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패륜아 (1)
“패륜아 마초는 들어라!”
서량, 천수군 기성.
마초는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 위에서 한 사내가 마초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너는 네 아비와 아우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조 승상께 대항해 군사를 일으켰다. 너는 네 처와 자식들이 기성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섣불리 기성을 떠나 군사를 움직였다. 천하의 패륜한 놈아, 보아라! 여기 네 처와 자식들은 오로지 너 때문에 죽는 것이다!”
성벽 위에 있는 사내의 이름은 양관. 조조의 휘하에 있다가 지난 싸움에서 마초에게 항복한 기성의 관리였다.
그러나 항복은 위장된 것이었다. 양관은 마초가 원정을 떠나자 바로 배신했다. 마초의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기성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한참 마초를 향해 욕설을 퍼붓던 양관은 이내 세 사람을 끌고 왔다. 상처투성이가 된 마초의 아내와 두 딸이었다.
“양관, 네놈이……!”
마초의 푸른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양관은 아내 양하원을 끌어내고 산발이 된 머리채를 잡아당겨 마초와 얼굴을 마주 보도록 했다. 아내는 무공을 익힌 여인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맨발이 그녀가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 말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포박당해서 죽음을 기다리는 몸이었다.
양하원이 고개를 들어 마초를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부르튼 입술을 움직여서 겨우 말문을 열었다.
“상공, 어찌하여 돌아오셨습니까? 이 길로 말을 달려 한중으로 가십시오. 저희들은 신경 쓰지 말고 뜻을 마저 이루십시오.”
양하원의 옆에서 양관이 이죽거렸다.
“흥, 어디 목이 떨어지고 나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나 보자.”
마초는 핏발이 선 눈으로 성벽 위에 선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것이 여인입니다. 큰 뜻을 품은 장부가 어찌 처자에게 이리 마음을 쓰십니까? 떠나십시오. 먼 곳에서 좋은 여인을 만나서 새 가정을 꾸리고, 다시 힘을 길러 역적을 주멸하십시오.”
“부인, 나는…….”
그대를 사랑했노라.
마초는 그 말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뒤에는 서량병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그들을 지휘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리고 마초가 망설이는 사이.
푸욱!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하원의 가슴을 뚫고 창날이 비어져 나왔다. 뒤에서 누군가 양하원의 몸을 찌른 것이다. 양하원의 입에서 피거품이 쏟아져 내렸다.
“상…공…….”
양하원은 마지막 순간 마초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잠시 후.
툭.
무심한 소리와 함께 양하원의 목이 떨어졌다. 양관이 뒤에서 칼을 내리친 것이다.
뒤이어 두 딸의 목이 차례로 땅에 떨어졌다. 양관은 세 개의 수급을 들어 성벽 아래로 내던졌다.
마초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양관! 내 반드시 네놈의 생살을 씹고 말리라!”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고성이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 고함을 내지르는 마초의 곁으로 방덕이 다가왔다.
“맹주, 돌격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우리가 죽을 곳인가 봅니다.”
방덕은 담담했다.
방덕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운명은 동관에서 조조에게 패했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던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자.”
“예?”
“돌아가자.”
마초는 이를 악물고 나직하게 말했다. 방덕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모두 말머리를 돌려라. 한중으로 간다.”
아내와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면 빗발치듯이 화살이 날아올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을 살리려면 도망치는 길밖에 없다.
아내와 딸의 유해를 뒤로 한 채 마초는 말머리를 돌렸다. 겨울의 찬 바람이 두 뺨을 파고들었다.
방덕과 서량병들은 자신을 따라서 사지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최소한 이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한중으로 도망치면 가능할 것이다.
‘그 후에는… 나 혼자 죽을 곳을 찾아가리라.’
마초는 등 뒤를 돌아보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참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내와 두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을 뿐이니 부질없는 짓이다.
우드득.
이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모두를 섬뜩하게 했다.
돌아서서 말을 달리는 마초의 어깨 위로 눈이 내렸다. 서량의 눈은 금세 땅에 소복하게 쌓였다. 마초는 눈이 쌓인 길에 발자국을 만들며 끝없이 달렸다.
달리는 마초의 푸른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 * *
성도, 촉한 표기장군부.
마초는 땀에 흠뻑 젖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또 그 꿈인가.”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나서 10년. 그날의 기억은 끊임없이 마초를 괴롭혔다. 그것은 악몽이지만 또한 달콤했다. 꿈속에서는 죽은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까.
꿈속에서나마 아내에게 사랑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미안함 때문이리라.
허공을 향해 말하는 마초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내가 조조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아우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싸워서 이겼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처럼 죄 많은 자가 천하에 또 있을까.”
조조에게 패한 마초는 한중을 거쳐 익주 땅으로 흘러 들어간다. 익주의 주인 유비는 마초를 후하게 대접했지만, 그때 이미 마초에게는 악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싸움을 갈구하는 자.
그래서 부모와 형제, 처자식을 죽게 만든 자.
사람들은 마초를 서량의 패륜아라고 불렀다.
꿈에서 깨어난 마초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어 후원으로 나왔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일곱 살이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지만 마초는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후원에서 쓸쓸히 하늘을 바라보던 마초의 눈에 떨어지는 유성이 들어왔다. 유성은 천천히 북쪽 하늘을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유성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실패만을 거듭한 인생이었다. 꿈을 좇다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다 잃었구나. 하늘이여, 나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줄 수 없겠는가.”
마초는 흐르는 유성을 보면서 읊조렸다.
만약 저 유성이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래서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면.
“다시는 가족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때.
마초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유성이 번쩍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