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3화 (13/306)

13화. 양봉의 연회

이틀 뒤.

둔영에 위치한 마등의 군막에서 군량고 탈취를 위한 군의가 열렸다. 마등과 마초, 방덕, 부간, 그리고 정서장군부의 요직에 있는 몇몇 관리들이 참석했다.

마초가 탁상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미오성의 남쪽에는 견수라는 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기산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인 비밀 군량고는 기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합니다. 만약 우리가 견수를 따라 내려가서 군량고를 탈취하려 한다면 미오성에 먼저 발각되어 미오성의 수비병들에게 요격을 당할 것입니다. 미오성을 지키는 장수 이몽은 동탁의 부하로 서량에서 무용을 떨친 자이고, 수비병들도 서량의 정예병입니다.”

종사 부간이 입을 열었다. 마초와는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지만, 공적인 자리이니 존대로 말했다.

“마 도위, 미오성은 이각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오성에서 우리를 먼저 발견하면 미오성을 치는 것으로 오인할 것이고, 그것은 곧 이각과의 전면전을 의미합니다. 아직은 이각을 칠 때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오성의 눈에 띄지 않고, 기산의 북쪽 기슭으로 우회해서 비밀 군량고만 탈취해야 합니다.”

마초가 내쳐 말했다.

“기산 북쪽은 지금 강족 부락 아단부의 여름 목축지입니다. 아단부는 정서장군부에 귀부하여 이번 작전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아단부에서 얻은 정보로, 비밀 군량고 근처에 백파적 양봉이란 자가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주둔해 있습니다.”

“양봉이란 자가 백파적 출신입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본래 백파적의 무리였다가 이각에게 귀부해서 편장군 직함을 받은 자입니다. 소장이 아단부 족장 철리길과 함께 기산으로 우회해서 양봉을 기습, 패주시킬 예정입니다. 군량고의 군량은 기산의 북쪽 기슭을 따라서 수레로 운반합니다. 철리길 족장이 운반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만약 미오성의 이몽이 구원하러 오면 어찌합니까?”

“그때를 대비하여 주공께서 직접 이끄는 본대가 기산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구원병을 맞이합니다. 주공께서 직접 나서시면 이몽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합니다.”

이몽이 마등을 직접 공격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가군과의 전면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초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백파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조정에서 주공께 정서장군직을 내린 명분이 인근의 도적떼를 토벌하고 치안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으니까요. 우리에게 귀부한 강족 부락을 백파적이 약탈해서 정서장군의 권한으로 토벌하는 것이고, 미오성에는 손도 대지 않겠다는데 이몽이 무슨 수로 싸움을 벌이겠습니까?”

마초의 계획대로라면 이각과의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각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막료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마등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기도위 마초의 계책을 채택한다. 그러나 양봉의 3천 군사를 깨뜨리려면 이쪽도 적지 않은 희생이 있을 것이다. 계책이 있는가?”

“3천이 적은 수는 아니지만, 한낱 도적떼에 불과합니다. 우두머리를 먼저 제거하면 쉽사리 흩어질 것입니다.”

마초는 양봉을 상대할 계책을 설명했다. 막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 * *

“두부를 다시 만들라고요?”

나관중이 마초에게 반문했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가뭄이라 콩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인근 민가를 다 뒤져서 콩을 싹싹 긁어 왔지. 이번 계책에는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니 이걸로 두부를 만들어 봐. 꼭 두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모르고 너만 알고 있는 미래의 맛있는 요리면 된다.”

나관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부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한여름이다. 두부를 만들어도 바로 먹지 않으면 쉬 상할 것이다. 미래의 다른 요리라면 몇 가지 아는 것들이 있지만 두부처럼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그렇다면…….”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소금에 절이거나, 설탕으로 졸이거나, 얼리거나, 아니면…….

“말려야겠습니다. 두부를 얇은 포 모양으로 말려서 썰어내면 상당히 훌륭한 술안주가 됩니다.”

“그래? 뭐가 됐든 좋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처음 먹어 보는 맛있는 요리가 있으면 돼.”

나관중은 마초의 말에 따라 밤낮없이 건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두부를 자연광에서 잘못 말리면 곰팡이가 생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약한 불로 가마에서 익히는 방식으로 원나라의 주점에서 먹던 건두부 비슷한 물건을 만들었다.

마초가 구해 온 콩은 일부를 떼어서 두장을 담갔다. 콩이 발효되려면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며칠 안으로 요리에 쓸 만한 감칠맛 나는 두장을 만들어야 한다. 건두부가 완성될 무렵 아쉬운 대로 쓸만한 품질의 두장이 같이 완성됐다. 원나라의 여염집 아낙이 본다면 저게 무슨 두장이냐고 했겠지만, 후한 말의 백파적 두목이라면 감탄을 하면서 먹을 만한 맛이었다.

건두부에 몇 가지 야채와 고기를 넣고 두장을 섞어서 센 불에 볶는다. 그렇게 만든 건두부볶음을 먹어 본 마초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정도면 황주가 끝도 없이 들어가겠군. 관중, 네 재주가 실로 대단하구나. 천하제일의 마궁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너는 천 년 후의 세상도 살기 힘든 시대라고 했지만, 이런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으면 나름대로 살 만하겠는걸?”

“원나라에서도 사는 게 힘들긴 힘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는 전염병이 크게 돌아서 사람이 엄청나게 죽어 나갔던 적도 있구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이 요리로 무엇을 하실 겁니까?”

“양봉이라는 놈을 낚아야지.”

나관중이 건두부를 만드는 동안 마초도 군량 탈취 작전을 준비했다.

군량을 나르려면 수레가 필요했다. 마초는 진중의 수레를 총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소집해서 목표물인 군량고 근처에 위치한 견현으로 옮겼다. 곡식 3만 석을 한 번에 옮기려면 천 량이 넘는 수레가 필요했는데, 이는 진중의 수레를 총동원하고 한중태수 소고의 상단에게서 곡식째로 인수한 수레까지 합쳐도 모자란 수량이었다.

마초는 견현에 숙영지를 편성하고 군사들에게 부족한 수레를 만들게 했다. 만들어진 수레는 아단부를 통해서 기산 북쪽으로 옮겨 두었다.

그리고 양봉에게 서신을 띄웠다. 양봉 일파와 아단부의 분쟁을 중재한다는 명목이었다.

‘근자에 우리의 휘하에 있는 아단부가 양봉 장군의 군사와 충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강족의 오랑캐가 법도를 몰라서 저지른 일입니다. 본래 마등 장군이 직접 찾아가야 하겠으나, 사정이 부득이하여 장자인 저를 대신 보내서 양봉 장군께 사정을 잘 설명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저희가 연회 자리를 만들어서 아단부 족장 철리길이라는 자를 양봉 장군께 직접 사죄드리도록 하겠으니 넓은 도량으로 이해하시고 물리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예물로 건두부를 함께 보냈다.

마가군에는 좋은 말 이외에는 선물로 쓸 만한 귀한 물건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나관중이 만든 건두부는 양봉의 군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양봉은 결국 마초를 초대했다. 양봉의 군영 바로 옆에 위치한 미현의 황촌이라는 마을이었다. 양봉이 이각에게 귀부해서 기산 옆으로 옮겨 온 것은 불과 서너 달 전의 일인데, 그새를 못 참고 황촌에 첩을 만들어서 첩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연회는 양봉의 집에서 벌어졌다. 원래 황촌에서 정장 벼슬을 지내던 유지의 집이었는데 양봉이 정장을 죽이고 빼앗았다. 원래 있던 정장도 어지간한 자였는지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서른 칸이나 되는 큰 저택이었다.

“마 공자께서 이토록 영민하시니 참으로 정서장군의 복이시오.”

자리를 잡자 양봉이 점잖게 인사말을 건넸다. 외모는 누가 봐도 산도적 같아 보였지만 제법 격식이 있고 법도를 아는 듯 보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양봉 장군이야말로 과연 영웅의 풍모가 있으십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끝나고 마초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간의 사정은 서신으로 대략 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정서장군부에서는 본래 동쪽으로 견현까지만을 관할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세력권 밖에 있는 아단부에서 저에게 귀부를 청했지요. 경험이 적은 제가 사정을 잘 모르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허허, 그래서요?”

“알고 보니 아단부는 양봉 장군과 세력이 겹쳐서 몇 번의 충돌이 있었고, 장군을 당해내지 못하자 정서장군의 세력을 빌려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정서장군께서 저를 크게 꾸짖으시고 사죄의 뜻으로 직접 가서 양봉 장군께 사정을 설명 드리라고 하여 온 것입니다.”

마초의 말인즉 세상 물정 모르는 공자가 강족 부락의 꼼수에 속아서 강족의 귀부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마초는 일부러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허나 귀부는 이미 받아 버렸으니 어쩌겠습니까? 여기 있는 철리길 족장에게 여름 동안 쥐 죽은 듯이 양을 치다가 돌아가고, 내년부터는 여름 목축지를 바꿔서 기산으로 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그러하니 양 장군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십시오. 다시금 장군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허허, 군문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공자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시오.”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아단부의 양과 말을 먼저 약탈한 것은 양봉의 무리였다. 그러나 양봉은 짐짓 마초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양봉이 마초의 말을 들으니 양과 말을 빼앗긴 아단부가 앙심을 품고 마등에게 달려가서 고자질했는데, 마등의 아들 마초가 상황을 잘 모르고 귀부를 받아들였다가 왜 불필요한 분쟁을 만드냐고 마등에게 혼찌검이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해한 양봉은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마초를 이용하려고 했다.

“하여 음식을 준비해 왔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보내 주신 음식이라면 천하의 진미가 따로 없더이다.”

양봉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본래는 마초가 찾아갔으니 양봉이 대접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마초는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자기가 음식 만들 일꾼들을 데려가서 양봉을 대접해야겠다고 우겼다.

단순히 마초가 예를 차리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뭔가 석연치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초가 미리 보낸 건두부가 그런 의심을 지웠다.

‘이 녀석이 어디서 진미를 구해서 내 환심을 사려고 일부러 자기가 음식을 만들겠다고 하는 거구나. 아니면 그저 이 진미에 푹 빠져 있는 식탐이 강한 자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양봉은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공자께서 보내 주신 그 음식은 어떻게 만드는 거요? 우리 군졸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소?”

“아이고, 물론이지요. 연회가 끝나면 우리 일꾼 하나를 며칠간 장군의 군영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이 방씨, 연회가 끝나면 양 장군의 군영에 가서 일을 좀 보도록 하오.”

마초는 일꾼 방씨에게 소리쳤다.

“예, 공자.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일꾼 방씨라고 불린 사내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일꾼치고는 이상하게 어깨가 떡 벌어진 짧은 턱수염의 젊은이였다.

‘나는 몸은 젊어도 머리는 중년의 나이니까 그렇다 치고,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거야? 무장이 아니라 사기꾼을 했어도 대성했겠군.’

마초는 30년 만에 방덕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연회석상 한켠에는 남들보다 두 배는 큰 몸집에 근엄한 표정을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마초가 익히 아는 얼굴이었지만 모르는 척 양봉에게 물었다.

“저 장사는 누굽니까?”

“기도위로 있는 서황이라고 하오. 혼자서 백 명도 당해내는 무예의 달인이지요.”

양봉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랑하자 서황이 마초를 향해 군례를 취했다. 마초는 일부러 애송이 티를 내기 위해 약간 어설픈 동작의 군례로 화답했다.

‘한심하긴, 서황의 재주는 고작 백 명을 당해내는 재주가 아니다. 상승장군이 될 재목인데 하찮은 백파적 출신 군웅 밑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구나.’

마초는 속마음과는 달리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 명을 당해내는 장사가 정말로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오. 공자께서 서 도위의 무예를 한번 시험해 보시겠소?”

“어이구, 사양하겠습니다.”

마초가 손사래를 치자 양봉이 껄껄 웃었다.

술자리가 그렇게 무르익어 갈 무렵 양봉이 변소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초가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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