 1명과 2명이 차례대로 겨루어서 최종 승자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흠, 삼사법을 활용한 승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지략이 아니라 힘을 겨룰 수 있도록 그렇게 합시다.”

“좋아, 그렇게 하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빈은 제나라에 망명하던 시절 전차 경주에서 이기는 방법을 개발한 적이 있다. 세 번 겨루는 전차 경주에서 상대의 강한 말을 아군의 약한 말로 상대하며, 상대의 중간 말을 아군의 강한 말로, 상대의 약한 말을 아군의 중간 말로 상대해서 2승 1패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이를 삼사법이라고 한다.

하후란은 3대 3으로 겨루되 이러한 삼사법을 사용한 승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2승 1패 상황이 될 경우, 이쪽 진영의 승리자 둘과 반대 진영의 승리자 하나가 맞붙어서 최종 승패를 가리는 방식으로 결정한 것이다.

‘마등군이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걸 보니 셋 다 무예의 달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지는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하후 단주, 붙기 전에 한 가지 정해 둬야 할 것이 있다. 만약 그대들이 이긴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얌전히 붙들려 가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기면 그대들은 무엇을 약속할 텐가?”

“그럴 일은 아마 없을 테지만, 뭐든지 원하는 걸 말해 보십시오. 내 목이라도 가져가시렵니까?”

마초의 눈이 반짝거렸다. 입꼬리는 자신도 모르게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그대의 목을 내가 어디다 쓰겠나? 말이나 한 마리 주게. 내가 찍는 놈으로.”

“그러도록 하지요.”

하후란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나관중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마초의 옆모습을 흘끔거렸다.

‘또 나왔구나, 악당 표정.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악당인데…….’

나관중이 마초의 옆얼굴을 감상하는 사이, 곧 벌어질 싸움을 위해 의종의 단원들과 마가군의 병사들이 양쪽으로 나뉘었다. 두 패의 병사들 사이에는 널찍한 공터가 생겼다.

하후란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응, 첫 번째로 나가라.”

“예, 단주.”

자응이라고 불린 사내가 나섰다. 자응이 웃통을 벗어 던지자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가슴과 배의 근육이 하도 선명해서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고 팔뚝에는 기어 다니는 지렁이처럼 핏줄이 솟아 있는 자였다.

자응은 두 주먹을 눈앞에 두고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별안간 허공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자못 강맹하여 구경하는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허공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마친 자응이 자세를 낮추고 양팔을 날개처럼 펼쳐서 제법 근사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바로 상산의 매, 자응이다! 누가 나와 겨루어 보겠느냐?”

마가군의 장수들은 서로를 둘러보았다.

“상대는 상산의 매라는군. 우리 쪽에서는 누가 나가야 하지?”

“첫판이라 기세도 있으니 내가 나가도록 하지.”

한 장수가 목을 양쪽으로 꺾으며 우두둑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짧은 수염을 기르고 어깨가 넓은 청년이었다.

“잘 부탁한다, 상산의 매. 나는 서량의 방덕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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