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장은 만능 빌런-109화 (완결) (109/109)

가장은 만능 빌런 109화 (완결)

“크리스마스 파티?”

“응. 당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못 쉬어도 내일은 쉰다며.”

“그랬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 홍성범에게 아내 김성아가 말했다.

“유아 학교 친구들이랑 모여서 파티를 하기로 했어.”

“학부모 다 같이?”

“응. 유아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처음 하는 파티라고 많이 기대하고 있더라고.”

홍성범은 자신의 늦둥이 딸, 홍유아를 떠올렸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집에만 오면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싱글벙글 얘기하던 딸.

“얼마나 모이는 건데?”

딸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홍성범이었기에 만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 친구들 5명이 모인다고 했으니까... 다 모이면 애들이랑 부모까지 해서 15명 정도지 않을까?”

“아이고 많기도 하네.”

12월 24일, 그러니까 내일은 쉬는 날이니 모처럼 유아와 둘이서 놀아주려고 했던 것이 파티로 바뀌었지만.

“그래. 나도 갈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하는 홍성범이었다.

“잘 생각했어. 유아도 아빠가 경찰인 거 많이 자랑했나 보더라고. 아빠가 꼭 같이 갔으면 좋겠데.”

“아이고, 이거 부담스러워서 부모들 만날 수나 있겠나.”

마침 다 먹은 그릇을 가볍게 정리하고 딸의 방으로 향한 홍성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뭐야?”

“응? 아아.”

유아가 자면서도 꼭 쥐고 있는 작은 인형. 그냥 인형도 아니고 종이로 만든 인형으로 보였다.

“저거 되게 웃겨.”

“웃겨?”

뭐냐고 물어본 질문에 웃기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홍성범은 더욱 의문을 표했다.

“인형이 뭐가 웃... 억!?”

부르르.

그때, 유아의 손에 있던 종이 인형이 스스로 부르르 떨며 고개를 들어 홍성범을 쳐다봤다.

“쉿! 유아 깨겠다.”

“아, 아니 방금 저 종이 인형이 움직...”

“유아 친구가 준 거래. 뭐라 그랬더라? 친구 언니가 준 걸 유아한테 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종이 인형의 모습에 홍성범이 저거 괜찮은 건가 하며 종이 인형을 노려봤다.

“인형인데 뭘 그렇게 노려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초능력 범죄를 하도 많이 봐서 초능력만 보면 반사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지라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 홍성범이 조용히 유아의 방문을 닫았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클립스 조직원 중 하나가 종이 생명체를 다루는... 에이 아니겠지.’

얼굴, 이름, 무엇 하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을 교란시키는 정교한 종이 인형을 다루는 이클립스의 조직원이 떠오른 홍성범이었지만 설마 하며 고개를 젓고 본인도 자기 위해 안방으로 향했다.

“저 종이 인형을 준 친구 이름이 뭐래?”

“응? 어... 뭐였더라...?”

그래도 혹시나 하여 저것을 준 친구 이름 정도는 들어놔야겠다 싶어 물어본 홍성범의 질문에 김성아가 낮에 들은 이름을 떠올렸다.

“서... 지은? 어, 지은이라고 했어.”

“서지은. 오케이. 내일 그 친구도 오는 거지?”

“그렇긴 한데... 아니 지금 무슨 수사해?”

아내의 말에 본인이 생각해도 8살짜리 애 이름을 묻고 내일 오는지 안 오는지 물어보는 게 웃겼던 홍성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 요즘 되는 일이 없어서 조금 그랬나 보다. 자자. 내일 몇 시까지야?”

“저녁 파티니까 집에서는 5시 정도에 나가면 될 거야.”

“그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선물 겸 유아 옷이나 사러 갈까?”

“파티 가기 전에? 좋지~”

두 사람은 침대에 누우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빠 빨리빨리~!”

“아이고 알았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에너지가 넘칠까.”

“누굴 닮기는? 열혈 강력계 형사님을 닮았겠지.”

“하하하, 그런가?”

파티가 있을 식당에 도착한 유아가 활짝 웃으며 홍성범과 김성아를 뒤로하고 식당 내부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도 들어가자. 생각보다 쇼핑이 오래 걸려서 우리가 마지막일 것 같아.”

“그래. 들어가자.”

학부모 중 한 명이 하는 식당을 꾸며 만든 파티장에는 이미 4명의 아이들이 모여있었고.

“얘들아~!”

“유아다!”

“와아! 유아 옷 이쁘다!”

“히히 그렇지? 오늘 아빠가 사줬어!”

유아 또한 그 아이들 사이에 섞여 환하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아, 유아 어머님. 오랜만에 봬요. 이쪽 분은 아버님이신가요?”

유아를 따라 식당 내부로 들어선 홍성범 부부를 향해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 한 명이 나오며 말을 걸었다.

“아, 네 맞습니다.”

8살 아이의 부모라고 하기에는 꽤나 젊어 보이는 여성의 모습에 홍성범이 살짝 놀라며 대답하고.

“어머 지은이 어머님? 입학식 때 뵙고 처음이네요~”

김성아는 여성을 이미 본 적이 있는 듯 반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말한 지은이 어머님이셔. 이 식당 사장이시기도 하고.”

“아아.”

아내의 말에 홍성범 또한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아 아빠, 홍성범이라고 합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지은이 엄마 이은선이에요.”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이은선이 안내한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살짝 주변을 둘러봤다.

“식당이 생각보다 크네?”

“이 주변에서는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야. 들어본 적 없어?”

“우리 서랑은 조금 거리가 있어서 몰랐지.”

잘 꾸며져 있는 식당은 어떻게 보면 레스토랑, 어떻게 보면 한식집처럼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 어머어머 송이 어머님~ 오랜만에 봬요~”

“유아 어머님~ 어머, 오늘 너무 예쁘게 하고 나오신 거 아니에요?”

“호호호, 설마요~ 쬐~끔 힘을 주긴 했죠? 호호호.”

“얼씨구?”

순식간에 자신을 버려두고 아이 엄마들과 수다 모드에 들어간 아내의 모습에 홍성범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멀뚱히 앉아있는 아빠들과 인사를 나눴다.

“응?”

그때, 하나씩 인사를 나누던 홍성범이 뭔가 수가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시선 처리만 보면... 지은이라는 아이 아빠가 안 계시는데? 아직 안 오신 건가?’

형사의 짬이랄까, 아빠들의 시선을 파악해 순식간에 지은이의 아빠가 아직 안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홍성범.

‘아이고, 이것도 병이다. 그냥 좀 늦으시나 보지.’

이내 피식 웃으며 형사 모드를 종료하고 다시 아빠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딸랑~

식당 문에 설치된 방울이 청명한 소리를 내고 울리며 한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린 홍성범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묘하게 날카롭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얼굴. 한번 보면 잊을 만한 얼굴은 아니었기에 의문이 들었다.

‘저런 얼굴이면 내가 잊을 리가 없는데...’

그때, 5명의 아이들 중 한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나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아아아!!!”

“엇차~ 우리 지은이 잘 놀고 있었어?”

“응!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하하, 미안미안.”

그제야 지은이 아빠라는 것을 안 홍성범이 인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아! 유아 아버님이시군요?”

“...네? 아, 네 맞습니다만...”

그런데 인사를 건네기도 전, 자신을 알아본 듯한 남자의 말에 홍성범이 당황했다.

“아 이런. 저는 지은이 아빠, 서진우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네. 홍성범이라고 합니다.”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상 수많은 범죄자, 빌런을 마주하는 일이 많은 홍성범이 묘하게 위축될 정도의 분위기, 그러면서도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은, ‘본인은 아군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에 홍성범이 당황을 하면서도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 그 저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네? 아~ 하하하.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지은이한테 친구인 유아의 아버님이 형사라는 말을 들어온 것뿐이라서요.”

“아아...”

생각해보니 유아가 자신이 형사라는 것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말을 들었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하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저는 잠시 아내와 얘기를 할 게 있어서.”

“아, 네.”

남자, 서진우가 식당의 주방을 향해 사라지고.

잠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던 홍성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진우...? 이름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데...?”

속으로 계속해서 서진우라는 이름을 되뇌던 홍성범이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에이씨, 직업병도 이 정도면 그냥 병이야.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마침 음식이 전부 완성됐는지 학부모들이 하나둘 일어나 옮기는 것을 돕고 있었기에 홍성범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 * *

“괜찮겠어?”

“응? 뭐가?”

형사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찍어놓은 사냥감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진우의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홍성범의 날카로운 감에 이은선이 걱정스레 말했다.

“아니, 저 사람 오빠 뒤를 캐던 사람이라며.”

“아아.”

하지만 진우는 그런 이은선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겠지. 약하긴 하지만 [인식 저해]도 유지하고 있고, 애초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러려나...?”

진우는 주방의 밖, 식당의 중앙에서 즐겁게 떠들고 있는 지은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는 써놨으니까 유아 아버님도 이제 굳이 나를 쫓지는 않을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럼 걱정은 그만할게.”

이은선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우에게 커다란 쟁반을 건넸다.

“자자, 음식 날라. 식기 전에 먹어야지.”

“어? 어어. 알았어.”

진우는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하나하나 쟁반 위에 올리고 주방을 나섰다.

“어? 음식 다 되셨어요? 저도 도울게요!”

“하는 게 없어서 죄송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저도!”

“당신도 뭐 해? 도와야지!”

“어어어.”

그렇게 아이 부모들이 서로 돕겠다며 나서 파티 음식은 금방 준비가 끝나고.

“와아아~!”

“맛있겠다!”

“지은아 잘 먹을게!”

“나도 잘 먹을게 지은아!”

“응! 맛있게 먹어!”

배가 고팠던 아이들도 금세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

진우는 다들 웃으며 떠드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라...’

비록 하루 이르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즐겁게 떠들고 웃는 아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이은선과 사랑하는 딸, 서지은.

-이제 된 건가?

‘예. 됐습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즐거운 시간 속에서 알마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이후 2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나름대로 열심히 균형을 맞춰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자네는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지. 지난 2년 동안의 결과도 그러하니, 나는 이제 아무런 걱정도 없네.

지은이의 팔이 닿지 않는 식탁 중앙의 오븐 치킨구이를 뜯어 지은이의 그릇에 덜어주며 진우가 말을 이었다.

‘이제 떠나실 겁니까?’

-오.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나?

‘예상이라고 하기보다는 기분... 그냥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하하하, 자네의 입에서 그냥 그런 느낌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 마지막까지 참 유쾌해.

스르르...

진우의 시야 한편, 식당의 구석에 정리되어 있는 의자 위에 알마 박사의 환영이 앉은 채로 나타났다.

-그나저나 괜찮겠나? 아직도 자네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인 것을.

로어스의 일전에서 코어에 막대한 부담을 가한 마지막 일격. [천지만물의 괴성].

덕분에 코어, 정확하게는 코어를 관리하는 세이프티가 맛이 가 진우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봉인된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괜찮습니다.’

하지만 진우는 태연하게 그리 말했다.

‘지내보니 봉인된 기억이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더군요.’

-딱 잘라 말해버리니 조금 서운하구만.

소중한 추억을 잊은 것이 아니다.

진우가 잃은 기억은 알고 있음으로써 로어스와 대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정보들만을 알마 박사가 봉인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알마 박사에 대한 기억도 있고, SOE, 구원교의 뒷얘기에 대한 정보도 있다.

‘지금에 와서는 필요한 기억도 아니고요.’

-하하하, 그건 또 맞는 말이군.

그런 것들은 이제 필요가 없는 정보, 기억이었다.

때문에 진우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기억을 찾고자 한 적이 없었다.

-하아... 마지막까지 유쾌하군.

알마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을이 지고 있는 식당의 밖을 쳐다봤다.

-...슬슬 가야겠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겨 식당의 문 앞에 섰고.

“.....”

진우는 처음으로 알마 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문 앞에 선 알마 박사가 그런 진우를 향해 물었다.

-내가 사라져도 [만능]은 사라지지 않네. 오히려 제어하는 내가 사라져 더욱 강해지겠지. 자네는 앞으로 그런 [만능]을 가지고 뭘 할 텐가?

“...”

알마 박사의 질문에 진우는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지금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이은선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도, 앞으로도 가장입니다. 그러니 가족을 지킬 뿐입니다.’

-그렇구만. 쉽기도, 어렵기도 한 일이겠어... 무겁다고 내려놓을 수도 없으니 말이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후후후, 그래. 자네라면 그렇겠지. 그럼... 힘내게.

스르륵...

그 말을 끝으로 알마 박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 진우는 문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가족을 지킬 힘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빠?”

“아빠?”

그런 진우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이은선과 지은이가 진우를 불렀고, 진우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환하게 미소을 지었다.

“그냥 더 힘내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야.”

“응?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이상해.”

“하하하하!”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운 진우였다.

<完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