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99화 - 리디북스
찰리 로버트의 기술 발표로 한 번 뒤집어졌던 세상이 인공 각성 시연회 이후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강화 계열 적합도 97%의 23세 일본 남성, 인공 각성 이후, 적응 훈련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멕시코 출신 인공 각성자의 놀라운 성장 과정!)
(오르락, 내리락, 날뛰는 주식시장!)
(미 국방부, 초능력자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창설하겠다 공표!)
(현재의 상황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가디언 부총리의 일침!)
(가디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찰리 로버트의 반응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 일축! 한국의 초능력자 사회 융화 프로젝트를 보라!)
난리도 이런 개난리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가 흥분하고 있었다.
“아빠아빠! 지은이도 종이 인형 만들 수 있는 거야!?”
“그, 그러게~? 지은이가 착하게 잘 지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사 맞으면 된다는데!”
“...우리 지은이 주사 싫어하지 않았나?”
진우에게는 전 세계에 난리가 난 것보다는 딸이 아빠와 같이 초능력자가 되고 싶다 투정을 부리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지만 말이다.
“솔직히 아무런 부작용도 없으면 나도 초능력자가 돼 보고 싶을지도?”
“당신까지...?”
이은선도 그런 지은이를 말리지 않고 동조하고 있었기에 진우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꽤 사람을 많이 보냈다고 했었지.’
초능력자의 보유수는 곧 국력이다.
각 국가가 괜히 가디언 지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가디언이 전력 외 판정을 내린 초능력자들을 주울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이 인공 초능력자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손을 쓴 건, 인공 각성자가 골고루 퍼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니까 상관은 없다만.’
지금의 인공 각성자들은 아직 약하다.
가디언이 줍기에는 너무 약하고, 만약 줍는다 해도 아직은 약한 그들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밥값을 하지 못하는 그들의 생계를 가디언이 전부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인공 각성자들이 전력이 될 때까지 키울 의지도, 자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일주일로 예정된 인공 각성 시연회가 5일째로 접어든 지금도 한국을 포함해 수많은 나라가 계속해서 자국의 사람들을 미국에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군인이나 특수 부대원 같은 사람만 보내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랜덤으로 뽑으라고 했는데, 잘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중을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 중에서 인공 초능력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알아서 잘 하고 있으리라 믿기로 한 진우가 다시 이은선과 지은이를 바라봤다.
“...왜?”
“아빠는 지은이가 초능력자가 되는 건 시러요?”
“응?”
뜬금없는 지은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진우가 이은선을 바라보자.
스윽.
이은선이 얼굴 표정이 문제였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아...”
그에 진우는 생각을 이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나 싶었고.
“아빠가 시르면 안 할게요...”
그게 정답이었는지 지은이가 시무룩해지자 진우가 당황했다.
“아, 아니 지은아, 아빠가 그, 뭐냐 싫은 게 아니고...”
“그럼 좋아요?”
“어, 어? 아, 아니 좋은 건...”
“힝...”
“아, 아니 그게...”
“에효.”
그냥 거짓말로라도 좋다 하면 될 것을 굳이 솔직하게 말해 지은이를 더 시무룩하게 만드는 진우를 보며 이은선이 한숨을 쉬었다.
* * *
“(음... 특수계 33%에 뇌전계 33% 완전히 똑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구만. 어떤 걸 희망한다고 하던가?)”
“(뇌전계라고 합니다.)”
“(에잉, 특수계면 더 재밌었을 것을. 알았네.)”
인공 각성제를 순식간에 조합하여 넘겨준 찰리가 짧게 한숨을 쉬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창문 밖에는 널따란 공원이 있었는데. 곳은 현재 인공 각성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 그리고 당첨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련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건물을 빌린 것까지는 좋은데, 이거야 원 끝이 없구만.)”
천막에서 시작한 인공 각성 시연회는 어느새 한 상가 건물 전체를 빌려 진행되고 있었다.
덕분에 통제가 비교적 편해지고 경호도 편해졌지만, 찰리는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찝찝한 기분이었다.
“(어디 보자, 오늘로 5일짼가?)”
달력을 확인한 찰리는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재밌었다만, 이제는 슬슬 질리는군. 미스터 서가 부탁한 일주일만 채우고 관둬야겠어.)”
그동안은 몰래 아주 약간씩 조합법을 바꾸며 인공 각성 시 일어나는 변수를 연구하고, 인공 각성자가 초기에 지닌 힘을 연구하며 어떻게든 즐겁게 버텼지만.
5일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천 명 가까이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들고 있으니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암. 이럴 줄 알았으면 하루 상한을 정해놨어야 한 건데 말이야.)”
차라리 지쳐 쓰러지면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찰리 또한 초능력 각성자. 늙었다 한들 하루에 천 개 정도의 약품을 제조한다 하여 퍼지는 육체는 아니었다.
똑똑.
“(들어오게!)”
그때, 다시 인공 각성제를 받으러 온 건지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냥 정보나 빨리 말하게.)”
“(넵.)”
이제는 찰리의 성격에 적응했는지 조수로 일하는 자들 또한 뭔가 관록이 보이고 있었다.
“(인도 출신, 22살 여성, 마안계 12%, 회복계 40%입니다. 본인 희망은 회복계입니다.)”
“(잠시 기다리게.)”
그리고 또 순식간에 인공 각성제를 제조한 찰리가 약병을 휙 하고 던졌다.
“(가보게.)”
“(넵.)”
대충 이런 느낌으로 이틀이 지나가고, 인공 각성 시연회의 마지막 날.
(미 정부는 시연회의 일정을 늘려라!!)
(늘려라! 늘려라!)
“(저건 또 뭐여.)”
여기가 백악관 앞거리도 아니고, 그냥 공원일 뿐인데 정부를 부르짖으며 각양각색의 피켓을 들고 모인 시민들을 보며 찰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추첨에 탈락한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그건 나도 보면 아네. 얼씨구?)”
지금 보니 그냥 시위도 아니고 다국적, 다인종 시위였다.
척 보기에도 동양, 서양의 사람이 모여 있었고, 어떤 사람은 미국 땅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지를 않나, 아주 환장의 파티였다.
“(그래서, 시연회 기간을 늘려 달라는 건가?)”
“(기본은 그렇습니다.)”
“(근데 그걸 왜 정부를 찾아?)”
“(그건 저도 잘...)”
사람들이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인공 각성에 관한 기술이 정부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 기술은 진우의 피, 정확하게는 진우의 몸속에서 안정화된 초능력 인자와 그것을 다룰 만한 능력이 있는 자, 즉, 찰리 로버트 정도의 인물이 없으면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다.
시연회에 미국 정부의 힘을 빌리기는 했으나 정부가 원한다 하여 일정을 늘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정부를 찾을 거면 백악관에나 가지 왜 여기서 저래?)”
“(그것도 잘... 그래도 플레임 로드가 옥상에서 건물 전체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염제가 저들을 전부 태워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설마 플레임 로드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스미스 요원의 대답에 짧게 한숨을 쉰 찰리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다 청문에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이후에는 UN을 통해 인공 각성제가 전 세계에 뿌려질 거니까 상관없겠지.)”
가디언에 밀려 이름만 남은 UN이었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이용하기가 쉬웠다.
“(대충 뉴스나 인터넷에 관련 정보를 풀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시연회가 끝나면 풀 정보였으니, 조금 일찍 푼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거네.)”
“(조치해두겠습니다.)”
스미스 요원이 방을 나서고, 홀로 남은 찰리가 잠시 눈이나 붙일 겸 침대에 눕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콰아아앙-!!!
“(억!?)”
찰리와 그를 돕고 있는 정부의 인원들이 사용하는 상가 건물 옥상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그때,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스미스 요원이 들어왔다.
“(습격입니다! 당장 대피...!?)”
“(뭐 해? 빨리 안내하게!)”
“(어...? 네, 넵!)”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오히려 자신을 닦달하는 찰리의 모습에 스미스가 잠시 당황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딘가?)”
“(가디언 총본부의 전력은 전부 워싱턴 지부에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적어도 가디언은 아닙니다.)”
빠르게 걸으며 대답하는 스미스의 말에 찰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럼 빌런인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제 직감에는 로버트 님께서 일러주신 구원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젠장 오려면 빨리나 오지 개고생은 다 했는데 오고 지랄이네.)”
쿠구구궁...
옥상에서 대기하던 염제가 습격자들과 제대로 한판 붙었는지 건물 전체가 무너질 듯 진동했다.
“(설마 염제가 밀리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숫자가 많습니다.)”
스미스는 귓가의 인이어에 손을 대며 잠시 뭔가를 집중해 듣고는 말을 이었다.
“(그동안은 습격이 있으면 염제의 쪽으로 대피했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지하에 샛길을 만들어 놨으니 그쪽으로...)”
뚜벅...
그때, 스미스를 뒤따라오던 찰리가 걸음을 멈췄다.
“(로버트 님?)”
“(자네 스미스 요원이 아니구만.)”
“(네? 지금은 장난하실 때가...)”
찰리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스미스 요원은 미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넘쳐나는 친구일세.)”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때문에 마빈 스펜서. 그 친구를 결코 ‘염제’라 부르지 않지.)”
“(...)”
찰리의 말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스미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런 플레임 로드라고 불렀어야 했습니다? 다음에는 참고하겠습니다?)”
“(...)”
우드득! 우득!
스스로가 나름대로 비위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리가 온몸이 비틀리고 육체가 울룩불룩 변화하는 스미스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오우, 신이시여. 초능력에 뭔 저런 역겨운 장치를 해두셨습니까.)”
“(역겹다니 실례입니다?)”
이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스미스, 아니 제이든이 미소를 지으며 찰리를 향해 손짓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따라오기나 하면 좋겠습니다?)”
“(능력도 역겨운데 말투는 더 역겹군. 절대로 따라가기 싫네.)”
“(음. 실례에 실례를 저지르는 분입니다?)”
우드득!
제이든의 왼손에서 뼈가 튀어나오며 칼날과 같이 변화했다.
“(오우 쒯. 그거 아프진 않나? 본인 살을 찢으면서 나왔는데?)”
“(...입만 살아 있는 분은 싫습니다? 살려서 데려가는 게 그분의 분노를 식히는 데 좋을 것 같아 친절히 대하려 했습니다? 만, 역시 죽이는 게 좋겠습니다? 명령에는 복종해야 합니다?)”
“(제발 의문으로 끝내지 좀 말게,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잖나!)”
“(...저는 제이든, 구원교 제2 주교. 소개는 했으니 그냥 죽으시면 됩니다?)”
쐐에에에엑!
어느새 미소가 사라진 제이든이 찰리에게 달려들며 뼈의 칼을 찔렀다.
“(악! 스미스 이 친구야!! 지켜준다면서!!)”
후우우웅-!!
채에에엥!!!
“(으음?)”
찰리의 비명과 거의 동시에 압도적인 속도로 나타난 스미스가 단검을 휘둘러 제이든의 뼈칼을 쳐냈다.
“(아이고! 이 친구야! 죽는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양동에 걸려 조금 늦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스미스를 죽이고 껍데기를 빼앗았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미 특수요원들의 대장인 스미스가 그리 쉽게 당했을 리는 없을 거라 판단한 찰리의 도박이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