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마초연의-12화 (12/306)

12화. 철리길과 월길

족장이 천막에 들어와서 마초에게 인사를 건넸다.

“맹기 공자, 오래 기다렸소?”

“젤구데이 족장, 오랜만이오.”

족장 젤구데이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유목민은 노인이 부족을 이끌지 않는다. 대체로 부족을 지휘하는 건 젤구데이처럼 전사로서 선봉에 설 수 있는 자였다.

“오르곤에게 듣자 하니 정서장군께서 큰일을 계획하고 계신가 보오.”

“이각이란 놈 밑에서 으스대는 무리들을 좀 혼내 주려고 하오. 하는 김에 군량도 얻고 말이오. 아탄 부족도 그자들과 감정이 좋지는 않을 테니 도와주시리라 믿소.”

“감정이 좋지 않다 뿐이겠소?”

젤구데이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얼마 전 이각에게 귀부한 백파적 무리 하나가 이곳 기산 북쪽에 둔을 치고 얼쩡거리고 있소. 얼마 전, 이놈들이 우리의 말과 양을 노략질해 갔소이다. 태생이 백파적이라지만 이제는 관군인데, 관군이 어찌 이럴 수가 있소?”

“귀부한 백파적 무리라…….”

마초는 비밀 군량고를 탈취하면서 미오성의 수비군이 막으러 오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족장의 말은 근처에 백파적 무리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또한 견제해야 했다.

“간과했다면 큰일 날 뻔했겠군. 그 우두머리 이름이 무엇이오?”

“양봉이라는 자요. 편장군 벼슬을 받았다 하오.”

“양봉?”

“양봉!”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나관중이 마초와 동시에 양봉의 이름을 외쳤다. 마초와 젤구데이의 시선이 나관중에게 향하자 나관중은 무안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고, 이거 송구합니다. 두 분 마저 말씀 나누십시오.”

“음, 그런데 서생께서는 누구시오?”

“아, 이 친구는 서생이 아니고, 아니… 서생이 맞기는 한데, 지금은 내 휘하에서 마궁수로 있는 나관중이라고 합니다. 백파적 양봉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익히 알고 있었소.”

백파적은 황건적의 잔당이 중심이 되어 병주와 관중 일대에서 일어난 도적떼들이다.

그리고 양봉은 그 백파적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무리 중 하나였다. 마초와 나관중의 기억에 따르면 나중에 장안을 탈출하는 천자를 호종하여 공을 세우지만, 조조에게 패한 후,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략질을 하다 유비의 손에 죽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양봉의 이력보다 지금쯤 양봉의 부하 장수로 있을 누군가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양봉이라면 틀림없이…….”

“그래, 지금 양봉의 수하에는 서황이 있을 것이다. 족장, 혹시 양봉의 수하들과 싸워 본 사람이 있소?”

“그들이 노략질할 때 양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쫓겨 온 전사가 있소.”

젤구데이는 양봉 무리와 싸워 본 전사를 데려와서 마초의 질문에 대답하게 했다.

전사는 분명히 양봉의 무리에 눈에 띄는 장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달리 체격이 크고 근육질에 수염이 없고 턱이 각진 것까지, 마초가 알고 있는 서황의 모습과 일치했다.

마초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젤구데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군. 원래는 길을 빌리고 수레 운반이나 도와 달라고 하려 했지만, 근처에 양봉의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판을 좀 키워야겠소. 족장은 양봉을 쳐서 양을 되찾을 계획이지요?”

“물론이오. 우리에게 양떼는 목숨과 같은 것이오. 나는 족장으로서 노략질당한 양과 말을 되찾아야만 하오. 한족들도 논밭을 빼앗겼다면 그리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 그러나 양봉은 조정을 장악한 대사마 이각의 휘하에 있으니, 자칫하면 조정에서는 강족이 관군을 습격하는 것으로 볼 것이오. 그들을 물리친다 한들 이각이 토벌대라도 보낸다면 일이 복잡해지오. 이각의 휘하에 있는 백파적 무리가 한둘이 아닌 걸로 알고 있으니 아탄 부족이 하영지를 보존하는 것은 날로 힘들어질 것이오.”

젤구데이의 표정이 굳은 걸로 봐서 그 또한 같은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마초가 뒤이어 말했다.

“그러니 족장께서는 결단을 내려 주시오. 정서장군부에 귀부하시고 정서장군의 군사와 함께 양봉을 치시오.”

“정서장군부에? 마등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란 말이오?”

“그렇소. 아탄 부족의 하영지는 이곳 기산에 있지만, 동영지는 우리의 세력권인 천수에 있지 않소? 귀부할 명분은 충분하오. 정서장군부에 귀부하면 우리 세력권 내에서 가축을 노략질당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겠소.”

이 시기의 강족들은 조정에 충성을 맹세하고 족장이 중랑장이나 교위 벼슬을 얻는 일이 흔했다. 장안과 가까운 관중 지방에서는 더욱 그랬다. 다만 최근에는 조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병주의 정원이나 서량의 동탁 같은 지역 군벌에게 귀부하는 강족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마등 또한 나중에 많은 강족 부락을 휘하로 들여서 큰 세력을 이루게 된다.

‘아탄 부족은 한족에게 귀부하지 않은 독립적인 부족이지. 그러나 최근 인구가 늘면서 한족과 손을 잡아야 할 필요성은 계속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젤구데이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마초는 내쳐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귀부한다고 해서 한족 같은 군신의 의를 요구하지 않소. 초원의 방식대로 형제의 맹약을 맺자는 거요. 서로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돕되, 주고받음은 서로 공평하게 하기로 할 것을 보장하오.”

초원의 유목민들에게는 군신의 도리가 없다. 오로지 거래가 있을 뿐이다. 마초는 거래 조건을 설명했다.

“내가 천문을 볼 줄 아는데 앞으로 당분간 관중에 큰 흉년이 들 거요. 아탄 부족도 이미 인구가 늘어서 양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고, 한족과의 곡물 교역이 꼭 필요하지 않소? 그러나 곡물은 한인들 먹을 만큼 수확하기도 어려울 테니 교역할 물량이 남아 있지 않을 거요. 우리에게 귀부한다면 형편이 닿는 대로 밀과 보리를 팔도록 하겠소. 넉넉하지는 못해도 기근으로 사람이 굶어 죽는 건 피할 수 있을 거요.”

다가올 흉년에 대해서는 젤구데이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언젠가는 했어야만 할 일이다. 마등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지금 귀부하는 게 낫다.’

젤구데이는 결심이 섰다.

“만약 귀부한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하면 되오?”

“길을 내어주고, 수레 천 량을 천수 농현까지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고, 용감한 전사 300명을 내어주시오. 나는 그들을 이끌고 양봉을 치고 미현의 군량고를 털 것이오. 정서장군께서 조정에 표를 올려서 양봉을 친 것은 우리의 행동이라고 주장할 테니 아단부는 관군의 토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오. 족장은 빼앗긴 양과 말도 되찾게 될 것이오.”

“맹기 공자의 말이 이치에 맞으나, 만약 전사 300명을 잃게 된다면 우리 부족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되오. 확실히 양봉을 이길 자신이 있으시오?”

“하하하, 백파적 토벌이라면 젊은 날에 실컷… 어쨌든 자신은 있으니 심려치 마시오.”

마초의 기억 속에서 아탄 부족은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식량을 얻기 위해 이각군과 충돌했다. 그러나 강성한 이각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해서 세력이 크게 줄어든 후 먼 서쪽 장액군까지 쫓겨 갔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마등의 동맹 세력이 되어 앞으로 3년간의 대기근을 무사히 넘긴다면 이 일대의 강성한 부족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든든한 동맹군이 되어 줄 것이다.

“좋소. 이번 일이 끝나면 정서장군을 뵙고 정식으로 맹약을 맺도록 하겠소. 우리 아탄은 이제부터 정서장군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이오.”

“잘 생각하셨소. 며칠 후, 군사들을 이끌고 양봉을 치러 올 테니 그때까지 전사 300명을 선발해 주시오. 그리고 한 가지, 전사들에게 일러 주셔야 할 게 있소.”

“무엇이오?”

“양봉의 진영에 있는 장사는 꼭 생포해야 하니 튼튼한 그물을 만들어 주시오.”

마초는 몇 가지 요청사항을 전달하고 산을 내려왔다. 오르곤이 마초와 나관중을 산 아래까지 배웅했다.

“족장께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셨군요. 맹기 공자, 내 생각에도 참으로 잘된 일 같습니다. 이런 난세에 우리끼리만 고립되어 사는 건 위험하지요. 한족 유력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이런 난세를 살아가려면 동맹이 필요하지. 아탄처럼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라면 더욱 좋고.”

마등과 마초에게는 하나라도 더 많은 동맹 세력이 필요했다. 이제 곧 이각과의 전면전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마등과 이각의 충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젤구데이도 느꼈을 것이다. 어차피 이각의 휘하에 들 수 없다면 빨리 마등과 동맹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르곤, 이제 한족과 동맹 세력이 됐는데 너도, 젤구데이 족장도 한자 이름이 필요하지 않겠나? 부족 이름도 한자로 짓고 말이야.”

“아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자를 모르니 뭐 지을 수가 있어야죠. 공자가 하나 지어 주면 족장도 좋아하실 겁니다.”

“나보다는 여기 마궁수 선생이 글을 잘하지. 관중, 우리의 새로운 친구들에게 선사할 적절한 이름이 없을까?”

“강족 이름 말입니까? 음…….”

나관중은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다 이내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회귀 전에 쓰고 있던 삼국지연의의 한 대목이 생각난 것이다.

“오르곤 님은 월길(越吉)이라고 하심이 어떻습니까?”

나관중이 한자로 서판에 이름을 써서 보여 주자 오르곤의 얼굴이 환해졌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자 모양이 마음에 드는군요. 우리 부족의 이름도 써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나관중이 다시 서판에 글자를 썼다.

“아단부(雅丹部)라고 하시지요.”

“아, 붉을 단 자는 나도 아는 글자입니다. 마침 우리 부족이 붉은 옷을 즐겨 입으니 딱 좋은 이름이군요. 마궁수 선생,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오르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관중을 쳐다보았다. 마초가 그 모습을 보고 면박을 주었다.

“하여튼 한족 거라면 앞뒤 안 가리고 좋아하기는. 관중, 내친김에 젤구데이 족장의 이름도 생각해 봐. 족장은 인망도 있고 싸움도 잘하고, 한인으로 태어났으면 어디 군웅쯤은 되고도 남았을 만한 사나이니까 좀 강해 보이는 이름으로 지어 보라고.”

“하하하하, 족장님의 이름이라면 이미 제가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이 이름을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나관중이 헤벌쭉 웃으며 서판에 글자를 슥슥 써 내려갔다.

“철리길(徹里吉).”

“오, 강해 보이는 이름인데?”

“글자가 멋지네요. 족장님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겁니다.”

오르곤은 그렇게 나관중이 지어 준 새 이름을 받아서 월길이 되어 돌아갔다.

마초는 월길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관중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강족 이름 따위를 생각하고 다니는 거지?”

“하하하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패설을 쓰고 있었다고. 패설에 등장시키려던 강족의 왕 이름입니다. 제가 유성을 보면서 삼국시대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지만 않았어도 천하제일의 패설 작가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패설 작가라는 게 음, 그러니까 제자백가의 소설가(小説家)들 같은 거지?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가들은 대체로 패관 벼슬을 하면서 저잣거리의 이야기를 모은 거고, 너는 그냥 놀면서 이야기를 쓴 거고.”

“그냥 놀다니요? 삼국지, 자치통감, 후한서, 하여튼 그 수많은 역사서들을 다 외울 만큼 읽었단 말입니다.”

“하긴, 앞으로 내가 그 덕을 볼 일이 생기겠지. 마냥 놀리면 안 되겠군.”

“그뿐만이 아닙니다. 글이라는 게 써질 때는 한없이 잘 써지지만 한번 막히면 죽을 만큼 힘들다구요. 게다가 주변의 시선은 또 어떻구요. 부모 형제마저도 저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고… 남들은 소금 장수를 못 해서 안달인데 패설 같은 거 써서 먹고 살 수나 있냐고… 으흑흑흑!”

나관중은 뭐가 그렇게 복받치는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 녀석 또 시작이군.’

마초는 한숨을 푹 쉬고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나처럼 패륜 행각은 안 했잖아? 그 정도면 훌륭하지.”

“아… 그런가요?”

“그렇긴 뭐가 그래? 그만 울어!”

마초가 위로한다고 던진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나관중이 진짜로 알아듣자 마초는 기분이 팍 상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렇게 일행은 산을 내려왔다.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군영을 떠났지만, 기산에서 아단부와 동맹을 체결하고 다시 군영에 도착할 때가 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나관중은 지는 해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나서 마초에게 물었다.

“공자, 그런데 아단부와의 동맹 같은 중요한 일을 이렇게 처리해도 괜찮습니까? 혹시라도 정서장군께서 반대하시면…….”

“아버님과는 이미 얘기가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마. 어차피 아버님도 이번 일이 끝나면 철리길에게 동맹을 제안할 생각이었어. 조금 빠르게 닥쳤을 뿐이지.”

“그렇군요. 그런데 양봉 휘하에 있는 서황 말입니다만…….”

“그래, 아주 뛰어난 장수지. 역사서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조조 휘하의 장수들 중에서도 그 공이 으뜸을 다투며 지용을 겸비하고, 교우 관계는 넓지 않지만 일 처리가 엄정하고 공정하였다, 뭐 대체로 좋은 얘기들뿐입니다. 부하들이 ‘서황의 밑에 배속되니 밥 먹을 틈도 없다’고 불평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로 봐서 병사들에게는 원망을 샀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말을 듣고도 웃으면서 넘겼다고 하니 사람이 도량은 있지 않았나 싶더군요.”

“대충 예상했던 대로 기록돼 있군. 한 가지 첨언하자면 서황은 연병의 귀재다. 그가 맡은 부대는 반드시 군율이 엄정하게 서고, 신병을 맡아도 몇 달이면 정예병으로 만들어 내는 뛰어난 장수지.”

“그러고 보니 공자께서는 서황과 적장으로 싸워 보셨지요?”

“질리도록 많이 싸워 봤지. 포판진에서, 그리고 한중에서.”

“그런데 공자, 서황은 이름난 맹장이 아닙니까? 양봉의 진영에 그가 있다면 쉽게 당해내기는 어려울 듯하여 조금 걱정이 됩니다. 물론 공자께서 서황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군사들이 많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건 나에게 다 생각이 있다.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꼭 생포해서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테니 두고 보라고.”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다고요? 서황은 공자께는 적장이었지 않습니까? 복수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복수는 무슨 복수. 각자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마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서황에게는 딱히 악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서황과 싸워서 이긴 적도 진 적도 있고, 수하들의 목숨을 빼앗은 적도 빼앗긴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무장들끼리 당연한 일이지. 그런 걸로 원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그리고 서황은 적장이지만 나름대로 군자의 풍모가 있었다.”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도량이 상당히 커 보였겠지만 마초는 굳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후연이라는 놈은 아주 괘씸하긴 하지만.”

나관중은 생각했다.

‘역사서에서 본 마 공자는 참으로 난폭하고 흉악한 사람이었는데 정말 많이 유해졌구나. 아픔을 많이 겪어서 성숙해진 것일까? 아니,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마 공자를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자께서 이토록 덕이 많으시니 서황도 반드시 공자에게 귀부해 올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래야만 하고말고. 서황은 연병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일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쓸데없는 사고를 치지도 않아. 게다가 위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부하들을 휘어잡고 다그치니 이 얼마나 기특한 무장인가? 반드시 사로잡아서 노예처럼 부려 먹어야겠어.”

“네? 부려 먹는다구요?”

“그래, 젊은 시절로 돌아오니 좋기는 한데 직급이 기도위밖에 안 되니까 짜증 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군 생활을 30년 했는데 다시 연병을 하고 있으려니 짜증이 안 나겠어? 서황에게 다 시켜야지.”

마초는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지만, 눈은 날카롭게 빛나는 예의 그 악당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관중은 잠시나마 마초의 인격을 과대평가한 것을 후회하며 몸서리를 쳤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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