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101화 - 리디북스
콰르르릉!
화르르륵!
신전의 내부에 들어선 템페스트의 정예.
자신들을 막아서는 수많은 각성자들을 상대하던 도석환이 이마에 핏줄을 세웠다.
“아니! 대부분은 미국 갔다며!”
“아버지! 왼쪽!”
“어이쿠!!”
콰릉!
왼쪽에서 날아오는 번개를 휘감은 화살을 도끼로 쳐낸 도석환이 살짝 경련하는 손에 힘을 주며 인상을 썼다.
“심지어 하나하나가 2급 요원 이상이니 이거야 원.”
G.K와의 일전 이후, 더 강해진 도석환이었지만, 가디언 2급 요원 수준의 적이 때로 달려드는 상황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민경아! 그쪽은 어떻냐!?”
“말 걸지! 마요!”
푸욱!
도석환의 부름에 도민경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자의 목덜미에 단검을 박아넣으며 소리쳤다.
“어, 그래 바쁘구나?”
콰아앙!
날아오는 커다란 화구를 쳐낸 도석환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하자 도민경이 위기에 빠진 부하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이거 이쪽에 남은 구원교 놈들 전부 모인 거 아니에요!?”
“역시 문을 부순 게 잘못이었나?”
“그러게 내가 한다니까! 마력을 섬세하게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어허! 그냥 쪼~ 끔 부족할 뿐이다. 마지막에는 거의 성공 했다고.”
“10번 틀렸으면 그냥 나한테 넘기지 문을 부수기는 왜 부숴!!”
“아니 그 문짝 놈이 열받게 하잖아!”
“아 네! 덕분에 신명나게 칼춤 춥니다!”
“흠흠.”
듣기만 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법한 대화에 템페스트의 정예 조직원들은 몰래 도민경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래도 오랜만에 날뛰고 좋지 않냐?”
“좋기는 개뿔...! 악! 너 이씨! 너 일루와! 뒤져!!”
“......”
도민경이 자신을 공격한 구원교도에게 단검을 던지며 하는 소리가 마치 자신을 향해 하는 소리인 것 같아서 괜히 오싹한 도석환이었다.
“민준아 넌 어떻...”
“크하하하! 죽어!! 죽어!! 전부!! 뒤져버려!!!”
“어 그래. 열심히구나. 너무 나가진 말고.”
반쯤 이성을 잃고 날뛰는 도민준의 모습에 도석환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둘밖에 없는 자식들이 뭐 이렇게 기가 센지.”
도석환의 중얼거림을 들은 조직원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입구 암호를 틀렸다고 문을 부숴버린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 * *
“보스. 역시 전부 템페스트 쪽으로 넘어간 모양이다.”
“...뭐 우리야 편하고 좋지.”
솔직히 문을 여는 마력 패턴을 알려주고 연습까지 시켜줬으면 할 일 다 한 거다.
“그나저나, 입구 근방은 그렇다 치고...”
천무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근방은 내가 전력을 다해도 흠집 정도 내는 게 고작일 것 같은데...?”
은은하게 마력을 띄는 정체 모를 신전의 벽면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린 천무진이 진우를 바라봤다.
“저거 전부 강화 콘크리트에 마력 압축 강철인가?”
“그래.”
“세상에. 돈을 얼마나 처바른 거지?”
천무진의 경악에 진우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뭐... 구원자가 누군지를 생각해보면 돈은 문제가 아니겠지.”
로어스 라일리가 활동을 시작하고 단 3년 만에 벌어들인 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
진우는 돈에 관련된 것보다는 이걸 어떻게 미국과 다른 국가들 몰래 만들었는지가 의문이었다.
“...! 보스. 누가 있다.”
그때, 앞장서서 걷던 천무진이 걸음을 멈추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 명이군.”
천무진의 말대로 긴 통로의 한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진우가 [해석안]을 사용했다.
“감히 구원이 강림한 신성한 장소에 더러운 발을 들이다니.”
“제이든을 따라가지 않기를 잘했네. 오랜만이야 데빌?”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
그 둘을 알아본 진우가 눈을 크게 떴다.
“이렐라인. 그리고... 아메 유이치?”
“뭐?”
진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천무진이 남성 쪽을 노려봤다.
“...정말이군. 아메... 유이치. 그놈이야.”
그리고 천무진의 전신에서 살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호오? 이게 누구야. 영웅, 아니지. 빌런 천무진이 아니신가.”
13년 전, SOE를 토벌할 당시 커다란 공을 세운 천무진의 공적을 가로채 아들에게 주기 위해 수를 썼던 G.J의 아메 고토. 그리고 그 공적으로 G.J의, 일본의 영웅이 된 아메 유이치.
“네놈...!”
천무진을 빌런으로 만들어 감옥섬에 가둔 당사자가 눈앞에 있었다.
“데빌이란 빌런의 밑으로 기어들어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네놈은 G.J의 본부장이라는 놈이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음? 내가 G.J의 본부장이 된 것이 구원자께서 안배하신 일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뭐?”
아메 유이치가 무표정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국제적 테러 단체 SOE의 본진이 일본에 있었고, 하필 그걸 G.J가 알아차리고 하필 내가 토벌에서 큰 공적을 쌓아 아메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는 것이 전부 우연이겠나?”
“지금 무슨 소리를...”
“전부 구원자께서 안배하신 대로 흘러갔을 뿐이다. 뭐, 네놈이 나보다 큰 공적을 올린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춘 아메 유이치가 오만한 표정으로 진우와 천무진을 바라봤다.
“주제도 모르는 것을 치우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으니 신경 쓸 일도 아니었지. 아, 그래도 기분은 더러웠으니 네놈의 가족을 조금 이용하긴 했다만. 둘은 죽고 둘은 살았다 했던가? 아쉬울 따름이야.”
아메 유이치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살기를 뿜어내던 천무진이 결국 폭발했다.
“노오오옴!!!”
“천무진. 진정해라. 도발하는 거다.”
“크으윽...!”
진우가 천무진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진정시키며 아메 유이치를 바라봤다.
“아메 가문. 아니. G.J 전체가 구원교의 하수인이었군.”
“눈치채는 게 빠르다고 해야 할지, 느리다고 해야 할지. 정말 애매한 일이군.”
“가디언 아시아도 한통속이겠군.”
“호오? 아버지를 생각하는 건가? 뭐 틀리진 않았다고 해두지.”
“틀리진 않았다?”
진우는 가디언 아시아 통괄 무력대 총대장. 유자혁을 떠올렸다.
“아, 그렇군 그래서 유자혁을 제거하려 했던 건가.”
“...”
“적어도 통괄 무력대는 구원교와는 상관없는 거군. 그럼 가디언 아시아의 총리도 구원교와는 상관없겠어.”
진우의 말에 나불대던 아메 유이치가 입을 꾹 하고 다물었다.
“하하하! 넌 말이 너무 많다니까 유이치. 똑똑한 척하는 것도 힘들겠어?”
“닥쳐라 이렐라인.”
그런 아메 유이치를 보며 킥킥 웃은 이렐라인이 진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
“네 주인이 직접 데려간 이후인가.”
“악! 아픈 곳을 찌르네? 살살해줘~”
가슴을 부여잡고 타격을 받은 척 연기하던 이렐라인이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구원자께서 요즘 심기가 어지러우시거든? 그러니까 그 더러운 발 치우고 나가줬으면 하는데?”
“거절하지.”
“그래? 하아, 이거 어쩐다?”
이렐라인은 살기등등한 천무진과 담담하지만 물러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 진우를 바라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반대쪽에서 난리를 피우는 것도 네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지?”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정말... 정말로 곤란해.”
이내 이렐라인이 고개를 저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럼 들어가.”
“뭐?”
“들어가라고.”
진심인가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한, 아니. 당연히 거짓말, 함정이라 생각한 진우가 뭐라 말을 하려는 찰나.
“구원자께서 너를 부르셔.”
“...”
“거짓말 아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구원자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전하지는 않아.”
이렐라인뿐만 아니라 아메 유이치까지 옆으로 비켜나는 것을 본 진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속셈이지?”
“내 주제에 구원자님의 뜻을 어찌 알까.”
“동감이다.”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듯한 이렐라인과 아메 유이치의 모습에 진우가 천무진을 돌아봤다.
“함정일 게 분명하네.”
“나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만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해석안]이 이렐라인의 말을 진실이라 판단하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웠다.
“허, 저것들의 말이 진실이라 판단하는 건가?”
“[해석안]이 그렇다고 하는군.”
“[해석안]이...”
진우의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던 천무진이 슬쩍 시선을 돌려 이렐라인과 아메 유이치를 바라봤다.
“아! 하지만 순순히 보내주는 건 데빌. 너뿐이야.”
“천무진. 그 버러지는 남겨두고 가라.”
두 사람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진우를 바라본 천무진이 말했다.
“...난 보스의 뜻에 따르지.”
“...”
이내 천무진 또한 두 사람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진우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혼자 저 둘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 진우가 홀로 심처에 들어가면 천무진은 이렐라인과 아메 유이치, 두 사람과 홀로 싸워야 할 것이 분명했기에 진우는 망설였지만.
“템페스트도 오는 중이니 잠시 버티기만 하면 될 것이네.”
진우의 그런 망설임을 눈치챈 천무진이 작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언제까지고 원수를 보스의 손을 빌려 처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
“나를 믿고, 보스는 저놈들 대장을 처리해주게.”
구원자와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지금 진우가 힘을 소모하는 것은 그리 좋지 못했다.
“후우...”
그렇기에 진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맡긴다.”
“나만 믿게.”
진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어보인 천무진이 이렐라인과 아메 유이치를 바라봤다.
“하~암... 드디어 회의 끝난 거야?”
“그래. 기다려 줘서 고맙군.”
“뭐 우리 둘을 혼자 상대하겠다는 농담은 재밌었어.”
“농담이 될지 진담이 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겠지.”
화아아악-!!!
천무진의 전신이 빛무리에 휘감기며 압도적인 열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가게, 보스.”
“...무리하지 마라.”
진우는 그런 천무진의 뒤로하고 걸음을 옮겨 이렐라인과 아메 유이치를 지나쳤다.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길 바라.”
“쯧. 구원자님은 왜 저딴...”
의미심장한 이렐라인의 말과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는 아메 유이치를 지나치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콰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각-!!!
푸화아아아악-!!!
진우의 뒤쪽에서 뜨거운 열풍이 터져나왔다.
“후우...”
진우는 애써 뒤쪽을 무시하며 기묘한 마력이 넘쳐흐르는 신전의 심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계속해서 느껴지는 기묘한 마력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달리기를 한참.
“여기군.”
피부를 찌르는 듯한 압도적인 마력,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비틀어져 기묘하다 못해 기괴한 마력이 진우의 앞에 있는 거대한 문의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우...”
진우는 문에 손을 대고 알마 박사의 공책에 나온 대로 마력을 움직였다.
그그긍!!
그러자 겉모습은 바뀌었어도 기본적인 시스템은 변하지 않은 연구소의 철문이 스스로 열리고.
<설마 자네가 나를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철문의 반대편, 의자, 아니 옥좌(玉座)라 해도 좋을 화려한 자리에.
“로어스 라일리.”
구원자가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