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효자
사례주 풍익군 지양현.
십여 기의 말을 탄 사내들이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선두에 선 40대 남자는 기골이 장대했다. 유독 높이 솟은 콧날과 움푹 들어간 눈매, 얼핏 푸른 빛이 비치는 눈동자로 봐서 순수한 한족 혈통이 아닌 이민족과의 혼혈인으로 보였다.
서량의 신흥 군벌, 정서장군 마등이었다.
“결국 이번 출행에서도 군량을 구하지 못했군.”
마등이 뒤를 따르는 젊은 청년을 돌아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종사 부간이었다.
“설마 지양현의 부호들에게도 곡식이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보리 수확과 함께 팽가장에 보리를 팔기로 한 상태라고 하니, 결국 군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팽가장의 주인을 만나 봐야겠지. 내일은 팽가장으로 가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곡식을 구하기 위해 지양현의 부호들을 만났던 마등은 별 소득 없이 둔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다음 계획을 생각하며 길을 재촉했다.
마등이 이끄는 십여 기가 긴 숲길을 빠져나왔다. 숲길이 끝나자 넓은 들판이 펼쳐진 개활지가 나왔다.
그때, 개활지로 나온 마등의 앞에 별안간 한 무리의 말 탄 군사들이 나타났다.
“정서장군 되십니까?”
군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장수가 앞으로 나서서 마등에게 물었다. 가늘고 긴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였다.
“내가 정서장군직에 있는 마등이 맞네만, 그대는 누구인가?”
“지양현 현위 왕승이라고 합니다. 정서장군께 볼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약 삼백 기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선 현위 왕승의 태도가 제법 당당했다. 눈가에는 살기마저 떠올라 있었다.
마등은 왕승과 그가 이끄는 군사들을 훑어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일개 현위 휘하의 관병치고는 지나치게 무장이 잘 돼 있군. 게다가 저들의 숫자는 삼백에 달하는데 우리들은 고작 십여 명이다. 낭패로군.’
설마 지양현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나라에서 임명한 현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 줄은 몰랐다. 마등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현위. 보아하니 그대가 말하는 볼 일은 내가 아니라 내 목에 있는 것 같군.”
“바로 보셨습니다.”
“그대는 어떤 이유로 이 마등의 목이 필요한가?”
“곧 돌아가실 분께서 그건 알아서 뭐 하시렵니까.”
왕승은 긴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능청스럽게 되받았다.
잠시 왕승을 바라보던 마등은 이내 피식 웃었다.
“할 수 없지. 내가 너무 방심한 탓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군. 현위, 그대도 무장이라면 직접 말을 몰아서 내게 덤벼라. 상대해 주마.”
“으하하하! 마등 장군께서 무예가 절륜하다는 사실은 내 익히 알고 있소. 불리한 전세를 한 번에 뒤집어 보고자 잔꾀를 쓰시는군.”
현위 왕승은 마등과 단독으로 겨룰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풍익사준. 마등 장군을 모셔라. 굳이 살려서 잡지 않아도 좋다.”
“존명!”
풍익사준, 풍익의 네 마리 준마라고 불리는 장수 네 명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하나같이 체격이며 용모가 범상치 않은 장수들이었다. 그들 중 눈매가 매서운 장수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이 풍익사준의 대완마 장쾌가 화살 한 대로 서량의 촌부를 거꾸러뜨리겠습니다.”
장쾌는 각궁을 꺼내 화살을 메겼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마등을 겨눴다.
그러나 장쾌가 활을 쏘기도 전에,
쇄애애액!
하고 화살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나더니 장쾌의 뒷목에서 파열음이 울렸다.
퍽!
“크, 크억…….”
수십 장 밖에서 날아온 화살이 장쾌의 뒷목을 뚫고 입으로 튀어나왔다. 장쾌는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목이 꿰뚫렸으니 제대로 말이 나올 리 없었다. 풍익사준에서 대완마를 담당하고 있는 장쾌는 그렇게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절명했다.
“웬 놈들이냐!”
장쾌가 저격당하는 것을 본 왕승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뒤쪽에서 한 무리의 인마가 접근하고 있었다. 선두에는 짧은 수염을 기르고 활을 든 청년 장수가 달리고 있었다. 왕승은 주변의 다른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설마 저놈인가. 거리가 50장(약 125m)은 될 터인데, 저 거리에서 화살을 쏴서 맞출 수 있는 놈이 있단 말인가?”
“서량 마가군에 옛 명장 이광처럼 활을 잘 쏘는 놈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저놈이 그놈 아닐까요?”
“크윽,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이냐?”
왕승은 갑자기 나타난 구원군을 보며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구원군을 이끌고 나타난 청년 장수는 왕승의 너머에 있는 마등을 향해 소리쳤다.
“정서장군, 여기 방덕이 왔습니다!”
“방영명, 그대가 어찌 이곳에 있는가?”
마등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욱 놀랄 일이 일어났다. 방덕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장수가 말을 달려서 옆으로 빠져나왔다. 오른손으로 긴 창을 비껴 잡은 마초였다.
“맹기…? 네가 어떻게?”
마초와 방덕이 마등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구원군에 놀랐던 왕승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초와 방덕의 군세를 살폈다.
‘80기 정도인가. 좋아, 병사 수는 우리가 세 배 이상 많다.’
숫자를 비교해 보자 자신감이 붙었다. 왕승은 큰 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전군, 저놈들을 잡아라! 적은 아군의 삼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우와아아!”
화살에 맞아 절명한 장쾌 대신 풍익사준의 다른 세 장수가 삼백에 달하는 병사들을 이끌고 마초와 방덕을 향해 전진했다.
“회귀한 후, 첫 싸움인가.”
마초는 낮게 중얼거리며 말을 몰아 선두로 나섰다. 긴 창을 비껴들고 눈앞의 적병 삼백 명을 응시했다.
“보여 주마. 내가 누군지.”
마초의 푸른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입꼬리는 전투의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살짝 올라갔다. 마초는 그대로 말을 몰아 왕승의 삼백 기병을 향해 내달렸다. 50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자 긴 창을 든 마초가 적진에 충돌했다.
콰직!
마초의 창이 선두에 선 기병의 몸을 꿰뚫었다. 마초는 바로 창을 뽑아낸 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벴다. 순식간에 선혈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마초가 그렇게 만든 피의 안개를 뚫고 지나가자 십여 명에 달하는 적병이 쓰러져서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악!”
“크아악!”
“저… 저놈은 괴물인가?”
왕승의 병사들 사이에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경악에 찬 탄식이 흘렀다. 기병 삼백 명이 마초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할 리 없다. 그러나 마초가 순식간에 십여 기를 단신으로 제압하는 무위를 보이자 병사들을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먼저 앞으로 나서서 마초의 창에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마초를 잡기 위해 풍익사준의 다른 세 장수들이 나섰다. 그중의 한 명, 8척 장신에 당당한 체격을 한 거구의 장수가 선두로 나서서 마초를 향해 외쳤다.
“내가 바로 풍익사준의 한혈마, 이삼이다! 내가 상대해 주마!”
마초는 대꾸하지 않고 이삼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삼은 큼지막한 방패를 들어 몸을 온통 가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겁이 많은 놈이군.”
마초는 말을 몰아 이삼을 향해 바로 뛰어들었다. 이삼은 방패를 단단히 쥐고 마초의 공격에 대비했다. 첫 창을 막아내고 바로 반격할 셈이었다. 마초는 창을 들어 방패가 가리지 못 하는 말의 목을 겨냥했다.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릴 때, 마초의 눈이 번쩍 빛났다.
푸욱!
이삼이 타고 있는 말의 목줄기가 한 창에 꿰뚫렸다. 말이 고꾸라지고 이삼의 거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간신히 몸을 수습해서 일어난 이삼을 말 위에 앉은 마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 크윽… 네놈은 대체 누구냐?”
마초는 대답 대신 이삼을 향해 오른손에 든 창을 한 번 휘둘렀다.
퍽!
이삼의 목이 하늘로 높이 날았다 바닥에 떨어졌다.
“서량의 마초다.”
마초는 땅에 떨어진 이삼의 목을 향해 말한 뒤 몸을 돌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이 들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마초다. 그러나 지금은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와 20세의 활력 넘치는 몸에 들어가 있었다.
젊어진 몸은 마초가 마음먹은 그대로 움직여 주었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40년간 무예를 수련한 고수가 20세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지다. 이 정도의 무공이라면… 내가 천하제일일지도 모르겠군.’
마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적진을 향해 다시 창을 겨눴다.
“풍익사준이라고 했나. 대완마와 한혈마는 잡았고, 남은 두 마리 준마도 마저 잡아 볼까.”
마초는 그대로 말을 달려 적진으로 짓쳐 들어갔다. 마초의 무용에 넋을 놓고 있던 병사들이 혼비백산하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남은 풍익사준의 두 장수가 달려 나와 마초의 앞에 섰다. 제법 진지한 표정을 하고 그럴싸한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마초가 두 명 중 왼쪽에 있는 장한에게 물었다.
“너는 풍익사준의 뭐냐?”
“네 이놈, 내가 바로 풍익사준의 적토마, 강송이다!”
“적토마? 여포가 타고 다녔다는 그 말에서 이름을 따 왔나?”
마초는 적들의 괴악한 작명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달려 적토마 강송에게 짓쳐 들어갔다. 젊어진 몸이 생각보다 더 가볍게 움직였다.
“좋아. 겨뤄 보자, 적토마!”
적토마 강송은 눈을 부릅뜬 채 대도를 치켜들었다.
“으아압!”
강송은 기합을 내지르며 대도를 휘둘렀다.
부우웅!
강송의 대도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기세는 제법 강맹했으나 어떻게 베어 들어올지 눈에 뻔히 보이는 일격이었다.
말과 말이 교차하는 순간 마초는 몸을 한껏 뒤로 뉘었다. 강송이 수평으로 휘두른 대도가 허공을 갈랐다.
뒤로 누운 마초가 창을 잡은 오른쪽 겨드랑이를 조였다. 창끝은 위로 치솟으며 정확히 강송의 목을 찔렀다.
퍼억!
강송의 목에 창날이 만든 깊숙한 상처가 패었다. 입에서 피거품을 흘리던 강송은 몇 발짝 못 가 말에서 떨어졌다.
“이제 한 명 남았나?”
마초는 풍익사준의 마지막 한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벌써 전의를 상실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초는 창을 거꾸로 잡고 팔을 한껏 뒤로 당긴 후, 마지막 한 명을 향해 던졌다.
콰직!
허공을 날아간 창은 마지막 풍익사준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가슴에 창이 꽂힌 장수는 자신이 풍익사준의 누구라고 밝힐 기회도 없이 바로 절명했다.
“너는 뭐 오추마 정도겠지. 저세상에서 대완마, 한혈마, 적토마와 함께 편히 쉬어라.”
그저 무심한 말투였다. 그러나 눈 깜박할 새 풍익사준이 전멸하는 것을 본 지양현의 군사들은 마초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돌격하라! 적을 놓치지 마라!”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방덕이 군사들을 휘몰아 돌진했다. 같은 기병이라지만 마초와 방덕이 이끌고 온 80기는 서량의 강병이었다. 게다가 마초가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 셋을 참살했으니 지양현의 병사들은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지양현의 군사들은 방덕이 이끄는 서량병 80기를 당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방덕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현위 왕승을 잡아서 끌고 왔다.
그 사이 마초는 마등에게 다가갔다.
말에서 내려서 마등의 앞까지 걸어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꿈속에서도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마초는 인사보다 먼저 마등을 부둥켜안았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불효자 마초가 아버지를 뵙습니다.”
마초는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주먹을 모아쥐어 군례를 취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마등을 올려다보았다.
감히 그리워하지도 못했던 아버지다.
마등은 조조의 부름을 받고 허도에서 위위 벼슬을 지내다가, 마초가 조조에게 맞서서 봉기하는 바람에 처형당했다. 마초는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할 자격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마초는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웠다. 마초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그러다 40대 중반이 된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꼭 닮아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사흘 밤낮을 식음을 전폐하고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를 다시 만난 마초의 감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젊으셨구나. 어릴 적 기억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다.’
마등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이곳은 길게 얘기할 만한 자리가 아니니 일단 둔영으로 돌아가자.”
마등과 마초는 십 리 밖에 위치한 마등의 둔영으로 같이 말을 달렸다. 방덕이 현위 왕승과 몇 명의 포로를 데리고 뒤를 따랐다.
“적의 습격을 받는 부친을 구해 냈으니 세상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저보고 서량의 효자라고 할 것입니다. 하하하하! 아버지,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위험을 알고 달려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마등은 아무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마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또 아비의 말을 훔쳐 탔겠지.”
“네?”
“네는 무슨 네야. 천하의 마초 도위가 갑자기 백리 길을 달려와서 아버지를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뭔가 용서를 빌 일이 생겼다는 것이겠지. 아마 몰래 타고 나간 준마가 다치기라도 했나 보구나. 어쨌든 오늘은 덕분에 살았으니 용서해주마. 그 나이 때는 아버지 말을 훔쳐서 정인을 태워 주고 싶기도 한 법이다만 도를 지나치지는 마라.”
“아니, 아버지야말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가 무슨 약관의 애송이입니까? 그리고 아버지 말을 몰래 훔쳐 탔던 건 한참 어릴 때잖아요. 그게 언제적 일인데 지금까지 거론하십니까?”
“첫째, 너는 약관이 맞고, 둘째, 네가 아비의 말을 훔쳐 타고 양 소저와 놀아난 건 바로 지난 달이다.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마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기억을 돌이켜 보니 분명히 이때쯤 마등의 말을 훔쳐 타고 밤에 마을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마을 처녀 양하원과 밀회를 하기 위해서다. 훗날 마초의 아내가 되는 바로 그 여인이다.
마초에게도 당연히 말이 있었지만, 군문에 들어 도위가 된 자신의 모습을 정인에게 처음 보여 주는 자리였기 때문에 기왕이면 근사한 서역의 준마를 타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아니 그러면 말 훔쳐 탄 건 왜 모르는 척하셨어요?”
마등은 마초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어릴 때 나도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니까. 아비는 너만 할 때 나무꾼이었다. 가난에 쫓겨서 매일 나뭇짐을 지고 다녀야 했지. 아버지 말을 훔쳐 타고 정인을 만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놈이 훔쳐 탈 만한 준마도 기르고 있으니 나름대로 보람된 인생 아니냐? 야단칠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마초는 가슴이 먹먹했다.
“어쨌든 너도 이제 관례도 올렸고 자(字)도 있는 어엿한 성인이다. 이제부터는 행동을 좀 조심하도록 해라. 그래, 준마가 상한 건 그렇다 치고 양 소저는 무사하더냐?”
“아버지, 말이 상해서 용서를 구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달려온 것이냐?”
“사실은…….”
마초는 그동안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어느 날 일어나 보니 30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고?”
마등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뒤에서 묵묵히 말을 몰던 방덕이 끼어들었다.
“장군,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속는 셈 치고 같이 달려와 보니 맹기의 말이 전부 맞았습니다. 맹기는 장군께서 평복 차림으로 외출하셨다가 왕승이라는 자에게 습격을 받을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들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오늘 이런 일을 당해 보니 나도 혼란스럽구나. 점쟁이나 방사들은 꿈속에서 미래를 볼 때가 있다는데 맹기도 그런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맹기의 꿈이 아니었으면 큰 위기에 처할 뻔했다.”
마초는 마등이 왕승이라는 자의 습격을 받아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천수로 돌아온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지양현의 현위 왕승이 왜 마등을 습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등의 둔영에 도착하면 왕승을 심문해서 습격한 이유를 알아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