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장은 만능 빌런-105화 (105/109)

가장은 만능 빌런 105화 - 리디북스

눈을 감고 집중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드드득!

진우의 의지를 담은 마력과, 코어의 세이프티가 격렬하게 힘을 겨루며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나.’

뚫릴 듯 뚫리지 않는 세이프티에 대체 알마 박사가 코어에 무슨 짓을 해놨는지 짜증이 날 무렵.

‘그러고 보니...’

진우는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때를 떠올렸다.

‘내가 자살을 생각할 때,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막았어.’

‘불가.’라는 단어만을 반복하며 진우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막던 목소리.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어 자살을 포기했지.’

워낙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었기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세이프티가 내 생각을 유도한 거겠지.’

진우는 살짝 인상을 쓰며 생각을 이어갔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알마 박사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니 넘어간다 치고. 요는 세이프티에도 ‘의지’가 있다는 것.’

최소한 자아 비슷한 무언가라도 있을 거라 판단한 진우가 억지로 세이프티를 뚫는 것을 그만두고 코어의 주변을 살살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네 힘이 필요하다. 코어의 힘이 필요해.’

억지로 밀어내는 것을 막다 갑자기 상대가 공략법을 바꾸자 당황한 것인지 코어의 세이프티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억지로 뚫으려고 한 것은 사과하마. 최소한 내가 코어를 사용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사실, 세이프티는 이런 식으로 뚫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정확한 패턴의 열쇠를 만들어 자물쇠를 열 듯 세이프티를 해제하고 코어를 꺼내는 것이 원래의 방법.

그 방법은 진우의 봉인된 기억 속에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기억은 봉인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오오오-!!!

‘이 소리 들리지? 로어스 라일리가 완전히 그릇에 정착하고 저 그림자에서 나오면 나는 아마 죽는다.’

어느새 주변의 마력과 공명하는 그림자의 중심. 로어스 라일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내가 죽는 것은 너도, 네 창조자인 알마 밸러드 박사도 원치 않을 터.’

웅! 웅! 웅!

진우의 의지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력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절대로 불가라는 듯이 계속 밀어내기만 했던 세이프티가 고민을 하듯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로어스 라일리와 전투가 끝난 이후, 다시 락을 걸어도 상관없고. 앞으로 영원히 락이 걸려도 상관없다.’

콰드드드득!!!

그림자의 중심에 금이 가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흉악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디 힘을 빌려다오!!’

쩌저저적-!!!

뭔가가 갈라지고 깨져나가는 소리에 진우가 눈을 번쩍 떴다.

“......”

그리고 진우의 눈에 아직 금이 가 있는 그림자 중심이 보였다.

“다행히 늦진 않았네.”

소리는 코어를 둘러싸고 있던 세이프티가 깨져나가는 소리였다.

“후우우... 이게 코어의 마력...”

진우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에 숨을 토해냈다.

“양도 양이지만, 질적으로 너무 다르군.”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기에 진우는 다시 고개를 들어 금이 잔뜩 가 당장이라도 깨져나갈 것 같은 그림자의 중심을 바라봤다.

“이제 끝내자. 로어스 라일리.”

쿠구궁-!!!

양쪽으로 팔을 활짝 벌린 진우의 주변에 불과 얼음, 번개, 바람 등등 수많은 원소계 능력과, 빛과 어둠, 염동력과 같은 비원소계 능력들이 떠오르고.

“[융합]”

콰과과과과-!!!

천천히 팔을 접는 진우의 동작에 맞춰 모든 능력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콰르르릉!!!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은 소리와 사방으로 튀는 마력 스파크에도 진우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합일]”

고오오...

그리고 완성된 하나의 완전한 구체.

수수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주먹만 한 구체가 조용히 떠올라 있었다.

“후우우...”

진우는 그런 구체를 아주 잠시 바라보다.

“가라. [만물의 구].”

손을 들어 그림자의 중심을 가리키며 담담히 말했고.

구체는 천천히 그림자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 조용히 그림자의 중심에 흡수되듯 스며들어.

------!!!

급격히 팽창하며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림자의 중심을 잡아먹었다.

* * *

하와이 지상.

“하아암... 이거 너무 할 일이 없는데...”

최유나는 뜨거운 하와이의 태양 아래에서 대기 중이었다.

“(더워...)”

“(로브... 벗어버릴까...?)”

“(차라리 결계 내부에서 기다렸으면 나았을걸...)”

“(지금이라도 들어가자고 해볼까...?)”

러시아인도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추운 것에 익숙한 자들.

혹시 결계를 빠져나오는 자들이 있을 때를 대비해 전원이 결계 [겨울 장막]의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기에 굉장히 더워하고 있었다.

“쯧쯧, 그러게 로브부터 벗어버리라니까.”

최유나가 그런 마법사들을 보며 혀를 차자, 옆에 있던 사샤노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너무 벗은 거 아니니?”

“응?”

최유나는 지금 하얀색 비키니 위에 가벼운 숄더 숄을 걸치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관광객 그 자체였다.

“현지에 맞는 복장이잖아. 몰라?”

“아니 다 로브를 입고 있는데 너만 그러면 오히려 눈에 띄거든?”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홀로 비키니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최유나가 가장 이질적이기는 했다.

“뭐 어때~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뭐 그렇지만...”

“그리고 비키니 위에 로브를 걸치고 있는 게 더 이상하거든?”

“...그런가?”

푸른색 비키니에 대충 로브만 걸친 사샤노프도 최유나와 그리 다를 것 없는 모습이기는 했다.

“아무튼 템페스트가 일을 잘하는 건지, 구원교 놈들이 도망을 안 치는 건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너무 심심하다고.”

“그건 그래.”

최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샤노프가 슬쩍 고개를 돌려 결계의 내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청색 마탑의 오리지널 결계 마법, [겨울 장막].

결계 내부의 계절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결계 마법인 것은 둘째 치고, 마력을 완전히 차단시키는 효과가 있기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적당한 결계였어도 될 걸 그랬네.”

구원교는커녕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는 지금. 굳이 [겨울 장막]까지 사용했어야 했나 라는 고민이 들고 있었다.

“어?”

그때, 느긋하게 음료수를 마시던 최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언니는 이게 안 느껴져?”

“응? 뭐가 느껴진다는...”

최유나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겨울 장막]이 마력을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는 거 맞지?”

“그렇지?”

최유나는 눈을 돌려 [겨울 장막] 전체를 살펴봤다.

“흔들려...?”

“흔들린다고?”

최유나의 중얼거림에 덩달아 [겨울 장막]을 살피던 사샤노프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안 흔들리는데?”

“아니! 마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응?”

후우우웅-!!!

최유나의 말과 동시에 완벽한 반구형을 그리고 있던 [겨울 장막]이 갑작스럽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어어???”

“안쪽에서 뭔가가 마력을 끌어당기고 있는 거야!”

마치 내부에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찌그러져 가는 [겨울 장막]의 모습에 최유나가 곧장 [플라이]를 사용하여 결계 쪽으로 날아갔다.

“아앗!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가 유나야!!”

“결계 보수나 해줘!”

휙 하고 날아가 버린 최유나를 멍하니 보고 있던 사샤노프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모두 자리 잡아요!! 우리는 [겨울 장막]을 다시 수복할게요!!)”

““(예!!)””

* * *

본인이, 정확하게는 최유나의 몸에 흡수된 극빙이 [겨울 장막]의 핵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최유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겨울 장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으윽!”

그리고 [겨울 장막]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 흡인력에 [플라이]의 제어를 놓칠 뻔했다.

“진짜 블랙홀이라도 생긴 거야 뭐야.”

이대로 결계의 중심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최유나가 땅에 내려가 달리기 시작했다.

“헥, 헥, 헥.”

그리고 한동안 발을 놀리던 최유나가 흡인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를 찾고 멈췄다.

“...? 여기가 아닌가?”

다만 애매하게 어긋난 듯한 감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최유나가 문뜩 발아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구원교 놈들이 전부 지하에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 정체불명의 마력 흡인력 또한 지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 최유나가 머릿속에 진우가 알려준 구원교 지하 본부의 지도를 떠올리고 입구를 찾기 위해 몸을 돌려 몇 걸음 나아갔을 때.

“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마력을 전부 빼앗길 것 같았던 정신 나간 마력 흡인력이 뚝 하고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

그리고 방금 전까지 최유나가 서 있던 자리에서.

쿠구구구...

“응?”

작은 진동이 시작되고.

콰아아아아아-!!!!!

“꺄아아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바닥이 터져나가며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사람 살려!!!”

휘말리면 그냥 날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대한 마력 폭발이 눈앞에서 터지자 최유나는 반사적으로 방어 마법을 사용하고 동시에 다리를 놀려 뒤로 물러났다.

챙! 챙! 챙!!

순식간에 5겹의 방어 마법을 중첩시킨 최유나도 대단했지만, 마력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5중첩의 방어 마법이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혹독한 겨울의 성벽]!”

쿠우우웅!!

하지만 5중첩의 방어 마법이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어준 사이, 최유나는 자신의 앞에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성벽을 만들어냈다.

콰가가가가각-!!!

실시간으로 얼음의 성벽이 마력에 갈리는 소리가 났지만, 최유나도 필사적으로 마력을 공급하며 성벽을 수리했고.

쿠구구구구...

얼음의 성벽이 한 뼘도 남지 않았을 때, 겨우 마력 폭발이 멈췄다.

쩌저정...

얇아진 얼음의 성벽이 무너지고, 최유나가 털썩 주저앉았다.

“으아아, 죽는 줄 알았네...”

진심으로 식겁했던 터라 마력을 효율적으로 쓰기는커녕 일단 방어에 때려 박기에 바빠 최유나 자신의 마력은 괜찮았지만, 극빙에 저장해뒀던 마력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대체 왜 이런 곳에서...”

주섬주섬 수영복을 털고 일어난 최유나가 마력 폭발로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를 바라봤다.

“...깊네?”

아래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굉장히 깊은 구멍은 어딘가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내려가보긴 해야겠지?”

지하에서 진우와 구원자라는 놈이 싸우고 있을 것은 뻔한 일. 그렇다면 이 마력 폭발도 그 둘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후우.”

어차피 [플라이]를 사용하여 내려가긴 할 테지만, 일단 숨을 고른 최유나가 뛰어내리기 위해 슬쩍 자세를 잡았다.

“그럼 간...”

“여기서 뭐 하...”

“꺄아아악!!?!?!?”

“...는 거냐.”

뒤에서 갑자기 진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뛰어내렸을 것이다.

최유나가 거의 누더기를 입고 있는 진우를 보며 소리쳤다.

“보스가 갑자기! 왜! 어째서! 내 뒤에서 나와!??!?”

“그야 하늘로 튕겨졌었으니... 아니 그보다 일단 전투부터 준비해라.”

“전투?”

콰아아앙-!!!

“꺄아아악!?!?”

구멍의 반대쪽, 진우와 최유나의 맞은편에.

<크아아아악-!!!>

괴물 같은 모습의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괴성을 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