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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97화 (97/109)

가장은 만능 빌런 97화 - 리디북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알마 박사는 감정을 추스르며 잠시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그 이후는?”

“후우, 그래 설명은 계속해야겠지.”

알마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구석으로 걸어갔다.

“스승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초능력이라는 질병을 완전히 치유하여 없애는 것.”

“...”

“그게 왜 구원이라 부르는 형태로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스승의 목적은 변한 게 없을 것이네. 똥고집도 그런 똥고집이 없던 양반이었거든.”

알마 박사는 연구실의 구석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생전에는 나름대로 스승을 설득해보려 애를 쓰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 스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SOE가 만들어진 이후였고 말이네.”

그리고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한 권의 공책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건?”

그거 건네주는 공책을 받고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아까 왜 [만능]이 자네에게 갔는지 물었지?”

“내 피에만 반응해서 선택권이 없었다고 이해했다만.”

“그것도 맞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네.”

“...듣지.”

그는 다시 유리관의 옆으로 가 앉으며 말했다.

“SOE와 스승의 관계를 흔적이나마 찾아낸 자네가 내 스승을 막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네.”

“음...”

“뭐, 그런 내 바람 때문에 자네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유도되고 있었던 것은 사죄하지.”

“역시 당신 때문이었나.”

가디언은 애초부터 몰락시킬 작정이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자신이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원교를 막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했다.

“나도 의도한 바가 아니네. 나도 내 정신이 이토록 강대할 줄은 몰랐거든.”

“...”

갑자기 자화자찬을 하는 박사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 그가 준 공책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이건?”

“아, 얘기가 옆으로 샜구만, 그건 내가 생전에 있던 연구실의 위치와 들어가는 법에 대해 적혀 있는 공책이네.”

“연구실?”

미간이 구겨졌다.

“그걸 왜? 나는 딱히 쓸데도 없다만.”

“내 예상이지만, 아마 그곳은 구원교와 관련된 장소가 되었을 것이네.”

“...”

“까딱하면 그곳이 구원교의 본진일 수도 있고.”

이제는 미간이 아니라 그냥 얼굴 전체가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그걸 왜. 나는 구원교를 직접 정리할 생각이 없어. 그건 내 일이 아니야.”

이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곳에 온 이후 구원교, 정확하게는 구원자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졌고, 천무진도 억지로 복수를 원하는 눈치도 아니었으니 굳이 그들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

“끌끌끌...”

알마 박사의 웃음소리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신분을 세탁하고 은선이와 지은이, 두 사람과 함께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걸세.”

“...무슨 의미지?”

“애초에 내 스승. 구원자. 그 괴물을 막아야 한다고, 힘을 빌려 달라 한 것은 자네가 먼저였네.”

“...뭐?”

“이제 시간이군.”

펑!

“어?”

알마 박사의 말과 함께 내 다리가 가볍게 터져나갔다.

“이게 무슨!?”

“슬슬 세이프티가 다시 작동할 시간이거든.”

“방금 말한 게 무슨 의미...!”

펑! 펑!

이번에는 오른팔과 왼쪽 어깨가 터져나갔다.

다행이 고통은 없었지만, 뭔가 강제로 쫓겨나는 기분이라 기분이 더러웠다.

“참고로 같은 방법을 써도 이곳에 다시 오진 못할 거네. 그럼 자네와, 자네의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펑!

알마 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가 터지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훈련실에 들어가고 저녁 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진우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이은선은 놀라서 본인이 쓰러질 뻔했다.

“분명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데...”

템페스트에 연락하여 은밀하게 파견된 의사는 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하고, 오히려 정신을 잃은 사람이 이렇게 건강할 수도 있구나라고 감탄하며 떠났다.

“아빠 왜 안 일어나?”

“으응? 어... 요즘 아빠가 많이 힘들어서 조금 오래 자는 건가 봐.”

“잉... 아빠 맨날 바빠. 아빠 자는 거 보고 있으니까 지은이도 졸리다...”

진우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오늘로 4일째였다.

“은선 양.”

“아, 무진 아저씨.”

끔뻑끔뻑 졸고 있는 지은이를 안고 멍하니 진우를 바라보던 이은선의 뒤로 천무진이 다가왔다.

“보스는 오늘도 자고 있습니까?”

“네. 많이 피곤했나봐요.”

“그렇습니까.”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진우를 보며 말하는 이은선의 모습은 생각보다 그래 걱정되는 모습은 아니었다.

“은선 양은 괜찮습니까? 보스가 잠들고 나서 거의 안 자는 것 같던데.”

“저는 괜찮아요. 이보다 심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아...”

진우가 죽었다 알려지고 장례식까지 치렀던 때를 말하는 걸 눈치챈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이은선은 손을 뻗어 진우의 손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오빠가 살아 있고, 깨어날 거라는 확신도 있으니까. 저는 괜찮아요.”

“음...”

“아, 잠을 못 자는 건 제가 자다가 오빠가 일어나면 뭔가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랄까... 후후, 잘 설명을 못하겠네요.”

“이해합니다.”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말을 이었다.

“템페스트에서 도움 요청이 들어와서 저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그동안 보스가 깨면 저는 템페스트 쪽에 있다고 전해주시면 됩니다.”

“네. 그렇게 말해놓을게요.”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 덧붙이며 천무진이 방을 나가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완전히 밤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자는 거 아니야?”

완전히 잠든 지은이를 진우의 옆자리에 눕히며 이은선이 중얼거렸다.

“12시가 넘었네. 이제 5일째야. 오빠.”

자정이 막 넘은 시간을 확인한 이은선이 지은이를 사이에 두고 자신 또한 몸을 눕히며 말했다.

“계속 힘들게 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이 무거워진 이은선이 스르륵 잠이 들고.

스르륵.

그런 이은선과 교대하듯이 진우가 눈을 떴다.

“...5일?”

이은선과 지은이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일어난 진우가 날짜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한 시간도 안 있었던 거 같은데...”

정신세계, 코어의 내부에서 머문 체감 시간은 한 시간 미만. 하지만 실제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시간은 5일이었다.

“많이 걱정했겠네.”

진우는 어딘가 초췌하게 보이는 이은선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으음...”

그리 깊게 잠들지는 않았었는지 진우의 손길에 살짝 인상을 쓴 이은선이 이내 눈을 떴다.

“오빠...?”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꿈...?”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을 못하던 이은선이 지은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진우를 바라봤다.

“꿈 아니네?”

“응. 미안, 많이 걱정했지?”

“...”

잠시 입을 다물던 이은선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진우의 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지은이가 자니까 이걸로 때린 걸로 칠게.”

“하하, 많이 아프다.”

“걱정시킨 벌이야.”

진우의 가슴에 이마를 댄 이은선이 말했다.

“지은이도 기다리다 잠들었는데. 깨울까?”

“아니, 자게 둬. 어디 안 갈 거니까.”

“응.”

천천히 다시 지은이의 양옆에 누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배는 안 고파? 5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글쎄?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는 않네. 아침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

“성격대로면 아침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지은이도 먹어야 하니까 내가 봐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이은선이 스르륵 잠이 들고.

“...일단 나중에 생각할까...”

이은선과 지은이를 바라보던 진우도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차자자자자작!

사진을 찍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미국의 한 기자회견장.

“(허허허, 이렇게 많이 모을 줄은 몰랐어.)”

세계 제일의 연금술사, 찰리 로버트가 적당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세기적인 발표의 자리이지 않습니까. 기자뿐만 아니라 이능 연구의 권위자를 전부 모았습니다.)”

그런 찰리의 옆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함께 손을 흔들던 남자가 대답했다.

“(에잉, 귀찮아서 일부러 맡겼건만, 그냥 내가 알아서 할 걸 그랬어.)”

“(하하, 무슨 섭섭한 소리를, 로버트 님이 원하신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행동할 준비가...)”

“(그래그래,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고 슬슬 들어가세.)”

“(모시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국가 연구 기술원의 국장, 그리고 극비 이능 연구소, 통칭 52구역의 책임자, 알렉 라모스가 미소를 지우지 않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찰리를 안내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빌어먹을 가디언 놈들을 싹 밀어낼 기회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렇지만, 알렉 라모스는 특히 더 가디언을 혐오하고 있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는데.

‘루이스 그 자식도 이제 콧대가 부러져 봐야지!’

가디언 총본부의 총장. 루이스 베일리가 그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즉 미국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며 압박했기 때문이다.

‘감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무시해? 하하하! 그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쉽구만!’

국제적 테러 단체 SOE가 만들어지는 계기를 미국에서 줬다는 명분으로 압박당한 덕분에 미국은 강대국임에도 초능력자 보유수는 다른 강대국들에 현저히 적은 상황.

‘사우스 코리아에서는 가디언이 완전히 박살 났다고 들었는데. 이쪽도 그랬으면 좋겠군.’

태어나 다른 나라가 부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한국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처음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자, 일단은 여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후우, 다 늙어서 이게 뭔 짓인지.)”

일단 기자회견, 아니 기술 발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소란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 맞기에 알렉은 찰리를 자리로 안내해 앉히고, 마이크를 잡았다.

삐이이!

일부러 소음을 내어 자신에게 시선을 주목시킨 알렉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연금술사, 찰리 로버트 님의 기술 발표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선 정숙해 주시길 바랍니다. 발표의 순서는 먼저—)”

가디언이 장난질을 하지 못하도록 굳이 세계적인 권위자를 전부 모아 놓은 자리.

아무리 알렉 라모스라고 한들 긴장이 안 되는 것이 이상한 자리였다.

‘가디언 놈들도 군데군데 보이는군.’

하지만, 사전에 연금술사, 찰리 로버트가 무슨 기술을 개발했는지 들은 알렉 라모스는 긴장은커녕 기대가 되어 미칠 것 같은 지경이었다.

‘이게 약쟁이들의 기분인가? 뽕이라도 맞은 기분이군.’

아니, 그냥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발표 도중에는 질문을 받지 않으며,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짧게나마 질의응답 시간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런 기대를 어떻게든 억누르며 자신의 일을 마친 알렉이 고개를 돌려 찰리를 바라봤다.

끄덕.

진행해도 된다는 찰리의 신호에 씨익 미소를 지은 알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연금술사 찰리 로버트 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알렉의 안내에 따라 마이크를 잡은 찰리가 쓰윽 관객석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아는 얼굴이 참 많으니 내 소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거라 믿소.)”

그리고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가 오늘 발표할 기술은 초능력 인자가 없는 일반인에게 아무런 부작용 없이 초능력을 발현시키는 기술이오.)”

발표 도중에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알렉의 말이 무색하게.

(지금 그게 무슨!!!!)

(당신의 이름을 걸고!!!)

(내가 잘못 들은 거요!?!?!?)

(대답을!!!)

(찰리 박사!!!!)

“(허허허, 이거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

한순간에 발표회장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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