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108화 - 리디북스
흔히 말하는 귀신처럼 흐릿한 영체만이 남아있는 로어스.
“쿨럭... 후우... 이제야 내가 아는 얼굴이 됐군.”
그런 로어스를 보며 진우가 가볍게 피를 토하며 말했다.
“그래서, 아직도 뭔가 할 게 남았나?”
<......>
가만히 진우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로어스가 스윽 주변을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
<초능력은 질병이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인간을 죽이고자 생겨난 질병.>
로어스는 흐릿한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초능력뿐만이 아니라 무공과 마법 또한 그러하다.>
“대체 뭘 보고...”
<각성자는 강하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강함을 가지고 있지.>
뭔가를 말하려 하는 진우의 말을 끊은 로어스가 진우를 가리켰다.
<네가 만들어낸 광경을 보아라.>
그리고 초토화된 하와이의 풍경을 가리켰다.
<이것이 인간이 단독으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광경인가?>
“...”
결계의 내부는 아름다웠던 하와이의 자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황폐한 평야가 되어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성자는 전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을 발산할 ‘대상’이 없지.>
“...”
<결국 힘을 발산할 길이 없는 각성자들은 언젠가 서로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일 것이었다.>
“그건 비약이다! 평화롭게 일상을 지내고자 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빌런이 대표적인 예다.>
“...빌런. 범죄자는 옛날부터...”
<평범하게 살던 자들이 초능력을 각성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초능력이 없었다면 빌런 대부분은 사건을 일으킬 만한 힘도, 행동력도 없는 일반인이었을 터. 그들을 빌런으로 만든 것은 사회도, 정부도, 그 무엇도 아닌 초능력 그 자체다.>
당연하게도 로어스의 말은 전부 폭론이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힘이 질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각성 이전. 일반인일 당시의 진우도 이리 생각한 적이 있었기에,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 할 수도 없었다.
<평화롭게 일상을 지내고자 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 했던가? 그렇겠지. 하지만 일상의 가운데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들은 그것의 해결을 어디서 찾을까?>
“그건...”
<사람은 기본적으로 쉬운 길을 찾는다. ‘초능력자’들에게 쉬운 길은 ‘초능력’에 기대는 것. 결국 일상에서의 사건을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에서 해결법을 찾는 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
로어스는 진우를 불쌍하다는 것처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작은 일들이 하나, 둘씩 모여 일반인과 초능력자, 그리고 초능력자와 초능력자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마지막에는 세계 규모의 전쟁이 일어나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나?>
“...”
부패하는 가디언,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각성자, 두려워하는 일반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진우였기에 오히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단정할 수가 없었다.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긍정할 수는 없었다.
“일어나지 않게 만들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진우는 고개를 들어 로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초능력이 질병이라는 스스로의 강박에 사로잡혀 다른 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제자, 알마 밸러드 박사가 초능력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알고 있나?”
<...그래. 너는 알마의 연구 결과를...>
“그는 초능력을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레 나타난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판단했지. 네가 세상에 발표한 연구, 논문, 네 사상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뭘 말하고 싶은 것이냐.>
로어스는 자신의 제자를 언급하는 진우를 노려봤다.
“알마 박사는 스승의 사상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능]을 준비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직접 [만능]을 이어받았지.”
<...하하하! 그놈이 이 스승을 위해 그릇을 준비해 놓은 게 아니었군... 바보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어... 애초에 나를 막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니...>
허무하다는 듯이 끌끌 웃음을 터뜨린 로어스가 이내 웃음을 뚝 멈추고는 진우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초능력은 세상을 좀먹는 질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고오오...
로어스의 분노와 원한이 힘이 되어 마력을 움직였다.
<...끌끌. 하긴, 이제 와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하여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그 강도는 극히 낮아 고작해야 돌멩이 하나를 움직이는 정도.
로어스는 김이 빠졌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움직이던 것을 그만두었다.
<서진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부탁하마.>
“...”
<나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다. 부디 협력하여 네 몸을 나에게 넘겨라.>
그림자의 육신은 이렐라인을 그릇으로 삼을 때 재료가 되어 사라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육신도 진우의 공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자신은 그저 그림자 육신에 붙들려있던 영혼의 조각만이 남아 있는 상태.
진우가 순순히 육체를 넘기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거절하지.”
<끌끌끌. 그렇겠지.>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로어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망하구나. 하나밖에 없는 제자 놈은 스승을 배신하고. 세상에 만연한 질병을 치료하지도 못하니...>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로어스의 발끝이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진우. 네놈은 이제 뭘 할 것이냐.>
“...”
<가디언을 쳐부수고 영웅이 될 것이냐? 아니면 세상 위에 군림하는 악이 될 것이냐.>
진우는 로어스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영웅이고 악이고, 그런 건 아무런 관심도 없다.”
진우는 자신의 목에 걸린 로켓을 손에 쥐며 말을 이었다.
“내 가족이 평화롭게.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끌끌... 가족이라... 소소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구나.>
어느새 가슴 부근까지 사라진 로어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질병에 찌든 세상 속에서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보거라. 지옥에서 즐겁게 보고 있으마.>
스르륵...
그 말을 끝으로 로어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지옥에 갈 거라는 자각은 있으니 다행이군.”
털썩!
로어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진우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때 한쪽에 나있는 구멍에서 손이 올라왔다.
“아이고. 죽겠다. 뭐가 이리 높은지...!”
“어떻게 단 한 명도! 헥, 헥, 비행 능력이 없지?”
“여긴 또 어디야? 하와이에 이런 곳이 있었나?”
천무진과 도석환, 도민경을 비롯한 템페스트의 정예들이었다.
“보스!? 유나 양까지!?”
구덩이에서 완전히 올라와 주변을 살피던 천무진이 쓰러져 있는 진우와 최유나들을 발견했다.
“무사했었나? 다행이군.”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던 진우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천무진을 바라봤다.
“아니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건가!? 여기는 또 어디고!?”
“뭐... 간단히 말하자면...”
진우는 고개를 돌려 청명한 하와이의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끝이라는 거지.”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보스!?”
그리고 진우가 천무진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조금 쉬어야겠다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 *
(찰리 로버트를 향한 테러. 범인은 사이비 종교 ‘구원교’.)
(대부분을 토벌! 하지만 테러 주범, ‘제이든’은 행방불명!)
(구원교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초능력 인공 각성 속행! 이번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찰리 로버트. 대의를 위한 기술 공개 결심! 전 세계에서 찬사가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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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자연 각성자, 인공 각성자를 불문한 아카데미 설립 계획 발표!)
(한국 정부. 대기업 템페스트와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설립! 제1기 생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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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총장. 부총장과 대립! 흐름에 따른 변화를 원하는 총장과 거부하는 부총장!)
로어스 라일리를 처단한 이후, 걸릴 것 없이 움직이는 진우에 의해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어떤 때는 한국 정부를 움직이고, 어떤 때는 빌런을 유도하여. 또 어떤 때는 찰리를 통해 미국 정부를, 청색 마탑을 통해 러시아를, 회색을 통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스스로를 감출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듯이 움직인 덕분에 최소한 각국의 중진들은 이클립스의 존재를, 정확하게는 진우, 데빌이라는 이름을 각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 결과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충격! 가디언 부총장은 구원교 신도!? 소유 기업에서 발견된 수많은 인체실험 증거!)
(가디언 총장, 루이스 베일리. 부총장의 일은 가디언 전체와는 아무런 상관없다 단언!)
(계속해서 발견되는 구원교의 흔적! 가디언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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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드러나는 가디언의 만행! 총본부뿐만 아닌 전 세계, 각국의 지부에서 더욱 심해지는 충격적인 범죄!)
(부패한 가디언! 구원교가 문제가 아니었다!)
(범죄란 범죄는 전부 저지르는 정의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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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7월 21일. 결국 가디언 해체 발표! 한숨 쉬는 기득권, 환호하는 사람들!)
로어스와의 전투 이후, 2년.
이클립스와 템페스트, 회색과 청색 마탑. 이외의 수많은 자들이 움직이며 가디언을 공격한 결과. 가디언이 꽁꽁 숨겨놓았던 수많은 범죄의 증거들이 속출.
결국 가디언은 해체되었다.
(가디언 출신 각성자들의 범죄자 프레임! 이대로 괜찮은가.)
(아무런 죄도 없는 자들. 당연히 있다! 진심으로 정의를 추구하던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새로이 개편된 UN의 총장. 철저한 조사를 통한 범죄자와 비범죄자를 가려내겠다 단언!)
물론 죄를 지은 자들과 아닌 자들은 철저히 구분되도록 수를 써놓았다.
그리고 진우는 여기까지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판단했다.
* * *
20XX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가 코앞인 하루.
쾅!!
“대체 그놈들이 뭐길래 파지 말라는 겁니까!?”
강서 경찰서 강력계 1반. 반장 홍성범이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이제 옛날과는 다릅니다! 경찰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꽁꽁 숨어버린 빌런을 잡을 수 있어요!”
“성범아 귀 아프다. 좀 조용히 말해라.”
“서장님!”
본인의 귀를 후비며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경찰서장의 모습에 홍성범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아 내가 하지 말라는 건 줄 알아!? 위에서 하지 말라잖아!”
“그러니까 대체 ‘이클립스’라는 조직이 뭐길래 위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말을 하는 거냐고요!”
결국 경찰서장도 인내심이 다했는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소리쳤다.
“내가 아냐!? 어!? 내가 알아? 그냥 위도 아니고 내 위의 위의 저~쪽 윗님이 움직이지 말라는데 뭐 내가 무시하고 그냥 야! 가서 잡아! 이럴까!? 그러고 너랑 나랑 사이좋게 호호하하 옷 벗어?!”
“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좀...”
“그럼 좀 다물어라 이것아! 니들이 석 달이 넘게 그놈들 쫓은 건 아는데 어쩔 수 없지 않냐.”
“끄응...”
“끄응...은 무슨 위아래에서 쪼이는 내가 끄응이다. 아 됐어 이제 나가 인마.”
머리 아프다는 듯이 손을 젓는 서장의 모습에 홍성범은 결국 고개를 까딱이고는 서장실을 나와 강력 1반으로 향했다.
“반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쫓으라고 하죠!? 그렇죠!?”
1반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드는 형사들의 모습에 홍성범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텃다 텃어. 하느님이 하지 말란다고 하셨단다.”
“예!? 아니 뭔 빌린 조직이 그쪽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까!?”
“나도 몰러 이놈아.”
대충 대답하며 털썩 자신의 자리에 앉은 홍성범의 눈에 각종 수사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조직명-이클립스.
*보스-일명 데빌, 본명-불명.
*조직원-극지의 마녀, 최유나. 타락한 성기사, 천무진...
*비고-비리가 터진 상위 인사들의 뒤에 이클립스의 활동을 포착. 일부 빌런의 실종 이후 이클립스의 활동 포착. 가디언 관련 기업 테러 현장에 보스, 혹은 조직원 항상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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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해체 이후, 활동이 급격히 줄어듦.
“하아. 뭔 홍길동이냐? 이젠 나도 모르겠다...”
홍성범은 미간을 주무르며 수사 파일을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