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장은 만능 빌런-100화 (100/109)

가장은 만능 빌런 100화 - 리디북스

챙! 챙!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뼈의 검과 단검을 맞대는 스미스 요원과 제이든.

“(훌쩍. 이거 뭐 할 게 없구만.)”

그 사이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머리를 긁은 찰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보고자 발을 떼어 봤지만.

카가가각! 카캉!

“(...진짜로 할 게 없구만...)”

발 앞을 스쳐가는 날카로운 흔적에 걸음을 옮기는 것을 포기했다.

“(설마 이쪽도 가속, 저쪽도 가속일 줄은 몰랐는데...)”

스미스 요원은 [초가속]의 소유자, 그리고 전문적으로 경공을 배운 엘리트다.

그런데 보아하니 제이든 또한 [초가속] 혹은 그에 준하는 가속계 능력을 보유한 자인 것 같았다.

“(심지어는 거의 비슷한 실력인가?)”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철이 충돌하는 소리. 그럼에도 핏자국은 생기지 않으니 찰리는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실력이라 추측했다.

“(염제가 빨리 위 쪽를 정리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구만...)”

일단은 당장 목숨에 위험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마음이 놓이는 찰리였다.

* * *

터벅, 터벅.

“하와이는 처음 와 보는데 참...”

천무진이 아름다운 하와이의 바닷가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미친놈들의 집단인 구원교가 있다니...”

아름다운 풍경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진우에게 들었기에 더욱 애매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결국 구원교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기로 정한 건가?”

“딱히 그렇진 않아.”

그런 천무진의 옆에서 하와이 전체로 퍼진 이클립스 첩보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진우가 대답했다.

“천무진, 네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딱히 무슨 대의를 위해 구원교를 치겠다는 것도 아니야.”

“그럼?”

“언제나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서다.”

“구원교를 치는 게 왜 그렇게 이어지지?”

진우는 [텔레파시]를 끊으며 천무진을 바라봤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구원교는 나와 꽤 연결점이 많은 조직이더군.”

“음? 그게 무슨 소리...”

눈이 휘둥그레져 묻는 천무진의 질문을 끊으며 진우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한 번 죽었다 살아났다.”

“음...”

천무진도 바보는 아니니 서진우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사해 본 적은 있었다.

가디언 코리아의 정보 총괄로서 독보적인 활약을 했지만, 세상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자라는 것.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G.K에 배신당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

“솔직히 죽었다는 게 그냥 죽음을 위장했다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아니, 나는 진짜로 한 번 죽었었다. 그리고...”

진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다시 살아났지.”

당연히 믿기 힘든 말이었기에 천무진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진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믿지 못해도 상관없어. 뭐 아무튼, 최근에 나를 살린 자를 알게 됐다.”

“오, 은인을 찾았구만.”

“찾았다...라고 하기에는 힘들지. 이미 죽은 사람이었거든.”

“아...”

갑작스러운 말에 천무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그자는 구원교의 창시자, 구원자라는 놈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더군.”

“음?”

“그리고 그자가 나를 살리며 넘긴 [만능]. 이것에 구원교의 창시자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았지.”

“넘겨? 초능력을?”

죽을 뻔한 위기에서 능력을 각성한 케이스인 줄 알았기에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 진우의 입에서 나오는 상식을 벗어난 얘기들에 천무진의 머리가 과부화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만능]을 가지고 있는 이상, 구원자라는 놈은 계속해서 나를 노리겠지, 그리고 그러다 보면 내 가족, 은선이와 지은이에게 손을 뻗으려고 할 거고.”

“...그건 부정할 수 없겠구만.”

천무진 또한 자신을 노리던,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가족에게 손을 댄 경우였던지라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나를 노리는 게 아니었으면, 나는 그냥 구원교를 놔뒀을 거다. 내가 처리할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나를 노리고 있는 이상. 내 가족의 위협이 되는 이상. 나는 구원교를 가만히 둘 수 없어.”

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하와이의 풍경을 바라봤다.

“세상에서 지워버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

오랜만에 보는 진우의 광기 어린 눈빛에 천무진이 압도되어 잠시 말을 잃었다.

“...훗, 뭐 그래. 이미 여기까지 왔으면 당연한 일이지.”

그것도 잠시, 결국은 가족을 위해 움직인다는 말이었기에 천무진은 피식 웃으며 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구원교만 정리하면 이제 좀 쉴 수 있는 건가?”

“...?”

“...아니, 내가 그렇게 이상한 질문을 한 건가?”

“가디언 놈들도 많이 남았고, 이미 벌려 놓은 일도 많지. 인공 각성자가 많아지면 이제 우리도 빌런 신분을 벗어야 하고. 템페스트와 정부를 움직여서...”

“아, 알았네! 알았어! 내가 잘못했네!”

진지한 얼굴로 못 쉬는 이유를 말하는 진우의 모습에 질린 천무진이 손을 내둘렀다.

-칙! 치지직!

그때, 천무진과 진우의 가슴에 달려 있는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독수리 원,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 지키는 인원은 둘. 반복한다. 지하 통로를...

정확한 입구의 위치는 알마 박사의 공책에는 없는 정보였기에 하와이 전체에 풀어뒀던 첩보원들, 그들이 드디어 입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것을 들은 진우와 천무진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유나 양은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군.”

“반대쪽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왔으니 알아서 잘할 거다... 아마도.”

“뭐, 유나 양도 이제는 청색의 장이니...”

잠시 말없이 걷던 두 사람이 이내 동시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걱정되는군.””

* * *

“(아이고, 마탑주! 제발 체통을!!)”

“(체통은 무슨! 덥다고!!)”

자꾸만 청색 마탑의 상징인 푸른 로브를 들고 쫓아오는 마법사들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찡그린 최유나가 손부채질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더운 하와이에 로브는 무슨.”

마법을 사용해 열기를 식히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진우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적지 한가운데.

괜히 쓸데없이 마력을 썼다가 문제가 생기면 진우에게 혼날 수도 있었기에 손부채질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아오, 러시아에 있다가 하와이로 바로 오니까 더 더운 것 같네.”

이미 송조운을 통해 어떤 작전인지, 자신과 청색은 뭘 하면 되는지 전부 전해 들었다.

“요즘에 펜만 놀려서 한번 크게 날뛰고 싶긴 한데...”

기본적으로 최유나와 청색은 하와이 전체에 결계를 치고 일반인을 보호하고, 도망자들을 처리하는 역할.

최유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상에서 대기하는 쪽이었다.

“유나야.”

“아, 사샤 언니. 결계 구축은 끝났어?”

“응.”

최유나가 입술을 삐죽이고 있을 때, 결계의 구축이 끝난 사샤노프가 다가왔다.

“우리 유나는 왜 이렇게 입술이 툭 튀어나와 있을까?”

“심심해서 그래 심심해서.”

“그래? 나는 또 네 보스를 못 만나서 그런 줄 알았지.”

“...그 사람 유부남이거든?”

“러시아 여자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거야.”

“아니, 나 한국인이고.”

사실 진우를 만나지도 못했다는 것에 조금은 서운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기에 최유나는 슬쩍 사샤노프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내 차례인 거지?”

“후후, 말 돌리기는.”

“...”

“맞긴 해. 가서 중심만 잡아주면 하와이 전체에 결계가 쳐질 거야.”

최유나를 보며 실실 웃음을 짓던 사샤노프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마법사들은 다 준비 끝났으니 어서 가시지요 마탑주님?”

“언니까지 그럴 거야!?”

“후후후.”

그렇게 최유나가 대규모 결계 술식의 중앙에 서고.

“겨울 장막.”

화아아아악-!!!

열대야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에 겨울이 내려앉았다.

“어... 그러고 보니 보스가 뭘 따로 부탁했던 것 같은데...”

“뭘?”

“몰라. 생각 안 나는 거 보니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나봐.”

* * *

진우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결계로 하라고 전하지 않았던가?”

하와이를 뒤덮는 결계를 친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분명히 외부에서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이도록 특징이 없는 결계로 부탁한 것과는 달리.

“살다 살다 하와이에 눈이 내리는 걸 보는군.”

평균 29~30도의 하와이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청색의 대표적인 결계 마법, 겨울 장막이군.”

“하아... 미치겠군.”

마법에 그리 관심이 없는 천무진조차 알고 있는 결계.

외부에서 보면 청색이 하와이를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리라.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정리하는 수밖에.”

진우는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한 강철문을 보며 첩보원에게 말했다.

“템페스트는?”

“예정대로 반대편 문을 찾았다고 합니다. 도석환 님과 도민준 님, 도민경 님께서 이끄는 정예 조직원과 함께 진입하신다고.”

진우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는 내가 연락해 놓지. 너는 천예성한테 가서 첩보원을 전부 물리라고 전해라. 여유 있으면 관광객들 대피시키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첩보원이 사라지고, 문 앞에는 진우와 천무진만이 남았다.

“[종이 인형]”

스스스슷!

진우의 말과 함께 아공간에서 나온 종이 벌레 수백 마리가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이걸 다 지인이가 만든 건가?”

“그래. 삼백 마리 만드는데 30분인가 걸리더군.”

“내 딸이지만 대단하구만.”

자세히 보면 접어서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간신히 벌레의 모양만 잡아 뭉텅이로 잘랐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조잡하지만.

“가라.”

스스스슷!

좁은 문틈 사이로 기어들어 가는 것에는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종이 인형이 강철문의 틈 사이로 사라지고.

“...건너편에는 아무도 없군. 열어도 괜찮겠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던 진우가 그렇게 말하며 강철문 한곳에 손을 댔다.

지이잉!

-비밀번호 423자리를 입력하십시오.

“423자리!?”

0부터 9까지 적힌 번호판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문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천무진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한번 나올 때 마다 사백 자리가 넘는 비밀번호라고? 대체 귀찮아서 어떻게... 아니 애초에 외울 수는 있는 자릿순가?”

“진정해라.”

진우가 담담히 0000의 네 자리를 입력하고 손을 떼자.

-그그그그긍!

문이 열렸다.

“허... 속임수였나.”

“비밀번호 자체가 속임수다.”

“음?”

“일정 패턴의 마력을 돌리면서 번호를 누르면 무슨 숫자든 상관없다는 소리야.”

“아...”

그렇게 말하며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간 진우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건축물.

“미친놈들.”

신전의 모습이었다.

“연구소를 이 정도로 뜯어고쳤을 줄은 몰랐군.”

본래 알마 박사와 구원자, 로어스 라일리가 함께 사용하던 연구소.

로어스 박사가 죽고 나서도 한동안 알마 박사가 사용한 곳이었기에 그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줄 알았지만.

“이곳이 구원교의 본진이 아니면 이상할 정도구만.”

천무진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연구소였던 때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하 신전인가...”

공책을 읽은. 정확하게는 머릿속에 때려박힌 정보로 이전의 모습을 알고 있던 진우에게도 순간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진우는 신전의 안쪽을 바라봤다.

“이 마력은 틀림없이 구원자, 그놈이군.”

“섬뜩한 마력이구만...”

그곳에서는 자신을 환영한다는 듯이 기묘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